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 대왕 애책문(哀冊文)
애책문(哀冊文)
유세차(維歲次) 기해년 5월 4일에 효종(孝宗) 선문 장무 신성 현인 대왕(宣文章武神聖顯仁大王)이 창덕궁(昌德宮)의 정침(正寢)에서 훙서(薨逝)하였는데, 같은 해 겨울 10월 28일에 능소(陵所)에 천좌(遷座)하였고, 29일 영릉(寧陵)에 영원히 천장(遷葬)하니, 예(禮)이다.
현당(玄堂)을 이미 만들었으므로 소악(素幄)070) 을 장차 철거하게 되었고 봉조(鳳旐)071) 가 나부끼니 용순(龍輴)072) 이 출발하려 하고 있다. 천거(天居)073) 에서의 화목하고 엄숙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조도(祖途)074) 의 행렬이 구불구불 길게 뻗어 있다. 천관(千官)들이 상여줄을 잡고 다투어 뒤따르고 있고 팔신(八神)이 엄히 호위하면서 달려 가고 있다. 천지도 참담한 모습을 짓고 있고 풍운(風雲)이 그 처절함을 부추기고 있다.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듯 울부짖고 발을 구르고 땅을 치며 피눈물을 흘렸다. 깊은 밤에는 끝없는 슬픔이 맺혔고 영결 종천(永訣終天)의 아픔으로 몸부림쳤다. 그리하여 전하께서 전지(傳旨)를 내려 신편(新編)에 그 업적을 기록하게 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 밝은 하늘이 우리 동토(東土)를 돌아보아 우리 임금님을 탄생시키고 인조(仁祖)에게 명을 받게 하였다. 주저(朱邸)075) 에 있을 때부터 현덕(玄德)이 일찍부터 환히 드러나 흰 운기(雲氣)와 신령스런 거북이 전후 상서로움을 바쳤다. 성스러운 자태는 순일하고 화평스러웠으며 빛나는 모유(謀猷)는 그지없이 광대하였고 인성(仁聲)과 인문(仁聞)이 중외(中外)에 흡족하였다.
서쪽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갔을 적에는 온갖 역경을 갖추 겪었는데 큰 우환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증익(增益)시켜 주었다. 9년 만에야 귀국했는데 백성들의 구가(謳歌)가 예속되어 왔으므로 드디어 저위(儲位)에 오르게 되었다. 정일(精一)의 훈계를 서로 전수받아 조금도 어기는 일이 없었는데 문교(文敎)의 시대가 퇴조하면서 무공(武功)을 세울 시기를 크게 이어받았으나 다스리는 것은 요(堯)임금을 본받았고 예(禮)를 지킨 것은 등(滕)나라 세자076) 보다 훌륭했다. 정신을 가다듬어 잘 다스려지기를 도모하여 항상 부지런하고 게으른 적이 없었으며 이 밝은 천명(天命)을 항상 돌아보면서 주야로 두려워하고 조심하였다. 장마가 지거나 가뭄이 들 경우에는 빌기만 하면 그때마다 반응이 있었다. 백성을 진휼(軫恤)하여 물에서 건져 주듯이 구제하였으며 살리기 좋아하는 덕이 흡족하게 배어 정성이 죄인을 보고 눈물을 흘린 것077) 보다 더 간절하였다.
죄인은 공평하게 결단할 것을 유념했으므로 억울하게 무고(誣告)당하는 옥사(獄事)가 없었으며, 은혜를 미루어 노인(老人)에까지 미쳐가게 하였으므로 정사가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을 따뜻하게 돌보는 데 있었다. 정상적인 요역(徭役)도 이미 경감시켰고 정공(正供) 또한 감면시켰으며 몸소 검소함을 보여 솔선하였고 사치스러움을 제거하는 데 힘썼다. 교화는 궁위(宮闈)에서부터 시작하였으므로 땅에 끌리는 긴 옷이 없었고 강명함은 주례(酒禮)를 제재하여 끊었으므로 우임금이 맛있는 술을 싫어한 것과 같았고 성색(聲色)을 멀리한 것은 이를 가까이 하지 않았던 탕임금과 같았다.
태묘(太廟)의 제사는 엄숙한 몸가짐과 깨끗한 제물로 지내었고 능침(陵寢)과 원묘(園墓)에는 봄가을로 직접 전알(展謁)을 행하였다. 동조(東朝)의 수라상을 몸소 살폈고 뜻을 봉양함에 어김이 없었으며 시약(侍藥)할 적에는 하늘이 굽어살펴 주기를 경건히 빌었고 만수전(萬壽殿)에서 수연(壽筵)을 열었을 적에는 봄날처럼 화기 애애하였다. 우애의 정이 깊었는데 천륜에 대해 더욱 돈독히 하여 긴 베개에 큰 이불을 함께 덮었으니, 지극한 즐거움이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귀하게 해주고 싶고 부하게 해주고 싶은 것은 순임금이 동생을 사랑하던 것보다 더하였으며 꿈에 나타난 소현 세자의 말에 감동되어 애통해하는 하교를 내렸다. 형의 아들을 자기 아들처럼 여기라는 선왕의 하교를 준행하였으며 하늘이 낸 효행은 옛날의 임금들보다 우뚝하게 뛰어났다.
항상 유술(儒術)을 숭상하여 날마다 연석(筵席)에 나아갔고 경전을 토론하여 깊고 은미한 뜻을 천발(闡發)하였으며 한 마음에 근본하여 만 가지 기무(幾務)를 조처하였다. 성학(聖學)을 계속 밝혀 도(道)가 몸에 쌓였고 학문에 뜻을 둔 마음은 시종 간격이 없었다. 일이 있기 전에 철저히 대비하는 데 마음을 두고 잘 다스려 갔으며 장수와 군졸을 책려(策勵)하여 전전(殿前)에서 직접 열무(閱武)하였으며 은혜로 어루만지는 것이 갖추 지극하였고 교훈에 방도가 있었다. 출입하거나 앉거나 눕는 일상 생활 사이에 그 뜻을 잠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신하들은 예우하였고 선한 일을 보면 반드시 포장(褒奬)하였으며 활달하게 속마음을 열어 영웅 호걸을 정신없이 맞아들였고 성심으로 미루어 믿게 하여 간언(諫言)을 받아들이고 사문(四門)을 환히 열어놓았다. 그리하여 꼴베는 사람과 나무꾼들의 말도 채납(採納)했으므로 진달되지 않는 말이 없었으며 일세(一世)를 풍동 권면하여 혜택이 이미 죽은 사람에게까지 미쳤으며 충절(忠節)은 정표(旌表)하지 않은 것이 없고 원통함이 있으면 즉시 신설(伸雪)시켰다.
옆 자리를 비워놓고 어진이를 구한 것은 실로 처음 정사를 시작할 때부터 그랬으므로 준량(俊良)들을 숭상하여 속백(束帛)의 빙례(聘禮)가 잇따랐으며 묘당에서 군신이 화기 애애한 가운데 가부를 논하였으므로 치구(治具)가 모두 갖추어졌다. 주나라와 하나라의 왕도(王道)를 따랐고 한나라와 당나라의 패도(霸道)를 비루하게 여겼다. 10년 동안 단정한 자세로 군림하여 날마다 부지런히 힘썼고 원대한 장래를 위한 큰 계략으로 장차 큰일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황천(皇天)이 도와주지 않아 갑자기 중도에서 승하하셨단 말인가. 이 비통함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천지와 함께 끝이 없을 것이다. 아, 슬프다.
과거 병이 조금 차도가 있을 적에 경하(慶賀)가 종방(宗祊)에 넘쳐 흘러 대덕(大德)은 반드시 장수(長壽)를 누리는 것이라 하면서 바야흐로 끝없는 수명을 누릴 것을 빌었다. 그리하여 아무런 질병이 없이 우모(羽旄)를 나부끼며 사냥하는 것을 바라보게 되기를 기다렸었는데 갑자기 궁거(宮車)가 멍에를 메워 장지(葬地)로 가게 되었다. 백성들은 부모가 돌아간 듯이 사야(四野)에 어지러이 서서 빗줄기 같은 눈물을 흘렸다.
아, 슬프다. 보의(寶扆)가 이미 텅 비었는데 천향(天香)만이 그치지 않고 타오르고 있으며 검석(劒舃)078) 은 아직도 진설되어 있는데 장전(帳殿)만 공허하게 설치되어 있구나. 마치 임금의 옥음이 들리는 것만 같고 위엄스런 용안이 지척에 어른거린다. 그러나 슬프게도 뜰에 가득히 도열하여 모시고 있는 신하들의 조의(朝儀)가 평소와는 다르구나. 아, 슬프다.
임금이 거상(居喪)하는 데는 다섯 달 동안 여묘를 사는 것인데 효성스런 생각이 끝이 없어 예법을 남김없이 갖추었다. 깊은 슬픔에 젖은 수척한 얼굴을 우러르니 몸을 얽고 있는 마질(麻絰)이 참담하기만 하다. 구천(九天)을 향하여 목놓아 외쳐도 들리지 않으니 하루에 세 번 문안드릴 날이 이제 없는데 어찌할거나. 아, 슬프다.
세월이 어쩌면 이다지 빠른가, 바뀌기 쉬운 것이 계절이구나. 동그란 이슬 방울이 섬돌에 떨어지고 을씨년스런 바람이 장막을 걷는구나. 궁궐의 오동 나무가 시드니 옥우(玉宇)가 춥고, 선루(仙漏)가 재촉하니 금곤(金壼)이 오열한다. 아득히 구름을 타고 하늘 나라로 떠나가니 돌풍이 순식간에 휘몰아 가는 것이 창연(悵然)하구나. 아, 슬프다.
숲이 우거진 저 새로운 산등성이가 봄처럼 춤추고 용처럼 나는데, 성조(聖祖)에 의지하여 있음을 우러러 보니 제릉(諸陵)과 매우 가까웠다. 이는 실로 하늘이 만들어 보관해 두었던 길지(吉地)이다. 산은 밝고 물은 맑아 그 기이함은 이미 우면(牛眠)079) 임을 드러냈고 길한 징조는 귀서(龜筮)에 들어맞았으니, 이야말로 성인(聖人)의 참 유택(幽宅)인 것이며 진실로 한 번 얻어 길이 평안할 수 있는 자리이다. 천년을 지키고 있을 상물(象物)을 설치하여 놓았으니, 영원토록 온갖 신령들을 질타하면서 보호하리라. 아, 슬프다. 혼진(魂眞)이 떠돌면서 돌아오지 않으니 지극한 은택만 헛되이 남아 있다. 응당 옥란(玉欄)에 의지하여 꽃을 완상하련만 주구(珠丘)080) 의 구름은 수심에 잠겨 있구나.
성대한 덕과 위대한 공이 바다처럼 깊고 산처럼 높기 때문에 감히 하늘과 해에 견주어 묘사하여 애오라지 영원한 후세에 보이는 바이다. 【가선 대부 이조 참판 겸 수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지성균관사 동지경연춘추관사 신 이일상(李一相)이 지어 올렸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1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203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70]소악(素幄) : 빈전(殯殿).
- [註 071]
봉조(鳳旐) : 임금의 명정.- [註 072]
용순(龍輴) : 임금의 상여.- [註 073]
천거(天居) : 임금이 거처하는 곳.- [註 074]
조도(祖途) : 길을 떠나기 전에 길 귀신에게 여행이 평안하게 해 달라고 올리는 제사(祭事)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상여(喪輿)가 떠나면서 지내는 제사를 말함.- [註 075]
주저(朱邸) : 제후 왕의 저택.- [註 076]
등(滕)나라 세자 : 등 정공(滕定公)의 아들 문공(文公)이 세자로 있을 때 정공이 죽었는데, 문공이 상례(喪禮)를 극진히 하였으므로 보는 사람들이 감동했다고 함.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상(上).- [註 077]
죄인을 보고 눈물을 흘린 것 : 옛날 우(禹)임금이 출타했다가 잡혀가는 죄인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 [註 078]
○哀冊文:
維歲次己亥五月初四日甲子, 孝宗 宣文章武神聖顯仁大王, 薨于昌德宮之正寢, 是年冬十月二十八日乙卯, 遷座于陵所, 二十九日丙辰, 永遷于寧陵禮也。 玄堂旣治, 素幄將撤, 鳳旐揚蕤, 龍輴戒轄。 違天居之肅穆, 就祖途之逶迤。 千官奉紼而爭趨, 八神警衛而載馳。 天地爲之慘憺, 風雲助其悽切。 惟我主上殿下, 叩叫摧心, 攀擗泣血。 結長悲於厚夜, 痛永訣於終天。 肆降旨於重宸, 俾記蹟於新編, 詞曰; 於! 昭上穹, 眷玆東土, 篤生我后, 受命仁祖。 越在朱邸, 玄德夙彰, 白氣神龜, 前後呈祥。 聖姿和粹, 英猷宏大, 仁聲仁聞, 協于中外。 逮至西轅, 亨以處困, 殷憂增益。 九年乃返, 謳歌攸屬, 遂正儲位。 精一相傳, 引參弗貳, 文齡遽減, 武烈丕承, 治仍法堯, 禮則過滕。 勵精圖理, 克勤無怠, 顧諟明命, 夙夜寅畏。 曰雨曰暘, 禱輒有應。 軫恤黎元, 以濟以拯, 德洽好生, 誠切泣辜。 念囚平讞, 獄無枉誣。 恩推及老, 政在惠鮮。 常徭旣輕, 正供亦蠲。 躬率以儉, 務祛華侈。 化始宮闈, 衣不曳地。 剛制酒醴, 同禹惡旨。 屛去聲色, 齊湯不邇。 太廟烝嘗, 祗肅齋潔。 寢園春秋, 親行展謁。 東朝視膳, 志養無違。 侍藥之日, 天鑑虎祁。 萬壽開筵, 和氣爲春。 情深友于, 益篤天倫。 大衾長枕, 至樂斯在。 欲貴欲富, 邁舜親愛。 夢感鴒原, 哀動絲綸。 視孤猶子, 先敎是遵。 出天之行, 卓冠古辟。 雅尙儒術, 日御筵席。 討論經傳, 闡發淵微。 本之一心, 措諸萬幾。 光明緝熙, 道積于躬。 典學之念, 無間始終。 陰雨綢繆, 留心克詰。 策將勵士, 殿前親閱, 恩撫備至, 敎訓有方。 出入坐臥, 志豈嘗忘。 禮遇臣隣, 見善必褒。 豁達開禁, 顚倒英豪。 推誠納諫, 四門洞闢。 芻蕘亦採, 言罔攸伏。 風勸一世, 澤及旣骨。 忠無不旌, 有冤則雪。 側席求賢, 實自初政。 登崇俊良, 束帛交聘。 都兪一堂, 治具畢張。 從周行夏, 薄漢陋唐。 十載端臨, 惟日孜孜。 鴻圖遠略, 將大有爲。 何皇天之不弔, 遽中途而上陟。 豈此痛之可窮, 與穹壤而靡極。 嗚呼! 哀哉。 昔疾纔瘳, 慶溢宗祊。 大德必壽, 方祝無彊。 佇羽旄之欣瞻, 奄宮車之晏駕。 民如喪乎考妣, 紛雨泣於四野。 嗚呼! 哀哉。 寶扆兮已空, 天香兮未歇。 劍舃猶陳, 帳殿虛設。 恍玉音之若聆, 瞹威顔於咫尺。 嗟列侍之盈庭, 異朝儀於平昔。 嗚呼! 哀哉。 一人宅憂, 五月居廬。 孝思不匱, 禮備無餘。 仰深墨之戚容, 慘纍然之麻絰。 籲九天而莫聞, 奈三朝之無日。 嗚呼! 哀哉。 日月幾何, 寒暑易換。 團露兮下砌, 凄風兮卷幔。 宮梧凋兮玉宇寒, 仙漏催兮金壼咽。 杳乘雲兮行天, 悵飇馭之倐忽。 嗚呼! 哀哉。 鬱彼新岡, 鳳舞龍騰。 瞻依聖祖, 密邇諸陵。 實天作而地藏, 緊山明而水麗。 異旣著於牛眠, 吉且叶於龜筮。 寔聖人之眞宅, 信得一而以寧。 儼象設於千齡, 長護呵兮百靈。 嗚呼哀哉。 眞遊不返, 至澤空留。 花應賞於玉欄, 雲自愁於珠丘。 惟盛德與偉烈, 竝海岳而高深。 敢摹天而畫日, 聊永眎於來今。 嗚呼哀哉。 【嘉善大夫吏曹參判兼守弘文館大提學藝文節大提學知成均館事同知經筵春秋館事臣李一相製進。】
- 【태백산사고본】 22책 1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203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