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48권, 인조 25년 6월 13일 임오 3번째기사
1647년 청 순치(順治) 4년
전 이조 판서 이식의 졸기
전 이조 판서 이식(李植)이 죽었다. 이식의 자는 여고(汝固)이고, 호는 택당(澤堂)이다. 소탈하고 빼어나며 통명하였고, 전아하고 고상하며 검소하였다. 어려서부터 박람 강기(博覽强記)하였고, 문장이 절묘하여 한 시대에 우뚝하였다. 혼조(昏朝)에는 여강(驪江)에 물러나 살면서 임숙영(任叔英)·여이징(呂爾徵)·정백창(鄭百昌)·조문수(曺文秀)와 더불어 글짓고 술마시는 모임을 만들어 강호 사이에서 노니니, 많은 사람들이 흠모하였다. 반정하게 되자 청현(淸顯)의 직을 두루 거쳤고 세 번이나 문형을 맡았다. 병술년022) 에 시제(試題)의 일로 죄를 얻으니 모두가 원통하게 여겼다. 《선조실록》이 적신(賊臣) 기자헌(奇自獻)·이이첨(李爾瞻) 등의 손에서 나와 시비가 어그러져 믿을 수 없었다. 이에 이식이 상에게 아뢰어 실록청을 설치하고 야사(野史)나 여러 사대부의 집에 소장된 잡기(雜記)를 모아 수정하고 따로 한 질을 만들어 사고(史庫)에 보관하고자 하였는데, 이루지 못하고 죽으니 사람들이 모두 애석하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48책 48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304면
- 【분류】인물(人物)
- [註 022]병술년 : 1646 인조 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