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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17권, 숙종 12년 9월 13일 갑오 1번째기사 1686년 청 강희(康熙) 25년

대사헌 김창협이 치국에 있어 새로운 각오로 분발하여 실행하라는 상소를 하다

대사헌(大司憲) 김창협(金昌協)이 상소하기를,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십수 년 동안에 가뭄과 장마의 피해와 바람과 벼락, 그리고 서리와 우박의 재앙과 별들의 이변과 기후의 이상과 요사스러운 인물들이 해마다 겹쳐서 나타나 천이나 백으로 헤아릴 정도입니다. 그러한 이변을 당할 때마다 성상(聖上)의 마음은 문득 놀라셔서 자신의 죄책으로 돌리시며 직언(直言)을 구하시는 하교와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근심하시는 말씀을 한해 중에도 여러 차례 내리셨는데, 전후에 내리신 성상의 하교를 살펴보건대 두려워하시는 뜻과 애통해하시는 말씀은 굳이 오늘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이미 지극하였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은 속일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늘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신은, ‘하늘이 진실로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사람도 속일 수가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근세(近歲)에 애절한 하교가 내렸을 적에 중외(中外)에서 이를 예사롭게 보고 막연히 반응이 없는 것은 전하에게서 애당초 성심(誠心)이 없으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심정이 이와 같으니 하늘의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신은 청컨대 지금부터는 단순하게 말과 글로써 하늘에 대응하고 사람을 감동시키려는 도구로 믿지 마시고, 근본의 절실한 처지에 깊이 유념(留念)하신다면, 재앙을 소멸시킬 수도 있고 화란(禍亂)을 구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경연(經筵)의 한 가지 일로 말씀드린다면 전하께서 경연에 임하여서 강독(講讀)하심이 부지런하시지 않은 것은 아니나, 오로지 침묵만을 숭상하시고 어려운 점을 물으려고 하지 않으시는데, 아마도 이러한 병근(病根)249) 은 성상의 재질이 현명하시면서도 깊이 탐구하심은 부족한 데서 연유한 것 같습니다. 그 성현(聖賢)의 경전(經傳)을 읽으실 적에도 대략 강독하여 이해가 되시면 문득 이미 다 알았다고 여기고, 그 중에 무한하게 이치를 따질 것과 무한하게 완미(玩味)해야 할 곳이 있는 것은 알지 못하여 무릇 매일같이 응접(應接)하는 기무(機務)의 잘되고 잘못됨과 신료(臣僚)들의 어질고 어질지 못한 점과 언론(言論)의 시비와 의견의 차이에 대해서 마땅히 낱낱이 강구(講究)해야 할 것들도 대체로 깊이 생각하시거나 밝게 분변하지 않으시니, 이 또한 뜻을 세움이 독실하지 못하고 도(道)를 구하는 마음이 성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어물어물 구차하게 지내다가 사정(私情)에 치우치고 인색함에 얽매이는 단서로 마침내 그 많은 것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되면, 따라서 이를 숨기고 덮어두어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려고 하실 것이니, 이 때문에 전하의 마음이 안과 밖이 통달하기를 청천 백일(靑天白日)처럼 환하지 못하고 때로는 혹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날 사헌부(司憲府)에서 논계(論啓)할 때에 궁중 안에 집을 짓는 일을 말씀 드렸을 적에 전하께서는 그것을 전해 들은 것이 사실과 틀린다고 하시면서도 오히려 이를 너그럽게 받아들이시고 언짢게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신이 처음 비답(批答)을 읽고서는 성상께서 마음을 비우시고 간언(諫言)을 받아들이시는 미덕(美德)을 가만히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헌부의 신하가 들은 것이 과연 잘못됨이 없지 않았을까 하고 의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으니, 궁중 안에서 실제로 집을 짓는 일이 있어서 큰 목재를 구하는 목수들이 자못 민간 사이를 출입하고 있는데, 대간(臺諫)들이 말한 바, ‘목수를 불러들이고 목재를 실어 나를 적에는 반드시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한다.’는 말이 진실로 거짓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 일로써 살펴본다면 전하께서 전날에 비답하신 것은 다만 겸손한 말로써 스스로를 속였을 뿐이고, 처음부터 마음을 비우고 들어서 채택할 실상은 없었던 것입니다. 대체로 군주의 은미한 한 가지 생각이라도 혹시 성실하지 못함이 있게 되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진실로 열 손가락이 가리키고 열 눈으로 보는 것과 같으므로 가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바야흐로 위로는 하늘의 경계를 두려워하시고 아래로는 스스로 허물하는 하교(下敎)를 내리시어 경계하시는 뜻을 보여 주셨으면서도 궁중 안에는 급하지도 않은 역사(役事)를 일으켜 놓고서 밖으로는 이를 막아 가리우는 말씀을 하시어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시니, 저 내려다보고 계신 하늘이 어떻게 전하께서 하시는 일을 믿고서 노여움을 돌이켜 기뻐하고 재앙을 바꾸어 상서가 되게 하려 하겠습니까?

지난번에 이징명(李徵明)의 상소(上疏)가 성상의 노여움을 거듭 촉발시켰었는데, 그때 성상의 하교는 오로지 척리(戚里)250) 문제 하나만으로 죄를 주었으며, 그 아래의 한 가지 일 【곧 장녀(張女)를 쫓아 낸 일이다.】 은 곧 잘못 전해 들은 것이라고 핑계를 대셨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고 없었는지는 외부 사람으로서는 감히 알 수 없는 것인데도 민간에서는 소문이 쫙 퍼져서 모두들 궁중에는 사실 그러한 사람이 있다고 여기는데, 전하께서 이를 숨기는 것이고, 또 이징명에게 성을 내신 것은 사실상 이 일이 있었는데도 이미 숨겨야 할 것이므로 다른 일로써 죄를 주었다고 합니다. 신의 생각으로서는 후궁(後宮)으로서 가까이 사랑할 사람이 간혹 있을 수도 있겠으나 진실로 관어(貫魚)251) 를 순서대로 할 수 있게 하여 종사(螽斯)252) 의 경사가 있게 하고 미색(美色)에 마음이 현혹될 근심과 치우치게 사랑에 빠져 은총을 열어 준다는 비난을 없게 한다면, 이것이 성덕(聖德)에 무슨 결점이 되겠기에 반드시 그 일을 숨겨야 하겠습니까? 심지어 사의(私意)가 크게 행해지고 공도(公道)가 펼쳐지지 않아서, 등용하고 버리는 것은 모두 청탁을 따르고 형벌과 송사는 대다수가 뇌물에 의해 좌우되어, 붕당(朋黨)끼리 알력이 생기고 논의(論議)가 편파적으로 일어나는데, 이는 어찌 전하께서 스스로 사심(私心)을 제거하지 못하고 항상 치우치게 얽매임이 많아서 공평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진실로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그 원인을 살펴서, 신이 말씀드린 근본의 절실한 곳으로 빨리 되돌리셔서 한결같은 생각으로 뜻을 두어 규모를 정하소서. 그런 다음 먼저 글을 읽고 학문을 강구하며, 이를 실천에 옮기시되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으면, 문득 사색(思索)을 더하여 몸소 이를 체득하고 조용히 탐구하여 마음으로 이해해서 반드시 성현(聖賢)의 말씀과 도리(道理)의 실상이 나의 마음과 눈에 환해져서 영롱하게 탁 트이고 막힘이 없게 해야 합니다. 이를 미루어 정치에 임하는 일에 대처하며 말을 듣고 사람을 관찰하는 데 이르면, 정밀하게 생각하고 명백하게 분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공과 실패, 옳고 그름, 어질고 간사함의 소재(所在)를 찾아서 적절하게 조처한다면 궁리(窮理)의 공부가 여기에 이르게 되어, 내 마음으로 아는 것이 그 기능을 다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망령되게 스스로 겸손만 하지 마시고, 새로운 각오로 분발하셔서 깊이 체득하고 자주 반성하시어 힘써 실행하소서."

하였는데, 비답하기를,

"나라를 근심하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경계해 주고 가르쳐 준 것은 간절하고 지극한 논의가 아님이 없으므로, 내가 가상(嘉尙)하게 여기는데, 마음에 새겨두고 체념(體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이징명(李徵明)을 죄준 것은 사실 척리(戚里)의 일로 말미암은 것인데, 상소 중에서 말한 것은 너무 지나친 억측으로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7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76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경연(經筵) /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건설-건축(建築) / 과학-천기(天氣)

  • [註 249]
    병근(病根) : 마음에 밴 나쁜 버릇.
  • [註 250]
    척리(戚里) : 임금의 외척.
  • [註 251]
    관어(貫魚) : 궁인(宮人)들의 순서(順序)를 뜻하는 것으로, 임금이 궁인을 거느리기를 물고기를 엮듯이 순서가 있게 함을 일컬음. 《주역》 박괘(剝卦)에 나오는 말.
  • [註 252]
    종사(螽斯) : 부부가 화합하여 자손이 번창함.

○甲午/大司成金昌協上疏曰: "殿下卽阼以來, 十數年間, 旱暵水潦之敗, 風霆霜雹之災, 星象之異, 氣祲之孽, 人物之妖, 比歲疊見, 以千百數, 每當變異, 聖心輒爲警動, 罪已求言之敎, 畏天憂民之語, 一歲之中, 亦旣屢下, 以前後聖敎觀之, 警懼之旨, 哀慟之辭, 亦不待今日而已至矣。 古人有言: ‘人雖可欺, 天不容僞。’ 臣則以爲, 天固不容僞而人亦不可欺也, 是故, 近歲哀敎之下, 中外視爲尋常, 漠然無應之者, 知殿下初無誠心也。 人情如此, 天意可知, 臣請自今以後, 毋徒恃言語文告, 以爲應天動人之具, 而深留意於根本切實之地, 則災沴或可消弭, 而禍亂猶可及救矣。 且以經筵一事言之, 殿下之臨筵講讀, 非不勤矣, 而專尙簡默, 不肯問難, 似此病根, 殆由於聖質明銳而沈潛不足, 其讀聖賢經傳, 略綽講解, 便謂已了却, 不知其中, 有無限合理會, 無限合玩味處, 凡日用應接機務之得失, 臣僚之賢否, 言論計議之是非同異, 所當一一講究者, 率不能深思明辨, 亦由立志不篤, 求道不誠也, 因仍苟且之際, 偏私係吝之端, 遂不勝其多焉, 則又從而掩匿覆蓋, 欲使人不見, 此所以殿下之心不能表裏洞達, 如靑天白日, 而時或有自欺而欺人者矣。 日昨憲府之啓, 以禁中營繕爲言, 殿下謂其傳聞爽實, 而猶且優容奬納, 不以爲忤, 臣始讀批辭, 竊喜聖明虛心納諫之美, 而且疑憲臣所聞, 果不能無誤也。 近聞禁中, 實有營繕之事, 工師之求大木者, 頗亦出入於閭巷間, 而臺啓所謂召匠輸材, 必趁早暮者, 果非虛語云, 以此觀之, 殿下前日之批, 特遜辭以自諱耳, 初未有虛受聽用之實也。 夫人主一念之微, 或有不誠, 而人得以見, 固若十手十目所指視而不可掩矣, 今殿下, 方仰畏天戒, 下敎罪已, 以示警動之意, 而內興不急之役, 外爲遮障之辭, 以自欺而欺人, 彼降監之天, 又安肯信殿下之爲, 而回怒爲豫, 轉災爲祥乎? 向者李徵明之疏, 重觸天怒, 其時聖敎, 專以戚里一款爲罪, 而其下一事則直諉之於傳聞之謬, 此事有無, 尤非外人所敢知, 而閭巷之間, 傳說漫漫, 皆以爲宮中實有其人, 而殿下諱之, 且謂怒徵明, 實在於此事, 而旣在所諱, 故以他事罪之, 臣意以爲, 後宮近幸, 設或有人, 苟能貫魚順序, 螽斯有慶, 而無盛色蠱心之患, 偏昵啓寵之譏, 則是亦何累於聖德而必諱其事乎? 至於私意大行, 公道不張, 用捨率循請托, 刑訟多以貨賂, 而朋黨傾軋, 論議比周, 此豈非殿下已私未祛, 偏係常多, 而未臻公平之故也? 誠願殿下, 深察其故而亟反之於臣所謂根本切實之地者, 一意留心, 立定規模, 先自讀書講學, 下手用功, 少有疑晦, 輒加思索, 體之以身, 從容涵泳, 會之以神, 要使聖賢之說, 理義之實, 瞭然於吾之心目, 而玲瓏透徹, 無有隔礙, 推以至於臨政處事, 聽言觀人, 亦莫不精思明辨, 求其得失是非賢邪之所在而裁處焉, 則窮理之功, 於是乎至, 而吾心之所知, 無有不盡矣。 伏願殿下, 勿妄自挹遜而慨然發憤, 深體屢省而力行之。" 答曰: "憂愛誡誨, 無非切至之論, 予用嘉尙, 可不留心而體念焉? 第李徵明之罪斥, 實由於戚畹事, 而疏中云云, 億逆太甚, 殊未曉也。"


  • 【태백산사고본】 19책 17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39책 76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경연(經筵) /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건설-건축(建築)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