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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32권, 인조 14년 6월 11일 갑신 1번째기사 1636년 명 숭정(崇禎) 9년

완성군 최명길이 어진 신하 몇몇을 추천하는 글을 올리다

완성군(完城君) 최명길이 차자를 올리기를,

"저번날 추천한 이찬(李燦)·최온(崔蘊)·송준길(宋浚吉)을 초탁(超擢)하여 조정에 두소서. "

하고, 또 아뢰기를,

"세도가 나빠지면서 풍속이 못되어져 전혀 스승과 제자의 기풍이 없어졌는데, 유독 김장생(金長生)에게만은 생도가 있습니다. 신이 그의 문하생들을 보니 재주가 있고 없고를 논할 것 없이 모두 선은 행해야 하고 악은 미워해야 하며, 임금은 충성으로 섬겨야 하고 어버이는 효성으로 받들어야 한다는 도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신은 이것으로써 더욱 사도(師道)가 풍속에 관계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김장생의 아들 김집(金集)은 그 가훈을 지킴에 있어 자기 아버지의 풍도가 있는데, 지난번 정목(政目)을 보니 장령에 승배(陞拜)되어 있으므로 신은 참으로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했고, 나오지 않을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리고 송준길(宋浚吉)·송시열(宋時烈)은 모두 김장생의 문인인데, 신은 비록 서로 만나보지는 못했으나 그들이 살고 있는 지방의 사람들은 감히 멋대로 그른 짓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일찍이 송준길이 예를 논한 글과 송시열의 과장(科場)의 글을 보고서 그들이 속유(俗儒)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박지계(朴知誡)의 문인 조극선(趙克善)은 가장 어질다는 이름이 있어 진신들 사이에도 자못 알려진 자입니다. 부서(簿書)의 직임에 이르러서는 그가 처할 바가 아닌 듯합니다. 또 들으니, 김극형(金克亨)이란 자가 있는데 독실한 뜻으로 선을 행하며 끊임없이 덕과 학문을 닦는다고 합니다. 전 현감 허후(許厚)는 몸가짐에 법도가 있고 스스로의 기대가 가볍지 않으며, 전 교관(敎官) 황종해(黃宗海)는 전야에서 조용히 자신을 지키면서 늙도록 글을 읽으며, 학생 권시(權諰)는 이름 있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뜻과 행실이 맑고 깨끗합니다. 이들은 모두 한 시대의 훌륭한 선비라고 할 만합니다. 사람은 참으로 알아보기 쉽지 않으나, 비유하자면 이들은 계곡에 핀 난초나 형산(荊山)에 묻힌 박옥(璞玉)이 향기와 빛깔을 채 토해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참으로 그들을 털어주고 닦아주어서 광채를 더하게 한다면 어찌 뒷날 이름을 떨칠 명유(名儒)가 이들 중에서 나오지 않을지를 알 수 있겠습니까. "

하고, 또 조정 신하 중에 학문에 뜻을 둔 자로 조익(趙翼)·이경석(李景奭)·이경여(李敬輿)·조석윤(趙錫胤)·송몽석(宋夢錫) 등을 천거하니, 상이 가납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3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甲申/完城君 崔鳴吉上箚曰:

頃日所薦李燦崔蘊宋浚吉, 請加超擢, 致之朝端。

又曰:

世降俗末, 絶無師弟子之風, 獨金長生有學徒。 臣觀遊其門者, 無論才不才, 皆知善之當爲, 惡之當惡, 事君當忠, 事親當孝底道理。 臣以此, 益信師道之有關風俗也。 金長生, 守其家訓, 有乃父之風。 頃見政目, 陞拜掌令, 臣誠喜而不寐, 猶恐其不來也。 宋浚吉宋時烈, 皆金長生門人, 臣雖未得相見, 聞其所居之地人, 不敢肆然爲非。 曾見浚吉論禮說話及時烈科場文字, 知其非俗儒也。 朴知誡門人趙克善, 最賢有名, 搢紳間亦頗有知之者, 而至於簿書之任, 恐非所宜處。 亦聞有金克亨者, 篤志爲善, 進修不已。 前縣監許厚, 持身有法, 自待不輕。 前敎官黃宗海, 守靜田野, 到老讀書。 學生權諰, 名父之子, 志行雅潔, 皆可謂一時之佳士。 人固未易量, 譬如谷蘭、荊璞, 色香未吐。 誠能就加拂拭, 增其光價, 則安知後日名世之儒, 不出於此輩人乎?

又薦朝臣中有志學問者, 趙翼李景奭李敬輿趙錫胤宋夢錫等, 上嘉納之。


  • 【태백산사고본】 32책 32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63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