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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27권, 숙종 20년 7월 19일 을유 3번째기사 1694년 청 강희(康熙) 33년

박세채가 입시하여 붕당을 경계하는 교서를 올리고 장희재 처리·현량의 천거 등을 건의하다

좌의정 박세채(朴世采)가 청대(請對)하여 입시(入侍)했다. 박세채가 붕당(朋黨)을 경계하는 교서(敎書)를 제진(製進)하니, 임금이 명백하고 적실하다고 칭찬했다. 이어 박세채가 당론(黨論)의 원위(源委)를 하나하나 진달하고, 또 아뢰기를,

"이 글은 비록 문구(文具)에 가까운 것 같기는 합니다마는,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지극히 공정한 마음을 가지시고 용사(用舍)와 출척(黜陟)을 조금도 균평(均平)하지 않은 것이 없이 하시되, 이런 마음을 잡아 놓치지 마시고 오랫동안 해 가신다면 군신(群臣)들이 저절로 감동되고 편당의 풍습이 스스로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박세채가 아뢰기를,

"성상께서 마음에 통쾌하게 결단하시고 중궁(中宮)을 복위(復位)하셨으니, 지난날의 조신(朝臣) 중에 혹시라도 중궁을 모함하는 짓을 한 사람이 있다면 의리상 마땅히 토죄(討罪)해야 할 것인데, 국모(國母)를 모해(謀害)했었다는 말이 마침 성상의 분부 속에서 나왔습니다. 대저 위를 모해하려 한 역적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습니까마는, 이들과 같은 자는 있지 않았습니다. 중궁께서 세자(世子)께 대하시기를 한(漢)나라의 마 황후(馬皇后)장제(章帝)에게 송(宋)나라의 유 황후(劉皇后)인종(仁宗)에게 한 것처럼 하시어,363) 지극한 인정이 진실로 차이가 없으십니다. 세자께서 영예(英睿)하고 숙성(夙成)하신데, 어찌 대간(臺諫)과 신민들의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영상(領相)이 매양, ‘희적(希賊)364) 이 죽게 되면 희빈(禧嬪)이 불안하고 희빈이 불안하면 세자가 또한 불안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국가를 위해 깊이 근심하고 지나치게 염려했음은 여러 신하들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마는, 의리로 말한다면 극진하지 못한 듯합니다. 국모를 모해하려 한 자가 죽지 않음을 불안하게 여기지 않고, 도리어 사척(私戚)들이 죄를 입는 것을 불안하게 여겼으니, 이는 세자에게 올바른 도리를 바라지 아니한 것입니다. 전하께서 일찍이 영상에게 유시(諭示)하시기를, ‘천하의 일이란 처리하기 어려운 것이 있어, 혹은 앞날에 반드시 장차 창황(蒼黃)하여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있을 것이기에 이렇게 참작하여 처리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신은 그윽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이 희적을 용서하려고 하여, 뒷날 처리하기 어렵게 될 것을 들어 말하였음은 진실로 충성을 다하려한 뜻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성상께서 마땅히 분부하시기를, ‘설사 처리하기 어려울 것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어찌 합당하지 않게 처리할 수 있겠는가? 과히 근심할 것 없다.’고 하신다면, 대신이 또한 우러러보며 믿고서 근심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 대신이 처리하기 어려움을 말하자, 성상께서 답하신 말씀도 또한 그럴 것이라고 하셨으니, 무슨 일이십니까? 전하께서는 온 나라 신민들의 주인이 되시어, 안으로는 궁중에서 밖으로는 신료(臣僚)들에게까지 진퇴(進退)를 뜻대로 하시니, 어찌 앞날에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 있겠습니까? 비록 혹 있게 된다 하더라도 전하께서 궁리(窮理)하고 수신(修身)한 학문을 가지고 처리하시기에 무슨 어려움이 있길래 미리 창황하게 어찌할 수 없을 것을 염려하시는 것입니까? 이는 성상의 마음에 또한 주장(主張)하시지 못할 바가 있어, 마치 딴 사람의 일을 말하듯이 하신 것이니, 방해가 될 것은 마땅히 어떠한 일이겠습니까? 만일 전하께서 성심(聖心)을 확고하게 정하시어 아래로 국가의 대체(大體)를 살펴보시고서, 수상(首相)에게 전날 실언(失言)했다는 뜻으로 깨우치고 이어 대간(臺諫)이 논계(論啓)한 대로 따르신다면, 중궁(中宮)·세자(世子)·희빈(禧嬪)이 모두 편하게 될 길이 여기에 있게 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경(卿)의 말은 참으로 좋은 말이다. 다만 천하의 일이란 처음에 조심하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는 법이다. 내가 장희재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대개 중시(重視)해야 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또 장희재가 민암(閔黯)의 말을 듣고서 언서(諺書)를 만든 것이므로 조언(造言)을 한 자와는 차이가 있다."

하였다. 박세채가 이어 근독(謹獨)의 뜻을 자못 누누이 전달하고, 또 희로(喜怒)의 폭발(暴發)을 들어 경계하니, 임금이 아름답게 여기며 받아들였다. 또 아뢰기를,

"임영(林泳)은 학식과 인품이 조정 진신(搢紳)들 중에서 뛰어난데 병으로 일을 맡지 못하고 있고, 아망(雅望)이 있는 신익상(申翼相), 학식이 있는 김창협(金昌協), 문학(文學)에 능한 이여(李畬), 효우(孝友)가 있는 정시한(丁時翰), 재행(才行)이 있는 이동표(李東標), 식견(識見)이 있는 송광연(宋光淵), 간직(簡直)한 신양(申懹)이 모두 조정에 있지 않으니, 같이 권장하고 임용(任用)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였다. 또 자주 어사(御史)를 내보내 염문(廉問)하고, 또한 효종(孝宗)의 유의(遺意)를 본받아 군사(軍事)를 잘 살필 것을 청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마지막에는 또 정부(政府)·육조(六曹)·승정원(承政院)·삼사(三司)·태학(太學)·경조(京兆)와 팔도의 관찰사(觀察使)로 하여금 경학(經學)에 밝고 행신이 닦아진 선비를 추천하게 하여, 초사(初仕)를 엄선(嚴選)하고 수령(守令)의 임용(任用)을 신중하게 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하여 시행하도록 하였다. 그 뒤에 비국(備局)에서 복주(覆奏)하기를,

"박세채가 아뢴 대로 이미 초사(初仕)를 가리고 수령도 가리게 하려면, 마땅히 이미 6품에 올랐거나 일찍이 천장(薦章)에 들어 있어 조정에서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추천하지 말도록 하고, 모든 관사(官司)의 장관(長官)은 각기 두 사람씩 추천하게 하고, 정부에서는 삼공(三公) 및 동서벽(東西壁)이 【찬성(贊成)과 참찬(參贊)으로 동서벽을 삼는다.】 모두 추천하게 하며, 외방(外方)의 여러 도(道) 중에 삼남(三南)은 본래 인재(人才)의 부고(府庫)라는 곳이니, 혹시 추천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수에 구애받지 말도록 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천목(薦目)이 ‘경명행수(經明行修)’이므로 반드시 그만한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니, 이 이외에 다시 ‘경술정통(經術精通)’과 ‘행의순고(行誼純固)’로 두 가지의 천목을 만들어 겸하여 취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좋다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27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339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비빈(妃嬪)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인사-선발(選拔) / 역사-고사(故事)

  • [註 363]
    한(漢)나라의 마 황후(馬皇后)가 장제(章帝)에게 송(宋)나라의 유 황후(劉皇后)가 인종(仁宗)에게 한 것처럼 하시어, : 마 황후는 후한(後漢) 때 현종(顯宗)의 비(妃)임. 현종이 즉위했을 때 마 황후가 귀인(貴人)으로 있었는데, 가씨(賈氏)가 낳은 숙종(肅宗:장제(章帝))을 양자로 주자, 마 황후가 자기 아들처럼 열심히 정성을 다하여 길렀음. 유 황후는 송 진종(宋眞宗)의 비(妃)인데, 이 신비(李辰妃)가 낳은 인종(仁宗)을 양자로 삼아서 극진히 길렀음.
  • [註 364]
    희적(希賊) : 장희재(張希載).

○左議政朴世采請對入侍, 世采製戒朋黨敎文以進。 上奬之以明白的當。 世采仍悉陳黨論源委, 又曰: "此文雖近文具, 願聖上, 秉心至公, 用舍黜陟, 少無不均, 操此不失, 積久行之, 則群臣自然感動, 黨習自至消融矣。" 上納之。 世采曰: "聖心夬斷, 中宮復位。 前日朝臣, 若有誣犯中宮者, 義當致討, 而謀害國母之語, 適出於聖敎, 夫謀上之賊, 何代無之? 而未有如此輩者也。 中宮於世子, 如 馬皇后之於章帝, 劉皇后之於仁宗, 至情固無間。 世子英睿夙成, 豈不知臺諫臣民之意哉? 領相每以賊死, 禧嬪不安, 禧嬪不安則世子亦不安爲辭, 其爲國家深憂過慮, 非諸臣所及, 而以義理言之, 似爲未盡, 不以謀害國母者之不死, 爲不安, 而反以私戚被罪, 爲不安, 則是不能望世子以正道也。 殿下嘗諭領相曰: ‘天下事有難處者, 若其他日, 必將蒼黃罔措, 故有此酌處。’ 臣竊謂不然, 領相之欲貸賊, 以日後難處爲言者, 固是盡忠之意, 而自上宜敎之曰: ‘設有難處者, 予豈處置乖當乎? 其勿過憂。’ 大臣亦將仰恃而無所憂矣。 今大臣言其難處, 而上所以答之者, 亦以爲可者, 何也? 殿下爲一國臣民之主, 內自宮梱, 外及臣僚, 進退如意, 則豈有他日難處之事? 雖或有之, 以殿下窮理修身之學, 處之何難, 而預慮其蒼黃罔措耶? 是聖心亦有所不能主張, 有若言他人之事, 其爲害當如何哉? 若殿下堅定聖心, 俯察國家大體, 諭首相以前日失言之意, 仍從臺諫之論, 中宮世子禧嬪俱安之道, 其在此矣。" 上曰: "卿言固好, 但天下事, 莫如謹之于始, 予非以希載爲無罪, 蓋有所重者存焉。 且希載言而有諺書, 與造言者有間耳。" 世采仍陳謹獨之義, 頗縷縷, 且以喜怒暴發爲戒。 上嘉納之。 又言: "林泳學識人品, 優於朝紳, 而病不能任事, 如申翼相之雅望, 金昌協之學識, 李畬之文學, 丁時翰之孝友, 李東標之才行, 宋光淵之見識, 申懷之簡直, 俱不在朝廷, 合加奬用, 又請頻遣御史廉問, 且倣孝廟遺意, 俾察軍事。" 上可之。 終又請: "令政府六曹政院三司太學京兆八道觀察使, 薦經明行修士, 俾嚴初仕之選, 而愼守令之任上令廟堂稟行。" 後備局覆奏曰: "世采所奏, 旣爲擇初仕揀守令, 則宜勿擧已陞六品及曾入薦章, 知名於朝廷者, 而諸司長官, 各擧二人, 政府則三公及東西壁, 【以贊成參贊爲東西壁。】 皆得薦進, 外方諸路中, 三南素稱人才府庫, 如有可擧者, 勿拘其數爲宜。 薦目經明行修, 其人必不多, 此外更以經術精通, 行誼純固, 爲二目而兼取之。" 上曰可。


  • 【태백산사고본】 29책 27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339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비빈(妃嬪)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인사-선발(選拔)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