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만의 글로 답하도록 하고, 호패의 성책을 불태우다
상이 대신·비국·양사 장관을 인견하였다. 이원익이 아뢰기를,
"이들 적병이 오랫동안 지방에 웅거하여 화친을 하자고 위협하니 이번의 이 흉서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적의 서신을 보자마자 곧바로 답신을 해 보낸다면 반드시 우리에게 겁을 낸다 할 것이다."
하였다. 신흠이 아뢰기를,
"명(明)나라에서도 이미 화친을 허락하였으니 우리만 어찌 홀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언이(彦伊)가 이미 나온 것을 볼 때 강홍립이 금나라의 앞잡이가 된 것이 분명하다."
하였다. 이원익이 아뢰기를,
"강홍립의 노복이 전에부터 왕래하였다 하나 지금 사서(私書)가 없으니 그 연유를 모르겠습니다."
하고, 이귀가 아뢰기를,
"적병이 만일 안주와 평양에 진격한다면 사태는 어떻게 수습할 수 없게 될 것이니 마땅히 답서를 만들어서 강숙(姜璛) 편에 부쳐서 보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시험삼아 감사로 하여금 사적으로 회답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이원익이 아뢰기를,
"이귀의 말이 진실로 소견이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적들이 우리와 중원(中原)을 원수로 여긴 지가 오래이다. 진실로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 답서를 보낸다 해서 저들이 어찌 이로 인해서 떠나고 머물고 하겠는가."
하였다. 최명길이 아뢰기를,
"이번의 이 호서(胡書)는 바로 적장의 글이고 청나라 한(汗)의 서신이 아닙니다. 이제 마땅히 장만의 글로써 답하기를 ‘우리 나라가 명(明)나라를 섬겨온 지 2백여 년이 되는데 명나라가 이미 화친을 허락하였으니 우리가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무고하게 군사를 일으켜 군민(軍民)을 도륙하니 성 아래에서의 위협적인 맹약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마땅히 명나라에 주문하겠다.’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적의 글에 이미 ‘국왕에게 서신을 보낸다.’ 말하였는데 장만의 글로써 답한다면 분노를 유발시키는 일이 없겠는가?"
하였다. 최명길이 아뢰기를,
"박입(朴雴)과 강숙 두 사람을 일시에 들여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하고, 신경진이 아뢰기를,
"마땅히 그 노자(奴子)로 하여금 입송하게 하여야 합니다."
하였다. 홍서봉이 아뢰기를,
"국서를 노예에게 주어 보낼 수는 없습니다."
하니, 상이 그대로 따랐다. 상이 호패의 성책(成冊)을 불태우라고 명하였다. 그때 호패청이 그 문서를 장차 강도로 운송해 들여가기 위하여 배에 내다 두었기 때문에 강가에서 불살랐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163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군사-통신(通信) / 외교-야(野) / 호구-호적(戶籍)
○上引見大臣、備局、兩司長官。 李元翼曰: "此賊久據地方, 劫以和好。 今此凶書, 何以處之?" 上曰: "初見賊書, 卽爲答送, 必以我爲怯。" 申欽曰: "中朝旣已許和, 則我何獨不然?" 上曰: "彦伊旣出來, 弘立之爲虜用明矣。" 元翼曰: "弘立奴子, 自前往來云, 而今無私書, 未知其由。" 李貴曰: "賊若進迫安、平, 則事無奈何, 宜作答書, 付諸姜璛以送。" 上曰: "試令監司, 私自回答可也。" 元翼曰: "李貴之言, 誠有所見。" 上曰: "此賊, 讐我、中原久矣。 固不可易言, 而雖送答書, 彼豈以此而去留乎?" 崔鳴吉曰: "今此胡書, 乃賊將書, 非國汗書也。 今宜以張晩書答之曰: ‘我國臣事皇朝二百餘年。 天朝旣已許和, 則我何不從? 但無故興兵, 屠戮軍民, 城下劫盟, 雖死不從。 當奏聞天朝’ 云, 如何?" 上曰: "賊書旣稱送書于國王, 而以張晩書答之, 則無發怒之端耶?" 鳴吉曰: "雴、璛二人, 不須一時入送。" 申景禛曰: "宜使其奴子入送。" 洪瑞鳳曰: "國書, 不可以奴隷入送矣。" 上從之。 上命燒號牌成冊。 時, 號牌廳以其文書, 將運入江都, 出置船上, 故焚于江頭。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34책 16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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