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 22권, 숙종 16년 10월 12일 기사 1번째기사
1690년 청 강희(康熙) 29년
전 영의정 김수흥의 졸기
전 영의정(領議政) 김수흥(金壽興)이 장기(長鬐)의 적소(謫所)에서 졸(卒)하였는데, 65세였다. 김수흥의 자(字)는 기지(起之)이며, 문정공(文正公) 김상헌(金尙憲)의 손자이다. 아우 김수항(金壽恒)과 차례로 조정에 등용되었는데, 문사(文詞)는 김수항보다 못하였으나 또한 아량이 있어 쓸 만하였다. 간사(幹事)하는 기량이 남보다 뛰어나서 과단(果斷)하고 민첩하게 처리하였으므로, 탁지(度支)의 정사(政事)는 사람들이 근세에 드문 것으로 일컬었다. 현종(顯宗) 때에 특별히 정승으로 제배(除拜)되고 이어서 수상(首相)에 올랐는데, 급제한 지 겨우 10여 년이었으나 남들이 갑자기 올랐다고 하지 않았다. 김수흥은 일찍부터 어진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경술(經術)에 마음을 두었었다. 전후 정승의 벼슬에 있던 것은 오래지 않으나 한결같이 유현(儒賢)을 부호(扶護)하고 군덕(君德)을 보도(輔導)하는 것을 주장삼고, 낭패스러운 형세가 되더라도 돌아보지 않았으므로, 세상에서 이 때문에 칭찬하였다. 어려운 때를 당하여 횡액을 면하지 못하여 장해(瘴海)에서 해를 겪고 마침내 널[柩]로 돌아오니, 선류(善類)가 누구나 다 상심하고 통탄하였다. 뒤에 문익(文翼)이라 증시(贈諡)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22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39책 231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