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정초본]184권, 광해 14년 12월 3일 갑자 1/2 기사 / 1622년 명 천계(天啓) 2년
인경궁 못을 판 곳에 누대를 지어 신하 접견과 무사들의 시험 장소로 사용케 하다
국역
전교하기를,
"인경궁(仁慶宮)의 못을 판 곳에 경회루(慶會樓)의 제도에 따라 조성하되 높이와 크기는 경회루처럼 할 필요 없이 간략하게 하나의 누대를 지어 조정 신하들을 접견하고 활쏘는 것을 구경하며 무사들을 시험보이는 장소로 만드는 것이 좋겠다. 담당 제조 박홍도가 내일 그곳에 가서 중사(中使) 및 성지(性智)와 상의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왕이 성천(成川)의 강선루(降仙樓)를 모방하여 이 누대를 지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배를 띄우며 연회할 수 있는 경관을 만들고 그 주변에 별당과 정자를 지으려고 하여 재목을 모두 준비하였으나 미처 이루지 못했다.】 】
원문
광해 14년 (1622) 12월 3일
광해군일기[정초본]184권, 광해 14년 12월 3일 갑자 1/2 기사 / 1622년 명 천계(天啓) 2년
인경궁 못을 판 곳에 누대를 지어 신하 접견과 무사들의 시험 장소로 사용케 하다
국역
전교하기를,
"인경궁(仁慶宮)의 못을 판 곳에 경회루(慶會樓)의 제도에 따라 조성하되 높이와 크기는 경회루처럼 할 필요 없이 간략하게 하나의 누대를 지어 조정 신하들을 접견하고 활쏘는 것을 구경하며 무사들을 시험보이는 장소로 만드는 것이 좋겠다. 담당 제조 박홍도가 내일 그곳에 가서 중사(中使) 및 성지(性智)와 상의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왕이 성천(成川)의 강선루(降仙樓)를 모방하여 이 누대를 지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배를 띄우며 연회할 수 있는 경관을 만들고 그 주변에 별당과 정자를 지으려고 하여 재목을 모두 준비하였으나 미처 이루지 못했다.】 】
원문
원본
광해 14년 (1622) 12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