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묘 종사의 승묘 출묘하는 예가 이루어짐에, 중외에 교서를 반포하다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하여 승묘(陞廟)·출묘(黜廟)하는 예(禮)가 이루어졌으므로, 중외(中外)에 교서(敎書)를 반포(頒布)하니, 백관(百官)이 하례(賀禮)하였다. 임금이 친히 나아가려 하였다가 돌이켜서 권정(權停)153) 하도록 명하였다. 교서(敎文)에 이르기를,
"왕화(王化)의 근본은 문사(文事)를 숭상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성묘(聖廟)154) 의 안에서는 유식(侑食)155) 하는 것보다 중한 것이 없는데, 이미 〈문묘(文廟)에〉 승묘(陞廟)·출묘(黜廟)하는 것이 올바르게 되었으므로, 마땅히 포고(布告)하여 신칙(申飭)한다. 생각하건대 고종(瞽宗)156) 에서 예(禮)의 차례를 정하여 유술(儒術)을 밝게 권장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대개 공자(孔子)의 문하에서 가까이 본받았던 여러 제자(弟子)로부터 후대(後代)에 사숙(私淑)157) 하는 여러 현인(賢人)에 이르기까지 크게는 도통(道統)의 보존된 바가 모두 이미 덕(德)을 숭상하였고, 작게는 강(講)하는 스승들이 서로 지켜서 또한 공부를 폐기하지 않았으나, 간혹 거취(去就)가 어긋나서 앞뒤로 지적하는 비평을 면하지 못하였다. 정관(貞觀)158) 에 바쳤던 바는 반수가 성교(聖敎)에 죄를 지었는데, 정강(靖康)159) 이래로는 진유(眞儒)160) 에 대부분 빠짐을 당하였으니, 양시(楊時)·나종언(羅從彦)은 하락(河洛)161) 의 전승(傳承)에 접하였고, 이동(李侗)·황간(黃幹)은 고정(考亭)162) 의 수수(受授)를 밝혔다. 구인(九人)163) 의 문묘 종사(文廟從祀)를 마땅히 빼어야 함은 중국 조정에서도 이미 시행하였고, 사자(四子)164) 의 종파(宗派)로서 승묘(陞廟)할 수 있음은 옛날의 법에 의거하여 미혹되지 않았으니, 세상에 전해진 것이 사실과 틀리는 것을 상고하여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고 예전 반열(班列)이 차례에 어긋난 것을 고쳐서, 이로써 세론(世論)을 정하였다.
우리의 역대(歷代) 조종(祖宗)께서 덕화(德化)가 두루 미치게 되니, 이에 위인(偉人)이 나란히 일어나게 되었다. 문성공(文成公)165) 의 조예(造詣)가 고명(高明)한 것은 날 때에 삼광(三光)166) ·오악(五岳)의 정기를 타고 났으며, 문간공(文簡公)167) 의 품행이 돈독(敦篤)한 것은 학문이 가정에서 근본한 것이니, 함께 수사(洙泗)168) 의 연원을 거슬러올라가서 우뚝하게 우리 나라[海東]의 산두(山斗)169) 가 되었다. 이기(理氣)와 성정(性情)에 대한 분별은 이미 지극하게 정밀하였고, 규모(規模)와 사업(事業)의 융성함은 더욱 광대한 지경에 이르렀다. 웅대한 말과 숭고한 의론은 성실한 군주에 대하는 정성이요, 탁월한 지식과 완전한 재능은 용감한 도(道)를 맡은 용기였다. 아아! 포부를 다 펴지 못하였지만 아직도 유풍(遺風)·여열(餘烈)이 증거가 있으니 관작(官爵)과 시호(諡號)가 비록 높다 하나, 어찌 성덕(盛德)의 보답이 되겠는가? 시비(是非)가 이미 정해졌으니 죽은 후 영구히 생각함을 더욱 볼 수가 있다. 오현(五賢)에 이어 추가 배향(配享)함은 진실로 마땅하며, 삼조(三朝)170) 를 거치면서 여러 사람의 호소가 더욱 성급해졌다. 선철(先哲)에 융성함을 더하였으니 이에 사전(祀典)에 빠진 것을 보완하였으며, 두 신하171) 를 표창(表彰)했으니, 선비들이 눈으로 보고 감동함이 더욱 절실하겠다. 사도(斯道)172) 를 주장(主張)하는 책임은 어찌 나에게 있지 않겠는가? 한 나라의 사람들을 고무하는 것도 장차 이 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바야흐로 문무(文廡)를 크게 바르게 하는 일을 당하여 욕의(縟儀)173) 를 함께 거행함은 진실로 합당하다.
이에 이달 20일 문묘(文廟)에 종향(從享)하는 수장후(壽長侯) 공백요(公伯寮)·난릉백(蘭陵伯) 순황(筍況)·기양백(歧陽伯) 가규(賈逵)·부풍백(扶風伯) 마융(馬融)·사공(司空) 왕숙(王肅)·사도(司徒) 두예(杜預)·임성백(任成伯) 하휴(何休)·언사백(偃師伯) 왕필(王弼)·임천백(臨川伯) 오징(吳澄)을 출향(黜享)하고, 문등후(文登侯) 신정(申棖)·치천후(淄川侯) 신당(申黨)은 겹쳐서 배향한 이유로써 신당을 빼었으며, 건녕백(建寧伯) 호안국(胡安國)·화양백(華陽伯) 장식(張栻)·포성백(蒲城伯) 진덕수(眞德秀)·숭안백(崇安伯) 채침(蔡沈)은 위차(位次)가 잘못되었으므로 위치를 바꾸어 정하였고, 장락백(將樂伯) 양시(楊時)·문질공(文質公) 나종언(羅從彦)·문정공(文靖公) 이동(李侗)·문숙공(文肅公) 황간(黃幹)·문성공(文成公) 이이(李珥)·문간공(文簡公) 성혼(成渾)을 동무(東廡)·서무(西廡)에 새로 종향(從享)하였다. 아! 도(道)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데, 사람은 어찌 멀고 가까움에 차이가 있겠는가? 일이 전대(前代)를 빛나게 함은 향하여 따르는 길을 능히 보여 주는 것이고, 유풍(儒風)을 사방에 일어나게 함은 새로운 것을 일으키는 효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교시(敎示)를 내리니, 마땅히 잘 알아야 할 것이다."
하였다. 【대제학(大提學) 이민서(李敏敍)가 지어서 올렸다.】 이때 장차 종사(從祀)하는 예(禮)를 거행하려 하는데, 조정에 있는 여러 관원 가운데 다른 의견을 가진 자가 혹은 휴가원(休暇願)을 내고서 물러가 들어가기도 하고, 혹은 말미를 청하여 밖으로 나가기도 해서 그 일을 시행하는 것을 피하였다. 군읍(郡邑)의 수령(守令)들 가운데 다른 의견을 가진 자도 역시 향학(鄕學)에서 승배(陞配)하던 날 대부분 직접 나아와 일을 시행하지 않고서 피하였다. 견식있는 자들은 세상의 도의(道義)와 나라의 기강(紀綱)으로써 매우 근심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3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590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어문학-문학(文學)
- [註 153]권정(權停) : 조하(朝賀) 때 임금이 나오지 않은 채 권도(權道)로 식(式)만을 거행하는 일.
- [註 154]
성묘(聖廟) : 공자를 모신 사당.- [註 155]
유식(侑食) : 제사지낼 때에 제주(祭主)가 잔에 술을 따르고, 또 젯멕에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대접 위에 올려 놓은 다음 제관들이 문 밖에 나와 문을 닫고 십 분 가량 기다리는 일.- [註 156]
고종(瞽宗) : 은대(殷代)의 학교.- [註 157]
사숙(私淑) : 본떠 배움.- [註 158]
정관(貞觀) : 당(唐)나라 태종(太宗)의 연호.- [註 159]
정강(靖康) : 송(宋)나라 흠종(欽宗)의 연호.- [註 160]
진유(眞儒) : 참된 유학자.- [註 161]
하락(河洛) :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註 162]
고정(考亭) : 주희(朱熹)가 살던 곳.- [註 163]
구인(九人) : 공백요(公伯寮)·순황(筍況)·마융(馬融)·왕필(王弼)·왕숙(王肅)·두예(杜預)·하휴(何休)·가규(賈逵)·오징(吳澄) 등 9인.- [註 164]
사자(四子) : 양시(楊時)·나종언(羅從彦)·이동(李侗)·황간(黃幹) 등 4인.- [註 165]
문성공(文成公) : 이이(李珥).- [註 166]
삼광(三光) : 해·달·별.- [註 167]
문간공(文簡公) : 성혼(成渾).- [註 168]
수사(洙泗) : 수수(洙水)와 사수(泗水). 공자(孔子)가 이 근처에서 제자들에게 도(道)를 가르쳤으므로, 전(轉)하여 공자의 문하(門下)라는 뜻으로 쓰임.- [註 169]
산두(山斗) : 태산과 북두, 즉 남에게 존경받는 사람.- [註 170]
삼조(三朝) : 인조·효종·현종.- [註 171]
○戊辰/以文廟從祀陞黜禮成, 頒敎中外, 百官陳賀。 上將親臨, 旋命權停。 敎文曰:
王化之本, 無大於右文;聖廟之中, 莫重於侑食。 旣陞黜之得正, 宜敷告之用申。 言念, 秩禮於瞽宗, 罔非奬明於儒術。 蓋自孔門速肖之群弟, 以及後代私淑之諸賢, 大焉道統之所存, 皆已尙德; 小而講師之相守, 亦不廢功。 然或去就之舛差, 未免前後之指議。 貞觀所進, 則半得罪於聖敎; 靖康以降, 則多見遺於眞儒。 如楊、羅接河洛之傳承與李、黃明考亭之受授。 九人之從祀宜斥, 在中朝而已行; 四子之宗派可躋, 應古法而不惑。 稽俗傳之爽實, 必也正名;改舊列之乖倫, 是以論世。 至我列祖之累洽, 乃有偉人之竝興。 文成之造詣高明, 生稟光岳; 文簡之踐履敦篤, 學本家庭。 同溯洙泗之淵源, 蔚爲海東之山斗。 理氣性情之辨, 已極精微, 規模事業之隆, 益致廣大。 宏言崇論, 斷斷乎其致主之誠;卓識全才, 仡仡乎其任道之勇。 嗟抱負之未究; 尙風烈之有徵。 爵謚雖崇, 何足爲盛德之報? 是非旣定, 益可見沒世之思。 繼五賢而追享固宜; 歷三朝而衆籲彌亟。 加隆先哲, 庸補祀典之闕遺; 表章兩臣, 尤切士類之觀感。 主張斯道之責, 寧不在予? 皷舞一邦之人, 亦將由是。 方當大正於文廡, 允合齊擧於縟儀。 玆於本月二十日, 將文廟從享壽長侯 公伯寮、蘭陵伯 荀况、歧陽伯 賈逵、扶風伯 馬融、司空 王肅、司徒 杜預、任城伯 何休、偃師伯 王弼、臨川伯 吳澄黜享, 文登侯 申棖、淄川侯 申黨以疊享去黨。 建寧伯 胡安國、華陽伯 張栻、蒲城伯 眞德秀、崇安伯 蔡沉以失次, 改定位置。 以將樂伯 楊時、文質公 羅從彦、文靖公 李侗、文肅公 黃幹、文成公 李珥、文簡公 成渾新從享於東西廡。 於戲! 道不異於古今, 人豈間於遠近? 事光前代, 克示趨向之塗。 風動四方, 庶致作新之效。 故玆敎示, 想宜知悉。 【大提學李敏叙製進。】
時, 將行從祀之禮, 在朝大小官持異論者, 或呈告引入, 或請暇出外, 以避其將事; 郡邑、守令輩, 持異論者, 亦於鄕學陞配之日, 多不躬詣將事以避之, 識者深以世道、國綱爲憂。
- 【태백산사고본】 12책 13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590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어문학-문학(文學)
- [註 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