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 판서 송시열이 왕이 하사한 초모를 사양하는 차자를 올리다
이조 판서 송시열이 차자를 올리기를,
"신이 지난밤에 삼가 성은을 입어 특별히 초모(貂帽) 하나를 받았습니다. 신이 영광에 감격하였으나 자신을 돌이켜 봄에 매우 낭패스러웠습니다. 다만 신에게 망령되이 소회가 있어 감히 아룁니다. 옛날 당우(唐虞) 때로부터 이미 의상(衣裳)과 곤변(袞弁)의 제도가 있었고, 공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논하면서 ‘주(周)나라의 면류관을 쓴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면 제왕의 정치에 일찍이 차등있는 위의와 형식을 중히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위 문후(衛文侯)가 난을 만나 나라가 망하게 되자 거친 옷감으로 의관을 만들어 착용하였으니 그 신하들의 복식이 어떠하였는지는 이를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위의의 차등과 형식을 따질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 성실하고 뜻이 깊은 효과로 인해 끝내 좋은 말을 삼천 필이나 보유하게 되어 적국이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이후에 한당(漢唐)에 이르기까지 창업하거나 중흥한 임금들이 누구나 검소한 덕을 우선으로 하였으니, 역사의 기록에서 나타난 것들로 역력히 상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전후 나아와 응대할 때마다 이러한 말로 간절히 아뢰었던 것입니다. 담비 가죽이나 비단을 무역하는 데 이르러서는 신이 특별히 귀에 거슬린 바른 말을 드렸는데, 이는 대체로 신의 생각에 군신과 상하가 속히 사치 풍습을 없애야만 백성의 힘이 펴지고 하늘의 노여움을 그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서였습니다. 지금 신이 이렇게 진귀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받아 몸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가까이하면, 이는 신이 임금을 섬기고 스스로 처신하는 데 있어서 사치와 검소가 다르고, 들어가 상에게 고하고 나와 내 몸을 살피는 데 있어서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은 것입니다. 신이 보잘것은 없으나 마음에 실로 부끄럽습니다.
신은 들으니 중흥한 임금은 반드시 공과 상을 사실대로 주고 현명한 군주는 한번 찌푸리고 한번 웃는 것도 아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이 조정에 들어온 지 이미 석 달이 지났으나 서연에 겨우 서너 번 출입하였고, 특별히 전하를 가까이 모시었으나 하찮은 말은 쓸데가 없었고, 녹봉만 허비하고 있으므로 마음에 항상 부끄럽고 두렵게 여겼습니다. 때문에 겨울의 녹봉을 받지 않았는데, 더구나 이런 특별한 은혜를 받았으니 어찌 마음에 편하게 여기겠습니까.
그리고 신은 백성들이 궁하고 재물이 다 떨어진 상황을 목격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불길처럼 치솟아 침식을 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하의 두터운 은혜를 차마 신만 입을 수 없으니 바라건대 성명께서는 어리석은 정성을 살피시고 속히 하사하시는 명을 거두시어 하찮은 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차자의 말이 매우 훌륭하다. 내 비록 불민하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겠는가. 지금 이 초모(貂帽)는 국내에서 나는 보통 물건에 불과하다. 진귀하다 할 것이 있겠는가. 경은 안심하고 사양치 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54면
- 【분류】왕실-사급(賜給)
○吏曹判書宋時烈上箚曰:
臣於去夜, 伏蒙聖恩, 特賜貂帽一件。 臣感戴榮光, 撫躬隕越。 茀臣妄有所懷, 敢以布聞。 昔自唐、虞, 已有衣裳袞弁之制, 孔子論爲邦曰: "服周之冕。" 然則帝王之治, 何嘗不以等威文章爲重哉? 然而衛文侯罹亂傾覆, 則大帛大布以爲衣冠, 其臣服飾, 從可知也。 其時寧有所謂等威文章哉? 是以其塞淵之效, 遂致騋()〔牝〕 三千, 敵人畏憚。 下至漢、唐創業之君, 中興之主, 莫不以儉德爲先, 其見於史冊之中者, 班班可考也。 故臣前後進對, 每以此說, 懇懇陳達, 至於貂錦之貿, 則臣特進苦口之言, 蓋臣妄意以爲: 君臣上下, 當亟除奢習, 然後民力可紓, 天怒可弭也。 今臣受此珍美之物, 以近不稱之身, 則是臣事君處己, 奢儉不同, 入告出省, 言行二致。 臣雖無狀, 心實愧恧。 臣聞興王必核功賞, 明主尙愛嚬笑。 臣冒入朝端, 已閱三朔, 而出入冑筵, 僅止三四, 特近淸光, 莠言無用, 徒費公廩, 心常慙懼。 故冬科常祿, 亦不敢受, 況此特恩, 何以敢安。 且臣目覩民窮財盡之狀, 憂心如燬, 忘寢與食, 誠不忍獨添膏澤。 伏乞聖明, 察此愚誠, 亟加反汗, 以安微衷。
答曰: "箚辭甚善。 予雖不敏, 可不體念焉。 今此貂帽, 不過國中所産之庸品, 何珍之有? 卿其安心勿辭。"
-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54면
- 【분류】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