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집·오달제가 하직 인사를 하다
최명길(崔鳴吉)·이영달(李英達)을 파견하여 국서(國書)를 가지고 오랑캐 진영에 보내고, 화친을 배척한 신하인 윤집(尹集)·오달제(吳達濟)를 잡아 보내었다. 윤집 등이 하직 인사를 하자, 상이 인견하고 이르기를,
"그대들의 식견이 얕다고 하지만 그 원래의 의도를 살펴 보면 본래 나라를 그르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는데 오늘날 마침내 이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고금 천하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하고, 인하여 눈물을 흘리며 오열(嗚咽)하였다. 윤집이 아뢰기를,
"이러한 시기를 당하여 진실로 국가에 이익이 된다면 만번 죽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이렇게 구구한 말씀을 하십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대들이 나를 임금이라고 여겨 외로운 성에 따라 들어왔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내 마음이 어떻겠는가."
하였다. 오달제가 아뢰기를,
"신은 자결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는데, 이제 죽을 곳을 얻었으니 무슨 유감이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다시 이르기를,
"고금 천하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하고, 목이 메어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오달제가 아뢰기를,
"신들이 죽는 것이야 애석할 것이 없지만, 단지 전하께서 성에서 나가시게 된 것을 망극하게 여깁니다. 신하된 자들이 이런 때에 죽지 않고 장차 어느 때를 기다리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대들의 뜻은 군상(君上)으로 하여금 정도(正道)를 지키게 하려고 한 것인데, 일이 여기에 이르렀다. 그대들에게 부모와 처자가 있는가?"
하였다. 윤집이 아뢰기를,
"신은 아들 셋이 있는데, 모두 남양(南陽)에 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듣건대 부사(府使)가 적을 만나 몰락하였다고 하니 생사를 알 수 없습니다."
하고, 오달제가 아뢰기를,
"신은 단지 70세 된 노모가 있고 아직 자녀는 없으며 임신 중인 아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참혹하고 참혹하다."
하였다. 윤집이 아뢰기를,
"신들은 떠나갑니다만, 전하께서 만약 세자와 함께 나가신다면 성 안이 무너져 흩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이점이 실로 염려됩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세자를 이곳에 머물러 있게 하고 함께 나가지 마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장차 죽을 곳에 가면서도 오히려 나라를 걱정하는 말을 하는가. 그대들이 죄없이 죽을 곳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찢어지는 듯하다. 어찌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성에서 나간 뒤에 국가의 존망 역시 단정할 수는 없다만, 만일 온전하게 된다면 그대들의 늙은 어버이와 처자는 마땅히 돌보아 주겠다. 모르겠다만 그대들의 늙은 어버이의 연세는 얼마이며, 그대들의 나이는 또 얼마인가?"
하였다. 오달제가 아뢰기를,
"어미의 나이는 무진생(戊辰生)이며 신의 나이는 무신생(戊申生)입니다."
하고, 윤집이 아뢰기를,
"신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단지 조모가 있는데 나이는 지금 77세입니다. 신의 나이는 정미생(丁未生)입니다."
하고, 드디어 절하고 하직하니, 상이 이르기를,
"앉아라."
하고, 내관(內官)에게 명하여 술을 대접하게 하였다. 승지가 아뢰기를,
"사신이 벌써 문에 나와 재촉하고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찌 이와 같이 급박하게 제촉하는가."
하였다. 두 신하가 술을 다 마시고 아뢰기를,
"시간이 이미 늦었습니다. 하직하고 떠날까 합니다."
하니, 상이 눈물을 흘리며 이르기를,
"나라를 위하여 몸을 소중히 하도록 하라. 혹시라도 다행히 살아서 돌아온다면 그 기쁨이 어떠하겠는가."
하자, 오달제가 아뢰기를,
"신이 나라를 위하여 죽을 곳으로 나아가니 조금도 유감이 없습니다."
하였다. 이 날 새벽에 김류(金瑬)·이홍주(李弘胄)·최명길(崔鳴吉)이 청대(請對)하여 상이 침전(寢殿) 안에 들어갔는데, 승지와 사관은 문 밖에 있었으므로 비밀리에 이루어진 말을 기록할 수 없었다. 상이 이경직(李景稷)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오늘의 말은 원래 중대한 일과는 관계가 없으니, 사관이 책(策)에 쓰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하였다. 국서(國書)에,
"소방에 일찍이 일종의 근거없는 논의가 있어 국사를 무너뜨리고 그르쳤기 때문에, 작년 가을에 신이 그 가운데에서 더욱 심한 자 약간 명을 적발하여 모두 배척해서 쫓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수창(首倡)한 대간 한 명은 천병(天兵)이 국경에 도착하였을 때 평양 서윤(平壤庶尹)으로 임명하고 그 날로 즉시 앞으로 나아가도록 독촉하였는데, 혹 군사에게 잡혔는지 아니면 샛길로 부임하였는지 모두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성 안에 있는 자는 혹 부화뇌동한 죄는 있다 하더라도 앞서 배척을 당한 자에 비교하면 경중이 현격히 다릅니다. 그러나 신이 만약 처음부터 끝까지 어렵게만 여긴다면 폐하께서 본국의 사정을 살피지 못하고 신이 숨겨주는 것으로 의심하시어 신의 진실한 마음을 장차 밝힐 수 없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을 조사해 내어 군전(軍前)에 보내면서 처분을 기다립니다."
하였다. 최명길이 두 사람을 이끌고 청나라 진영에 나아가니, 한(汗)이 그들의 결박을 풀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최명길 등을 불러 자리를 내리고 크게 대접할 기구를 올리게 하면서 초구(貂裘) 1습(襲)을 각각 지급하게 하였다. 최명길 등이 이것을 입고 네 번 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72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야(野)
○己巳/遣崔鳴吉、李英達, 齎國書, 送虜營, 執送斥和臣尹集、吳達濟。 集等辭朝, 上引見曰: "爾等識見雖淺, 原其情事, 本非誤國, 而今日竟至於此, 古今天下, 寧有是事?" 仍泣下嗚咽。 集曰: "當此之時, 苟有利於國家, 縱萬死而無惜, 殿下何用區區若此乎?" 上曰: "爾等以予爲君, 從入孤城, 而事至於此, 予將何以爲心耶?" 達濟曰: "臣恨不能自死, 今得死所, 有何憾乎?" 上復曰: "古今天下, 寧有是事?" 仍嗚咽不能成聲。 達濟曰: "臣等死生, 有不足恤, 只以殿下出城, 爲罔極焉。 爲臣子者, 不死於此時, 將何俟乎?" 上曰: "爾等之意, 欲使君上守正, 而事至於此。 爾等其有父母、妻子耶?" 集曰: "臣有三子, 俱往南陽。 今聞, 府使遇賊淪沒云, 不能知其死生矣。" 達濟曰: "臣只有七十老母, 而時無子女, 只有腹中兒矣。" 上曰: "慘矣、慘矣。" 集曰: "臣等則出去矣, 殿下若與世子而偕出, 則城中潰散之患, 誠可慮也。 願殿下, 留世子在此, 勿與偕出。" 上曰: "將往死地, 而猶爲憂國之言耶? 見爾無罪而就死地, 予心如割, 可忍言哉? 出城之後, 國家存亡, 亦不可定, 而萬一得全, 則爾之老親、妻子, 當加顧恤。 未知爾等老親年歲幾何, 爾等年歲亦幾何?" 達濟曰: "母年戊辰生, 臣年戊申生也。" 集曰: "臣早失父母, 只有祖母, 年今七十七歲, 而臣年丁未生也。" 遂拜辭。 上曰: "坐。" 命內官饋酒。 承旨曰: "使臣已出門促之矣。" 上曰: "何如是迫促耶?" 二臣飮畢曰: "日已晩矣。 請辭而出。" 上泣下曰: "爲國珍重。 倘幸生還, 其喜當如何?" 達濟曰: "臣爲國就死, 少無所恨。" 是日平明, 金瑬、李弘冑、崔鳴吉請對, 入上寢內。 承旨、史官在戶外, 語密不能記。 上顧謂李景稷曰: "今日之言, 元不關重, 史官不宜書之策也。" 國書曰:
小邦曾有一種浮議, 壞誤國事, 故上年秋, 臣摘其中尤甚者若干人, 竝斥黜, 而首倡臺諫一人, 當天兵到境時, 差平壤庶尹, 督令卽日前進, 或爲兵前所獲, 或從間道赴任, 俱未得知之。 今在此城中者, 雖或有雷同和附之罪, 比前被斥者, 則輕重相懸, 而臣若終始持難, 則恐陛下未察本國事情, 疑臣有所容隱, 臣之誠心, 將無以自白, 故査得二人, 送詣軍前, 以竢處分。
鳴吉率二人, 詣淸陣, 汗命解其縛。 招鳴吉等賜坐, 大供具以進, 仍給貂裘各一襲, 鳴吉等服之而四拜。
- 【태백산사고본】 34책 34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672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