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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5권, 인조 2년 3월 14일 무진 1번째기사 1624년 명 천계(天啓) 4년

연안 부사 남이흥 안주 목사 정충신과 함께 오랑캐의 방어 등에 대해 의논하다

상이 자정전(資政殿)에 나아가 연안 부사(延安府使) 남이흥(南以興), 안주 목사(安州牧使) 정충신(鄭忠信)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역전한 장사(將士)를 사핵(査覈)하는 일에 과연 빠뜨린 사람이 없는가?"

하니, 남이흥이 대답하기를,

"별로 빠뜨린 사람이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들은 오랑캐의 정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랑캐가 기세를 몰아 쳐들어 온다면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니, 정충신이 아뢰기를,

"신은 오랑캐의 소굴에 출입하였으므로 적의 정세를 잘 알고 있는데, 저들은 많고 우리는 적어서 대적할 수 없을 뿐더러, 철기(鐵騎)로 충돌해 오면 야전(野戰)으로 맞서 싸울 수 없고 오직 성을 지켜야만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남이흥이 아뢰기를,

"금년에는 남방의 군사를 징발하지 않았으므로 변장(邊將)이 군사가 적은 것을 걱정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군사가 적더라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은 장수에게 달려 있다. 지킬 수 있으면 지키고 싸울 수 있으면 싸워야 하는 것이다. 싸우기만 해서도 안 되고 지키기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요는 임기응변하기에 달려 있다. 지키기만 하고 나가 싸우지 않으면 쳐들어오는 적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안주의 군사는 그 수가 얼마나 되는가?"

하니, 정충신이 아뢰기를,

"겨우 2천여 인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전에 듣건대 6천∼7천은 된다고 하였는데, 지금 어찌하여 그처럼 적은가? 그 성은 얼마의 군사가 있으면 지킬 수 있겠는가?"

하니, 정충신이 아뢰기를,

"3천∼4천이 있으면 지킬 수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성의 형세가 가장 좋다고 하던데, 그러한가?"

하니, 정충신이 아뢰기를,

"성 밖에 천연의 참호인 큰 강이 있으니, 험조한 곳을 차지한 형세라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강에 얼음이 얼면 어찌하겠는가?"

하니, 정충신이 아뢰기를,

"겨울에는 또한 빙성(冰城)을 설치하여 적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남이흥에게 이르기를,

"연안도 성을 지키는 곳인데, 경은 어떻게 수어(守禦)하겠는가?"

하니, 남이흥이 아뢰기를,

"임진년 이후로 전혀 수선하지 않아서 성문이 무너지고 옛 우물이 모두 못 쓰게 되었습니다. 신은 성을 보수하고 우물을 파려고 하는데 백성의 힘이 고갈되어 일을 시작하기 어렵습니다."

하였다. 상이 정충신에게 이르기를,

"전에 오랑캐에게 갔을 때 당시 사정은 어떠하고 그들의 군사는 얼마나 되던가?"

하니, 정충신이 아뢰기를,

"병마(兵馬)가 정예롭고 강성하여 참으로 대적하기 어려운 적이었습니다. 군사가 얼마쯤 되는지 상세히 알 수 없었으나, 팔부 대인(八部大人)이 있다는 말을 들었고 또 4백 명을 1초(哨)로 한다는 말이 있으니 대략 9만여 명은 될 것입니다. 이른바 장갑군(長甲軍)·중갑군(重甲軍)이란 것이 각각 1백 인으로서 모두 수은갑(水銀甲)을 입었는데 따로 한 초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씩씩하고 용맹한 자를 따로 뽑은 것으로서 성을 공격할 때에 쓰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오랑캐의 말은 모두 좋은 말이던가? 그 숫자는 얼마쯤 되던가?"

하니, 정충신이 아뢰기를,

"모두 좋은 말이었는데 무리지어 있는 것을 보니 대략 1만여 필(匹)이 될 듯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오랑캐의 추장은 한낱 하찮은 자일 뿐이다. 우리 나라 수천 리의 지방에 어찌 적을 제어할 만한 사람이 없으랴마는, 찾는 데에 정성스럽지 못하므로 쉽게 얻지 못할 뿐이다. 지금 장신(將臣)들이 모두 들어가 지킨다는 것으로 말하면서 출전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은가."

하니, 정충신이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는 본시 군사가 없는 나라인데 아무리 훌륭한 장수가 있더라도 누구와 함께 싸울 수 있습니까. 지금 10여 만의 무리를 뽑아서 1∼2년 동안 훈련시킨다면 요동(遼東)도 진격하여 빼앗을 수 있을 것인데, 어찌 반드시 수어하려고만 하겠습니까. 지금 창성(昌城)·의주(義州)·안주(安州)의 제진(諸鎭)이 가장 요충지인데 이들 본진에 각각 민병(民兵)을 거느려 굳게 지킬 계획을 세우도록 당부하고, 입방(入防)하는 군사에 있어서는 그 수의 다소에 따라 편의대로 수어하도록 하고, 패강(浿江) 이서에는 가을 이후에 청야(淸野)하여 대비하도록 경계하면, 적이 오더라도 그 형세가 반드시 오래 머무르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남이흥이 아뢰기를,

"부원수의 수하 군사는 2천이 못 되니, 어떻게 이것으로 큰 적을 대항하겠습니까. 정병 수만을 교련할 수 있다면, 신처럼 못난 자도 목숨을 바쳐 싸워서 스스로 공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어 주찬(酒饌)과 표피(豹皮) 등의 물건을 하사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96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

○戊辰/上御資政殿, 引見延安府使南以興安州牧使鄭忠信。 上曰: "力戰將士査覈之事, 果無遺漏乎?" 南以興對曰: "別無遺漏之人矣。" 上曰: "卿等必能知虜情矣。 虜若長驅, 則何以禦之乎?" 鄭忠信曰: "臣出入虜穴, 備知賊情, 非但彼我衆寡不敵, 鐵騎衝突, 難以野戰爭衡, 惟守城, 庶可防遏矣。" 南以興曰: "今年不發南兵, 邊將必患兵少耳。" 上曰: "兵雖少, 善用在於將。 可以守則守, 可以戰則戰, 不可一於戰, 不可一於守也。 要在臨機應變, 一於守而不出戰, 則長驅之賊, 何以遏乎?" 上曰: "安州軍兵, 其數幾何?" 忠信曰: "僅二千餘人矣。" 上曰: "曾聞可至六七千, 而今何若是之少也? 其城當用幾許兵而守乎?" 忠信曰: "如得三四千, 可以守之。" 上曰: "城之形勢最好云, 然耶?" 忠信曰: "城外有長江天塹, 可謂得據險之勢矣。" 上曰: "氷合則奈何?" 忠信曰: "冬則亦可以設氷城, 禦敵矣。" 上謂南以興曰: "延安亦城守之地, 卿何以守禦乎?" 以興曰: "壬辰以後, 全不修繕, 城門壞破, 舊井皆廢, 臣欲補葺浚治, 而民力方竭, 難以興役矣。" 上謂忠信曰: "曾往虜中, 事情如何, 而其兵衆幾何耶?" 忠信曰: "兵馬精强, 實難當之賊。 其兵之多寡, 雖未詳知, 聞有八部大人之說, 又有四百爲一哨之語, 大約可至九萬餘矣。 所謂長甲軍、重甲軍, 各一百人, 皆着水銀甲, 別爲一哨。 此則別抄壯勇者, 用於攻城云。" 上曰: "虜馬皆良馬乎? 其數幾何?" 忠信曰: "無非良馬, 而見其屯聚之數, 槪似萬餘匹矣。" 上曰: "奴酋一小醜耳。 我國數千里地方, 豈無制敵之人? 但求之不誠, 得之未易耳。 今將臣皆以入守爲言, 而未有出戰之計, 豈不寒心乎?" 忠信對曰: "我國本是無兵之國, 雖良將, 誰與爲戰? 今若抄發十餘萬衆, 敎訓一二年, 則遼東亦可以進取矣。 何必區區於守禦乎? 今者昌義安諸鎭, 最是要衝, 責其本鎭, 各率民兵, 以爲固守之計。 入防之軍, 則隨其多少, 便宜添守, 而申飭浿江以西, 使於秋後, 淸野以待, 則賊雖至, 其勢必不能久留。" 以興曰: "副元帥手下兵, 不滿二千, 安能以此抗大敵乎?" 若得敎訓精兵數萬, 則如臣駑劣, 亦可死戰自效矣。" 上仍賜酒饌及豹皮等物。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96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군사-관방(關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