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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실록3권, 효종 1년 3월 4일 정사 5번째기사 1650년 청 순치(順治) 7년

청사신과 접견한 이경석을 불러 그들의 기색을 보고받고 대책을 의논하다

영의정 이경석(李景奭)이 서로(西路)에서 먼저 돌아왔다. 상이 인하여 대신을 소견(召見)하고, 경석에게 이르기를,

"그들의 기색이 어떠하던가?"

하니, 경석이 대답하기를,

"처음 만났으나 상당히 기뻐하는 기색이었습니다. 그러나 옛사람이 ‘웃는 자는 헤아릴 수가 없다.’고 하였는데, 참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10인으로 하여금 칙서를 지키도록 하면서 ‘만일 누설하는 자가 있으면 사죄(死罪)로 논하겠다.’고 하기 때문에, 정명수가 아는 것이 있어도 역시 감히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힐문할 적에 모두 사실대로 대답한다면 저들이 혹 관대히 용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우물쭈물 사실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국가에 일이 생기고 자신에게도 화가 미칠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옳다."

하였다. 경석이 아뢰기를,

"저들이 표문(表文)을 지은 사람과 대각에서 의논을 주장한 신하를 물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것이 바로 실제 문제이다. 표문은 지은 사람이 있지만, 논의를 주장한 사람은 만일 모른다고 대답할 경우 저들이 필시 더욱 화를 낼 것이다. 반드시 헤아려서 말을 잘 하여야 한다."

하였다. 우의정 조익이 아뢰기를,

"양사의 많은 관원의 성명은 모두 말해 줄 수 있지만, 논의를 주장한 사람을 물을 경우 ‘이는 온 나라의 공공(公共)한 논의이므로 본래 주장한 사람이 없다.’는 것으로 대답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영중추부사 이경여에게 하문하기를,

"경의 뜻은 어떠한가?"

하자, 경여가 대답하기를,

"신의 생각도 그러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사은표(謝恩表) 내용 중에 ‘절혜(節惠)’ 2자와 ‘귀모(歸賵)’ 2자가 힐책하는 단서가 되었다. ‘절혜’ 2자는 출처가 어느 책인가?"

하니, 경석이 아뢰기를,

"《예기(禮記)》의 말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2본(本)의 칙서 중에 하나는 바로 섭정왕(攝政王)의 글이라 하는데, 만일 과연 구혼(求婚)하는 말이 있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하니, 경석이 아뢰기를,

"적합한 자가 없다는 것으로 말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저들이 모르고서 묻는다면 의당 그렇게 대답해야 하겠지만 혹 저들에게 몰래 말해 준 간사한 자가 있을 경우 매우 염려스럽다. 그리고 저들이 ‘만일 친 공주가 없으면 그보다 조금 낮은 자도 괜찮다.’고 하면 이도 난처하지 않겠는가?"

하니, 경여가 아뢰기를,

"조금 낮은 자는 더욱 허락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소현(昭顯)의 딸을 말한 것이다.】 상이 이르기를,

"저들이 5인의 이름을 낱낱이 거론하면서 ‘앞으로 이 5인에게 국사를 위임할 것이다. 그리고 이후로 척화(斥和)의 논의가 있더라도 이 5인이 책임지도록 할 것이다.’고 하였다 한다. 이 말이 파다하던데 경들은 들었는가?"

하니, 경석이 아뢰기를,

"전조(前朝)에는 과연 간인(奸人)이 난을 조작하고 화를 전가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그런 일이 있을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른바 5인이란 바로 김자점·원두표·구인후·이시백·구인기라고 한다."

하고, 또 이르기를,

"세 노신(老臣)의 일은 결국 어떻게 되겠는가?"

하니, 경석이 아뢰기를,

"조경(趙絅)은 필시 힐문하는 일이 있을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예조 판서 때의 일 때문에 그러한가?"

하니, 경석이 아뢰기를,

"저들이 사은표와 주문 등의 일을 가지고 항상 그런 말을 한다 합니다."

하였다. 이때에 뜬소문이 파다하였는데, 모두가 김자점 부자가 우리 나라의 일을 청나라에 누설한 것으로 의심하였다. 상도 의심하여 그의 자식 김연(金鍊)김식(金鉽) 등을 외직(外職)으로 내보내 그들과 내통하는 길을 단절시키고자 하였다. 경여가 아뢰기를,

"자점이 어찌 죄가 없겠습니까마는 요즘 의심하는 것은 증거가 없으니 처리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보전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하였다. 대신이 물러가려 하자 상이 만류하면서 귤[黃柑] 한 쟁반을 하사하도록 명하고, 또 한 쟁반은 승지와 사관에게 하사하도록 하였다. 인하여 대신에게 이르기를,

"오늘의 일을 자제들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416면
  • 【분류】
    외교-야(野)

    ○領議政李景奭自西路先還。 上仍召見大臣, 謂景奭曰: "彼之氣色何如?" 景奭對曰: "始與相見, 頗有欣然之色, 而古人云: ‘笑者不可測。’ 誠不可知也。 且彼令十人, 看護勑書, 如有泄漏者, 當論死云, 故命守雖有所知, 亦不敢言矣。 詰問之際, 皆擧實以對, 則彼或有寬恕之理, 若囁嚅而不以實對, 則必生事於國, 禍及其身矣。" 上曰: "卿言是矣。" 景奭曰: "彼若問表文撰述之人及臺閣發論之臣, 則將奈何?" 上曰: "此乃實事也。 表文則旣有撰之者, 而至於發論之人, 若以不知答之, 則彼必益怒。 必須商量而善爲說辭也。" 右議政趙翼曰: "兩司多官姓名, 則皆可言之, 至於問及主論之人, 則答以 ‘此擧國公共之論, 本無主張之人。’ 爲宜矣。" 上問於領中樞府事李敬輿曰: "卿意何如?" 敬輿對曰: "臣意亦然。" 上曰: "謝恩表辭中, 以節惠二字及歸贈二字, 爲詰責之端。 節惠二字, 出於何書?" 景奭曰: "《禮記》之言也。" 上曰: "勑書二本中, 其一乃攝政王之書云, 若果有求婚之言, 則將奈何?" 景奭曰: "以無可合者言之爲當。" 上曰: "彼若不知而問之, 則當以此答之, 或有奸人潛言於彼者, 則深可慮也。 且彼如曰: ‘若果無親公主, 則雖稍下於此者亦可。’ 云爾則是不亦難處乎?" 敬輿曰: "稍下者, 尤不可許也。" 【謂昭顯女子也。】 上曰: "彼歷數五人之名曰: ‘將以此五人, 委任國事。 此後雖有斥和之事, 五人當之。’ 云。 此言盛行, 卿等聞之乎?" 景奭曰: "前朝果有奸人搆亂嫁禍之時, 而豈料當今復有此事乎?" 上曰: "所謂五人, 乃金自點元斗杓具仁垕李時白具仁墍云矣。" 上又曰: "三老臣之事, 終當何如也?" 景奭曰: "趙絅則似必有詰問之擧矣。" 上曰: "以禮判時事而然乎?" 景奭曰: "彼以謝表及奏文等事, 常有所云云矣。" 是時, 訛言競起, 皆疑金自點父子, 以我國事, 洩漏於淸人, 而上亦疑之, 欲出其子等於外, 以絶其交通之路。 敬輿曰: "自點烏得無罪, 而至於近日所疑, 則事無其迹, 難以處之。" 上曰: "非致疑也, 乃欲以全之也。" 大臣將退, 上留之, 命賜黃柑一盤, 又以一盤賜承旨、史官, 仍謂大臣曰: "今日之言, 雖子弟, 亦不必言及也。"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416면
    • 【분류】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