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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정초본]4권, 광해 즉위년 5월 4일 기축 2번째기사 1608년 명 만력(萬曆) 36년

이항복을 좌의정으로 삼다

이항복(李恒福)을 좌의정으로 삼았다.

항복은 풍골(風骨)과 기절(氣節)이 있으며 문자를 잘해서 그 당시 어진 재상으로 일컬어졌다. 그런데 선종(宣宗) 말년에 시사(時事)가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자 고상한 담론이나 하며 세상일에 신경쓰지 않아 진 국공(晉國公) 배도(裵度) 같이 세속 사람들과 서로 어울려 지낸다는 비방을 받았는데, 결국에는 정철(鄭澈)의 당으로 군소배들에게 배척을 받았다.

이때에 이르러 다시 재상으로 들이니, 차자를 올려 사직하기를 "이름이 간당(姦黨) 속에 있으니 다시 재상의 자리에 있을 수 없다." 하고, 거듭 사직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 【정족산사고본】 2책 4권 7장 B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1책 308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以李恒福爲左議政。 恒福有風節能文章, 一時稱爲賢相, 而宣宗末年, 時事不可有爲, 故淸談玩世, 不免有裵晋公浮沈之謗, 竟以鄭澈之黨, 見斥於群小。 至是復入相, 上箚辭云: "名在姦黨, 不可復居鼎席。" 再辭不許。


    • 【정족산사고본】 2책 4권 7장 B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1책 308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