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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1권, 인조 1년 3월 26일 병진 1번째기사 1623년 명 천계(天啓) 3년

조강에 논어를 강하고 사치 금단·인재 등용 등에 대해 논의하다

상이 조강에 명광전에서 《논어》를 강하였다. 시독관 이민구(李敏求)가 아뢰기를,

"근년 이래 명분이 땅을 쓴 듯이 없어지고 사치가 풍조를 이루어, 노복 등의 하천배가 모두 참람한 옷을 입었는데 지금은 벗어 버리고 입지 않습니다. 이는 필시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 그러는 것이니, 이 기회를 계기로 엄금하여 백성들의 심지를 안정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영상 이원익은 아뢰기를,

"가난한 사람은 자연 할 수 없겠지만, 가난하지 않은 자는 오직 힘만을 믿어 기탄하는 바가 없으니, 헌부도 이를 금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도의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하고, 지사 신흠(申欽)은 아뢰기를,

"인품이 고르지 않아, 상등인 사람은 성군을 기다리지 않고도 분발하지만, 중등 이하 사람은 조정의 숭상하는 것을 보고 본받습니다. 사치와 토목 등의 일 같은 것은 오직 위에서 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체가 단정하면 그 그림자는 자연 곧게 되기 마련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들의 말이 옳다. 위에서 행하면 아래서 본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하였다. 특진관 이필영(李必榮)이 아뢰기를,

"수령은 직접 백성을 다스리는 관원이라 신중히 선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듣건대 어제 수령에 대한 특별 제수의 명이 있었다 하는데, 이는 곧 폐조의 구습입니다. 만약 공로가 있는 사람이라면 후히 상을 내리면 됩니다. 시초가 이와 같으니 말류의 폐단이 몹시 우려됩니다."

하고, 원익은 아뢰기를,

"인척이 되는 사람에게 특별 제수의 명이 있었다면 이는 사은(私恩)인 것입니다. 새로이 시정하는 이때 의당 이와 같은 일은 삼가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들의 부자가 모두 공로가 있기 때문에 이번의 제수가 있었던 것인데, 이 또한 시험해보고 쓸 만하면 쓴다는 뜻에서 나온 일이다."

하였다. 정언 오숙이 아뢰기를,

"임금의 학문이 고명하면 궁중이 깨끗해지고 여알(女謁)도 자연 근절됩니다. 자주 경연을 열어 자문하기를 게을리 아니하면 폐정은 자연 제거될 것입니다."

하고, 원익은 아뢰기를,

"선조 대왕께서 즉위하신 처음에, 진계하는 말을 즐겨 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투어 진언하였습니다. 지금의 조신들이 모두 착한 사람은 아니나 그들이 말하는 것은 모두가 선을 개진하는 의도입니다."

하니, 상이 답하지 않았다. 지평 조정호(趙廷虎)가 아뢰기를,

"임금이 직언을 받아들이는 것은 실로 아름다운 일인데, 전하께서 경연에 임하여 문답이 적으신가 하면, 대신의 말까지도 너그럽게 받아 들이는 의도가 없으십니다. 정치 쇄신의 초기에도 오히려 이와 같으니 훗날의 일이 몹시 염려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 어찌 듣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겠는가."

하였다. 원익이 아뢰기를,

"즉위하신 처음에 궁중에 혼탁한 일이 있다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이런 폐단은 통렬히 끊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궁중이 혼탁하다는 말은 무슨 일을 지적함인가? 분명히 꼬집어 말하라."

하였다. 원익이 아뢰기를,

"앞서 대간이 아뢴 것을 보니, 사헌(私獻)을 가지고 궐문으로 들어갔다는 등의 일이 있었습니다. 이는 실로 폐조 때의 그릇된 습관입니다. 이 어찌 보고 듣기에 놀랄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 역시 그 말을 듣고 놀랐다. 이 뒤로 어찌 또 다시 그런 일이 있겠는가."

하였다. 원익이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이와 같으시니 매우 다행입니다. 임금이 허물이 있어 그것을 즉시 고칠 경우, 마치 해와 달이 일식·월식이 끝나 원상 회복이 되어 광채가 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보는 것과 같습니다."

하고, 신흠은 아뢰기를,

"옛날에 명주(明主)를 염려하고 치세를 걱정했다는 말이 있으니, 이 말이 참으로 좋습니다. 성인은 천하의 이치를 통달하기 때문에 천하의 일을 아는 것입니다. 상께서 성심으로 학문을 하시어 현사(賢邪)를 분별하신다면 지치(至治)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선조 대왕께서는 즉위하신 처음에 하루 세 차례씩 경연을 열어 부지런히 강학하며 어진 인재를 초치함으로써 초야에 유일(遺逸)이 없었습니다. 이황(李滉)은 대유(大儒)로 등용되어 비록 오랫동안 조정에 머물지는 않았으나 사람들이 모두 흠모하여 본받아 10년 사이에 풍속이 크게 달라졌었습니다. 지금 모름지기 이를 본받아 선조의 초년으로 본보기를 삼는 것이 가합니다."

하고, 이원익은 아뢰기를,

"임금이 인재를 등용하는 방법에 있어 붕당에 구애하지 말고 쓰면 사정과 시비가 자연 판별되어, 어진 자는 자연 그 유를 따라 진출하고 불초한 자는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붕당의 폐단은 나 역시 몹시 미워한다. 의당 사정을 따르지 말고 동서남북 【 당시 동서남북의 당론이 있었다.】 을 논하지 말고 오직 어진 인재만을 취할 것인바, 조정도 나의 뜻을 본받아 인물을 취사하는 즈음에 지극히 공정함을 힘써 따르라."

하였다. 신흠이 아뢰기를,

"《서경》에 ‘사람을 알아보면 명철하다.’고 하였습니다. 평소에는 사람이 모두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 하나 큰 화복에 임하게 되면 흔들리지 않는 자가 드뭅니다. 이 경연에 임하여 신료들이 각자 진언하고 있거니와, 그 중 귀에 거슬리는 말을 피하지 않고 하는 자는 훗날의 소위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상께서는 의당 자세히 살필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 역시 귀에 거슬리는 말은 사람마다 쉽게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제 윤지경(尹知敬)의 폐주를 잘 대우하라는 말은 실로 남들이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몹시 가상히 여긴다."

하였다. 신흠이 아뢰기를,

"중국에서는 관직을 제수함에 있어 이부(吏部)에만 전담시키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와 같이 2품 이상으로 하여금 각각 수령을 감당할 만한 인재를 추천하게 하면 관직을 제수할 때 인재가 부족하다는 탄식은 없을 듯합니다. 박지계(朴知誡)는 학행이 있어 선비들이 앙모하는 존재이니, 만약 그로 하여금 미관 말직에 처하게 하면 필시 오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차를 따지지 말고 발탁함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또 이와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자, 신흠이 아뢰기를,

"신이 들은 바로는 영남에 장현광(張顯光)이 있는데 초야에서 글을 읽은 사람으로 당세의 고사(高士)라고 합니다. 또 김집(金集)·김원량(金元亮)이 있는데 김집은 곧 신의 5촌 조카입니다. 여러 선비들이 모두 그를 칭송하기 때문에 혐의를 무릅쓰고 아룁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이 만약 조정에 벼슬한다면 사람들이 모두 감동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와 같은 사람은 자격에 구애할 필요없이 6품으로 발탁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17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사(宗社) / 사법-치안(治安) / 인사-임면(任免)

○丙辰/上朝講《論語》明光殿。 侍讀官李敏求曰: "近年以來, 名分掃地, 奢侈成風, 僕隷下賤, 皆着僭衣, 今則脫而不着, 此必有所畏戢而然也。 因此幾會, 不可不嚴禁, 以定民志矣。" 領相李元翼曰: "貧者自不得爲之, 不貧者惟力是視, 而無所忌憚。 至於憲府, 亦不能禁, 世道至此, 良可寒心。" 知事申欽曰: "人器不齊, 上品則不待文王而作興, 至於中人以下, 則觀朝廷所尙而效之。 如奢侈、土木等事, 惟上所爲是從, 故表端則影自直矣。" 上曰: "卿等之言是矣。 上行下效, 理固然矣。" 特進官李必榮曰: "守令是臨民之官, 不可不愼擇。 聞昨日有守令特除之命, 此乃廢朝舊習。 若有功之人, 則厚賞之可矣。 始初如是, 末流之弊, 甚可憂也。" 元翼曰: "以戚畹之人, 特有除拜之命, 則是私恩也。 更始之日, 宜深戒如此之擧也。" 上曰: "其人等父子, 皆有功, 故有此除拜, 亦出於試可之意也。" 正言吳䎘曰: "人主學問高明, 則宮掖肅淸, 女謁自絶。 頻數開筵, 咨訪不怠, 則弊政自祛矣。" 元翼曰: "宣祖大王臨御之初, 樂聞陳戒之言, 故人爭進言。 今此朝臣, 雖非盡善之人, 其所言, 皆陳善之意也。" 上不答。 持平趙廷虎曰: "人君容受直言, 實是美事, 而殿下臨筵, 罕爲酬酢。 至於大臣之言, 亦無優容之意, 勵政之初, 尙且如此, 末流甚可憂也。" 上曰: "予豈有厭聞之意乎?" 元翼曰: "卽祚之初, 若有宮禁溷濁之事, 則不可說也。 此弊所當痛絶之也。" 上曰: "宮禁溷濁之說, 指何事也? 明言之可矣。" 元翼曰: "頃見臺諫所啓, 則有私持、私獻入闕門等事。 此實廢朝時謬習, 豈不有駭於瞻聽乎?" 上曰: "予亦聞而驚駭。 此後豈復有如許事乎!" 元翼曰: "聖敎至此, 甚幸。 人君有過卽改, 則如日月之更, 益有光輝, 人皆仰之。" 曰: "古有憂明主危治世之語, 此言最好矣。 聖人能通天下之理, 故能知天下之務。 自上倘能誠心學問, 辨別賢邪, 則可以致至治矣。 宣祖大王卽祚之初, 日三開筵, 孜孜講學, 招徠賢材, 野無遺逸。 李滉以大儒登庸, 雖不久在於朝, 人皆慕效, 十年之間, 風俗丕變。 今須體念, 以宣祖初年爲法可矣。" 元翼曰: "人君用人之道, 勿拘朋黨而用之, 則邪正是非, 自然判別, 賢者自以類進, 不肖者退矣。" 上曰: "朋黨之弊, 予亦甚惡。 當不循私情, 無論東西南北, 【時有東西南北之黨號。】 惟賢才是取。 朝廷亦體予意, 取舍之際, 務循至公可矣。" 曰: "《書》曰: ‘知人則哲。’ 常時則人皆自以爲善人, 而至於臨大禍福, 鮮不撓奪矣。 當此臨筵, 臣僚各自進言, 其中不避逆耳之言者, 可想他日所爲, 自上所當審察也。" 上曰: "予亦以爲逆耳之言, 人所未易言。 昨日尹知敬善待廢君之言, 此實人所難言者, 故予甚嘉焉。" 曰: "中朝除拜官職, 不爲專責於吏部。 今亦使二品以上, 各薦才堪守令之人, 則除拜之際, 似無乏人之歎矣。 朴知誡有學行, 爲儒士所景慕。 若使處之米鹽, 則必不肯來, 不次擢用宜當。" 上曰: "又有如此之人耶?" 曰: "臣之所聞, 嶺南有張顯光, 讀書林下, 爲當今高士, 而又有金集金元亮金集則乃臣之五寸姪也。 群儒皆稱之, 故冒嫌敢達耳。 如此之人, 若仕朝廷, 則人皆聳動矣。" 上曰: "如此之人, 不必拘於資格, 超出六品可矣。"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517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사(宗社) / 사법-치안(治安)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