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항·이후·성후설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김수항(金壽恒)을 예문관 제학으로, 이후(李垕)를 집의로, 성후설(成後卨)을 장령으로, 이동로(李東老)를 지평으로, 목겸선(睦兼善)을 사인으로, 안후열(安後說)을 수찬으로, 이정기(李廷夔)를 병조 참의로 각각 삼았다. 정기가 일찍이 간장(諫長)으로서 이동현을 잡아들여 국문하자는 아룀에 참여하였다가 크게 시휘(時諱)에 저촉되어, 다시는 청선(淸選)에 뽑히지 못하였고 심지어 은대(銀臺) 물망에도 추천이 되지 않았으므로, 정기로서는 뜻을 얻지 못하여 침울한 빛이 말과 얼굴에 나타났다. 이조 판서 홍명하가 정기의 초췌한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말하기를,
"일경(一卿)이 피곤해 보이는군. 벼슬자리 하나 줘야겠네."
하였는데, 일경은 정기의 자(字)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끄트머리 후보자로 낙점(落點)을 받았던 것이다. 이때 일상을 두둔하는 자들은 쌀 실은 배 문제를 놓고, 사간원이 망녕스레 한 말이라고 하는 자들이 많았는데, 경기 감사 조형이 일상의 집에다 술자리를 차려두고 정기의 집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초청하여 함께 마시면서 화해하는 자리라 하고 술잔을 주고받았다. 이때 정기가 술잔을 들어 일상에게 넘기자 일상이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르기를,
"사대부(士大夫)도 정기 술을 마신다던가?"
하였는데, 정기는 다만 머리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268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丙寅/以金壽恒爲藝文館提學, 李垕爲執義, 成後卨爲掌令, 李東老爲持平, 睦兼善爲舍人, 安後說爲修撰, 李廷夔爲兵曹參議。 廷夔曾以諫長, 參李東顯拿問之啓, 重觸時諱, 不得更調淸選, 至於銀臺之望, 且不注擬, 廷夔鬱鬱不得意, 形於辭色。 吏曹判書洪命夏見廷夔憔悴, 笑曰, 一卿疲矣, 可授一官。 一卿, 廷夔字也。 至是, 以末擬受點。 時護一相者, 多以米船之說, 爲諫院妄論, 京畿監司趙珩設酒於一相家, 以廷夔家近, 邀去同飮, 謂之和論, 酬酢之際, 廷夔擧杯傳於一相, 一相怒而起曰: ‘士大夫飮廷夔酒耶。’ 廷夔但俛首而已。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268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