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현종실록 8권, 현종 5년 2월 3일 병신 2번째기사 1664년 청 강희(康熙) 3년

김만균을 옹호한 송시열의 소를 반박하는 함경 감사 서필원의 상소

함경 감사 서필원(徐必遠)이 상소하기를,

"신이 듣건대 우찬성 송시열의 사직소에 전 수찬 김만균(金萬均) 문제가 거론 되었는데 그가 죄를 입고 의금부에 하옥된 것이 모두 사의(私義)를 내세워 소를 올렸기 때문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전해진 말이 사실과 달라 위로 조정에 없었던 잘못을 드러내고 아래로 유현(儒賢)의 지극히 공정한 귀를 의혹되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신으로서는 그 문제에 있어 너무나 개탄스럽습니다. 신이 지난날 정원의 지위에 있을 때, 만균이 소를 올린 것은 불가한 일이라고 강력히 배척하고 심지어 그 소를 도로 내줄 것을 아뢰었던 자가 바로 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만약 그 일이 오늘부터서는 과연 이적(夷狄)으로 빠져들어가고 금수(禽獸)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일이 된다면 수악(首惡)에 해당하는 죄를 받을 사람이 신인데 신이 어떻게 감히 태연하게 의관(衣冠)의 반열에 끼어 있을 수 있으며 또 어떻게 감히 세상에 서서 사람 축에 들겠습니까?

시열은 유림의 영수로서 의리에 훤하여 그가 한 말이라면 아마 틀림없이 근거가 있겠으나, 그러나 생각하면 신이 취한 망녕스러운 짓 역시 할 말은 있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조금 더 피력하여 신의 죄를 더 중하게 만들까 합니다. 신은 듣건대 맹자가 말하기를 ‘안에서는 부자, 밖에서는 군신이 사람에 있어 대륜(大倫)이다.’ 하였고, 또 삼강 항목에서는 임금과 아버지가 같은 서열이고 그외에는 거기에 끼어들지 못한다고 들었으며 또 임금과 어버이는 똑같다는 말이 고훈(古訓)에 나와 있다고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미루어본다면 군신·부자와 조손(祖孫)·곤제(昆弟)가 어찌 경중과 선후의 차이가 없겠습니까. 그리고 복제(服制)로 말하더라도 1년과 3년의 차이가 있으니 그렇다면 그 사이에는 천리나 인정으로 보아 같지 않음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왜 유독 원수를 보복하는 경우에 있어서만은 전혀 구별이 없이 똑같이 할 것입니까?

지금 부모의 원수를 두고 임금에게 고하기를 ‘나와 저와는 어버이 원수 사이이기에 내 차마 저 자의 일에 간여할 수 없고 차마 저 자를 맞이할 수도 없습니다.’ 한다면 인정으로 보아서나 의리로 보아서나 당연한 일이 되겠지만 만약 어버이 이하로 군부와는 같은 서열에 둘 수 없는 사이라면 비록 그를 위해 보복해야 할 원수가 있더라도 그 슬픔과 아픔을 마음에 되새기며 죽도록까지 잊지 않으면 그뿐인 것이고 만약에 꼭 자기 뜻대로 하고 싶다면 그는 그대로의 방법이 따로 있어야지 어떻게 원수마다 다 갚기를 청하고 낱낱이 억울함을 다 풀 것입니까? 지금 신의 주된 뜻은 조정에 있는 신료들이 경중을 저울질하고 선후를 참작하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의만 더럽히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뿐인데 그것이 과연 이적으로 빠져들어가고 금수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신이 그날 계청할 때도 동료들에게 말하기를 ‘김 아무 상소문을 어찌하여 받아들였는가? 만약 이 소문에 대하여 예를 따라 비답이 내려진다면 대신으로는 홍명하, 중신으로는 허적·이일상(李一相) 등 여러 사람과 그 밑으로도 그러한 참화를 당했던 자들이 앞으로 틀림없이 상소문을 들고 몰려올 것인데 받아들이자니 안 될 일이고 받지 말자니 공평을 잃은 일이니, 김 아무 상소문을 도로 내 주도록 아뢰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하였더니 동료들 모두가 신의 말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지금 큰 죄에 빠져들었으니 신이 비록 말을 삼가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 저 세 신하들024) 도 다 형제가 화를 당한 원수가 되고 있지만 평상시나 난리 때나 한 마음 한 뜻으로 감히 청을 못하고 있는 것은 경중을 저울질하여 공을 우선하고 사는 뒤로 하자는 뜻이지, 그들이라고 어찌 모두 작록에만 마음이 있어 염치 불고하고 형제의 우애가 만균만 못해서 그러는 것이겠습니까? 지금 나라 일은 점점 어려워져가고 인재는 적어 비록 모두가 마음과 힘을 합해 밤낮으로 쉴새없이 뛰더라도 잘 안 될 염려가 있는데 산림(山林)의 숙덕(宿德)이라는 사람이 느닷없이 그러한 말을 하였으니 그의 말이 만약 시행이 될 경우 의리는 더욱 밝아질지라도 나라에는 더욱 인재가 없어지지 않을까 신으로서는 염려인 것입니다.

만약 오늘 조정의 신료들이 모두 난리 때 나라 위해 죽은 이들의 손자요 증손자라면 평상시 아무 일이 없을 때는 녹을 먹으며 의기 양양하다가 저들 사신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두 다 도망가버리고 그 수많은 일 처리를 지존 혼자서 다 하게 할 것입니까? 그래서 신은 그것이 결코 불가한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신이 천성이 어리석고 미치광스러워 이렇게 유현(儒賢)도 엿보지 못한 의리를 만들어냈으니, 신의 죄 이에 이르러 더욱 무겁게 되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신의 직명을 삭제하시고 신의 죄명을 논의하셔서 시비를 바로잡으시고 의리를 밝히소서."

하니, 상이 답하기를,

"혐의롭게 여길 것 없으니 마음 편히 직을 살피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39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註 024]
    세 신하들 : 홍명하·허적·이일상을 이름.

咸鏡監司徐必遠上疏曰:

臣聞右贊成宋時烈辭職疏中, 歷擧前修撰金萬均之下理被罪, 皆由於私義陳疏。 未知傳說失眞, 上以揚朝廷所無之失, 下以惑儒賢至公之聽耶, 臣於此不勝慨然。 臣頃忝政院之日, 力斥萬均陳疏之不可, 至於啓請還給者, 卽臣也。 若自今日, 果有淪夷狄、入禽獸之事, 則其首惡之罪, 臣實當之, 臣何敢晏然, 而辱在衣冠之列乎, 又何敢立於人世, 而齒於人類乎? 時烈以儒林領袖, 洞見義理, 其所云云, 想必有據, 而第念臣之妄作, 亦有說焉。 請少披露, 以重臣罪。 臣聞孟子有言曰: "內則父子, 外則君臣, 人之大倫。" 又聞三綱之目, 君與父竝列, 而他不與焉, 又聞君親一體之說, 見於古訓。 以此推之, 則君臣父子祖孫昆弟, 豈無輕重先後之別。 而且以服制論之, 期三年之間, 亦可見天理人情之不齊, 何獨於讎怨報復之際, 同出一科, 混然無別哉? 今有父母之讎者, 告於其君曰: "吾有親讎於彼, 不忍干預彼事, 不忍迎迓彼人云, 則於情於義, 固爲得矣", 若過此以下, 不得與君父竝列之親, 雖有怨讎, 當隱痛在心, 到死不忘而已, 如欲必遂己情, 則別有其道, 豈可讎讎皆請, 箇箇得伸哉? 今臣主意, 欲使在朝之臣, 權輕重、酌先後, 不褻其無所逃之大義而已, 未知此果爲淪夷狄、入禽獸之蹊逕乎? 臣於當日啓請之時, 言於同僚曰: "某之疏, 何爲捧入?" 若於此疏, 循例批下, 則大臣則洪命夏, 重臣則許積李一相諸人及凡其下遭此慘者, 必將持疏竝至, 欲捧入則不可, 欲勿捧則彼此不均, 不可不啓出疏, 同僚皆以臣言爲然。 不意今者, 陷入大罪, 臣雖捫舌, 亦何及也。 嗚呼! 彼三臣者, 亦皆有昆弟之讎, 而夷險一節, 不敢仰請者, 蓋出於酌量輕重, 先公後私之意, 豈皆徒心爵祿, 冒沒廉隅, 友愛之心, 不及於萬均而然哉? 目今國事漸艱, 人材渺然, 雖使協心竝力, 夙宵奔走, 猶恐其不濟, 而山林宿德之人, 遽爲此論, 臣恐此說若行, 義理愈明, 而國愈無人也。 若使今日朝臣, 皆是死事之孫曾, 則其將平居無事之時, 食祿揚揚, 聞有彼使, 輒皆走入, 其酬應百事, 獨使至尊當之乎? 臣於此, 決知其不可也。 臣賦性愚狂, 做此儒賢不可窺之義理, 臣之罪戾, 至此尤重。 伏乞聖慈, 削臣職名, 議臣罪名, 以正是非, 以明義理。

上答曰: "不必爲嫌, 安心察職。"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396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