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숙종실록9권, 숙종 6년 5월 13일 신축 6번째기사 1680년 청 강희(康熙) 19년

원훈 사양에 관한 병조 판서 김석주의 상소

병조 판서 김석주(金錫胄)가 상소하여 원훈을 사양하면서 아뢰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흉도(凶徒)들이 틈을 타서 일어났으니 한(漢)나라 때 아무 일이 없다가 회남왕(淮南王)이 난(亂)을 꾀했고, 곽씨(霍氏)가 국권을 전단(專斷)하다가 우(禹)산(山)이 반역을 꾸민 것258) 과 같았으니, 이는 실로 천고에 드문 변고였습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종묘(宗廟)와 사직(社禝)이 말없이 도와주시는 데 힘입어 죄인들이 이제 잡혔습니다. 신 같은 자들이야 병졸을 거느린 관원에 불과하여 막하에 비장(裨將)들을 선발하여 원로(元老)를 인솔, 정원(政院)에 들였을 뿐인데, 이것이 과연 공(功)될 것이 무엇이며 자랑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이번의 역번은 단시일(短時日)에 일어난 변고가 아니어서 적도의 무리가 조정에 가득하고 흉악한 계략이 낭자(狼藉)하여 종묘 사직의 위태로움이 털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대단히 급박했는데, 다행히 경 등의 힘을 다한 공로로 거괴(巨魁)가 사로잡혔고 왕법(王法)이 시행되었으니, 나의 기쁨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경은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겸양(謙讓)하지 말고 속히 나와 공훈(功勳)을 감정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9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450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왕실-국왕(國王) / 변란-정변(政變)

  • [註 258]
    곽씨(霍氏)가 국권을 전단(專斷)하다가 우(禹)와 산(山)이 반역을 꾸민 것 : 곽씨는 곽광(霍光). 한 무제(漢武帝)의 유조(遺詔)를 받아 소제(昭帝)를 보좌했고, 소제가 일찍 죽자 창읍왕(昌邑王) 하(賀)를 세웠다가, 하가 음란하다 하여 폐위시키고 선제(宣帝)를 세웠음. 곽광은 정권을 잡은 지 20년 동안 추호의 과실도 없었으나, 그 일족이 곽광을 믿고 발호가 심하였으며, 결국 곽광이 죽은 뒤인 선제 지절(地節) 4년(66, BC) 일족인 현(顯)·우(禹)·산(山)·운(雲) 등이 자기들의 세력이 점차 침삭(侵削)됨을 한탄하다가 반역을 꾀하던 중 발각되어 멸족을 당하고, 황후(皇后) 곽씨도 폐위되었음.

○兵曹判書金錫冑上疏, 辭元勳曰:

國家不幸, 凶徒闖發, 朝無事, 而淮南謀亂; 霍氏專恣, 而構逆, 此誠千古罕有之變也。 幸賴宗仕默佑, 罪人斯得。 若臣者不過爲將兵之官, 簡幕裨, 率元老, 入政院而已, 此果何功何伐哉?

答曰: "今玆逆變, 實非一朝一夕之故, 徒黨布滿, 凶謀狼藉, 宗社之危, 間不容髮。 而幸賴卿等效力之功, 巨魁就擒, 王法乃行。 予之欣幸, 曷勝云喩? 卿其安心休謙, 速出勘勳。"


  • 【태백산사고본】 8책 9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38책 450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왕실-국왕(國王)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