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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18권, 인조 6년 3월 4일 을축 1번째기사 1628년 명 천계(天啓) 8년

임지후가 역모를 고변하자 관련인을 국문하다

유학(幼學) 임지후(任之後)가 정원에다 고변서를 올렸다. 이때 임지후의 삼형제가, 뜻을 펴지 못해 불궤(不軌)를 도모하는 무리들과 교분을 많이 맺어 그들이 역모를 도모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발각되려 하자 상변(上變)하였다. 그런데 진심은 숨긴 채 뜻을 펴지 못한 사람들을 거짓 끌어대어 공을 세워서 자신들은 벗어나려는 계책을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분해 하며 욕을 하였다. 그 고변서에,

"신이 영남을 오가면서 우연히 창녕(昌寧)에 사는 선비 이여익(李汝翊)을 만났었는데, 반정(反正) 후에 여익이 와서 말하기를 ‘나라에 큰일이 있다.’고 하고, 이어서 함께 가서 인성군(仁城君)을 만나보고는 역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광주(廣州)에 살고 있어서 흉도들의 얼굴에 대해서는 다 알지 못하며, 최시량(崔始量)을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이제 듣건대, 거사 날짜가 7일로 정하여졌다고 합니다. 김석부(金碩富)가 강도(江都)에 서찰을 주고받은 일과 최관(崔瓘)·조정(趙挺)·장세철(張世哲)·이첨(李憺)·조유도(趙有道) 등이 역모에 참여한 일에 대해서는 모두 인성군을 통하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사규(李士珪)가 역적들의 오주(五柱)를 점쳤다고 하였으며, 최시량은 ‘7일에 동소문 밖에서 기병하여 임금 주위에 있는 나쁜 사람들을 제거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울 것이다. 이어서 공신들을 모두 죽이고 광해군을 복위시킨 다음 인성군에게 전할 것인데, 도감군(都監軍)과 어영군(御營軍)이 내응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세한 것은 잘 모릅니다."

하였다. 상이 대신과 금부 당상 및 양사 장관을 명초하였다. 대신 이하가 빈청에 모여서 고발당한 자들을 잡아오기를 청하니, 상이 따랐다. 다음날 상이 대신과 추관 및 양사 장관을 인견하여 임지후의 옥사(獄事)의 상황에 대해 물어보고는 비로소 여러 죄수들을 신문하도록 명하였다. 전 참봉 이종충(李宗忠)이 공초하기를,

"지난해 12월에 구진(具縉)·이승종(李承宗)·윤흥원(尹興元) 등이 와서 ‘정월 25일에 거사하려고 하는데, 장자(長者)들도 많이 참여하였으니 성공하지 못할 리가 만무하다. 군사는 각자 20명씩 모집하기로 하였다. 밤을 틈타 성 안으로 들어가면 도감의 군사들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남한 산성의 흉서(兇書)에 대해서는, 임성지(任性之)에게서 나왔다고 합니다."

하였다. 전 참봉 박동기(朴東起)가 공초하기를,

"병인년 4월에 임경후(任慶後)와 함께 잤는데, 경후가 말하기를 ‘오늘날 시사(時事)가 이와 같아 전날에 한 차례 서울에다 격서를 던져 넣었는데 이는 내가 주도한 것이다. 광주 산성(廣州山城)에도 격서를 붙였는데, 이는 임유후가 지은 것이다.’ 하였습니다. 대개 흉서는 모두 임가(任哥)가 한 짓입니다."

하였다. 전 권관(權管) 심길원(沈吉元)은 공초하기를,

"일찍이 역적 이괄(李适)의 군관으로 있다가 안현(鞍峴) 전투026) 에서 패한 후 집으로 돌아가 종적을 감추고 있으면서 감히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금년 2월에 이종충이 글을 보내 부르기에 즉시 가서 만나보니, 말하기를 ‘너는 임지후를 알고 있는가? 장차 대사를 일으킬 것이다. 반정을 일으킬 때에도 군사가 겨우 2백여 명이었으니 지금의 일에 무슨 어려운 점이 있겠는가. 서울의 장자(長者)들은 지후가 모두 교분을 맺고 있다. 나는 현재 광주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출신(出身) 윤흥원(尹興元)은 공초하기를,

"이종충임덕후(任德後)가 지난 겨울부터 밤이면 만났다가 낮이면 흩어진다고 듣고는 언젠가 덕후의 집으로 가보니, 오현(吳玹) 등과 거병할 것을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덕후가 저에게 맹서를 시키기를 ‘죽더라도 절대로 누설하지 않는다.’ 하게 하였습니다. 덕후가 또 두 차례 윤계륜(尹繼倫)에게 글을 보내어 말하기를 ‘이 일은 계획해 온 지 오래 되었다. 죽더라도 같이 죽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역적의 격서(檄書)는 박동기(朴東起)가 짓고 이종충이 쓰고 오현이후강(李後崗) 등이 서로 더불어 전파하고 교대로 사람을 보내 몰래 서울로 들어가서 백성들을 현혹하는 말을 퍼트린 다음 호위가 조금 해이해진 틈을 타 난을 일으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흉서는, 임취정(任就正)이 지휘하고 임경후가 주도한 것입니다. 취정의 아들 임석후(任錫後)가 1월에 세 차례 이종충에게 글을 보내었는데, 그 글에 ‘일이 성공한 뒤에는 인성군을 추대할 것이다.’ 하였으며, 또 ‘모름지기 여러 차례 흉서를 던져 넣어 인심을 동요시켜야 한다. 인심이 동요한 다음에야 일이 성사될 수 있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공초에 관련된 오현·안대홍(安大弘)·고경성(高景星)·임취정·임석후 등은 불복하고 죽었다. 조정·장세철은 위리 안치하고 조유도(趙有道)는 배소로 다시 보내고, 조훈(趙塤)·조기(趙圻)·정광택(鄭光澤)·최관(崔瓘)·목서흠(睦敍欽)·목장흠(睦長欽)·목기선(睦嗜善) 등 20여 인은 방송하고, 최시량은 공초한 말이 기망(欺罔)에 관련된다고 하여 사형을 면하는 것으로 조율하도록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263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註 026]
    안현(鞍峴) 전투 : 이괄(李适)의 난 때, 이괄이 서울을 점령하고 선조의 열째 아들 흥안군(興安君) 이제(李瑅)를 추대한 다음 논공 행상을 하였는데, 그날 밤 패잔병을 정돈하여 추격해 온 장만(張晩)의 군사와 안현(鞍峴:서대문 밖 길마재)에서 싸워 크게 패하였다. 이에 이괄은 이천(利川)으로 도망갔다가 그의 부하인 기익헌(奇益獻)·이수백(李守白) 등에게 살해당하여 반란이 진압되었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권24 인조조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乙丑/幼學任之後, 上告變書于政院。 是時, 任之後三兄弟, 多結失志不軌之徒, 與知逆謀。 及將發覺, 始乃上變, 而諱其腹心, 誣引失志之人, 欲售已功, 以爲自免之計, 人皆憤罵。 其告變書曰:

臣往來嶺南時, 偶與昌寧士人李汝翊相見。 反正後汝翊來言: "國有大事" 云。 仍與同見仁城, 預知逆謀, 而身在廣州, 兇徒面目, 不能盡知, 而崔始量累度相見矣。 今聞師期已定於初七日云。 至於金碩富江都書札往復之事及崔瓘趙挺張世哲李憺趙有道等參謀之事, 皆因仁城君聞之, 而李士珪推卜諸賊五柱云。 始量言: "初七日, 起兵於東小門外, 以除君側之惡爲名, 盡誅功臣, 仍奉光海復位, 傳于仁城, 都監軍及御營軍爲內應" 云, 而未能詳知矣。

上命招大臣、禁府堂上、兩司長官。 大臣以下來會賓廳, 請拿來被告人, 上從之。 翌日, 上引見大臣、推官、兩司長官, 問任之後等獄情, 始命訊問諸囚。 前參奉李宗忠供稱: "去年十二月, 具溍李承宗尹興元等來言: ‘正月二十五日, 將擧大事, 而長者亦多參知, 萬無不成之理。 軍士則各募二十名, 乘夜入城, 則都監軍亦無奈何’ 云。 至於南漢山城兇書, 出於任性之云矣。" 前參奉朴東起供稱: "丙寅四月, 與任慶後同宿, 慶後曰: ‘近日時事如此, 前日一番投檄於京中, 而吾自主張, 廣州山城亦投檄書, 此則任有後所作。 大槪兇書, 皆出於任哥’云。" 前權管沈吉元供稱: "曾以賊軍官, 鞍峴戰敗後, 秘迹還家, 不敢見人。 今年二月, 李宗忠以書招之, 吾卽往見則曰: ‘汝知任之後乎? 將擧大事。 反正時軍士, 亦僅二百餘人, 今日之事, 有何難乎? 京中長者, 則之後皆交結, 吾則方募廣州人’ 云矣。" 出身尹興元供稱: "聞李宗忠任德後自去冬晝散夜聚, 嘗往德後家, 則與吳玹等同坐, 相議擧兵, 而德後, 使吾爲誓曰: ‘雖死, 愼無泄漏’ 云。 德後又再度送書於尹繼倫曰: ‘此事經營已久, 死亦同死’ 云矣。 兇檄則朴東起所搆, 李宗忠所書, 吳玹李後崗等相與傳播, 迭相送人, 潛入京中, 造言惑衆, 待扈衛稍解然後作亂云。 兇書則任就正指揮, 而任慶後主張。 就正之子錫後, 一月三度通書於宗忠, 其書曰: ‘事成之後, 推戴仁城。’ 且言: ‘必須屢投凶書, 騷動人心。 人心動搖然後, 事乃可成’ 云矣。" 辭連人吳玹安大弘高景星任就正任錫後等, 不服而斃; 趙挺張世哲, 圍籬安置; 趙有道, 還發配所; 趙塤趙圻鄭光澤崔瓘睦叙欽睦長欽睦嗜善等二十餘人, 放送; 崔始量, 以所供之辭, 涉於欺罔, 命減死照律。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263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