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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실록16권, 현종 10년 1월 5일 기해 1/1 기사 / 1669년 청 강희(康熙) 8년

송시열 등이 중종 이래의 사화, 강빈, 정릉, 엄흥도의 일 등을 아뢰다

국역

상이 양심합에 나아가 《심경》을 강하였다. 판부사 송시열, 좌참찬 송준길이 시강하다가 기묘유현(己卯儒賢) 조광조(趙光祖)에 언급되었다. 준길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 유현 중 자질이 아름답기로는 광조만한 이가 없습니다."

하고, 시열이 아뢰기를,

"중묘 반정은 계해년011) 과는 다릅니다. 공훈에 참여된 자들이 대부분 무부(武夫)여서 일이 매우 난잡하였으므로, 광조가 개연히 숙청을 자기 임무로 삼았습니다."

하였다. 준길이 아뢰기를,

"광조가 임금을 만난 것은 천 년에 한 번이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하겠는데 결과가 없고 말았으니 천고의 한입니다. 남곤(南袞)·심정(沈貞)의 죄를 이루 다 꾸짖을 수 있겠습니까."

하자, 시열이 아뢰기를,

"정광필(鄭光弼)이 정승에서 체직된 후 남곤이 수상이 되어 제현(諸賢)들이 차례로 죽어갔습니다."

하였다. 준길이 아뢰기를,

"중종 대왕 반정 때 박원종(朴元宗)이 거의하려면서 신수근(愼守勤)에게 묻기를 ‘매부를 폐하고 사위를 세우면 옳겠는가.’ 하였는데, 수근은 바로 중종비 신씨의 아버지이자 연산군비의 오빠입니다. 수근이 답하기를 ‘상이 바야흐로 피똥을 누는 병환을 앓고 있으니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하였으니, 이는 곧 따르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원종이 사람을 시켜 그를 쳐 죽였습니다. 중묘가 즉위한 후 원종 등이 죄인의 딸은 한 나라에 어머니로 임할 수 없다고 군부(君父)를 윽박질러 신씨를 폐하였습니다. 장경 왕후(章敬王后)012) 가 승하한 후 김정(金淨)·박상(朴祥) 등이 상소하여 신씨의 복위를 청하였는데 이는 실로 정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종의 논의는 ‘만약 신씨를 복위한다면 원자(元子)013) 를 어떤 지위에 둘 것이냐?’고 하였습니다. 대개 가례(嘉禮)014) 를 따진다면 신씨가 앞서기 때문에 그 의론이 이와 같았는데 김정박상이 모두 죄를 입었습니다. 광조가 정언이 되자 김정 등의 논리를 세워 다른 의견을 누르고 시비를 밝히니 논의가 비로소 대립되었고 끝내는 사화를 빚어 내었습니다."

하였다. 시열이 아뢰기를,

"이 뿐만이 아닙니다. 광조는 아는 것은 무엇이든지 말하고, 말하면 무엇이든지 끝까지 다 말하였으므로, 중종께서 수작하기가 피곤하여 용상에서 때때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답니다. 그런데 신이 전날 입시할 때는 상께서 일어나 옷을 고쳐 입으시기에 신의 마음이 매우 편하였습니다."

하자, 준길이 아뢰기를,

"이 말이 옳습니다. 상께서 혹 피곤하시면 파하여 나가게 해야지, 구속하고 억지로 힘씀은 옳지 않습니다."

하였다. 시열이 또 광조가 소격서(昭格署) 파하기를 청하며 한밤중이 되도록 쟁집하자 중묘(中廟)께서 마지못해 따랐던 일을 진달하니, 준길이 아뢰기를,

"그 소청을 마지못해 따른 것은 극히 한심한 일입니다. 임금이 마지못해 따른다면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였다. 시열이 또 정광필이 옷자락을 잡으며 흐느껴 간하였던 일을 진달하니, 준길이 아뢰기를,

"제현들이 당일의 주륙을 면한 것은 실로 광필의 힘이니, 사림에 큰 공이 있습니다. 이는 정태화(鄭太和)의 선조입니다. 정씨가 지금까지 계속하여 세상에서 빛을 내고 있는 것은 광필의 선행이 남겨준 후손들의 경사라고 사람들이 일컫습니다."

하였다. 또 을사년의 화를 진달하고, 이어 아뢰기를,

"을사년에 원통하게 죽은 사람 가운데 송인수(宋麟壽)가 제일이며, 그 나머지 사람은 신이 매양 일체로 증직을 청하고자 하였으나 미처 못하였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인수의 증직은 어느 때 있었는가?"

하니, 준길이 아뢰기를,

"신이 선왕 조정에서 건의하였던 바이며, 곽순(郭珣)·정희등(鄭希登)도 역시 같은 때에 원통하게 죽은 자들입니다."

하였다. 이어서 양재 벽서(良才壁書)의 화(禍)와 정언각(鄭彦慤)이 밟혀 죽은 것015) 을 진달하며 아뢰기를,

"천도(天道)의 응보가 어긋나지 않음은 이같은 점이 있습니다. 근래의 일로 말한다면, 김자점(金自點)강씨(姜氏)016) 의 옥사를 빚어냈는데 합문(閤門)017) 에서 국문을 당하고 주륙되기는 강씨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는 언각의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였다. 시열이 을사년에 원통하게 죽은 사람들에게 증직하기를 청하니, 상이 해조로 하여금 상고하여 거행하도록 하였다. 시열이 또 아뢰기를,

"정릉(貞陵)의 일은 신이 어저께 이미 진달하였습니다. 송나라 때 전씨(錢氏)능묘가 풀에 뒤덮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한탄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수신(守臣)이 조정에 청하여 묘를 보수하고 사(祠)를 세웠습니다. 더구나 신덕 왕후께서는 위호가 바뀌지도 않았는데 능묘가 이와 같이 황폐해졌으니, 일의 체모에 있어 보수 개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상이 예조로 하여금 능을 살펴본 후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였으나, 태묘에 배향함은 곤란하게 여겼다. 시열이 아뢰기를,

"상께서 만약 선조에서 행하지 않았다고 하여 곤란하게 여기신다면, 중묘조(中廟朝)에서 소릉(昭陵)018) 을 복구한 한 가지 일을 본으로 삼으실 수 있습니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노산군(魯山君)이 해를 입었을 때 아무도 거두어 돌보지 않았었는데, 그 고을 아전 엄흥도(嚴興道)가 곧바로 가 곡하고, 스스로 관곽(棺槨)을 준비해 염하여 장사를 치렀으니, 지금의 노묘(魯墓)가 바로 그 묘입니다. 흥도의 절의를 사람들이 지금까지 일컫고 있습니다. 지금 들으니, 그 자손들이 본 영월군에 있기도 하고 괴산(槐山) 땅에 있기도 한다고 합니다. 절의를 부추키어 장려하는 도리에 있어 녹용(錄用)하는 은전이 있어야겠습니다."

하니, 상이 해조에 명하여 찾아가 보고 녹용케 하였다.

  • [註 011] 계해년 : 인조 원년, 인조 반정을 가리킴.
  • [註 012] 장경 왕후(章敬王后) : 중종의 계비.
  • [註 013] 원자(元子) : 인종.
  • [註 014] 가례(嘉禮) : 정식 혼례.
  • [註 015] 양재 벽서(良才壁書)의 화(禍)와 정언각(鄭彦慤)이 밟혀 죽은 것 : 을사 사화 후 소윤(小尹)의 윤원형(尹元衡) 등이 대윤(大尹)의 잔여 세력을 추가로 제거했던 사건의 발단은 정언각이 양재역에서 벽서를 발견하여 고변하고 옥사를 일으킨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후에 말에서 떨어져 밟혀 죽었다.
  • [註 016] 강씨(姜氏) : 소현 세자비 인빈 강씨.
  • [註 017] 합문(閤門) : 편전(便殿)의 문.
  • [註 018] 소릉(昭陵) : 문종비(文宗妃)의 첫 능지.

원문

○己亥/上御養心閤《心經》。 判府事宋時烈、左參贊宋浚吉侍講, 語及己卯儒賢趙光祖事。 浚吉曰: "我國儒賢資質之美, 無如光祖者。" 時烈曰: "中廟反正, 異於癸亥參勳者, 多是武夫, 事甚濫雜。 故光祖慨然以肅淸爲己任。" 浚吉曰: "光祖之際會, 可謂千載一時, 而至於無終, 爲千古之恨。 之罪, 可勝誅哉。" 時烈曰: "鄭光弼遞相之後, 南袞爲首相, 諸賢次第就死。" 浚吉曰: "中宗大王反正時, 朴元宗將擧義, 問于愼守勤曰: ‘廢妹夫立女壻可乎’, 守勤中宗愼氏父, 而燕山君妃兄也。 守勤答曰: ‘上方患血矢, 安能久乎’, 此乃不從之意也。 元宗使人椎殺之。 中廟卽位之後, 元宗等以爲罪人之女, 不可母臨一國, 脅君父, 而廢愼妃章敬王后昇遐之後, 金淨朴祥等上疏, 請復愼妃, 此實正論。 而一種之論以爲: ‘若復愼氏, 則置元子於何地?’ 蓋若論嘉禮, 愼氏在前, 故其議如此, 皆被罪矣。 及光祖爲正言, 立金淨等論絀異議, 以明是非, 論議始角立, 終至釀成士禍。" 時烈曰: "不但此也。 光祖知無不言, 言無不盡, 中宗倦於酬酢, 龍床有時戞然作聲。 臣之前日入侍, 自上起更衣, 臣心甚安矣。" 浚吉曰: "此言是也。 自上若或疲困, 則使之罷黜可也, 若拘束勉强, 則不可也。" 時烈又達光祖之請罷昭格署, 達夜爭之, 中廟不得已而從之, 浚吉曰: "其所請不得已而從者, 極是寒心處。 人君不得已從, 則事無可爲矣。" 時烈又達鄭光弼牽衣泣諫事, 浚吉曰: "諸賢之得免當日誅戮, 實光弼之力也, 其有功於士林大矣。 此乃鄭太和之先祖。 鄭氏之至今蟬聯赫世, 人稱光弼之餘慶矣。" 又達乙巳之禍, 仍言: "乙巳冤死人中, 宋麟壽爲首, 而其餘人, 臣每欲請一體贈職而未果矣。" 上曰: "麟壽贈職, 在於何時?" 浚吉曰: "臣在先朝所建白. 郭珣鄭希登亦同時冤死者也。" 仍達良才壁書之禍及鄭彦慤之蹂死曰: "天道報施不忒, 有如是者。 以近事言之, 金自點鍜鍊姜氏之獄, 及其閤門誅戮死者, 與均。 此與彦慤事無異也。" 時烈請乙巳冤死人等贈職, 上令該曺, 考出擧行。 時烈又曰: "貞陵事, 臣昨已陳達矣。 時, 餞氏 陵墓蕪沒, 行路爲之咨嗟, 故當時守臣請於朝, 修墓立祠。 況神德王后位號未替, 而陵墓如是荒廢, 其在事體, 不可不修改。" 上令禮曹, 奉審後議處, 而以配食太廟爲難。 時烈曰: "上若以先朝未行, 而爲難, 則中廟朝復昭陵一事, 爲可法也。" 又曰: "魯山君之遇害, 無人收(視)〔屍〕 , 郡吏嚴興道卽往哭臨, 自備棺槨, 而歛葬之, 卽今所謂魯墓也。 興道節義, 人至今稱之。 今聞其子孫, 或在本郡, 或在槐山地。 其在扶奬節義之道, 合有錄用之典。" 上命該曹, 訪問錄用。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현종실록16권, 현종 10년 1월 5일 기해 1/1 기사 / 1669년 청 강희(康熙) 8년

송시열 등이 중종 이래의 사화, 강빈, 정릉, 엄흥도의 일 등을 아뢰다

국역

상이 양심합에 나아가 《심경》을 강하였다. 판부사 송시열, 좌참찬 송준길이 시강하다가 기묘유현(己卯儒賢) 조광조(趙光祖)에 언급되었다. 준길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 유현 중 자질이 아름답기로는 광조만한 이가 없습니다."

하고, 시열이 아뢰기를,

"중묘 반정은 계해년011) 과는 다릅니다. 공훈에 참여된 자들이 대부분 무부(武夫)여서 일이 매우 난잡하였으므로, 광조가 개연히 숙청을 자기 임무로 삼았습니다."

하였다. 준길이 아뢰기를,

"광조가 임금을 만난 것은 천 년에 한 번이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하겠는데 결과가 없고 말았으니 천고의 한입니다. 남곤(南袞)·심정(沈貞)의 죄를 이루 다 꾸짖을 수 있겠습니까."

하자, 시열이 아뢰기를,

"정광필(鄭光弼)이 정승에서 체직된 후 남곤이 수상이 되어 제현(諸賢)들이 차례로 죽어갔습니다."

하였다. 준길이 아뢰기를,

"중종 대왕 반정 때 박원종(朴元宗)이 거의하려면서 신수근(愼守勤)에게 묻기를 ‘매부를 폐하고 사위를 세우면 옳겠는가.’ 하였는데, 수근은 바로 중종비 신씨의 아버지이자 연산군비의 오빠입니다. 수근이 답하기를 ‘상이 바야흐로 피똥을 누는 병환을 앓고 있으니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하였으니, 이는 곧 따르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자 원종이 사람을 시켜 그를 쳐 죽였습니다. 중묘가 즉위한 후 원종 등이 죄인의 딸은 한 나라에 어머니로 임할 수 없다고 군부(君父)를 윽박질러 신씨를 폐하였습니다. 장경 왕후(章敬王后)012) 가 승하한 후 김정(金淨)·박상(朴祥) 등이 상소하여 신씨의 복위를 청하였는데 이는 실로 정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종의 논의는 ‘만약 신씨를 복위한다면 원자(元子)013) 를 어떤 지위에 둘 것이냐?’고 하였습니다. 대개 가례(嘉禮)014) 를 따진다면 신씨가 앞서기 때문에 그 의론이 이와 같았는데 김정박상이 모두 죄를 입었습니다. 광조가 정언이 되자 김정 등의 논리를 세워 다른 의견을 누르고 시비를 밝히니 논의가 비로소 대립되었고 끝내는 사화를 빚어 내었습니다."

하였다. 시열이 아뢰기를,

"이 뿐만이 아닙니다. 광조는 아는 것은 무엇이든지 말하고, 말하면 무엇이든지 끝까지 다 말하였으므로, 중종께서 수작하기가 피곤하여 용상에서 때때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답니다. 그런데 신이 전날 입시할 때는 상께서 일어나 옷을 고쳐 입으시기에 신의 마음이 매우 편하였습니다."

하자, 준길이 아뢰기를,

"이 말이 옳습니다. 상께서 혹 피곤하시면 파하여 나가게 해야지, 구속하고 억지로 힘씀은 옳지 않습니다."

하였다. 시열이 또 광조가 소격서(昭格署) 파하기를 청하며 한밤중이 되도록 쟁집하자 중묘(中廟)께서 마지못해 따랐던 일을 진달하니, 준길이 아뢰기를,

"그 소청을 마지못해 따른 것은 극히 한심한 일입니다. 임금이 마지못해 따른다면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였다. 시열이 또 정광필이 옷자락을 잡으며 흐느껴 간하였던 일을 진달하니, 준길이 아뢰기를,

"제현들이 당일의 주륙을 면한 것은 실로 광필의 힘이니, 사림에 큰 공이 있습니다. 이는 정태화(鄭太和)의 선조입니다. 정씨가 지금까지 계속하여 세상에서 빛을 내고 있는 것은 광필의 선행이 남겨준 후손들의 경사라고 사람들이 일컫습니다."

하였다. 또 을사년의 화를 진달하고, 이어 아뢰기를,

"을사년에 원통하게 죽은 사람 가운데 송인수(宋麟壽)가 제일이며, 그 나머지 사람은 신이 매양 일체로 증직을 청하고자 하였으나 미처 못하였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인수의 증직은 어느 때 있었는가?"

하니, 준길이 아뢰기를,

"신이 선왕 조정에서 건의하였던 바이며, 곽순(郭珣)·정희등(鄭希登)도 역시 같은 때에 원통하게 죽은 자들입니다."

하였다. 이어서 양재 벽서(良才壁書)의 화(禍)와 정언각(鄭彦慤)이 밟혀 죽은 것015) 을 진달하며 아뢰기를,

"천도(天道)의 응보가 어긋나지 않음은 이같은 점이 있습니다. 근래의 일로 말한다면, 김자점(金自點)강씨(姜氏)016) 의 옥사를 빚어냈는데 합문(閤門)017) 에서 국문을 당하고 주륙되기는 강씨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는 언각의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였다. 시열이 을사년에 원통하게 죽은 사람들에게 증직하기를 청하니, 상이 해조로 하여금 상고하여 거행하도록 하였다. 시열이 또 아뢰기를,

"정릉(貞陵)의 일은 신이 어저께 이미 진달하였습니다. 송나라 때 전씨(錢氏)능묘가 풀에 뒤덮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한탄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수신(守臣)이 조정에 청하여 묘를 보수하고 사(祠)를 세웠습니다. 더구나 신덕 왕후께서는 위호가 바뀌지도 않았는데 능묘가 이와 같이 황폐해졌으니, 일의 체모에 있어 보수 개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상이 예조로 하여금 능을 살펴본 후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였으나, 태묘에 배향함은 곤란하게 여겼다. 시열이 아뢰기를,

"상께서 만약 선조에서 행하지 않았다고 하여 곤란하게 여기신다면, 중묘조(中廟朝)에서 소릉(昭陵)018) 을 복구한 한 가지 일을 본으로 삼으실 수 있습니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노산군(魯山君)이 해를 입었을 때 아무도 거두어 돌보지 않았었는데, 그 고을 아전 엄흥도(嚴興道)가 곧바로 가 곡하고, 스스로 관곽(棺槨)을 준비해 염하여 장사를 치렀으니, 지금의 노묘(魯墓)가 바로 그 묘입니다. 흥도의 절의를 사람들이 지금까지 일컫고 있습니다. 지금 들으니, 그 자손들이 본 영월군에 있기도 하고 괴산(槐山) 땅에 있기도 한다고 합니다. 절의를 부추키어 장려하는 도리에 있어 녹용(錄用)하는 은전이 있어야겠습니다."

하니, 상이 해조에 명하여 찾아가 보고 녹용케 하였다.

  • [註 011] 계해년 : 인조 원년, 인조 반정을 가리킴.
  • [註 012] 장경 왕후(章敬王后) : 중종의 계비.
  • [註 013] 원자(元子) : 인종.
  • [註 014] 가례(嘉禮) : 정식 혼례.
  • [註 015] 양재 벽서(良才壁書)의 화(禍)와 정언각(鄭彦慤)이 밟혀 죽은 것 : 을사 사화 후 소윤(小尹)의 윤원형(尹元衡) 등이 대윤(大尹)의 잔여 세력을 추가로 제거했던 사건의 발단은 정언각이 양재역에서 벽서를 발견하여 고변하고 옥사를 일으킨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후에 말에서 떨어져 밟혀 죽었다.
  • [註 016] 강씨(姜氏) : 소현 세자비 인빈 강씨.
  • [註 017] 합문(閤門) : 편전(便殿)의 문.
  • [註 018] 소릉(昭陵) : 문종비(文宗妃)의 첫 능지.

원문

○己亥/上御養心閤《心經》。 判府事宋時烈、左參贊宋浚吉侍講, 語及己卯儒賢趙光祖事。 浚吉曰: "我國儒賢資質之美, 無如光祖者。" 時烈曰: "中廟反正, 異於癸亥參勳者, 多是武夫, 事甚濫雜。 故光祖慨然以肅淸爲己任。" 浚吉曰: "光祖之際會, 可謂千載一時, 而至於無終, 爲千古之恨。 之罪, 可勝誅哉。" 時烈曰: "鄭光弼遞相之後, 南袞爲首相, 諸賢次第就死。" 浚吉曰: "中宗大王反正時, 朴元宗將擧義, 問于愼守勤曰: ‘廢妹夫立女壻可乎’, 守勤中宗愼氏父, 而燕山君妃兄也。 守勤答曰: ‘上方患血矢, 安能久乎’, 此乃不從之意也。 元宗使人椎殺之。 中廟卽位之後, 元宗等以爲罪人之女, 不可母臨一國, 脅君父, 而廢愼妃章敬王后昇遐之後, 金淨朴祥等上疏, 請復愼妃, 此實正論。 而一種之論以爲: ‘若復愼氏, 則置元子於何地?’ 蓋若論嘉禮, 愼氏在前, 故其議如此, 皆被罪矣。 及光祖爲正言, 立金淨等論絀異議, 以明是非, 論議始角立, 終至釀成士禍。" 時烈曰: "不但此也。 光祖知無不言, 言無不盡, 中宗倦於酬酢, 龍床有時戞然作聲。 臣之前日入侍, 自上起更衣, 臣心甚安矣。" 浚吉曰: "此言是也。 自上若或疲困, 則使之罷黜可也, 若拘束勉强, 則不可也。" 時烈又達光祖之請罷昭格署, 達夜爭之, 中廟不得已而從之, 浚吉曰: "其所請不得已而從者, 極是寒心處。 人君不得已從, 則事無可爲矣。" 時烈又達鄭光弼牽衣泣諫事, 浚吉曰: "諸賢之得免當日誅戮, 實光弼之力也, 其有功於士林大矣。 此乃鄭太和之先祖。 鄭氏之至今蟬聯赫世, 人稱光弼之餘慶矣。" 又達乙巳之禍, 仍言: "乙巳冤死人中, 宋麟壽爲首, 而其餘人, 臣每欲請一體贈職而未果矣。" 上曰: "麟壽贈職, 在於何時?" 浚吉曰: "臣在先朝所建白. 郭珣鄭希登亦同時冤死者也。" 仍達良才壁書之禍及鄭彦慤之蹂死曰: "天道報施不忒, 有如是者。 以近事言之, 金自點鍜鍊姜氏之獄, 及其閤門誅戮死者, 與均。 此與彦慤事無異也。" 時烈請乙巳冤死人等贈職, 上令該曺, 考出擧行。 時烈又曰: "貞陵事, 臣昨已陳達矣。 時, 餞氏 陵墓蕪沒, 行路爲之咨嗟, 故當時守臣請於朝, 修墓立祠。 況神德王后位號未替, 而陵墓如是荒廢, 其在事體, 不可不修改。" 上令禮曹, 奉審後議處, 而以配食太廟爲難。 時烈曰: "上若以先朝未行, 而爲難, 則中廟朝復昭陵一事, 爲可法也。" 又曰: "魯山君之遇害, 無人收(視)〔屍〕 , 郡吏嚴興道卽往哭臨, 自備棺槨, 而歛葬之, 卽今所謂魯墓也。 興道節義, 人至今稱之。 今聞其子孫, 或在本郡, 或在槐山地。 其在扶奬節義之道, 合有錄用之典。" 上命該曹, 訪問錄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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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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