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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실록 1권, 현종 대왕 애책문(哀冊文)

현종 대왕 애책문(哀冊文)

유세차(維歲次) 갑인141) 8월 임진삭(壬辰朔) 18일 기유(己酉)에 현종 순문 숙무 경인 창효 대왕께서 창덕궁(昌德宮)에서 승하하셨다. 이해 겨울 12월 11일 경오(庚午)에 숭릉(崇陵)으로 자리를 옮기고 13일 임신(壬申)에 현궁(玄宮)142) 으로 영구히 옮겨 모시니 예에 따른 것이다.

세악(終幄)143) 이 걷히자마자 찬궁(欑宮)144) 이 처음 열리고, 운삽(雲翣)은 채색의 술[彩蕤]을 드날리고 상여(喪轝)는 조각한 굴대[轊]를 갖추었도다. 거처하던 엄숙한 궁전을 등지고 아득히 먼 현궁(玄宮)145) 으로 향하시니, 새벽 바람은 처량하게 솔솔 불고 시름겨운 구름은 엉기어서 막막하도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상을 당하여 슬픈 얼굴빛이 먹물처럼 검으시고 최질(衰絰)146) 의 상복 차림 속에 야위어 있으며, 애통한 마음으로 사모하여 하늘을 향해 부르짖고 피눈물을 흘립니다. 남긴 활과 칼을 붙잡고 따라가려고 하나 따라가지 못하였기에 앉을 때나 먹을 때나 왕을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깊습니다. 이에 선첩(璇牒)147) 에서 아름다운 덕을 징험하여 보책(寶冊)148) 에 공열(功烈)을 드날리게 하였습니다. 그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름다운 황고(皇考)149) 의 어짊과 지혜를 하늘이 내려 주었도다. 태어날 적부터 저절로 아시고 지혜롭고 명철(明哲)하시어 재주와 뜻이 특출하였도다. 성조(聖祖)150) 께서 기특히 여기고 사랑하시어 유달리 보살펴 주었도다. 어린 나이에 왕세손(王世孫)의 칭호를 받으시니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손자인 문손(文孫) 성왕(成王)과 같으셨도다. 세자(世子)의 자리에 오르시자 명성과 소문이 더욱 드러나셨도다.

예는 삼조(三朝)151) 를 구비하였고 칭송은 중광(重光)152) 함에서 드날렸도다. 천제(天帝)로부터 수명을 받은 꿈[夢齡]153) 도 징험이 없어서 문득 큰 슬픔154) 을 만나셨도다. 선왕이 주신 정일(精一)의 훈계를 이어받고 이에 크나큰 서업을 받으셨도다. 현인을 초빙하고 준걸들을 구하여 선왕의 뜻과 사업을 계술(繼述)하였도다. 몸을 훈도(薰陶)하고 심성(心性)을 함양(涵養)하며 의를 강마(講磨)하셨도다. 이에 온화한 말씀과 옥같은 안색이 서두르거나 갑작스럽지 않으셨도다.

큰 근본이 이미 확립됨에 모든 일이 다 거행되었도다. 효성이 지극하니 양궁(兩宮)155) 이 기뻐하셨으며, 성의로 선조(先祖)를 받드니 제사의 일들이 정연하였도다. 이단(異端)을 배척하고 유화(儒化)156) 를 크게 천명하셨으며, 불사(佛事)를 헐어버리고 학교를 지으셨도다.

차마 못하는 어진 마음을 미루어 인정(仁政)을 시행하시니, 하늘이 덮어주는 것과 같아 사물과 더불어 봄처럼 온화하였다. 몸소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니 거친 음식과 허름한 옷도 가리지 않으셨다. 평상의 어공(御供)도 줄이니 나라의 살림이 윤택해졌도다. 농사짓는 일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근심하여 전세(田稅)를 감면하셨도다. 백성의 고통을 보기를 마치 자신의 몸이 아픈 것처럼 여기셨도다. 진휼하고 대여하는 정치를 우선으로 행하고 떠돌아다니며 굶주린 자에게 은혜를 고루 베푸셨도다. 창고를 열고 곡식을 옮기어 우리 억조의 백성을 먹여주셨도다. 형벌을 신중히 행하고 옥사를 의논해 밝히니, 원통한 일이 모두 신설(伸雪)되었지만 죄상이 드러나도 기뻐하지 않으셨도다. 노인을 우대하는 은전을 신민에게 두루 미치게 하셨고, 세시에 생선과 술을 보내주셨다.

육경(六經)을 나타내어 밝히니, 사문(斯文)157) 이 여기에 있게 되었고, 퇴폐한 풍교(風敎)를 진작시킬수 있게 되어 사기가 시들어지지 않았도다. 정릉(貞陵)158) 을 다시 단장하고 예에 따라 신주(神主)를 태묘(太廟)에 합제(合祭)하니, 빠뜨렸던 전례(典禮)가 거행되어, 선조에게 빛이 났도다. 선릉(先陵)159) 을 길지(吉地)에 옮겨 모시니 실로 신의 도움을 얻었고, 지성에 감동되어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갔도다. 기년복(朞年服)과 대공복(大功服)으로 복제를 정한 것160) 은 대왕의 판단으로 결정하셨는데, 시종 유감이 없으니 의식과 예문(禮文)이 마땅하게 되었도다.

능에 따라 신하들을 부리시고 충직한 말을 받아들이셨도다. 종친들에게 화목을 주로 하되 사적인 은정을 끊으셨도다. 마음은 연못처럼 깊고 도량은 바다처럼 넓으시어 너그럽게 사람을 포용하셨도다. 충직한 사람을 나타내고 어진 사람을 등용하여, 행실과 절조를 갈고 닦게 하셨도다.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은 탕(湯)임금을 본받았고161) 우(禹)임금처럼 맛진 술을 싫어하셨으며162) , 검소한 생활에 힘을 기울이고 화려한 물건을 물리치셨도다.

환난을 미리 대비하여 일찍이 잊은 적이 없으셨고 밤낮으로 정사에 힘쓰시어 나라의 기강을 게시하셨으며, 자문을 구하는 데 급하여 휴식할 겨를이 없으셨도다. 법칙에 맞게 조종하니 일이 더욱더 잘 처리되었다.

대왕의 춘추가 한창 젊으시므로 천하를 잘 다스려 큰 일을 하실 때인데 어찌하여 하늘이 돌보지 않고 우리 대왕에게만 재앙을 내린단 말인가. 아, 슬프도다.

금년 봄에 성모(聖母)163) 께서 먼저 승하하시자, 대왕은 상중에 몹시 슬퍼하셨도다. 병환이 나신 것은 실로 성모의 상에 너무 애통해 하신 데에서 말미암았는데, 신묘한 의원의 기술로도 효험이 없었도다. 신령한 시초점을 치고 금등(金縢)의 궤 안에 책을 넣었지만 길함이 없으니164) 안석에 기대어 하시는 마지막 유명(遺命)을 어찌 차마 들을 수 있단 말인가.

아, 슬프도다. 대자리를 깔고 휘장을 쳤도다. 어좌(御座)는 어제와 다름없는데, 용안은 내일 새벽이면 이별하게 되었도다. 궁궐을 바라보니 전처럼 완연(宛然)한데 용루(龍樓)를 바라보니 적적하기만 하도다. 단정(丹鼎)165) 을 주조하여 완성이 되었는데, 백운(白雲)을 타고 어디로 가신단 말인가.

아, 슬프도다. 궁내의 수레가 늦게 거둥하시니166) 영신(靈辰)은 머물러 있지 않도다. 궁전(宮殿)에는 우위(羽衛)가 벌여서니 아득히 푸른 하늘에 신선처럼 떠나도다. 동호(銅壺)167) 가 목메이듯 치고 누수(漏水)가 재촉하고, 보불(寶紼)168) 이 흩날리니 서리와 싸락눈이 내리도다.

온갖 신령이 옹위(擁衛)하니 바람이 울부짖고 오만 백성이 분분하게 모이니 비가 오듯 슬피 울도다.

아, 슬프도다. 울창한 저 높은 언덕에 용이 서려있고 봉황이 춤을 추는데, 왕의 의관(衣冠)을 그곳에 간직하니 황조(皇祖)가 묻힌 곳과 매우 가깝도다.169) 저승과 이승의 이치가 차이가 없으니 오르내리시어 좌우에 계신 듯하다. 이는 실로 하늘이 아끼던 곳이었는데 땅이 받치었으니, 진실로 기다렸다가 영험이 나타났도다.

아, 슬프도다. 장수하거나 요사(夭死)함이 같지 아니하니,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는 말을 어디서 징험할 수 있단 말인가. 현묘(玄妙)한 이치가 아득하기만 하니 이 슬픔을 견디기 어렵도다. 경사가 끝없이 쌓이여 자손이 백대토록 이어질 것이며, 성덕(盛德)이 빛나서 우주가 다하도록 쇠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 슬프도다.

자헌 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신(臣) 이은상(李殷相)은 지어 올림.


  • 【태백산사고본】 23책 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7책 94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어문학-문학(文學)

  • [註 141]
    갑인 : 1674 현종 15년.
  • [註 142]
    현궁(玄宮) : 무덤.
  • [註 143]
    세악(終幄) : 가늘고 성긴 베로 만든 영위 앞에 치는 휘장.
  • [註 144]
    찬궁(欑宮) : 빈전(殯殿) 안의 임금의 관을 넣어 두던 곳.
  • [註 145]
    현궁(玄宮) : 무덤.
  • [註 146]
    최질(衰絰) : 상복과 수질 및 요질.
  • [註 147]
    선첩(璇牒) : 왕의 사적을 적은 문서, 선원 보첩(瑄源譜牒).
  • [註 148]
    보책(寶冊) : 보배로운 책, 곧 왕의 행적을 적은 책.
  • [註 149]
    황고(皇考) : 사왕(嗣王)의 아버지 여기서는 현종.
  • [註 150]
    성조(聖祖) : 인조.
  • [註 151]
    삼조(三朝) : 하루에 세 번씩 문안드린 문왕의 고사.
  • [註 152]
    중광(重光) : 밝은 임금이 계속하여 재위함.
  • [註 153]
    천제(天帝)로부터 수명을 받은 꿈[夢齡] :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병이 위독할 적에 무왕(武王)의 꿈에, 천제(天帝)가 이[齡] 아홉 개를 주었는데, 이는 수명을 뜻한다.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
  • [註 154]
    큰 슬픔 : 효종의 승하.
  • [註 155]
    양궁(兩宮) : 조비(祖妃)인 자의 대비(慈懿大妃)와 모비(母妃)인 인선 대비(仁宣大妃).
  • [註 156]
    유화(儒化) : 유학의 교화.
  • [註 157]
    사문(斯文) : 유학(儒學)을 말함.
  • [註 158]
    정릉(貞陵) : 신덕 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의 능.
  • [註 159]
    선릉(先陵) : 효종능.
  • [註 160]
    기년복(朞年服)과 대공복(大功服)으로 복제를 정한 것 : 기해년(1659) 효종의 상에 효종의 모비(母妃)인 자의 대비(慈懿大妃)의 복제(服制)는 송시열 등의 논의대로 기년복(朞年服)으로 정하였고, 효종의 비(妃) 인선 왕후(仁宣王后)의 상에 자의 대비의 복제는 처음에 기년으로 정하였다가 효종의 상과 효종비의 상에 준용(準用)한 것이 다르다 하여 다시 대공(大功)으로 고쳤다. 현종은, 당초 효종의 상에 자의 대비의 복제를 기년(朞年)으로 정한 것이 잘못되었다 하여 당시 예를 의논했던 제신(諸臣)을 죄주고, 인선 왕후(仁宣王后)의 상에 자의 대비의 복제를 기년으로 정했다가 임의로 대공(大功)으로 고쳤다 하여 예관(禮官)을 죄주었다. 인선 왕후의 상에 자의 대비의 복제는 기년(朞年)으로 정하였는데, 애책문(哀冊文) 찬자(撰者)인 이은상(李殷相)은 대공(大功)을 주장하였다.
  • [註 161]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은 탕(湯)임금을 본받았고 : 《서경(書經)》 중훼지고(仲虺之誥)에, "왕은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하지 아니하시며 재리(財利)를 증식하지 아니하셨다." 하였는데, 이 중훼지고는 중훼가 탕왕(湯王)의 좌상(左相)이 되어 탕왕에게 고하는 동시에 대중에게 고한 것이다. 여기서의 왕은 탕왕(湯王)을 가리킨다.
  • [註 162]
    우(禹)임금처럼 맛진 술을 싫어하셨으며 :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우(禹)임금은 맛난 술을 싫어하시고 착한 말을 좋아하셨다." 하였다. 《맹자(孟子)》 이루(離婁) 하. 그 주석에 "의적(儀狄)이 술을 만들자 우임금은 그 술을 마셔보고 맛있게 여기며 말하기를 ‘후세에 반드시 술로써 나라를 망칠 이가 있을 것이다.’ 하고 마침내 의적을 소원히 하고 맛있는 술을 입에 끊었다". 하였다.
  • [註 163]
    성모(聖母) : 모비(母妃) 인선 왕후(仁宣王后).
  • [註 164]
    금등(金縢)의 궤 안에 책을 넣었지만 길함이 없으니 : 금등은 금띠로 봉함하여 비적(秘籍)을 간직한 궤. 무왕(武王)이 병이 들자 주공(周公)이, 왕실(王室)이 편안하지 못하고 은(殷)나라 백성이 복종하지 않아 근본이 흔들리기 쉽다 하여 선조인 태왕(太王)·왕계(王季)·문왕(文王)에게 자기가 무왕 대신 죽기를 청하였는데, 무왕의 병이 곧 나았다. 이 축원한 말을 기록하고 그 일의 시말을 아울러 서술하여 1편을 만들어 금등의 궤 안에 간직하였는데, 이것이 《서경》의 편명인 금등이다. 《서경(書經)》 금등(金縢).
  • [註 165]
    단정(丹鼎) : 단약(丹藥)을 넣어 두는 솥.
  • [註 166]
    궁내의 수레가 늦게 거둥하시니 : 임금이 처음 죽음을 뜻한다. 신자의 마음에 임금의 수레가 마땅히 거둥해야 하나 늦게 나오는 것과 같으므로 이른 것이다.
  • [註 167]
    동호(銅壺) : 물시계.
  • [註 168]
    보불(寶紼) : 상여줄.
  • [註 169]
    울창한 저 높은 언덕에 용이 서려있고 봉황이 춤을 추는데, 왕의 의관(衣冠)을 그곳에 간직하니 황조(皇祖)가 묻힌 곳과 매우 가깝도다. : 현종(顯宗)의 능은 숭릉(崇陵)으로 오늘날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데, 건원릉(建元俸:태조의 능) 서남쪽 별강(別岡)에 있다. 현릉(顯陵:문종의 능)과 목릉(穆陵:선조의 능)도 같은 경내에 있다. 황조(皇祖)는 태조를 가리키는 듯하다.

顯宗純文肅武敬仁彰孝大王哀冊文。

維歲次甲寅八月壬辰朔, 十八日己酉, 顯宗純文肅武敬仁彰孝大王, 薨于昌德宮之廬次。 是年冬十二月十一日, 庚午, 遷座于崇陵, 十三日壬申, 永遷于玄宮, 禮也。 〔繐〕幄纔撤, 畫攅初啓, 翣揚彩蕤, 轝飭雕〔轊〕。 背丹扆之肅穆, 指玄扃之窅邈, 曉風淒而浙浙, 愁雲凝而漠漠。 恭惟我主上殿下, 戚容深墨, 纍然衰〔絰〕, 疚心孺慕, 呼天泣血。 攀弓劍兮莫逮, 念羹墻之深篤。 爰徵徽於璇牒, 俾揚烈於寶冊。 其詞曰: "猗歟! 皇考, 仁智天錫。 生知睿哲, 克岐克嶷。 聖祖奇愛, 眷撫之敦。 沖年錫號, 在周文孫。 逮升貳極, 聲聞益彰。 禮備三朝, 頌騰重光。 夢齡莫驗, 奄罹創鉅。 訓承精一, 誕膺丕緖。 招賢籲俊, 繼志述事。 薰陶涵養, 講劘義理。 溫言玉色, 不疾不遽。 大本旣立, 庶務畢擧。 孝思不匱, 兩宮愉〔悅〕。 奉先以誠, 祀事咸秩。 排黜異端, 丕闡儒化, 毁撤尼宇, 葺成黌舍。 推不忍心, 行政以仁, 如天覆燾, 與物爲春。 躬率以儉, 惡食菲衣。 常供亦減, 國以之肥。 念軫稼穡, 蠲免田租。 視民疾苦, 若恫在膚。 政先振貸, 惠均流殍。 發棠移粟, 粒我億兆。 惟刑欽恤, 明愼〔讞〕議。 無冤不伸, 得情勿喜。 優老之典, 遍及臣庶。 歲時之饋, 乃魚乃醑。 表章六經, 斯文在玆, 頹風可振, 士氣不衰。 增飭貞陵, 禮祔太廟, 闕典斯擧, 于先有耀。 移灤叶吉, 實獲神佑, 誠之所感, 德歸於厚。 朞、功定制, 宸斷決疑, 始終無憾, 儀文得宜。 器使群工, 嘉納忠言。 敦敍九族, 而絶私恩。 淵沖海涵, 寬裕容物。 顯忠遂良, 砥行礪節。 師不邇, 同惡旨, 務從省約, 屛斥華美。 綢繆備豫, 志未嘗忘, 憂勤旰宵, 提挈維綱, 咨諏是急, 不遑將攝。 弛張合則, 事益明習。 當春秋之鼎盛, 大有爲於陶甄, 何皇穹之不弔, 而降割之斯偏? 嗚呼哀哉! 今歲之春, 聖母先陟, 憂居諒陰, 痛切荼毒。 疾寔由於哀毁, 醫莫效於神技。 靈蓍罔吉於納縢, 末音忍聞於憑几? 嗚呼哀哉! 荀席重敷, 綴衣斯陳。 黼座如昨, 威顔隔晨。 瞻象魏兮依宛, 望龍樓〔兮夐〕閴。 鑄丹鼎兮巳成, 乘白雲兮安適? 嗚呼哀哉! 宮車兮晏駕, 靈辰兮不留。 森彤庭兮羽衛, 緬碧落兮仙遊。 銅壼咽兮漏水催, 寶紼飄兮霜霰集。 擁百靈兮風號。 紛萬姓之雨泣。 嗚呼哀哉! 鬱彼崇岡, 龍盤鳳舞, 衣冠攸藏, 密邇皇祖, 理幽明之無間, 怳陟降之如在。 寔天慳而地獻, 信效靈之有待。 嗚呼哀哉! 彭殤不齊, 仁壽奚徵? 玄理〔莾〕茫, 此痛難勝。 惟積慶之無彊, 綿本支於百世。 顧聖德之輝光, 窮宇宙而不替。 嗚呼哀哉!

資憲大夫知中樞府事臣李殷相, 撰進。


  • 【태백산사고본】 23책 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7책 94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