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실록11권, 숙종 7년 1월 29일 계미 3/4 기사 / 1681년 청 강희(康熙) 20년
정발의 추증을 청한 동래 부사 조세환의 현도 상소
국역
동래 부사(東萊府使) 조세환(趙世煥)이 현도 상소(縣道上疏)하기를,
"송상현(宋象賢)과 정발(鄭撥)은 절의(節義)가 이미 같아서 사당에 함께 제사지내는데, 송상현(宋象賢)은 이미 판서(判書)를 추증(追贈)하였으나, 오로지 정발(鄭撥)에게는 추증한 바가 보잘것 없음을 민망히 여겨 본주(本州)의 많은 선비들이 성상께서 들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빠뜨린 은전(恩典)을 뒤좇아 거행하소서."
하니, 임금이 대신(大臣)에게 의논하도록 명하였다. 김수항(金壽恒)은 의논하기를,
"정발(鄭撥)은 당초에 이미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추증(追贈)하였었으나, 변방의 백성들이 어리석고 소홀해서 구문(舊聞)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니, 가증(加贈)할 필요가 없고, 특별히 시호(諡號)를 내려서 후세(後世)에 기록해 둠이 마땅합니다."
하고, 좌의정(左議政) 민정중(閔鼎重)은 말하기를,
"청컨대 가증(加贈)하여 후세에 기록해 두게 하고, 또 시호(諡號)를 내리시되, 송상현(宋象賢) 또한 똑같이 시행함이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명하여 시호(諡號)를 내리고, 아울러 송상현(宋象賢)과 더불어 똑같이 가증(加贈)하도록 하였다.
원문
숙종실록11권, 숙종 7년 1월 29일 계미 3/4 기사 / 1681년 청 강희(康熙) 20년
정발의 추증을 청한 동래 부사 조세환의 현도 상소
국역
동래 부사(東萊府使) 조세환(趙世煥)이 현도 상소(縣道上疏)하기를,
"송상현(宋象賢)과 정발(鄭撥)은 절의(節義)가 이미 같아서 사당에 함께 제사지내는데, 송상현(宋象賢)은 이미 판서(判書)를 추증(追贈)하였으나, 오로지 정발(鄭撥)에게는 추증한 바가 보잘것 없음을 민망히 여겨 본주(本州)의 많은 선비들이 성상께서 들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빠뜨린 은전(恩典)을 뒤좇아 거행하소서."
하니, 임금이 대신(大臣)에게 의논하도록 명하였다. 김수항(金壽恒)은 의논하기를,
"정발(鄭撥)은 당초에 이미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추증(追贈)하였었으나, 변방의 백성들이 어리석고 소홀해서 구문(舊聞)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니, 가증(加贈)할 필요가 없고, 특별히 시호(諡號)를 내려서 후세(後世)에 기록해 둠이 마땅합니다."
하고, 좌의정(左議政) 민정중(閔鼎重)은 말하기를,
"청컨대 가증(加贈)하여 후세에 기록해 두게 하고, 또 시호(諡號)를 내리시되, 송상현(宋象賢) 또한 똑같이 시행함이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명하여 시호(諡號)를 내리고, 아울러 송상현(宋象賢)과 더불어 똑같이 가증(加贈)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