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원 등의 모반 사건에 대해 논의하다
상이 국청의 여러 신하를 인견하고 이르기를,
"이번의 이 역변은 뜻밖에 발생하여 매우 놀랍다."
하니, 영의정 홍서봉(洪瑞鳳)이 아뢰기를,
"난신 적자(亂臣賊子)가 어느 시대인들 없겠습니까마는 어찌 심기원처럼 흉악한 자가 있겠습니까."
하고, 상이 이르기를,
"내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없어 기원으로 하여금 대신의 자리를 더럽히게 만들었으니 더욱 부끄럽고 한스럽다."
"신은 이 역적과 연배가 맞지 않아 처음에는 서로 모르다가 반정하고 나서 처음 정사를 할 때 그와 사귀었는데 이제 와서 놀랍고 분한 마음은 다른 사람보다 한결 더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면질(面質)할 때 그 말과 기색은 어떠하던가?"
하니, 김류가 아뢰기를,
"말이 꿀리고 기색은 풀이 죽어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고, 상이 이르기를,
"사람의 기질은 강약이 각기 달라 말을 잘하고 기가 많은 사람은 설사 속이더라도 상대방이 반드시 믿는 법인데, 면질할 때 이러한 폐단은 없었는가?"
하니, 김류가 아뢰기를,
"기원이 처음 공초할 때 이미 승복하였고 면질시킴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신이 계해년 이후 추국에 참여한 일이 많아 면질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사실 알고 있었지만 이 적은 절대로 의심할 만한 단서가 없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제적(諸賊)의 공초에 모두 한선(漢船)으로 유혹하는 자료를 삼았는데 전일 변장(邊將)들이 다 스스로 포성을 들었다고만 말하고 다시 살펴보는 일이 없었으니, 혹시 이 적과 서로 응하는 형적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니, 서봉이 아뢰기를,
"변장이 서로 응한 형적은 알 수 없지만 요즈음 도하에 임경업과 한선에 대한 이야기로 소란이 일어난 것은 분명히 역도가 선동한 것입니다."
하고, 상이 이르기를,
"역도가 선동한 것이 아니더라도 이미 전보(傳報)한 문서가 있으니 인심이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감사에게 김여기(金礪器)를 잡아오게 하여 그 진위를 국문하고 싶다. 만일 사람들이 다 그 포성을 들었다면 더 말할 게 없지만 여기 혼자서 들은 것이었다면 매우 의심스러운 일이다."
하니, 김자점이 아뢰기를,
"신은 심양을 왕래할 때에 한선에 대해서 말을 들었으나 그 자세한 내용은 모르며 경업이 저쪽에 들어갔다는 말은 김여기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여기가 하는 말이 ‘지난 가을에 한선이 물을 길러가기 위해 해안에 접근하기에 내가 거절하며 말하기를 「우리 나라가 너희들 때문에 늘 청인의 힐책을 당하고 대신들이 심양에 구류되어 있으며 임 병사(林兵使)도 이미 도주하였다.」 하니, 한인(漢人)이 임 병사는 상국에 있다고 말하고 아울러 그 얼굴 모습을 이야기하는데 매우 흡사하였다.’ 하였습니다. 신은 그에게 극비에 부치게 하였는데 평안 감사 구봉서(具鳳瑞)가 무턱대고 즉시 치계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놀라게 하였으니, 참으로 한탄스럽습니다."
하고, 서봉은 아뢰기를,
"기원은 흉악안 무리와 심복관계를 맺고 천금을 뿌려가며 일을 추진한 지가 오래 되었고, 권억은 칠국 무사(七局武士)들과 동방(同榜)이라는 말을 내걸고 교분이 이미 깊으니, 오늘날 흉도들이 믿는 것은 다 칠국 무사에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모의에 가담한 자는 반드시 의구심을 품고 있을 것이니 강압에 의해 추종한 무리를 빨리 처결하시어 마음이 흔들리는 자들로 하여금 안심하게 하소서."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기원은 공이 크고 죄 또한 크다. 그러나 이미 대신이 되었으니 경솔하게 정형(正刑)을 시행할 수는 없다."
하니, 김류가 아뢰기를,
"춘추의 법으로 논할 때 이 적을 어찌 대신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도로에서 어도(御道)를 범해도 용서없이 죽이는데 임금을 곧장 공격한 말은 이 얼마만한 일입니까. 빨리 결단하소서. 기원의 흉역은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으나 이덕인(李德仁)도 또한 신하된 자로서 이러한 명칭이 있으니, 그대로 두고 죄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 끝까지 치죄하소서."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모두 빨리 기원을 복주시키라고 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사(賜死)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미 대신의 이름이 있는데 정형(正刑)을 시행하면 뒤폐단이 있을 듯하다."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다 간쟁하였으나 상이 대답하지 않았다. 양사가 연일 합계하여 역적의 괴수 기원을 엄중히 국문하여 승복을 받아 전형(典刑)을 분명히 보일 것을 청하였으나 상이 허락하지 않다가 추국청이 빨리 정형을 집행할 것을 청하니, 상이 마침내 그대로 따라 기원은 끝내 복주되었다. 상이 또 하교하기를,
"기원의 시신은 팔방에 돌려 보이지 말고 그의 가족에게 내주어 그들로 하여금 염습하여 장사지내게 하라."
하였는데, 양사가 안 된다고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177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정론-간쟁(諫諍)
○上引見鞫廳諸臣, 謂曰: "今此逆變, 出於慮外, 予極驚駭。" 領議政洪瑞鳳曰: "亂臣賊子何代無之, 而豈有如器遠之凶慘乎?" 上曰: "予無知人之鑑, 使器遠汚辱大臣之位, 尤用慙恨。" 昇平府院君 金瑬曰: "臣與此賊, 年輩不敵, 初不相識, 反正始事時, 與之交結, 及今駭憤之心, 倍於他人。" 上曰: "面質之時, 其辭色何如?" 瑬曰: "辭屈色沮, 少無可疑矣。" 上曰: "人之氣質, 强弱不同, 能言多氣之人, 設或誣飾, 人心信之。 面質之時, 無乃有此弊乎?" 瑬曰: "器遠初供, 旣已承服, 及其面質, 更無可疑。 臣自癸亥以後, 參鞫已多, 固知面質之爲不可信, 而此賊則斷無可疑之端矣。" 上曰: "諸賊所供, 皆以漢船爲誑誘之資, 而前日邊將皆稱自聞砲聲, 更無候望之事。 無乃與此賊, 有相應之跡耶?" 瑞鳳曰: "邊將相應之跡, 雖未可知, 頃日都下之以慶業、漢船之說騷屑者, 明是逆徒之胥動也。" 上曰: "雖非逆徒之譸張, 旣有文書之傳報, 人心之驚駭, 固其宜矣。 予欲使監司, 拿致金礪器, 鞫問其眞僞。 如或人皆聞之則已, 如礪器之所獨聞, 則甚可疑也。" 金自點曰: "臣往來瀋陽之際, 聞漢船之說, 而未得其詳, 慶業入彼之說, 出自金礪器之口。 礪器言: ‘去秋漢船爲汲水近岸, 礪器斥之曰: 「我國以汝之故, 每被淸人之詰責, 大臣拘留於瀋中, 林兵使亦已逃走矣。」 漢人曰: 「林兵使在於上國。」 仍言其容貌則頗驗。’ 云矣。 臣使之極秘, 而平安監司具鳳瑞遽卽馳啓, 致駭聽聞, 良可歎也。" 瑞鳳曰: "器遠締結梟獍之徒, 而散盡千金, 經營旣久, 權澺與七局武士, 稱以同榜, 託交已深, 今日兇徒之所恃者, 皆在於七局武士。 其中預謀者, 必懷疑懼, 脅從之徒, 速賜處決, 宜使反側子自安。" 上曰: "器遠功大而罪亦大。 然旣爲大臣, 不可輕施典刑也。" 瑬曰: "以《春秋》之法論之, 此賊安可謂之大臣乎? 行犯御道, 尙殺無赦, 指斥乘輿, 此何等說耶? 宜速夬斷。 器遠兇逆, 不須更言, 而德仁亦以人臣, 有此名稱, 不可置而不問。 請竝加窮治。" 諸臣竝請亟誅器遠, 上曰: "賜死可矣。 旣有大臣之名, 正刑恐有後弊。" 諸臣皆爭之, 上不答。 兩司連日合啓, 請逆魁器遠, 嚴鞫取服, 明示典刑, 上不許, 鞫廳請速行刑, 上乃從之, 器遠遂伏誅。 上又下敎曰: "器遠之屍, 其勿傳示八方, 給其家人, 使之斂葬。" 兩司爭之, 不能得。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177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정론-간쟁(諫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