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실록15권, 인조 5년 3월 9일 병자 2/3 기사 / 1627년 명 천계(天啓) 7년
비국이 화친 뒤에도 청군이 약탈하고 있으므로 협공하기를 청하다
국역
비국이 아뢰기를,
"모욕을 참고 강화한 것은 백성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맹약을 이룬 뒤에도 적들이 해서(海西)에 그대로 머물고 있으면서 군사를 나누어 아무 곳이든 약탈을 해대어 해서 일대가 이미 공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패강(浿江)을 건너 간다 하더라도 필시 오래 머물면서 각읍을 마구 침략할 것이니, 전에 아뢴 계사에 의해 서신 한 통을 써보내어 힐문하는 것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리고 적병이 우리 나라에 방비가 없는 줄을 알고 사방으로 길을 나누어 다니면서 멋대로 침략을 한다면, 수를 써서 그들을 제압할 대책이 어찌 없겠습니까. 백성들의 한결같은 분노를 인하여 한두 개의 진을 초살하고 나면 적의 기세는 조금 꺾일 것이고 아군의 사기는 조금 진작될 것입니다. 이어 정충신으로 하여금 후원병을 거느리고 앞뒤에서 협공하게 한다면 일이 이루어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군사의 일은 멀리서 헤아리기 어려우니 전적으로 장수가 기미를 살펴 처치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뜻으로 김기종에게 하유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아뢴 대로 하라. 맹약과 화친을 맺은 후에 초살하라고 명하는 것은 타당치 않은 듯하니 이 한 가지 일은 행회하지 말라."
하였다.
원문
인조 5년 (1627) 3월 9일
인조실록15권, 인조 5년 3월 9일 병자 2/3 기사 / 1627년 명 천계(天啓) 7년
비국이 화친 뒤에도 청군이 약탈하고 있으므로 협공하기를 청하다
국역
비국이 아뢰기를,
"모욕을 참고 강화한 것은 백성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맹약을 이룬 뒤에도 적들이 해서(海西)에 그대로 머물고 있으면서 군사를 나누어 아무 곳이든 약탈을 해대어 해서 일대가 이미 공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패강(浿江)을 건너 간다 하더라도 필시 오래 머물면서 각읍을 마구 침략할 것이니, 전에 아뢴 계사에 의해 서신 한 통을 써보내어 힐문하는 것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리고 적병이 우리 나라에 방비가 없는 줄을 알고 사방으로 길을 나누어 다니면서 멋대로 침략을 한다면, 수를 써서 그들을 제압할 대책이 어찌 없겠습니까. 백성들의 한결같은 분노를 인하여 한두 개의 진을 초살하고 나면 적의 기세는 조금 꺾일 것이고 아군의 사기는 조금 진작될 것입니다. 이어 정충신으로 하여금 후원병을 거느리고 앞뒤에서 협공하게 한다면 일이 이루어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군사의 일은 멀리서 헤아리기 어려우니 전적으로 장수가 기미를 살펴 처치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뜻으로 김기종에게 하유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아뢴 대로 하라. 맹약과 화친을 맺은 후에 초살하라고 명하는 것은 타당치 않은 듯하니 이 한 가지 일은 행회하지 말라."
하였다.
원문
원본
인조 5년 (1627) 3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