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금 장수가 조선 군사의 공격을 받았다고 글을 보내니, 속히 철수하라는 뜻으로 답하다
적장이 서신을 보냈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독두둔리(禿頭屯里)의 우리 발아인(撥兒人) 네 사람이 해주 병마(兵馬)에게 죽음을 당하였고, 또 황주 영병군(領兵軍)에게 우리 발아인이 대적하다가 다섯 사람이 상처를 입고 말 두 마리가 죽었습니다. 또 평양에 놓아 먹이던 10마리 낙타와 1천여 마리 말과 말을 보는 병정(兵丁) 및 귀순한 고려인(高麗人)이 또 잡혀갔습니다. 그 뒤에 낙타와 말을 요구하였는데 지급해주지 아니하였고, 새로 온 서쪽 오랑캐 3만 5천 명이 의주(義州) 등지에 주둔했는데 앞의 사정을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영제(令弟)가 올 때에 나는 반드시 화친이 이루어지리라고 여겨, 차관 4명에게 병정 40명을 데리고 의주로 가게 했는데 평양 도당(平壤都堂)이 안주(安州)에 가서 죽였습니다.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 양국이 화친을 완성하였기에 우리 사람 8명을 보내 한(汗)에게 보고하게 했는데 또 평양 도당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유 부장(劉副將) 낭 참장(郞參將)이 국왕과 함께 강화하고 맹약한 것을 한에게 보고하러 가다가 또 평양 도당에게 추격을 당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와 국왕은 한마음으로 좋게 지내고 있는데 다만 변방의 도당과 군사를 거느린 장관들이 일을 내어 양국의 일을 무너지게 하니, 정상이 매우 밉습니다. 국왕은 살피소서."
하였는데, 답서에 이르기를,
"보내온 편지를 받고 그 뜻을 모두 잘 알았습니다. 귀국의 병정이 각처에서 죽음을 당하였다고 하는데 이 일은 조정에서는 모르는 일이며 또한 장령들이 싸움을 하고 싶어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귀국의 유기(游騎)가 곳곳에 나다니며 노략질을 하여 남의 부모를 해치고 남의 처자를 빼앗아가므로 촌민들이 그 분함을 견디지 못하고 서로 모여 단속을 하고 제각기 원수를 갚은 것이니, 이것 역시 인정상 필연적인 것입니다.
평양의 말과 낙타의 일에 대해서는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설사 그런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이는 관서 지방의 난민들의 소행일 것입니다. 귀국의 병마가 오랫동안 황해도 부근에 주둔하고 있어 평안도와는 소식이 통하지 아니하고 장령과 수령들이 모두 궁벽한 곳에 피해 있는데 어느 겨를에 말과 낙타를 탈취했겠습니까. 설사 이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모두 맹약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니 지금 제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나라는 신의를 존중하는 나라인데, 하늘에 고하고 맹약을 하고나서 어찌 조그마한 이익을 탐하여 커다란 신의를 잃을 리가 있겠습니까. 단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귀국이 군대를 철수하던 날 마구잡이로 약탈을 하여 바닷가와 궁벽한 곳이 모두 침략을 받았으니, 이러한 사실로 보건대 누가 맹약을 저버린 것입니까. 어찌 하늘이 높다하여 내려 살피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귀국에 기대했던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맹약을 이미 맺었으니 세세한 일로 다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원컨대 귀국은 각처에서 사로잡은 장령과 백성들을 모두 쇄환하고 속히 압록강을 건너가서, 각기 봉강(封疆)을 지키자던 맹약을 준수해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184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賊將送書曰:
禿頭屯里我撥兒人四個, 被海州兵馬殺了。 又黃州領兵軍, 我撥兒人對戰, 五個人被傷, 殺死二個 馬。 又平壤放的十個駱駝、一千多馬、看馬兵丁及歸順高麗人, 又被孥戮。 繼後要駝、馬, 又不肯給。 新來西夷三萬五千, 留在義州等地, 不要前來事情。 令弟來時, 我以爲必和, 差官四員, 帶兵丁四十名, 往義州, 平壤都堂, 赶至安州殺了。 未知的實, 爲因兩國和完, 差我人八個, 啓報汗上, 又被平壤都堂殺了。 劉副將、郞參將, 同國王講和、誓盟, 啓報汗上, 又被平壤都堂赶去, 存亡未審。 我與國王, 一心尋好, 只是邊上都堂, 領兵將官等生事, 故壞兩國事, 情極可惡。 望國王査審。
答書曰:
書來具悉示意。 貴國兵丁, 被各處殺傷, 此非朝家所知, 亦非諸將領, 有意於交戰而然也。 只緣貴國游騎, 各出搶掠害人父母, 奪人妻子, 村民等不勝其憤, 相聚團束, 各報私讎, 此亦人情之所必至也。 平壤馬、駝事, 未曉其故。 就令有之, 是關西亂民等所爲。 貴國兵馬, 久駐黃海地面, 平安一路, 聲聞不通, 將領、守宰, 皆避在僻遠之地, 何暇搶取馬、駝乎? 設有是事, 皆在和約未定之前, 今宜不須提起。 我國以信義爲重。 告天立誓之後, 豈肯貪小利, 而失大信乎? 斷不然, 斷不然。 但貴國回兵之日, 大肆劫掠, 傍海窮僻之處, 兵鋒遍及。 以此觀之, 孰爲負約乎? 豈謂上天高遠, 不能降鑑耶? 甚非所望於貴國也。 然和好旣完, 不當爭競細故。 願貴國, 各處擄獲將領及民人, 悉皆刷還, 速渡鴨江, 以守各守封疆之約, 幸甚幸甚。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184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