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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37권, 인조 16년 8월 20일 경술 2번째기사 1638년 명 숭정(崇禎) 11년

전 부사 조희일의 졸기

전 부사 조희일(趙希逸)이 졸하였다. 희일은 승지 조원(趙瑗)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주가 있어 시(詩)에 능하고 글씨를 잘 썼다. 일찍 과거에 합격하고 또 중시(重試)에 장원하였으며 호당(湖堂)의 선발에 들었다. 혼조(昏朝) 때에 이위경(李偉卿)에게 모함을 당하여 여러 해 동안 귀양을 살다가 인조 반정 후에 옥당(玉堂)을 거쳐 승지에 올랐다. 얼마되지 않아 시골에 살면서 삼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정(朴炡)에게 탄핵을 당했는데 이로 인하여 세력을 잃어 청환(淸宦)의 길이 막혔다. 희일의 사람됨은 욕심이 많고 인색하며 또 재주를 믿고 거만스러운 습성이 있었기 때문에 끝내 이로써 낭패하였다. 최후에 참판을 지냈고 강릉 부사(江陵府使)로 나갔다가 파직되고 귀향하여 졸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37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34면
  • 【분류】
    인물(人物)

    ○前府使趙希逸卒。 希逸, 承旨之子也。 少有雋才, 能詩工書。 早擢科, 又捷重試, 預湖堂選。 昏朝時爲李偉卿所搆, 竄謫累年, 反正後, 由玉堂陞承旨。 未幾以居鄕不謹, 被劾於朴炡, 坐此蹭蹬, 見阻淸路。 希逸爲人貪吝, 且有恃才夸傲之習, 故終以是敗焉。 最後歷參判, 出守江陵, 罷歸而卒。


    • 【태백산사고본】 37책 37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35책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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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