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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21권, 인조 7년 7월 28일 신해 3번째기사 1629년 명 숭정(崇禎) 2년

원 경략이 이첩하다

원 경략(袁經略)이 이첩(移帖)하였다.

"흠명 출진 행변 독수 계 요 천진 등 래 등처 군무 병부 상서 겸 도찰원 우부도어사(欽命出鎭行邊督帥薊遼天津登萊等處軍務兵部尙書兼都察院右副都御史) 원숭환(袁崇煥)은 조선 국왕에서 첩문(帖文)을 보냅니다.

지난해 황제 폐하에게 주문(奏文)을 올리는 일과 관련, 영광스럽게도 국왕께서 변변치 못한 본관을 잊지 않으시고 대도(大道)를 일러주시며 국휼(國恤)에 대해 잊지 않고 정성껏 교시해 주셨으니, 혈기를 가진 자로서 잊지 못할 바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시 요동 지역에 나오게 되었으니 국왕과는 숙연(夙緣)이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전해 오는 국왕의 소식을 들으면 마치 서로 얼굴을 대하는 듯 설레이기만 합니다. 되돌아 보건대 동이(東夷)048) 가 제멋대로 포학한 행동을 저지르면서도 우리 중원(中原)의 봉시(封豕)049) 는 그냥 놔둔 채 국왕의 강토만 잠식해 왔습니다. 병인050) ·정묘년의 전역(戰役)에서 노추(老酋)가 스스로 멸망을 불러들이고 노추(奴雛)가 두 번이나 넋이 빠질 정도로 혼이 나긴 했지만 동쪽의 산하에서는 여전히 머무르고 있으니, 이 점이 바로 내가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잠 자고 밥 먹을 겨를도 없이 애태웠던 이유인 것입니다.

그런데 황천(皇天)께서 이를 애달프게 여겨주지 않으시고 희종 황제(憙宗皇帝)를 앗아갔는가 하면, 나 역시 먼저 참소로 인해 돌아가는 비운을 맞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위신이 손상되어 떨쳐지지 못했으므로 내가 정말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는데, 아마 국왕께서도 같은 심정으로 슬퍼해 주셨을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제 천자께서 천고에 뛰어난 신성(神聖)함과 영무(英武)한 자질을 지니시고 중흥에 뜻을 깊이 두시어 이 조무라기 오랑캐들을 섬멸해 버리려고 하시는데, 불초 본관이 그 길을 안다고 여기시어 특별히 조칙을 내려 시골 가운데에서 불러 세우셨습니다. 내가 요동땅을 잊지 못하는만큼 어찌 국왕의 밝은 덕을 감히 잊을 수 있겠습니까.

생각건대 행인(行人)051) 이 왕래하노라면 바닷길이 아득하기만 할 것이고 게다가 탐욕스럽고 패려한 도수(島帥) 때문에 거듭 사신의 여정이 고달파질 것이기에 공도(貢道)를 서령(西寧)으로 개정할 것을 특별히 청하여 내가 마초(馬草)를 공급하여 국왕의 풍유(風猷)를 접할 수 있게끔 하였습니다.

나는 전쟁을 준비하는 일에 관련되는 것이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몇 년 동안 정신을 쏟아오면서 하동(河東)으로 진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대체로 군사 작전은 기세로써 제압하고 기틀을 보아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평소 기세를 쌓아두었다가 잠깐 사이에 기틀을 보아 결정을 내리는 것이므로, 한 순간의 결정을 위해 1백 년 동안 축적하는 것입니다. 국왕께서도 스스로 힘을 축적하시어 기틀을 보아 결판을 낼 준비를 하시면 다행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도 활집을 단단히 잡아 매고 국왕과 함께 동서로 기각(掎角)의 형세를 이루어 바다와 육지로 병진(竝進)하면서 앞 뒤에서 합동 공격을 펼치겠습니다. 그리하여 다행히 하늘에 계신 영령의 도움을 받게 되면 한 번 북을 쳐서 중조(中朝)의 12년에 걸쳐 쌓인 분노를 씻고 국왕의 나라 역시 금성 탕지(金城湯池)의 형세를 다시 이룩할 수 있을 것인데, 국왕께서는 이러한 뜻이 없으십니까?

모수(毛帥)는 절도(絶島)에 수년 동안 있으면서 실로 국왕 덕택으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계획성이 없는 무인(武人)이라서 탐욕스럽기만 하여 도둑떼를 길러내며 국왕의 나라에 무리한 요구를 함으로써 우리 나라에 수치를 끼치고 있습니다. 이에 황상께서 만리 밖을 밝게 내다보시고 나에게 상방검(尙方劍)을 빌려주시어 군중(軍中)에 나아가 그를 주벌토록 하셨습니다. 이는 대체로 섬에 있는 수만 명의 목숨을 보전케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멀리 있는 속국의 화란을 해소시켜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니, 밝으신 천자의 깊으신 의도라 하겠습니다.

군대를 해도(海島)에 머물려 두고 멀리 국왕의 나라를 바라보기만 하면서 찾아뵐 수 없는 처지이기에 사자 한 명을 하집사(下執事)에게 보낼까도 생각했습니다만, 또 종자(從者)에게 공급하는 일로 번거로움을 끼쳐드릴까 염려되었습니다. 편지만 제대로 통하게 되면 서로 다른 곳에 있어도 마음이 같아질 것이니, 오직 국왕께서는 더욱 힘써 충성스럽고 곧은 마음을 다하시어 단숨에 이 적을 멸하심으로써 왕의 공적을 마무리짓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빛나고 빛나는 황령(皇靈)께서도 실로 아름답게 여기는 동시에 이를 힘입게 될 것입니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339면
  • 【분류】
    외교-명(明) / 군사-전쟁(戰爭) / 군사-군정(軍政)

  • [註 048]
    동이(東夷) : 청(淸)나라를 지칭함.
  • [註 049]
    봉시(封豕) : 모문룡(毛文龍)을 가리킴.
  • [註 050]
    병인 : 1626 인조 4년.
  • [註 051]
    행인(行人) : 외교관.

袁經略移帖曰:

欽命出鎭行邊督師天津等處軍務兵部尙書兼都察院右副都御史袁崇煥, 送帖于朝鮮國王。 往歲奏記掌故, 辱王之不遺葑菲, 惠示周行, 拳拳國恤, 則血氣者, 所不忘也。 今不侫, 再役于, 若於王有夙緣, 音徽所播, 如或覿之。 憶東夷肆虐, 罷我中原封豕, 荐食王疆。 雖寅、卯之役, 老酋自速其亡, 奴雛兩奪其魄, 而東望河山, 猶淹其域, 此所以撫膺雪涕, 不能以寢食遑者也。 皇天不弔, 奪憙宗皇帝, 亦先以讒歸, 損威不競, 實愧之, 豈亦王之所同軫也? 今天子神聖英武, 超越千古, 銳意中興, 亟欲殲玆小醜, 則以不肖識道, 故特詔起田間。 不能忘土, 其敢忘王之明德? 念行人往返, 海若淼淼, 且以島帥之貪戾, 重爲使者行李苦, 故特請改貢道於西寧, 俾得借芻秣之供, 以接王之風猷。 不憚拮据征繕, 積數年之精神, 進而圖之河東。 夫兵, 以氣勝, 以機動者也。 氣積平時, 機決呼吸, 一時之決, 百年之積爲之也。 王幸自積以待機決。 當執(橐)〔櫜〕 鞬, 與王東西掎角, 海陸竝進, 首尾合攻。 倘徼天之靈, 一鼓下之, 朝雪十二年之積憤, 而王國再控金湯, 王得無意乎? 帥歷年絶島, 寔藉王休, 以有今日, 而武人寡謀, 貪而養寇, 多求王國, 以貽疆域羞。 皇上明見萬里, 假尙方, 卽其軍中誅之。 蓋不獨全此數萬島人之命, 而所以紓屬國綏遐服者, 明天子有深意焉。 駐師海島, 遙望王國, 褰裳未能, 擬遣一介於下執事, 又恐煩從者之供給。 郵凾自通, 異地同心, 惟王益勉竭忠貞, 滅此朝食, 以終王之績。 赫赫皇靈, 寔嘉賴之。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339면
  • 【분류】
    외교-명(明) / 군사-전쟁(戰爭)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