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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실록 2권, 효종 즉위년 12월 13일 정유 2번째기사 1649년 청 순치(順治) 6년

대신과 대동법의 실시 등 민폐의 해결 방법을 의논하다

상이 대신 및 비국의 여러 신하를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동법(大同法)은 이미 상정(詳定)하였는데, 여러 의논은 어떻게 여기는가?"

하니, 영의정 이경석(李景奭)이 아뢰기를,

"행하여 폐단이 없으면 더할 수 없이 좋으나 이해는 먼곳에서 헤아리기가 어려워, 절목에 혹 막히어 시행하기 어려운 것이 있는가 싶습니다. 신이 선왕 초년에 매양 사관(史官)으로 입시해 들었는데, 그때 여러 노대신들이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도 끝내 시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신은 무슨 까닭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신의 뜻으로는 먼저 홍청도(洪淸道)부터 시행하여 그 이해를 안 연후에 다른 도에 시행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하고, 우의정 김육은 아뢰기를,

"시행하는 여부는 성상의 결단에 달려 있을 뿐이니, 더 의논할 일이 없습니다."

하니, 경석이 이르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고 상신 이원익이 편리 여부를 민간에 물어서 차자를 올려 파하기를 청한 것입니다."

하고, 좌의정 조익은 아뢰기를,

"당시 여러 의논이 시끄럽게 들끓어서 심지어 왕안석(王安石)에게 비교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이원익이 부득이 파한 것이지 본래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하였다. 경석이 아뢰기를,

"전라 감사(全羅監司) 임전(林)을 묘당(廟堂)에서 속히 출발시켜 보내기를 청했는데, 처상(妻喪) 때문에 오래도록 사조(辭朝)하지 못하였습니다. 정상은 비록 절박하더라도 그 일은 잘못되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일이 매우 놀라우니 잡아다가 추문하라."

하였다. 병조 참판 이만(李曼)이 아뢰기를,

"지난 혼조 때 간사한 사람이 경상도 양전 어사(慶尙道量田御史)가 되어 억지로 전부(田簿)를 보태 허결(虛結)을 실지로 징수한 것이 3만여 결이 되었는데 아직껏 혁파하지 않아 백성들이 명(命)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국가에서 만약 경비를 걱정해서라면 명백하게 백성들에게서 부세를 늘려야지 어찌 혼조 때의 허결로써 중하게 민폐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수천 석의 곡식을 잃을지언정 한 도(道)의 인심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신이 영남(嶺南)을 맡은 적이 있어서 이런 폐단을 잘 알기 때문에 감히 진달하는 바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 역시 모르는 바는 아니나 경비가 부족하여 단행하지 못한 것이다. 경의 말 가운데 ‘차라리 수천 석의 곡식을 잃을지언정 한 도의 인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은 참으로 좋으니, 모두 제거하라."

하였다. 경석이 아뢰기를,

"좌상이 군정(軍政)에 대해 차자를 올려 논하기를 ‘무휼(憮恤)하여 인심을 얻은 연후에야 난리를 만나 쓸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도망간 자와 죽은 자의 부담이 이웃과 친족에게 미치는 것은 마땅히 60∼70년을 한정하여 모두 군안(軍案)에서 빼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407면
  • 【분류】
    재정(財政)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농업-양전(量田) / 군사-군역(軍役)

○上引見大臣及備局諸臣。 上曰: "大同之法, 今已詳定, 群意以爲如何?" 領議政李景奭曰: "行之而無弊, 則善莫甚焉, 而利害有難遙度, 節目間, 或未免有窒礙難行者矣。 臣自先王初年, 每以史官入侍而聞之, 其時諸老大臣, 豈不深思, 而終莫之行者, 臣未知其何故, 而臣意以爲, 先行於洪淸道, 知其利害然後, 可行於他道也。" 右議政金堉曰: "行之與否, 猶在聖斷, 更無可議之事也。" 景奭曰: "不然。 故相臣李元翼, 以便否問於民間, 而陳箚請罷矣。" 左議政趙翼曰: "當時群議喧沸, 至以王安石比之, 故元翼不得已而罷之, 非本情也。" 景奭曰: "全羅監司 , 廟堂請速發遣, 而以妻喪久未辭朝。 情雖切迫, 而其事則非也。" 上曰: "事極可駭, 拿推。" 兵曹參判李曼曰: "往在昏朝, 有憸人爲慶尙左道量田御史, 勒加田簿, 虛結實徵三萬有餘, 而尙未革罷, 民不堪命。 國家若恤經費, 宜明白增賦於民, 何可以昏朝時虛結, 重貽民弊? 寧失數千石之穀, 不可失一道之人心也。 臣曾受任嶺南, 備知此弊, 故敢達矣。" 上曰: "予亦非不知之, 而以經費之不足, 未能斷而行之。 卿言 ‘寧失數千石之穀, 而不可失一道之人心。’ 云者甚善, 其盡除之。" 景奭曰: "左相箚論軍政以爲, 撫恤得其心, 然後臨亂可用。 逃亡、物故之弊及隣族者, 宜限以六七十年, 竝除其軍案。"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407면
  • 【분류】
    재정(財政)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농업-양전(量田) / 군사-군역(軍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