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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5권, 인조 2년 3월 8일 임술 4번째기사 1624년 명 천계(天啓) 4년

삼도 대동청이 대동 사목의 시행과 방납의 폐단에 대해 건의하다

삼도 대동청(三道大同廳)이 아뢰기를,

"대동의 역(役)은 본디 백성의 고달픔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신들이 듣건대 근자에 외방의 물정은 오히려 불편하게 여기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대개 당초의 사목(事目)에 경외(京外)의 응당 지공해야 할 역으로서 감영(監營)·병영(兵營)에 바쳐야 할 것과 각 고을의 관수(官需)와 아료(衙料)를 모두 넣었던 것은 민간에 다시 다른 역을 없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에 가을에 받아들여야 할 수량을 작정하여 행회(行會)028) 할 적에 철이 이미 늦어서 각 고을의 관청에 바치는 것은 이미 반절이 넘게 받아들였고 또 흉년이 들어서 곡식이 귀하기 때문에 1결(結)에 대하여 4두(斗)로 줄였고 각 고을에서 쓸 것은 우선 전례대로 받아 쓰게 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4두 내에서 덜어내어 지공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각사(各司)의 공물(貢物)에 있어서는 먼 지방에서 나는 것으로 서울에서 사기 어려운 물건과 봉상시에 바치는 것과 의사(醫司)의 약재에 대해서 모두 본청(本廳)에서 매긴 값에 따라 대동미(大同米)로 계산하게 하여 본색(本色)으로 사서 바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들으니 각 고을에서 이 4두를 받아들이는 이외에 온갖 역을 모두 전례대로 거두고, 본색으로 가져와 바쳐야 할 공물에 대해서도 대동 사목 이외에 따로 거둔다 합니다.

민간에서는 당초에 대동으로 하면 다시 다른 역이 없을 것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대동 이외에 여러 가지 역이 이처럼 복잡스러우니 백성이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은 창립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외방에서 혹 법의 내용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 또한 관리들이 성상께서 백성을 근심하시는 지극한 뜻을 몸받지 못하고 인연하여 폐단을 만들기 때문에 백성을 구제하는 정사가 도리어 백성에게 해로운 것이 되게 하는 것이니,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 법으로 매우 다스려 정령(政令)이 크게 행해지게 하자면, 많은 관리들을 똑같이 죄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큰 변란을 막 겪었으므로 국내가 소요스럽고 민심이 안정되지 못하였는데 모든 일이 새로 시작되어 형세 또한 크게 경장(更張)하기 어렵습니다. 그만두자니 정령이 나간 지 이미 오래 되었으므로 각 고을에서 가을에 받는 쌀을 거의 다 거두어 들였고 산군(山郡)에서 작목(作木)하여 가져와 바친 것도 이미 많아서 이제 갑자기 그만둘 수 없을 것입니다.

신들이 갖가지로 생각해 보건대, 한두 해 동안 다른 역은 모두 전례대로 하게 하되, 다만 두어 말을 적당히 받아들여서 서울의 각사(各司)의 공물을 공납하게 하고 앞으로 나라의 형세와 민심이 조금 안정되는 것을 살펴본 뒤에 다시 의논하여 크게 시행해야 좋을 듯싶습니다. 이렇게 하면 행하기가 간편하고 경장하는 것도 점차 진행되어 백성이 편안하고 법이 행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민결(民結)의 역은 공물보다 중한 것이 없고 백성이 괴로워하는 것은 방납(防納)029) 에 있어 농간질하는 폐해보다 심한 것이 없는데 이 한 가지 폐단만 제거시키면 대부분의 백성이 혜택을 입게 될 것입니다. 지금 민간의 가난은 극도의 경지에 이르러 굶어 죽는 자가 있다는 말까지 들리니, 결코 봄·여름 사이에 독촉하여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양호(兩湖)의 강원도의 가을에 받는 미포(米布)는 상납하도록 재촉하되 올봄에 바치는 것은 면제하여 받아들이지 말고 보릿가을이 되거든 1결(結)마다 보리쌀 2두를 올려 보내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공물을 본색으로 가져와 바치는 것에 있어서 먼 지방의 특산물로 서울에서 아주 살 수 없는 것과 약재들은 우선 본색으로 가져와 바치게 하고, 봉상시의 공물에 대해서는 그 중에서 한두 가지 사기 어려운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사서 쓸 수 있습니다. 지금 있는 쌀을 우선 지급하여 본색으로 상납하는 폐단을 없애버리면 향사(享祀)의 정성에 조금도 손상되는 것은 없고 백성을 위하여 폐단을 제거하는 효과는 클 것입니다."

하니,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9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93면
  • 【분류】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

  • [註 028]
    행회(行會) : 공문을 보내어 알림.
  • [註 029]
    방납(防納) : 관가와 결탁하여 백성이 바칠 공물을 대신 바치고 뒤에 그 대가를 백성들에게 훨씬 더 받아내는 것.

○三道大同廳啓曰: "大同之役, 本爲救民之困也。 臣等竊聞近者, 外方物情, 猶有不便之者。 大槪當初事目, 則凡京外應供之役, 如監、兵營所納各官官需衙料, 皆在大同之中, 要使民間, 更無他役也。 上年十月酌定秋等應捧之數, 行會之時, 以時節已晩, 各官官廳所納, 必已太半收捧, 必以年凶穀貴之故, 一結減定四斗, 而各官所用, 則姑令依前捧用, 其餘皆令於四斗內, 除出(攴)〔支〕 供。 至於各司貢物中, 遠方所産、京中難貿之物及奉常寺所納醫司藥材, 皆令依本廳折價, 以大同米計除, 使之貿本色以納, 而今聞, 列邑捧此四斗之外, 一應諸役, 皆依前徵之。 至於貢物, 當以本色來納者, 亦於大同外別徵之, 民間初聞旣爲大同, 則更無他役, 而今則大同之外, 衆役約沓如此, 民之不便也宜矣。 此蓋事係創立, 外方或未明知法意, 亦由官吏不體聖上憂民之至意, 而夤緣爲弊, 使救民之政, 反害於民, 誠可痛心。 今若痛繩以法, 使政令大行, 則許多官吏, 難可比而罪之。 且新經大變, 國內騷擾, 民心未定, 庶事草創, 勢亦難以大更張。 欲停罷之則令出已久, 列邑秋等之米, 幾盡收捧, 山郡作木來納者已多, 今不可遽罷。 臣等百計思量, 莫如一二年他役, 竝令依前爲之, 只量捧數斗米, 以供京各司貢物, 徐觀日後國勢稍安、民心稍定, 然後更議大行。 如是則行之簡易, 更張有漸, 庶民安而法行矣。 且民結之役, 莫重於貢物, 而民之所苦, 莫甚於防納。 操縱之害, 只除此一弊, 民之蒙惠, 思過半矣。 目今民間貧乏, 已到十分地頭, 至聞有餓死者, 決不可責捧於春夏之前。 請兩湖及江原道秋等米布, 催促上納, 而今春則減除勿捧, 待麥秋, 每結收牟米二斗, 上送宜當。 且貢物以本色來納者, 如遠方異産, 京中決不可貿得者及藥材, 則姑令以本色來納, 而至於奉常寺貢物, 則其中一二難貿者外, 其餘皆可貿用。 今以現在之米, 爲先支給, 而除本色上納之弊, 則於享祀之誠, 少無所損, 其爲民除弊則大矣。" 從之。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9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93면
  • 【분류】
    재정-전세(田稅) / 재정-공물(貢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