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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8권, 인조 3년 2월 7일 병술 1번째기사 1625년 명 천계(天啓) 5년

이원익이 대동법 혁파를 건의하고, 심열이 강원도에는 계속 존속시키자고 건의하다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이 차자를 올려 대동법(大同法)을 속히 혁파할 것을 청하였는데, 그 차자에,

"신이 조정에 있어 온 이래 중외(中外)의 폐단이 대부분 부역(賦役)이 균등하지 못하고 멋대로 방납(防納)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래서 대동법을 신이 실제로 처음 착안하여 제신(諸臣)들과 뜻을 결정한 뒤 먼저 경기에서 시험해 보았는데, 몇 년을 시행해 보니 자못 효과가 있기에 강원도에도 병행하려 하다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반정 초에 부름을 받고 올라와 삼가 보건대 성명께서 진실로 백성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간절하시기에, 신은 이 법을 먼저 강원도에 시행하고 이어 다른 도에도 적용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백성의 병폐를 제거하여 만분의 일이라도 성상의 뜻에 보답하려고 했는데, 처음 의정(議定)할 당시에 수재와 한재가 잇따라 해마다 크게 흉년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휴가 중이면서도 깊이 염려되기에 동료에게 통지하여 계달하게 하고 그 뒤에 또 차자를 올려 다시 의논하여 처리하기를 청했는데 상께서 다시 의논하는 것을 윤허하지 않으셨으므로 마침내 그대로 시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날 호남에서 잇따라 상소가 올라오고 중외의 민심이 대단히 불편하게 여기기에 신이 또 동료에게 통지하는 한편 명을 받들어 진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도록 시행하느냐 혁파하느냐의 여부가 불확실한 채 결말을 볼 기약이 없게 되었는데, 고쳐진 규례가 많고 호령도 많이 제한을 받으므로 먼 외방의 민정이 날이 갈수록 더욱 어긋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런 사정은 양호(兩湖)가 거의 비슷하나 호남이 더욱 심한데, 근심하고 한탄하며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어디고 할 것이 없이 모두 그러합니다. 국가에서 어떤 일을 실행하려면 먼저 민정을 잘 살펴야 하는데, 민정이 이러하니, 어찌 억지로 시행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본청(本廳)에 명하여 즉시 혁파하도록 하고, 이미 거둔 쌀과 베는 잘 조처하여 모두 민역(民役)의 대가(代價)로 충당하게 하여 중간에서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그러면 이보다 다행함이 없겠습니다."

하니, 상이 묘당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였다.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대동법에 대한 한 가지 일은 당초 부역을 균등하게 하여 민간에 편리하게 하려고 한 것인데, 일단 시행한 뒤로 중외의 민정이 대부분 불편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조정의 의논이 모두 혁파해야 마땅하다고 하였는데 영상이 또 이렇게 차자로 진달하였으니, 차자의 내용대로 혁파하여 민정에 순응해야 하겠습니다.

외방에 비록 받아들인 곳도 있고 아직 받아들이지 않은 곳도 있으며 조정에 바쳤고 아직 바치지 않은 곳도 있지만, 이미 상납한 것은 호조로 하여금 거두어 저장하여 공물(貢物)의 대가로 지급하게 하고, 본 고을에서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곳과 이미 받아 놓고도 상납하지 못한 곳은 본도의 감사로 하여금 명백하게 조사해서 한결같이 해조의 분부에 따라 시행하게 함으로써 중간에서 소비해 버리는 폐단이 없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강원도의 경우는 민정이 모두 편하게 여겨 혹시라도 혁파할까 두려워한다고 하니, 이 도만은 경기 선혜청(京畿宣惠廳)에 소속시켜 똑같이 시행하게 하는 것이 마땅할 듯 합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관동(關東)의 민정이 이 법을 편리하게 여긴다면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자세히 헤아려 처리하지 않을 수 없으니 다시 해조로 하여금 헤아려 처리하게 하라."

하였다. 호조 판서 심열(沈悅)이 회계하기를,

"신이 강원도 공물의 원수(元數)와 전결(田結)의 총액을 계산해 보건대 1결당 쌀 16두(斗)씩 받으면 각종 공물 값을 충당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밖에 내의원(內醫院)의 약재(藥材) 및 본 고을의 경상비, 아록(衙祿) 및 인부(人夫)와 쇄마(刷馬) 등의 역이 있습니다. 이러한데도 대동법을 시행하는 것을 즐겁게 여긴다면 그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니, 상이 본도 감사로 하여금 민정을 탐문해 보도록 하였다. 감사가 백성이 모두 시행을 원한다고 계문하니, 혁파하지 말도록 명하는 동시에 예전대로 호조가 겸하여 관장하도록 하고 선혜청에 소속시키지 말도록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67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丙戌/領議政李元翼上箚, 請亟罷大同之法。 其箚曰:

臣立朝以來, 目見中外之弊, 多在於賦役不均, 防納恣行。 大同之規, 臣實首事, 與諸臣決意, 先試於京畿,而行之數年, 頗有其效, 欲竝行於江原而未及焉。 反正之初, 承召上來, 伏見聖明, 誠切保民, 臣欲以此規, 先行於江原, 仍及他道, 以祛一分民瘼, 以答聖意之萬一, 而議定之初, 水旱連仍, 歲將大無。 臣在告中, 深以爲慮, 通于同僚, 使之啓達。 後又上箚, 請更議處, 而自上不許更議, 仍遂行之。 頃日湖疏沓至, 中外民情, 大以爲不便, 臣又通於同僚, 又承命陳達, 而至於今日, 行罷未的, 結末未明, 規例多更, 號令多掣, 遠外民情, 愈久而愈拂。 兩湖同然, 而湖南爲甚, 愁嘆騷屑, 比比皆是。 國家作事, 當先察民情, 而民情如此, 豈可抑勒而行之? 乞命本廳, 登時停罷, 其所收米布, 善爲區處, 悉充民役之價, 毋使中間浪消, 不勝幸甚。

上令廟堂議處, 備邊司回啓曰: "大同一事, 初欲均役便民, 而旣設之後, 中名民情, 不便者多。 故朝議皆以爲當罷。 又領相陳箚如此, 當依箚停罷, 以順民情。 外方雖有捧未捧納未納之處, 而已上納者, 着令戶曹收貯, 以給貢物之價, 在本官未捧者及已捧而未上納者, 令本道監司, 明白査覈, 一聽該曹分付施行, 俾無中間花消之弊。 至於江原道, 民情皆以爲便, 猶恐或罷云, 此一道似當合於京畿宣惠廳, 一體行之。" 答曰: "依啓。 關東民情, 若以此法爲便, 則仍行可也。 然不可不商度處之, 更令該曹量處。" 戶曹判書沈悅回啓: "以爲臣將江原道貢物元數及其田結, 通融計價, 每一結捧米十六斗, 則諸船貢物之價, 可以充給, 而其外又有內醫院藥材及本邑公需、衙祿、人夫、刷馬等役, 如是而猶且樂爲, 則可以仍行。" 上令本道監司, 詢問民情。 監司以民皆願行啓聞, 乃命勿罷, 仍令戶曹兼管, 不合於宣惠廳。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33책 67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