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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실록 2권, 효종 즉위년 11월 5일 경신 4번째기사 1649년 청 순치(順治) 6년

우의정 김육이 호서·남 지방의 대동법 시행을 건의하여 대신과 의논하다

우의정 김육(金堉)이 상차하기를,

"왕자(王者)의 정사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보다 우선할 일이 없으니 백성이 편안한 연후에야 나라가 안정될 수 있습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천변(天變)이 오는 것은 백성들의 원망이 부른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부역(賦役)에 시달려 즐거이 살면서 일할 마음이 없으니, 원망하는 기운이 쌓이고 맺혀 그 형상이 하늘에 보이는 것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인군이 재변을 만나면 두려워하며 몸을 기울여 수성(修省)하는 것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고 오직 백성을 보호하는 정사를 행하여 그들의 삶을 편안케 해주는 것뿐입니다.

대동법(大同法)은 역(役)을 고르게 하여 백성을 편안케 하기 위한 것이니 실로 시대를 구할 수 있는 좋은 계책입니다. 비록 여러 도(道)에 두루 행하지는 못하더라도 기전(畿甸)과 관동(關東)에 이미 시행하여 힘을 얻었으니 만약 또 양호(兩湖) 지방에서 시행하면 백성을 편안케 하고 나라에 도움이 되는 방도로 이것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졸곡(卒哭) 후에 바로 의논했어야 했는데 객사(客使)가 마침 이르러 와서 아직까지 미루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객사가 이미 갔는데도 묘당(廟堂)의 논의가 조용해 들리지 않으니, 신은 못내 괴이하게 여깁니다. 만약 신이 나오기를 기다려 회의하려고 했다면 신은 불행하게도 병으로 누워 있으니 역시 일을 그르친 죽을 죄입니다. 신이 이 일에 급급한 것은 이 일은 즉위하신 초기에 시행하여야지 흉년이 들면 또 시행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세운(歲運)이 조금 풍년이 들었으니 이는 하늘이 편리함을 빌려준 것입니다. 명년의 역사를 겨울 전에 의논해 정하여야 시행할 수 있습니다. 신이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신으로 하여금 나와서 회의하게 하더라도 말할 바는 이에 불과하니, 말이 혹 쓰이게 되면 백성들의 다행이요, 만일 채택할 것이 없다면 다만 한 노망한 사람이 일을 잘못 헤아린 것이니, 그런 재상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천하의 일은 서로 모순(矛盾)되기를 좋아하니, 자산(子産)이 이른바 ‘어찌 감히 당신의 얼굴이 내 얼굴과 같다고 하겠습니까185) .’ 한 것은, 신이 매우 깊이 개탄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 성사시키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하였으니, 신이 믿는 바는 오직 전하뿐입니다. 감히 별폭(別幅)에 써서 올립니다."

하였는데, 그 별폭에 이르기를,

"민간의 백가지 역(役)이 모두 전결(田結)에서 나오니, 이는 바로 옛날의 경계법(經界法)입니다. 나라에 일이 많다 보니 민역(民役)이 날로 무거워져서 1년에 응당 행하여야 할 역으로 매결당 소용되는 비용이 거의 목면(木綿) 10여 필이나 되고 적어도 7, 8필은 밑돌지 않는데 뜻밖에 마구 나오는 역은 여기에 들어 있지 않으니, 백성들이 어찌 곤궁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만약 대동법을 시행하면 매 1결마다 【10속(束)이 1부(負)가 되고, 1백 부가 1결(結)이다. 전(田)에서 수확하는 다소에 따라 속이라 하고, 부라 하고, 결이라 한다.】 봄에 목면 1필, 쌀 2두(斗)를 내고, 가을에 쌀 3두를 내면 모두 10두가 되는데, 전세(田稅) 이외의 진상물(進上物)과 본도의 잡역(雜役), 본읍에 납부해야 할 것이 모두 그 가운데 있어 한번 납부한 후에는 1년내내 편안히 지내도 됩니다. 경기에서 선혜청(宣惠廳)에 봄 가을에 8두씩 1년 16두를 바치는 것에 비하면 역시 매우 너그럽습니다. 양호(兩湖) 지방의 전결이 모두 27만 결로 목면이 5천 4백 동(同)이고 쌀이 8만 5천 석이니, 수단이 좋은 사람에게 부쳐 규획하여 조치하게 하면 미포(米布)의 수가 남아서 반드시 공적인 저장과 사사로운 저축이 많아져 상하가 모두 충족하여 뜻밖의 역(役) 역시 응할 수가 있습니다. 다만 탐욕스럽고 교활한 아전이 그 색목(色目)이 간단함을 혐의하고 모리배(牟利輩)들이 방납(防納)하기 어려움을 원망하여 반드시 헛소문을 퍼뜨려 교란시킬 것이니, 신은 이점이 염려됩니다."

하였다. 상이 소를 보고는 비국으로 하여금 의논하게 하니, 비국이 아뢰기를,

"이 일을 시행할 경우에는 반드시 미리 시험해 보아야 할 것이니, 호서(湖西) 지방 한 도(道)에 먼저 시험해 보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제도를 고치는 일은 그 이익이 10배가 되지 않으면 옛사람들이 경계하였으니, 처음하는 즈음에 충분히 살펴 처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번 이경엄(李景嚴)이 대선혜(大宣惠)를 설치하자고 청한 소로 인해 영돈녕부사 김상헌이 헌의하여 말하기를 ‘만약 막히어 행하기 어려운 폐단이 있게 되면 반드시 좋아하지 않은 자의 비난이 있게 될 것이니, 양암(諒闇)186) 이 지나기를 기다린 후에 면대해 품정(稟定)하겠다.’ 하였으니, 그것 역시 이런 뜻이었습니다. 이번에 우의정 김육이 진달한 바 양호 지방에 대동법을 실시하는 것은 실로 크게 변통하는 데 관계되므로 신들이 감히 경솔하게 결정할 수 없어 김상헌에게 물었더니, 의견이 전과 같았습니다. 청컨대 김육이 출사하기를 기다려 탑전(榻前)에서 품의하게 하소서."

하니, 따랐다. 김육이 출사하니, 상이 대신 및 비국의 여러 신하들을 인견하고, 대동법의 이해 관계를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우의정 김육이 아뢰기를,

"이는 선혜(宣惠)의 법과 차이가 없습니다. 선혜법은 고상(故相) 이원익(李元翼)이 건의한 것인데 먼저 경기·강원도 두 도에서 실시하고 호서에는 미처 시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마땅히 먼저 이 도에서 시험해야 하는데, 삼남(三南)에는 부호(富戶)가 많습니다. 이 법의 시행을 부호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국가에서 영(令)을 시행하는 데 있어서 마땅히 소민(小民)들의 바람을 따라야 합니다. 어찌 부호들을 꺼려서 백성들에게 편리한 법을 시행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하고, 좌의정 조익(趙翼), 연양군(延陽君) 이시백(李時白)은 모두 행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하고, 호조 판서 이기조(李基祚), 호군(護軍) 정세규(鄭世規)는 모두 불편하다고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동법을 시행하면 대호(大戶)가 원망하고, 시행하지 않으면 소민이 원망한다고 하는데, 원망하는 대소가 어떠한가?"

하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 말하기를,

"소민의 원망이 큽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소를 참작하여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39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 재정-역(役)

  • [註 185]
    어찌 감히 당신의 얼굴이 내 얼굴과 같다고 하겠습니까 :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다는 뜻. 초(楚)의 자피(子皮)가 윤하(尹何)에게 고을을 다스리게 하려고 하니 자산(子産)이 어려서 안 된다고 하면서 한 말. 《좌전(左傳)》 양공(襄公) 31년 12월에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음은 그 얼굴이 각기 다른 것과 같다. 내가 어찌 그대의 얼굴이 내 얼굴과 같다고 말하겠는가." 하였다.
  • [註 186]
    양암(諒闇) : 임금의 거상(居喪).

○右議政金堉上箚曰:

王者之政, 莫先於安民, 民安然後, 國可得而安矣。 古人有言: "天變之來, 民怨招之也。" 民生苦於賦役, 無樂生興事之心, 則怨氣鬱結, 象見于天, 此必然之理也。 人君遇災而懼, 側身修省者, 非有他道, 只是行保民之政, 使之安其生而已。 大同之法, 均役便民, 實救時之良策。 雖不能遍行於諸道, 畿甸、關東旣行而得力, 若又行之於兩湖, 則安民益國之道, 無大於此者。 卒哭之後, 卽當議定, 而客行適到, 尙此遷延, 今則客使已過, 而廟堂之論, 寂然無聞, 臣竊怪之。 若待臣以會議, 則臣之不幸病伏, 亦誤事之一罪也。 臣所以汲汲於此者, 此事當行於嗣服之初, 年凶則又難行, 而歲運稍稔, 此天借之便也。 明歲之役, 及冬前議定, 乃可行之, 臣之如恐不及者此也。 使臣出而會議, 所言不過如此, 言或可用, 則生民之幸也。 若無可採, 則特一老妄錯料事之人, 將焉用彼相哉? 天下之事, 好相矛盾, 子産所謂: "豈敢謂子面如吾面。" 者, 臣之所深慨也。 古人云: "謀事在人, 成事在天。" 臣之所恃, 獨殿下之天耳, 敢以別幅, 竝獻焉。

其別幅曰:

民間百役, 皆出於田結, 此卽古者經界之法也。 國家多事, 民役日重, 一年應行之役, 每結所費, 幾至木綿十餘匹, 少不下七八匹, 意外橫出之役, 不在此限, 民何以不困? 今若定爲大同之法, 每一結 【十束爲一負, 百負爲一結。 從田所收多少, 曰束曰負曰結。】 春出木綿一匹、米二斗, 秋出米三斗, 則摠爲十斗, 而田稅之外, 進上貢物、本道雜役、本邑所納, 皆在其中。 一納之後, 終年安臥, 比之京畿宣惠春秋八斗, 一年十六斗, 亦甚寬矣。 兩湖田結, 共二十七萬結, 木綿爲五千四百同, 米爲八萬五千石, 付之能手, 規劃措處, 則米、布之餘數, 必多公藏私蓄, 上下與足, 意外之役, 亦可以應之矣。 但貪猾之吏, 嫌其色目之簡; 牟利之輦, 怨其防納之難, 必胥動浮言以撓之, 臣之所慮者此也。

上覽其疏, 令備局議之。 備局啓曰: "此事就令行之, 必須有漸, 如湖西一道, 似當先試。 改作之擧, 利不十倍, 則古人有戒焉。 慮始之際, 不可不十分審處。 頃因李景嚴請設大宣惠之疏, 領敦寧府事金尙憲獻議以爲: ‘若有窒礙難行之弊, 則必有不悅者之謗, 待過諒闇後, 面稟以定。’ 云者, 亦此意也。 今者右議政金堉所陳兩湖大同, 實係大段變通, 臣等不敢率爾裁定, 問于金尙憲, 則意見如前。 請待金堉出仕, 稟議於榻前。" 從之。 及金堉出仕, 上引見大臣及備局諸臣, 以大同利害, 問于諸臣。 右議政金堉曰: "此與宣惠之法無異。 宣惠之法, 故相臣李元翼所建白, 而先行於京畿江原兩道, 未及行於湖西, 今宜先試於此道, 而三南多富戶, 此法之行, 富戶之所不悅也。 國家施令, 宜從小民之願, 何憚於富戶, 而不行便民之法哉?" 左議政趙翼延陽君 李時白皆曰: "行之便。" 戶曹判書李基祚、護軍鄭世規皆曰: "不便。" 上曰: "大同之法行而大戶怨, 不行而小民怨, 則怨之大小如何?" 諸臣皆曰: "小民之怨大。" 上曰: "酌其大小而行之。"


  •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35책 39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 재정-역(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