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23권, 숙종 17년 윤7월 14일 정묘 2/3 기사 / 1691년 청 강희(康熙) 30년
옥산 부원군의 시호를 빨리 의논하여 정하라고 하교하다
국역
하교(下敎)하기를,
"국구(國舅)를 절혜(節惠)하는 법을 아직 거행하지 못하였으니, 사체(事體)가 미안하다. 옥산 부원군(玉山府院君)122) 의 시호(諡號)를 빨리 의논하여 정하라."
하였는데, 홍문관(弘文館)에서 아뢰기를,
"이미 지난 가을에 의논하여 시망(諡望)123) 을 정하였으나, 회좌(會坐) 때에 동벽(東壁)124) 이 없으므로 태상(太常)125) 과 합의를 거치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정원(政院)에서 드디어 개정(開政)하여 차출할 것을 청하였다.
- [註 122] 옥산 부원군(玉山府院君) : 희빈 장씨(禧嬪張氏)의 부(父)인 장형(張炯)의 봉호(封號).
- [註 123] 시망(諡望) : 공신(功臣)에게 시호를 내릴 때 미리 세 가지 시호를 의정(議定)하여 올리던 것. 이 세 가지 중에서 임금이 하나를 골라 완정(完定)하였음.
- [註 124] 동벽(東壁) : 회좌(會坐)할 때 좌석의 동쪽에 앉는 벼슬. 홍문관(弘文館)의 동벽(東壁)은 응교(應敎)·부응교(副應敎)임.
- [註 125] 태상(太常) : 봉상시(奉常寺).
원문
숙종 17년 (1691) 윤7월 14일
숙종실록23권, 숙종 17년 윤7월 14일 정묘 2/3 기사 / 1691년 청 강희(康熙) 30년
옥산 부원군의 시호를 빨리 의논하여 정하라고 하교하다
국역
하교(下敎)하기를,
"국구(國舅)를 절혜(節惠)하는 법을 아직 거행하지 못하였으니, 사체(事體)가 미안하다. 옥산 부원군(玉山府院君)122) 의 시호(諡號)를 빨리 의논하여 정하라."
하였는데, 홍문관(弘文館)에서 아뢰기를,
"이미 지난 가을에 의논하여 시망(諡望)123) 을 정하였으나, 회좌(會坐) 때에 동벽(東壁)124) 이 없으므로 태상(太常)125) 과 합의를 거치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정원(政院)에서 드디어 개정(開政)하여 차출할 것을 청하였다.
- [註 122] 옥산 부원군(玉山府院君) : 희빈 장씨(禧嬪張氏)의 부(父)인 장형(張炯)의 봉호(封號).
- [註 123] 시망(諡望) : 공신(功臣)에게 시호를 내릴 때 미리 세 가지 시호를 의정(議定)하여 올리던 것. 이 세 가지 중에서 임금이 하나를 골라 완정(完定)하였음.
- [註 124] 동벽(東壁) : 회좌(會坐)할 때 좌석의 동쪽에 앉는 벼슬. 홍문관(弘文館)의 동벽(東壁)은 응교(應敎)·부응교(副應敎)임.
- [註 125] 태상(太常) : 봉상시(奉常寺).
원문
원본
숙종 17년 (1691) 윤7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