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실에서 왕의 건강을 걱정하다
종실(宗室) 등이 아뢰기를,
"제왕의 효(孝)는 필부와는 다른데, 어찌 구구하게 상례(常例)를 따라 예경(禮經)을 지키는 것만으로 그 도를 다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임금의 한 몸은 종사가 의지하고, 신민의 생명이 매어있는 바입니다. 따라서 임금의 몸이 편안하면 종사와 신민도 이에 힘입어 편안하고 임금의 몸이 위태하면 종사과 신민도 따라서 위태해지는 법입니다. 돌아보건대 그 책임이 어찌 중차대하지 않습니까. 예로부터 명철한 임금들이 상을 당했을 때 감히 상례(常例)를 완전히 따르지 않았던 것이 어찌 모두 성효(誠孝)가 천박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진정 효를 행하는 도는 실제로 종사와 신민을 편안케 하는 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는 지난 겨울 시질(侍疾)하시면서부터 풍한(風寒)을 무릅쓰고 찬 곳에 오래 계셨으니, 망극한 슬픔 가운데 계시어 점점 몸이 상해가는 것을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셨더라도 상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한 가지만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대간(大艱)을 당하신 뒤에는 정도에 지나치게 애통해 하시어 옥체가 수척해지고 용안이 검게 변하셨는데, 음성이 변한 한 가지 증상만 봐도 결코 가볍지 않으니 앞으로 닥칠 근심이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 염려됩니다. 무릇 상중에 생긴 병을 다스리기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모르는 사이에 원기가 소진되면서 별로 눈앞에 위급한 증세가 나타나지 않다가 하루 아침에 병이 발작할 경우 갖가지 처방을 하고 약을 써도 치료할 여지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점이 바로 신들이 전하를 위해 크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제왕이 거상하는 것은 일반 백성들과는 크게 다릅니다. 하루에 만기(萬機)를 처결하느라 끝없이 응대하다 보면 기력이 감당할 수 없어 질병이 쉽게 발생하는데, 이는 설명이 필요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신들은 외람되이 종친의 대열에 끼어 의리상 휴척(休戚)을 같이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예에 어긋나고 상도에 위배되는 일이라면 전하께서 나라를 다스리는 이때를 당하여 감히 우러러 천총(天聰)을 번거롭게 하면서 스스로 기망(欺罔)하는 죄에 빠지겠습니까. 삼가 전하께서는 위로 종사의 막중함을 생각하시고, 속히 자전의 뜻을 받들어 권도를 따르심으로써 신민의 소망을 위로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근일 조정 신하들이 예제를 돌보지 않고 매일 떠들어 나의 슬픔을 더하게 하니, 임금을 예로 섬기는 도가 아니다. 그런데 경들이 지금 또 그들을 본받아 이와 같이 번거롭게 하니 또한 놀랍지 아니한가. 나는 조금도 질병이 없으니 경들은 염려하지 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124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
○宗室等啓曰: "帝王之孝, 自與匹夫不同, 豈區區循常、守經之所能盡其道哉? 人主一身, 宗社所托, 臣民所係。 是以人主之身安, 則宗社、臣民, 亦賴而安; 人主之身危, 則 宗社、臣民, 亦從而危, 顧其爲責, 豈不重且大歟? 自古明王、誼辟, 逢喪制, 而不敢盡從常例者, 豈皆誠孝淺薄而然哉? 良由爲孝之道, 實在於安宗社、臣民之爲重故也。 殿下自去冬侍疾以來, 觸冒風寒, 長處冷地。 雖在憂遑罔極之中, 不自覺其受傷之漸, 而其所以致傷之由, 則不止一端而已。 及遭大艱之後, 哀毁過制, 玉體瘦削, 龍顔深墨, 失音一症, 固已非輕, 日後之憂, 恐不止此。 凡素病之所謂難治者, 以其潛銷暗鑠, 別無目前危敗之可見, 而一朝病發, 則雖千方百藥, 固無可施之地。 此臣等所以爲殿下大懼者也。 況帝王執喪, 與閭巷之人, 大相懸殊, 一日萬幾, 酬酢無窮。 氣力之難堪, 疾病之易作, 不待辨說而明矣。 臣等忝在宗隣, 義同休戚。 如有一毫違禮、背經之事, 則當此孝理之日, 何敢仰煩天聽, 自陷於欺罔之誅哉? 伏願殿下, 上念宗社之重, 亟遵慈殿之旨, 俯從權制之請, 以慰臣民之望。" 答曰: "近日廷臣, 不顧禮制, 逐日强聒, 增予哀疚, 甚非事君以禮之道也。 卿等今又效彼, 如是來煩, 不亦驚異哉? 予少無疾病, 諸卿勿以爲慮。"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34책 124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