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문제, 양서 지방의 흉작과 국방문제 등에 대한 최명길의 차자
완성군(完城君) 최명길이 차자를 올리기를,
"삼가 비국의 계사를 보니, 박난영을 별사로 삼아 국서는 주지 않고 심양으로 들여보낸다고 하니, 이는 참으로 신중한 계책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나 신의 마음에는 의심스런 점이 있습니다. 박인범이 갔을 적에 저들이 비록 국서는 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화의를 거절한다는 말은 하지 않고 우리 사신을 기다리고 있는 뜻이 말과 표정에 나타났으니, 그들이 말한 따르기 어려운 두어 가지의 청은 짐짓 우리를 시험하여 본 데 불과한 것이고 진실한 마음은 아닌 듯싶습니다. 우리가 우려할 것은 단지 명분상에 있을 뿐인데 지금 수작하는 즈음에 한마디 말도 꺼내지 않았으니 저들도 스스로 화친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로 말한다면 종전과 다름없는 정묘년에 강화한 금한(金汗)이니, 우리 입장에서는 진실로 평탄하게 처리해야지 무엇 때문에 다시 많은 사단을 만들고 세월을 끌어가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오래도록 의심과 두려움을 품게 하고 오랑캐로 하여금 괴이하고 의아해 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까.
근래에 오랑캐는 본디 별다른 뜻이 없는데 우리 나라가 먼저 스스로 도리를 잃은 것이 많습니다. 춘신사(春信使)의 세폐(歲幣) 중 준납(準納)하지 못한 숫자를 아직도 수송하지 않았으니, 이는 우리의 신의(信義)가 도리어 오랑캐만도 못한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곧바로 추신사(秋信使)를 보내느니만 못하다고 여겨집니다. 문관 당상으로 정사를 삼고 박난영으로 부사를 삼아 그 일을 소중히 하고, 세폐와 상고(商賈) 및 전후의 체포된 호인을 일시에 들여보내고, 국서에는 말을 만들기를 ‘우리가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 어찌 한량이 있겠는가. 다만 구구하게 지키는 것은 명분에 있기에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 호역이 돌아올 적에 국서는 전하지 않았으나 그의 구전(口傳)을 들으니 귀국이 특별히 다른 뜻이 없음을 알 수 있고 우리도 의심이 풀렸으므로 전례에 따라 사신을 보내는 것이다…….’ 하면, 저들도 반드시 의심이 확 풀려 화친하는 일이 처음 같이 될 것입니다.
신은 삼가 듣건대, 양서(兩西) 지방은 흉작이 제일 심하고 가축의 전염병이 더욱 참혹하다 합니다. 명년의 농사는 전혀 가망이 없는데 거기다 산성을 수축하고 장사(將士)를 접대하느라 1결(結)에 30여 필의 베를 내게 하였으므로 민력(民力)이 이미 고갈되어 원성이 하늘에 사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변우(邊虞)가 급박함으로 인하여 수확한 곡식을 모두 산성으로 실어들이게 하고 있습니다만 소는 모두 죽고 남정(男丁)들은 관문(官門)에서 계속 대기하고 있는데 곡식을 수일정(數日程) 밖으로 운반하게 하니 형세가 해낼 길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흉년인데도 곡가가 전년에 비해 배나 싸고 노약자가 울부짖는 소리는 참혹하여 차마 들을 수가 없다 합니다. 이러한 때에 화친하는 일을 종결짓는 일은 하루가 시급한 것입니다.
실로 신사의 행차가 무사히 복명(復命)한다면 수신(帥臣)이 오래도록 머무를 필요가 없고 백성들도 소개할 필요가 없으며 별방(別防)이 준삭(准朔)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관에서는 군량의 소비를 걱정할 것이 없고 백성은 어깨를 쉴 수 있는 희망이 있을 것이니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묘당의 생각이 여기에 미치지 못한 것은 아니나 그런데도 별사로 주청한 것은, 필시 당초 대신의 계사 중에 신사(信使)는 절대로 보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 갑자기 사신을 보내자고 주청하면 사람들이 혹 의아해 할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부득이한 계책에서 나온 것이나, 신은 꼭 그러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묘당의 계책은 반드시 국가의 이익과 백성의 안녕을 중하게 여겨야 하고 사소한 혐의는 개의할 필요가 없는 것인데 지금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어제는 징병(徵兵)을 계청하고 오늘은 사신을 보내도록 주청하며, 또 내일은 국서를 제거하도록 주청하니, 어찌 겁을 먹고 혼란됨이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그리고 비국의 계사 2통을 보았는데, 하나는 호차(胡差)가 나올 때에 변신으로 하여금 성문을 열고 곧바로 들이는 것을 허락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하나는 중외 사민(士民)에게 고유(告諭)하여 재물과 식량을 출연하여 의주를 돕게 하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은 신의 생각에는 모두 미안한 바가 있기에 진달하고자 합니다.
대체로 금차(金差)가 우리 나라를 왕래한 것이 이제 10년이 되었습니다. 일로(一路)의 접대는 따로 상규(常規)가 있는데, 지금 만약 갑자기 성례(成例)를 고친다면 저들은 필시 크게 의아해 할 것이니 신은 일에 도움은 되지 않고 도리어 시끄러운 사단만 더할까 두렵습니다. 그리고 오랑캐가 우리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우리의 병력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다만 예의를 숭상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니, 명분을 삼가 지키면 개돼지 마음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전쟁을 하고자 한다면 무엇을 꺼려 철기(鐵騎)를 휘몰아 달려오지 않고 이처럼 몰래 기습할 계획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정말로 비국의 계사처럼 수백천 명이 일시에 나온다면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니 막고서 들이지 않더라도 가합니다. 그러나 고문(古文)에 이른바 수백천이란 것은 곧 수천을 이른 것입니다. 변신이 고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뜻을 잘못 알아 수백 명의 차호(差胡)를 만나 갑자기 서로 무기를 겨눈다면 어찌 일을 그르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신의 생각에는, 묘당은 이토록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고 만약에 꼭 행회(行會)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말을 고쳐서 변신으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재물을 관에 바치는 백성은 국가를 위하는 충성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계교에 불과한 것입니다. 공사천(公私賤)은 천역 면하기를 희망할 것이고 양반은 벼슬을 희망할 것이니,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몹시 많을 것입니다. 일이 국가를 다스리는 체통에 관계되는 것이니 참으로 작은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의주성을 들어가 지키는 것은 참으로 오늘날 제일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할 일이기는 하나 반드시 병사와 군량을 미리 준비한 뒤에야 비로소 이 일을 의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미 지킬 만한 병사가 없고 또 계속 댈 수 있는 군량이 없는데, 먼저 국가의 대계(大計)를 중외에 포고하면 설령 약간의 미포(米布)를 거두어 모은다고 하더라도 형편상 즉시 지키기는 어려울 듯하니, 어찌 외방(外方)에 비웃음과 모욕만 당하는 빌미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신은, 먼저 화친하는 일을 종결지어 민력을 휴식시키고 재용(財用)을 존절히 하여 차차 국계(國計)를 여유 있게 만든 후에야 비로소 별도의 처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를 도모하는 방법은 성실에 힘써야 하는 것이니 형식을 갖추는 데 그쳐서는 아니됩니다."
하니, 상이 가납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53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伏見備局啓辭, 以朴蘭英爲別使, 不齎國書, 入送瀋陽云。 此固出於愼重之計, 而臣心竊有疑焉。 朴仁範之往也, 彼雖不見國書, 而其不言絶和, 等待我使之意, 見於辭色, 至其所言數件難從之請, 不過姑以試我, 恐非實情。 我之所慮者, 只在名分上, 而今無片言隻辭, 發於酬酢之際, 彼亦自知其有害於和事故也。 以此言之, 依舊是丁卯講和之金汗, 在我之道, 固當坦然處之。 何必更生枝節, 引惹時月, 使人心, 長懷疑恐, 虜情未免怪訝乎? 近來虜人, 本無別情, 而我國先自失道者多矣。 春信歲幣未准之數, 尙未輸送, 是我之信義, 反落虜人下矣。 臣之愚意以爲, 不如直差秋信使。 以文官堂上爲之, 而以朴蘭英爲副, 以重其事, 歲幣商賈及前後被捉胡人, 一時入送, 而國書中措語以爲: "我之不欲負約之心, 何可限量? 但以區區所守者, 只在名分, 故未免有此疑阻。 今者胡譯之來, 雖未傳國書, 聞其口傳, 則可見貴國別無他意, 我亦釋然, 故依例送使" 云云, 則彼必渙然無疑, 和事如初矣。 臣竊聞, 兩西失稔最甚, 畜疫尤慘, 明年農事, 少無可望。 加以修築山城, 供饋將士, 一結出布三十餘匹, 民力已竭, 怨苦徹天。 且因邊虞方急, 所收米穀, 悉令運入山城, 而牛畜盡斃, 男丁長立官門, 乃令運穀於數日程之外, 其勢末由。 以此凶年, 穀價比前倍賤, 老弱啼呼, 慘不忍見云。 當此之時, 和事之完, 一日爲急。 誠得信使之行, 無事復命, 則帥臣不必長留, 民間不必淸野, 別防不必准朔。 如是則官無費糧之患, 民有息肩之望, 豈非幸哉? 夫廟堂之慮, 非不及於此也, 猶以別使爲請者, 必以當初大臣啓辭, 有信使決不可送之語, 到今遽請送使, 人或致訝。 此固出於不得已之計, 而臣則以爲, 不必如是也。 廟堂籌畫, 須以利國安民爲重, 些少嫌疑, 不必介意, 而今不能然。 昨日啓請徵兵, 今日請送使臣, 又明日請除國書, 何其恇擾無定至此也? 且見備局啓辭二度, 其一, 胡差出來時, 令邊臣不許開門輒納事也; 其一, 告諭中外士民, 募出財穀, 以助義州事也。 此二者, 於臣心, 俱有所未安, 請得陳之。 夫金差之往來我國, 十年于玆, 一路接待, 自有常規。 今若卒改成例, 彼必大以爲訝。 臣恐其無益於事, 而反增鬧端也。 且虜之向我作好, 非謂我之兵力可畏, 徒以禮義之國, 謹守名分, 則雖以犬羊之心, 不能無慕於我矣。 苟欲加兵, 則鐵騎馳突, 有何所憚, 而乃爲此潛襲之計乎? 然若果如備局啓辭, 數百千人, 一時出來, 則誠是異事, 雖拒而不納可也。 但古文所謂數百千者, 乃數千之謂也。 邊臣不解古文, 錯認語意, 逢着數百差胡, 便以干戈相向, 豈不壞事乎? 故臣以爲, 廟堂不必過慮至此, 而若必欲行會, 則亦須改爲下語, 使邊臣易以解見爲當。 且民之納財於官者, 非有爲國之忠, 不過自爲身計。 公私賤則希望免賤, 兩班則希望賞爵, 所得甚少, 而所損甚大, 事關治體, 誠非細故。 且入守義州, 誠爲今日第一先務, 而必須預備兵糧然後, 方可議此。 今也旣無可守之兵, 又無可繼之糧, 而先以國家大計, 布告中外, 設令收聚些少米布, 其勢恐難卽守, 豈不徒爲外方笑侮之資乎? 故臣以爲, 先了和事, 休息民力, 撙節財用, 使國計稍裕然後, 方可別有區處。 謀國之道, 務在誠實, 不可徒爲文具而止也。
上嘉納之。
- 【태백산사고본】 33책 33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5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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