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돈녕부사 김육이 차자를 올려 대동법 시행을 건의하다
영돈녕부사 김육(金堉)이 차자를 올리기를,
"올해는 반은 장마가 지고 반은 가뭄이 들어서 풍흉을 예측할 수 없으나, 밀이나 보리가 이삭만 팬 채 여물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본다면 수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뭄 끝에 비를 만나 많이 상한 곡식이 조금 되살아났으나 마치 병이 든 사람이 약 기운으로 부지하여 겨우 죽음이나 면할 뿐 끝내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호서(湖西)와 양서(兩西)에 이미 흉년이 들어 걱정하고 있는데 다른 도라고 어떻게 잘 익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구제할 방안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먼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전에 호남 사람들이 대동법을 시행하자고 전후 연달아 청하였으나 조정이 허락하지 않고 정원에서도 그 상소를 올려보내지 않았는데 신은 참으로 이해가 안 갑니다. 신이 끝까지 이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반드시 비웃을 것입니다만 신이 이 일에 급급해 하는 것은, 대체로 호남은 나라의 근본인데 재해를 매우 많이 입었으므로 민심이 쉽게 떠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가을 안에 이를 시행해야만 혜택을 조금이라도 베풀 수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누차 말씀드린 것입니다.
아, 백성들이 소망하는 바는 하늘도 반드시 따라주는데 임금이 하늘의 뜻을 본받는 도리에 있어서 어떻게 백성의 뜻에 순응하는 일을 먼저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백성들의 마음에 모두가 했으면 하는데 수령들이 안하고자 하기 때문에 시행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호남의 백성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수령은 불과 50여 명밖에 안되는데 어떻게 50여 명이 안하고자 한다고 하여 수많은 백성이 크게 바라고 있는 바를 시행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현재 본도에서 1결(結)에 대한 세금으로 거두는 쌀이 거의 60여 말에 이른다 합니다. 열 말을 거두어들인다면 백성들에게서 적게 거두는 것으로서 다섯 배나 감소됩니다만 그래도 국가의 쓰임에는 부족된 바가 없는데 무엇을 꺼려 이를 시행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지난번 호서의 수령들도 모두 이를 시행하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시행한 지 두어해 동안에 시골 백성들이 전리에서 고무하고 개들은 관리를 보고 짖지 않았으므로 인접해 있는 도에게 큰 부러움을 샀습니다. 이것은 이미 시행해 본 분명한 효과로서 서울이나 지방 모두가 편리하고 위아래가 서로 편안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10말을 제외하고는 모두 백성들 자신이 먹는 식량입니다. 구휼하는 방안이 이보다 좋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창고의 곡식을 풀고 있는 대로 털어내지 않고도 나라 안에 죽거나 야윈 백성이 없을 것입니다.
신이 전일 시행하자고 청할 때에 양호(兩湖)를 모두 셈해 결복(結卜)과 미포(米布)의 숫자들을 문서에 올려 본청에 간직해 두었으므로 관료들이 모두 이 대동법에 대해 익숙해져 있으니 단지 약간의 조목들만 미루어 변통해 계품하여 내린다면 시일을 별로 허비하지 않고도 일이 잘 시행될 것입니다. 이 일은 신이 평소에 해오던 말입니다. 지난해에도 말했었고 오늘날에도 또 이를 말하고 있으니 삼월(三刖)의 죄042) 를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다시금 은혜를 갚거나 정성을 바칠 길이 없으므로 비록 위로는 임금께 죄를 짓고 아래로는 조정에 조소를 산다 할지라도 신으로서는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신은 우러러 살펴보고 굽어 살펴보면서 밤낮으로 근심하고 있습니다. 땅이 갈라지고 산이 무너진 것은 이미 망측한 변고이며 태백(太白)이 대낮에 나타나 1년 내내 사라지지 않다가 동정성(東井星)을 침범해 들어가고 유성(流星)은 휙휙 날아 밤마다 사람 마음을 놀라게 하며 천균성(天囷星)과 천창성(天倉星)에서 나오고 있으니 이는 크게 걱정할 일입니다. 누가 신이 기(杞)를 근심하고 전유(顓臾) 근심하지 않는다는 것043) 을 알겠습니까. 신은 간절한 마음을 금하지 못해 목숨을 다 바칠 따름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묘당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조처하게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5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04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재정-공물(貢物)
- [註 042]삼월(三刖)의 죄 : 다리를 세 번 잘릴 죄란 말이다.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옥덩이 하나를 얻어 여왕(勵王)과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거짓말을 하였다고 하여 두 다리를 잘렸다.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가 또 옥덩이를 안고 형산의 밑에서 통곡하니 왕이 사람을 시켜 그 옥덩이를 쪼개 보라고 하였는데 과연 아름다운 옥이었다. 여기서는 이를 인용하여 지금 자신의 말이 쓰여지지 않고 있으나 화씨의 옥덩이의 일처럼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뜻이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 [註 043]
기(杞)를 근심하고 전유(顓臾) 근심하지 않는다는 것 : 기는 기우(杞憂)로서 쓸데없이 근심한다는 말이고, 전유는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속국이다. 전유를 노나라의 집정 대신인 계씨(季氏)가 정벌하려 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계씨의 걱정이 전유에 있지 않고 집 안에 있을까 염려된다." 하였는데, 이 말은 《논어》 계씨편(季氏篇)에 실려 있다. 곧 나라에서 대동법 시행에 주저하며 걱정만 앞세우는 것이 쓸데없이 근심하는 것과 같으므로 정작 근심스러운 일이고, 전유에는 걱정이 없는 것처럼 대동법 시행에는 걱정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 [註 043]
○領敦寧府事金堉上箚曰:
今年水旱相半, 豊歉未定, 而以牟麥之秀而不實, 觀之, 則秋成之事, 亦可知矣。 旱餘得雨, 多傷小蘇之穀, 如病者賴藥扶持, 堇免於死, 而終不得爲全人。 湖西兩西, 已有失稔之憂, 他道又何望其成熟哉? 賑救之策, 所宜熟計, 而先思也。 向來湖南之人, 請行大同者, 前後相續, 而朝廷不許, 至於政院, 又壅其疏, 臣實未曉也。 臣終始爲此言, 人必笑之, 臣之汲汲於此者, 蓋以湖南, 國之根本, 而災害甚多, 民心易離, 行之必及於秋前, 可施一分之惠, 故冒死而屢陳。 嗚呼! 民之所欲, 天必從之, 人君體天之道, 豈可不先於順民之志乎? 或曰民情皆欲, 而守令不欲, 故不可行。 湖民未知幾百萬, 而守令不過五十餘人, 何可以五十餘人之所不欲, 不行百萬人之所大欲乎? 當今本道一結之價米, 幾至六十餘斗云, 以十斗收之, 則寡取於民, 所減五倍矣, 而公家之用, 無所不足, 何憚而不爲此乎? 前者湖西守令, 亦皆不欲, 而行之數年, 村巷之民, 鼓舞於田里, 厖不吠吏, 大爲隣道之所羡, 此已然之明效也。 京外皆便, 上下相安, 十斗之外, 皆民自食之米, 賑救之策, 孰有善於此者哉? 不待發倉傾囷, 而國無捐瘠矣。 臣於前日請行之時, 竝兩湖而量之, 結卜米布之數, 籍記而藏之本廳, 僚員皆慣習於此。 只推移變通若干條, 啓稟而下, 不費了時日, 事便行矣。 此事臣之所雅言也, 上年又言之, 今日又言之, 難免三刖之罪, 而死亡無日, 更無報效之路。 雖上以得罪於君父, 下以取笑於朝廷, 臣不暇恤也。 臣仰觀俯察, 晝愁夜戚, 地裂山崩, 已爲罔測之變, 太白經天, 終歲不滅, 而橫犯於井東, 流星飛走, 夜夜驚心, 而輒出於囷倉。 此可憂之大者, 孰知臣之憂杞, 而不憂顓臾哉? 臣不勝惓惓, 盡死節而已。"
答曰: "當令廟堂議處焉。"
-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5장 A면【국편영인본】 36책 104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재정-공물(貢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