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조 판서 서필원이 태안창의 설치의 중지와 온천 행차시의 불편함을 아뢰다
형조 판서 서필원이 상소하여 창고 설치의 불편함을 논하기를,
"어제 경연에서 창고 설치가 편리한 지의 여부를 토론하였는데, 조선(漕船)은 근래에 하나도 패함이 없다는 것이 이미 확실하여졌고, 사선(私船)도 역시 모아서 감독하기로 결정하였으니, 창고를 설치하여야 할 일이 조금도 없는데 이리저리 반복한 끝에 마침내 반만 설립하여 편리한 지의 여부를 시험하기로 하였으니, 신은 몹시 개탄하는 바입니다. 무릇 일을 시행해도 좋을지 시험한다는 것은 이해를 분별할 수 없거나 편리의 여부가 자세하지 않을 때 하는 것인데, 지금은 공선(公船)이 이미 패하지 않았음이 보장되었고, 사선(私船)도 이미 변통하기로 결정하였는데 무슨 대략 설치하여 시험할 일이 있겠습니까.
신하로서 일을 논의하는 도리는 이해(利害)를 잘 알지 못하고, 마땅히 행하여야 한다고 범범하게 말하는 자는 그 잘못이 다만 이해를 알지 못하는 데 있으니, 어쩌면 용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옳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감히 쟁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어정쩡하게 따른다면 마침내 불충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어제 좌의정 허적과 예조 판서 김좌명이 옳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감히 쟁집하지도 않은 채, 반은 가하다 하고 반은 불가하다 하며 반은 편리하다 하고 반은 불편하다고 하다가 마침내 대략 설치하여 가부를 시험하자는 논의로 결정하였으니, 불충한 죄를 어찌 모면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성상께서도 조선(漕船)이 패선되지 않았고 사선을 변통하였음을 통촉하신 후에는 아마도 창고를 굳이 설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반만 설치하여 편리한 지의 여부를 시험하게 한 것은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앞서의 계획을 변경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입니다. 대체로 일의 이해가 자세하지 않다면 어쩔 수 없지마는 이미 그 이해가 분명하다면 단연코 그만두어야 합니다. 이것 역시 용단(勇斷)의 한 도리이니, 한 고조가 인장(印章)을 새겼다가 그 인장을 없애버린 일을 어찌 되돌려 생각해 보지 않으십니까.
해마다 있는 온천(溫泉)의 행차로 호서의 백성들이 음식물 등을 마련하는 노고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역사(役事)를 흉년 끝에 아울러 거행하여 목재를 운반하고 돌을 운반하는 노고를 겹치게 하시니,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앞서의 계획을 변경하는 어려움을 이것과 비교하여 어느 것이 어렵다고 여기십니까. 삼가 원컨대 성상께서는 마음을 결정하시어 빨리 정지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답하기를,
"나의 뜻은 이미 등대하였을 때 유시하였으니, 다만 그 성취된 것이 어떠한가를 볼 뿐이다. 생각한 바를 진달하는 것은 본래 아름다운 일이나 말이 간혹 지나치다."
하였다. 이때 창고를 설치하자는 의논이 송시열에게서 나왔는데, 영의정 정태화는 속으로 옳지 않은 줄 알았으나 질병으로 논의에 참여하지 못하였고, 영부사 이경석은 결코 행할 수 없다고 하면서 허적이 애써 다투지 못하는 것을 큰소리로 말하였다. 허적도 옳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혐의스럽게 여겨 그만두자고 청하지를 못하였다. 민정중은 송시열의 의견을 따랐으며, 김좌명은 실행 여부를 시험해 보자고 청하였으나, 뭇 의견이 모두들 창고 설치가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에 서필원이 광직함을 스스로 떠맡고 앞에 나서서 대립하다가 마침내 엄중한 논박을 받았다.
삼가 살피건대 태안(泰安)에 창고를 설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대신과 중신 중에 모르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송시열이 그 의논을 주장한 까닭에 상이 이미 의견을 굽히고 따르자, 대신 이하가 한 사람도 그 잘못됨을 말하는 이가 없었는데, 유독 서필원이 분연히 항거하는 소를 올려 대신을 불충(不忠)하다고 배척하였다. 그러면서도 송시열의 잘못됨을 직접 논박하지는 않았는데, 송시열이 마침내 노여움을 터뜨리고 돌아가니 대장(臺章)이 줄을 이어 서필원의 탄핵에 있는 힘을 다하였다.
국가에서 하는 일이란 한 사람의 사사로운 일이 아니니, 진실로 대중의 의견이 옳지 않다고 하면 당연히 반복하여 헤아려서 신속히 혁파하여야 한다. 어찌 자기의 견해를 고집하고 남의 이의를 싫어하여, 마침내 성공하지 못할 역사를 일으켜 재물을 허비하고 백성을 병되게 한 다음에야 그만두려 한단 말인가. 아, 이것은 실로 송시열의 평생 병통이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1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재정-창고(倉庫) / 교통-수운(水運)
○刑曹判書徐必遠上疏, 論設倉之不便曰:
昨日筵中, 講論設倉便否, 漕船旣詳其近無一敗, 私船亦定其聚會監督, 則少無可以設倉之事, 而輾轉反覆, 終歸於減半設立, 試其便否, 臣不勝慨然之至。 凡事之試可, 在於利害未分, 便否未詳之間, 而今則公船旣保其不敗, 私船已定其變通, 有何略設試可之事哉。 大抵人臣論事之道, 不知利害, 泛言當行者, 其失只在於不知利害, 容有可恕。 至於明知不可, 而不敢爭執, 反乃依違承順, 則終歸於不忠。 昨者左議政臣許積、禮曹判書臣金佐明明知不可, 而不敢爭執, 半可半不可, 半便半不便, 而終以略設試可定議, 不忠之罪, 烏得免哉。 仰惟聖上, 亦燭於漕船不敗, 私船變通之後, 則似知其倉舍之不必設。 而猶使減半設立, 試其便否者, 非有別事, 只是不欲變前計之意。 凡事不詳其利害則已, 旣詳其利害, 則斷然止之。 亦是勇斷之一道, 何不以漢 高刻印銷印之事, 反而求之耶? 連年溫幸之日, 湖民不無奔走供頓之勞, 而以此不必爲之役, 竝擧於凶荒之後, 重之以曳木運石之勞苦, 不審殿下變前計之難, 與此孰難哉? 伏願聖上, 斷自聖衷, 快使停止。
上答曰: "予意已諭於登對之時, 只觀其成就之如何耳。 有懷必達, 自是美事, 而言或過矣。" 是時設倉之議, 出於宋時烈, 而領議政鄭太和, 心知不可, 而病不與議, 領府事李景奭以爲: ‘決不可行,大言許積之不能力爭。’ 許積亦以爲不可, 而嫌於立異, 不能請寢。 閔鼎重從時烈意, 金佐明請試可, 而群議莫不以設倉爲非宜, 故必遠以狂直自任, 挺出角立, 竟被重駁。
【謹按泰安設倉之不可, 大臣重臣, 無不知之。 而特以時烈主議之故, 上旣曲從, 大臣以下, 無一人敢言其非者, 而獨必遠憤然抗疏, 斥大臣以不忠。 然猶不敢直論時烈之失, 而時烈遂發怒而歸, 臺章相繼紛紛, 擊劾必遠無餘力矣。 夫國家施措, 非一人私事, 苟衆議以爲不可, 則固當反覆商度, 斯速罷之而已。 何可偏執己見, 而惡人異議, 卒興不可成之役, 以至靡財病民而後已哉。 噫! 斯實時烈平生之病痛也。】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36책 61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재정-창고(倉庫) / 교통-수운(水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