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34권, 인조 15년 1월 15일 을묘 1/4 기사 / 1637년 명 숭정(崇禎) 10년
도원수 심기원이 장계를 보내, 구원병들이 대부분 패했다고 하다
국역
도원수 심기원(沈器遠)의 군관 지기룡(池起龍)이 장계를 가지고 들어와 대구어(大口魚) 알과 연어(漣魚) 등의 물품을 바쳤다. 체부(體府)가 아뢰기를,
"지기룡·김기량(金起良) 등이 죽음을 무릅쓰고 들어와 구원병의 소식을 알렸으니, 논상하소서."
하니, 따랐다. 남병사(南兵使) 서우신(徐佑申)과 함경 감사 민성휘(閔聖徽)가 군사를 합쳐 양근(楊根)의 미원(薇原)에 진을 쳤는데, 군사가 2만 3천이라고 일컬어졌다. 평안도 별장이 8백여 기병을 거느리고 안협(安峽)에 도착하였다. 경상 좌병사 허완(許完)이 군사를 거느리고 쌍령(雙嶺)에 도착하였는데, 교전하지도 못하고 군사가 패하여 죽었으며, 우병사 민영(閔栐)은 한참동안 힘껏 싸우다가 역시 패하여 죽었다. 충청 감사 정세규(鄭世規)가 진군하여 용인(龍仁)의 험천(險川)에 진을 쳤으나 적에게 패하여 생사를 모른다고 하였다.
원문
인조실록34권, 인조 15년 1월 15일 을묘 1/4 기사 / 1637년 명 숭정(崇禎) 10년
도원수 심기원이 장계를 보내, 구원병들이 대부분 패했다고 하다
국역
도원수 심기원(沈器遠)의 군관 지기룡(池起龍)이 장계를 가지고 들어와 대구어(大口魚) 알과 연어(漣魚) 등의 물품을 바쳤다. 체부(體府)가 아뢰기를,
"지기룡·김기량(金起良) 등이 죽음을 무릅쓰고 들어와 구원병의 소식을 알렸으니, 논상하소서."
하니, 따랐다. 남병사(南兵使) 서우신(徐佑申)과 함경 감사 민성휘(閔聖徽)가 군사를 합쳐 양근(楊根)의 미원(薇原)에 진을 쳤는데, 군사가 2만 3천이라고 일컬어졌다. 평안도 별장이 8백여 기병을 거느리고 안협(安峽)에 도착하였다. 경상 좌병사 허완(許完)이 군사를 거느리고 쌍령(雙嶺)에 도착하였는데, 교전하지도 못하고 군사가 패하여 죽었으며, 우병사 민영(閔栐)은 한참동안 힘껏 싸우다가 역시 패하여 죽었다. 충청 감사 정세규(鄭世規)가 진군하여 용인(龍仁)의 험천(險川)에 진을 쳤으나 적에게 패하여 생사를 모른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