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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8권, 인조 3년 3월 11일 기미 1번째기사 1625년 명 천계(天啓) 5년

최명길·오윤겸·이준·신흠이 변법에 관하여 논의하다

상이 조강에 자정전에서 《맹자》를 강하였다. 참찬관 최명길(崔鳴吉)이 아뢰기를,

"옛말에 ‘어진 마음과 어질다는 소문이 있어도 민생들이 혜택을 못 입는 것은 선왕(先王)의 정사를 행하지 않아서이다.’라고 했는데, 우리 나라의 법제가 그러하여 태평한 다스림을 바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오늘날의 일은 체(體)만 있고 용(用)은 없습니다. 그래서 임금의 덕은 훌륭해도 외부에서 하는 일은 볼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하니, 오윤겸(吳允謙)이 아뢰기를,

"최명길의 ‘체만 있고 용은 없다.’는 말은 타당하지 못합니다. 체가 있다면 마땅히 용이 있는 법인데, 어찌 용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성상께서 먼저 근본을 세우시고서 신하를 잘 임용하신다면 정령과 교화가 저절로 밝아질 것입니다."

하였다. 사간 이준(李埈)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의 법은 오래되면 폐단이 생겨 지킬 만한 법이 없어집니다."

하니, 최명길이 아뢰기를,

"이준의 말이 옳습니다. 법을 고치지 않으면 나랏일을 해 나갈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때 최명길이 폐해가 있는 법을 고치고 싶은 뜻이 있었으나, 위에서 윤허하지 않고 여러 노신들도 고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의 뜻을 이루지 못하여 이렇게 진계한 것이다. 우의정 신흠이 아뢰기를,

"최명길이준의 말이 진실로 그렇습니다. 우리 나라의 《대전(大典)》은 조리가 분명하나 나라를 세운 지 오래되어서 수백 년이 지났기에 지금은 대강(大綱)만 있고 절목은 무너져, 사대부들 중에도 이 법을 준수하는 자가 없습니다. 오늘날 폐단이 있는 법을 성상께서 개혁하셔야 하는데, 법을 고치려면 인재를 얻는 것이 근본이 됩니다. 신과 같은 자가 어찌 감히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고쳐야만 할 것이 어떤 법인가?"

하였다. 신흠이 아뢰기를,

"어느 법은 혁파해야 하고 어느 법은 두어야 할지 신이 갑자기 진달할 수는 없습니다마는 오래되어 폐단이 생긴 법이나 예와 지금의 사정이 달라진 것은 고쳐야 합니다."

하고, 최명길이 아뢰기를,

"무릇 법은 간략하게 한 다음에야 시행될 수 있고, 고친 다음에는 군신 상하가 굳게 지켜야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조종조에 만들 때 매우 잘 만들었는데도 뒷사람들이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서 마침내 시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기니, 매우 한탄스럽다. 대개 조종께서 만든 법을 갑자기 고칠 수 없다."

하니, 최명길이 아뢰기를,

"정자(程子)가 치도를 논할 적에 ‘조금 고치면 조금 유익하고 크게 고치면 크게 유익하다.’고 했으니, 이는 대개 법을 고치는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 때문에 다스려진 법을 고치면 어지러워지고 어지러워진 법을 고치면 다스려지는 것입니다. 선정신(先正臣) 이이(李珥)가 선왕조 때 은총과 대우를 가장 많이 받으면서 경장(更張)하려고 하다가 조정이 허락하지 않아 그의 뜻을 실행해 보지 못하고 죽었는데, 선왕께서 말년에 자못 이이가 한 말을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이번에 성상께서 분부하시기를 ‘조종조의 법은 갑자기 고칠 수 없다.’고 하셨는데, 이는 매우 불가합니다. 선조께서는 유성룡과 함께 도감군(都監軍)·속오군(束伍軍)을 창설하셨으니, 이는 대개 군정이 난잡한 것을 답답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이 법은 조종조의 법이 아닌데도 선조께서는 시행하셨습니다."

하고, 오윤겸이 아뢰기를,

"법이 오래되어 폐단이 생기면 그 중에서 심한 것을 고치는 것도 한 가지 방도이기는 하지만, 변경하는 일은 신중하게 하여야 합니다. 신의 생각에는 인재를 얻어서 맡겨 조종조의 법을 준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하였다. 진강이 끝나고 각사의 윤대관(輪對官)을 불러 모았다.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687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사법-법제(法制)

○己未/上朝講《孟子》資政殿。 參贊官崔鳴吉曰: "古語曰: ‘雖有仁心仁聞, 而民不被其澤者, 不行先王之政也,’ 我國法制如此, 難望其治平。 況當今之事, 可謂有體而無用矣。 君德則雖盛, 而外間之事, 無足可觀。" 知事吳允謙曰: "鳴吉所謂有體而無用, 殊未妥也。 若有體則當有用, 豈無用乎? 自上先立其本, 任得其臣, 則政化自明矣。" 司諫李埈曰: "我國法久弊生, 無可守之法矣。" 鳴吉曰: "李埈之言是矣。 不改法則無以爲國。" 時鳴吉有意改易弊法, 而自上不許, 諸老臣亦不欲, 故未遂其志, 有此陳啓。 右議政申欽曰: "崔鳴吉李埈之言誠然矣。 我國大典, 條理井井, 而立國旣久, 已閱數百年。 今則只有大綱, 而節目已壤, 士大夫間, 未聞遵守此法者也。 今之弊法, 自上改革可也, 如欲改法, 則得人爲本, 如臣者何敢當也。" 上曰: "當改者何法耶?" 申欽曰: "何法可罷, 何法可存, 臣不得卒然陳達, 而或法久而弊生, 或古今之異宜者, 可以改之。" 鳴吉曰: "凡法簡約然後可行, 旣改之後, 君臣上下, 固守爲宜。" 上曰: "祖宗朝制作甚美, 而後之人不得守之, 終以爲難行之道, 甚可嘆也。 大槪祖宗之法, 不可卒變也。" 鳴吉曰: "程子論治道曰: ‘小變則小益, 大變則大益,’ 蓋爲變法而言也。 是以變其治者爲亂, 變其亂者爲治, 先正臣李珥在先王朝, 最承恩遇, 欲行更張之道, 而朝廷不許, 故不得行其志而歿, 先王末年, 頗思李珥之言云。 今者自上敎曰: ‘祖宗之法, 不可卒變’, 此甚不可也。 宣祖則與柳成龍, 創設都監軍、束伍軍, 蓋悶其軍政之亂也。 此法非祖宗之法, 而宣祖則行之。" 允謙曰: "法久弊生則改其甚者, 亦一道也, 而大槪變更之事, 不可不愼。 臣意以爲得人以任, 遵行祖宗之法可也。" 講罷, 召見各司輪對官。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687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사법-법제(法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