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보살피고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방책 등에 대한 대구 부사 정경세의 상소문
대구 부사(大丘府使) 정경세(鄭經世)가 상소하였다.
"삼가 3월 1일에 내린 비망기를 보건대, 열 줄의 글에 정성이 간곡하였고, 백성을 걱정하고 나라를 보존하려는 뜻이 혈성(血誠)에서 나와 글 밖에까지 흘러넘쳤습니다. 그리고 또 성상의 총명이 혹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고 자청해서 진달하기 어려운 은밀한 일이 있을까 염려하여 중외(中外)의 사람들로 하여금 각각 하고 싶은 말을 다하도록 하였습니다. 아, 은 조서를 읽고 광무제(光武帝)가 성주(聖主)라고 단정하였습니다. 신이 비록 어리석고 망령되지만 성지(聖旨)를 받들어 읽고, 전하께서 처음 정사(政事)에 임하시는 이때 걱정하고 애쓰며 대도(大道)의 세상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끌어 모으고 두루 펴 큰 일을 이루고자 하지 구습(舊習)이나 따라 그럭저럭 때워가면서 눈앞의 것에만 구차히 안주하려 하지 않는 성대한 마음을 지니고 계신 줄을 알았습니다.
신은 지혜가 옅고 사려가 짧으며 경술(經術)이 엉성하여 이미 시무(時務)를 제대로 아는 재주가 아닌 데다가 또한 실용에 적합한 재주마저 없으니, 어떻게 전하의 바람에 부응하여 귀기울여 들으시게 할 충성스럽고 거창한 의론이 있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오늘날 국가의 형세는, 여러 개의 바둑돌과 계란이 포개진 것으로도 그 위태로움을 비유할 수 없고, 사나운 파도 속에 노가 망가진 상태로도 그 두려움을 비유할 수 없고, 몸을 굽혔다 펴거나 숨을 들이쉬다가 내쉬는 짧은 순간으로도 그 위급함을 비유할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외로이 상청(喪廳)에서 애통해 하시며 깊은 근심으로 말씀도 없이 마치 깊은 못과 골짜기에 임한 것처럼 밤이나 낮이나 생각에 잠기셨는데, 사방을 돌아보아도 아득하여 끝이 없는 듯하므로 지극한 정성으로 도움을 구하시어 성왕(成王)이 처음 정사를 시작할 때 여러 신하들을 방문하여 자문한 것처럼 하실 겨를이 없어 도움되는 말을 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신민(臣民)으로서는 의리상 마땅히 눈물을 뿌리며 말을 가려서 할 겨를도 없이 말씀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신은 성상의 은혜를 매우 깊이 입어 감사하는 마음을 지닌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어찌 감히 스스로 용렬하다고 여겨 말 한 마디 하지 않은 채 전하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신은 진실로 이에 대해 차마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널리 옛날 사람들이 한 말을 끌어다가 범범히 치도(治道)를 논함으로써 한갓 남이 보고 듣기에만 아름답게 하고 실제 병통에는 절실하지 않은 것이 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청컨대 전하께서 백성을 애긍히 여기시는 분부와 요즈음의 일을 가지고 반복해서 미루어 밝히려 하옵니다.
무릇 실지로 백성을 애긍히 여기는 것은 그들의 힘을 펴게 하고 그들의 생활을 두터이 해주는 데 있고, 이 두 가지의 근본은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데 있습니다. 절약하며 검소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요역(徭役)과 부세(賦稅)를 가볍게 하여 백성들을 구휼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근원을 막지 않고 하류를 막으려고 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전란으로 온통 망가진 나머지 백성들이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전야(田野)가 개간되지 않아 교외에 나가 보면 곳곳마다 끝없이 쑥대와 가시나무로 뒤덮여 있어 토지에서 생산되는 곡식과 마사(麻絲)가 평소에 비해 백분의 일도 안되니, 지금은 바로 군신 상하가 헐한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으며 백성들을 위해 재물을 아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사치스런 풍조가 난리를 겪은 뒤에 더욱 심해져 하사(下士)들이 비단옷을 입고, 빈천한 사람들이 명주옷을 입으며, 아전과 천한 종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고기만 먹고 있으니, 이는 마치 봇도랑에서 물을 퍼올리면 미려(尾閭)에서 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058) 옛사람이 말한 ‘사치의 해가 홍수나 가뭄보다 심하다.’는 것이니, 크게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궁금(宮禁)의 사세를 신이 알 수 없지만 공상지(供上紙) 한 가지 일만을 가지고 말하자면 그 품질이 조종조에서 정한 규정보다 배나 뛰어난데, 만일 조금이라도 신중히 하지 않았을 경우엔 해당 관사의 관원과 각 고을의 수령이 모두 연루되어 파직당하곤 합니다. 이에 중외(中外)에서는 이러한 풍조에 따라 질이 좋은 제품 만들기에 힘써 재물을 많이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상납할 때 퇴짜를 맞을까 염려하여 면포(綿布)를 많이 가지고 가 아전들에게 뇌물을 주고 있으니, 낭비가 너무나 심하지 않습니까. 삼가 들으니, 이 종이는 애당초 모두 어용(御用)에 충당하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남는 것은 혹 제궁(諸宮)에 나누어 주어 결국에는 방납(防納)의 밑천으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혹은 궐내에서 그 종이를 받지 않고 대신 돈으로 받는다고 하는데 수년 이래로 이러한 소문이 자자합니다. 아, 이러한 일을 그만둘 수 없단 말입니까. 그 종이의 품질을 낮추고 남는 수효는 줄여 궁중에서 쓸 것만을 취한다면 백성들이 즉위한 초기에 받는 은택이 어찌 후하지 않겠습니까. 신은 단지 이 한 가지만 말씀드리니, 전하께서는 이를 미루어 다른 일도 해나가소서.
정전(正殿)은 완성되지 않고 행궁(行宮)은 좁고 누추하니, 참으로 지존(至尊)이 거처할 곳으로는 합당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요(堯)임금의 흙으로 만든 계단보다는 사치스럽고, 우(禹)임금의 낮은 궁궐보다는 높으며, 부차(夫差)가 섶을 쌓아 놓고 그 에서 자던 것보다는 널찍하고, 위문공(衛文公)이 들판에서 백성들과 함께 거처하던 것보다는 편안합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을 잘 기르고 재물을 모아 국력을 양성하기 전에는 비록 이 일을 하지 않더라도 그리 큰 흠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국권(國權)을 담당하였던 신하들이 재물을 마구 긁어모아 고대광실을 지어 사시게 하였습니다. 이는 대개 그들이 상께서 혹 자신을 봉양하는 데에는 풍족하게 하면서도 임금에게는 검소하게 한 것에 대해 화를 내지나 않으실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짓으로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편안하다는 말만 하며 도탄에 빠져 신음하는 백성들의 정황을 숨긴 채 임금으로 하여금 안일만 추구하도록 유도하여 은총을 견고하게 하려는 것이니, 이는 바로 소인들이 늘상 하는 작태입니다. 이에 법궁(法宮)을 세우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건의하여 겨우 살아 남은 상처투성이의 백성들을 갖은 방법으로 독촉하였으나 역사(役事)가 채 반도 이루어지기 전에 백성들은 이미 도탄 속에 헤매고 있으니, 통탄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 전하께서 산릉(山陵)의 큰 역사와 조사(詔使)를 접대하는 등의 일 때문에 백성들이 물자 공급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할까 깊이 근심하여 궁궐 도감(宮闕都監)에서 거둔 미포(米布)를 가져다 쓰도록 허락하시면서 또 다시 배정하지 말도록 명하셨으니, 신은 전하의 속마음은 분명히 궁궐 세우는 것을 급하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나라 백성들이 좀더 살아 덕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일정하지 않아 사치에 젖어들기 가장 쉬우니,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이 마음을 굳게 지키소서.
산릉과 조사(詔使) 등의 일은 바로 돌아가신 분을 보내고 대국(大國)을 섬기는 더할나위 없이 중한 예이니, 진실로 정성과 공경을 극진히 하여 감히 털끝만큼이라도 미진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그 사이에도 어찌 의당 그만두어야 할 겉치레의 낭비가 없겠습니까.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명을 내리시어 그 가운데 예에 맞지 않거나 백성에게 피해를 는 것들은 줄이거나 하지 못하도록 하신다면 매우 다행스럽겠습니다.
신이 들으니, 의인 왕후(懿仁王后)의 초상 때에 일을 맡은 도감의 신하들이 지나치게 부지런히 하다가 명목(名目)을 한없이 정하여 백성들의 힘을 다 고갈시켜 가면서 겉치레만을 힘썼고, 재궁(梓宮)이 산에 이르러 밤을 새울 때 치는 막차(幕次)에 있어서는 전부터 으레 유막(油幕)을 설치했었는데, 저번에는 산을 뒤덮을 정도로 가건물을 많이 지어 멀리서 보기에 귀신의 힘으로 지은 것 같았다고 합니다. 이 한 가지 일로 미루어 보면 나머지는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아, 신하로써 모든 것을 반드시 지극한 정성으로 하는 도리가 어찌 이러한 데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능은 건원릉(健元陵)과 같은 산 안에 있는데, 능에 설치한 돌난간과 인마(獜馬)가 극도로 장대하고 화려하여 모두 배나 된다고 합니다. 신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므로 감히 반드시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런 사실이 있다면 어머니 을 아버지 상보다 더 잘한 것에 대해서도 장창(臧倉)이 맹자(孟子)에 대해 말을 날조하여 비난했는데, 더 더구나 자손의 을 선조보다 더 지나치게 한 것이야 정의(情義)로 헤아려 볼 때 어찌 대단히 미안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 당시 조정에 있던 여러 신하들 중에 이러한 말을 선왕(先王)에게 아뢰는 이가 없어 선왕으로 하여금 후세에 할말이 없게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선왕이나 전하께서 아시는 것이겠습니까. 신은 항상 이점을 애통스럽게 여기며 임금을 충성으로 섬기는 자가 이와 같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감히 모든 것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살피시어 전의 일을 예로 삼지 말고, 단지 증자(曾子)의 ‘사람을 덕으로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태종 대왕(太宗大王)께서 건원릉(健元陵)의 제도를 추봉(追奉)한 것으로 법을 삼아 우리 대행 대왕(大行大王)의 공검(恭儉)한 덕을 밝게 드러내소서. 그러면 매우 다행스럽겠습니다.
신은 전하로 하여금 천하를 위해서 어버이에게 검박하게 하도록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상례를 선조보다 지나치게 치르는 것은 본디 의리상 온당치 못하기 때문이니, 이것은 곧 맹자가 말한 ‘예법(禮法)에 있어 할 수 없으면 기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재물이 있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데 더구나 오늘날의 사세는 매우 재물이 없는 때인데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신이 또 들으니, 요즘 산릉의 역사(役事)를 하느라 백성들을 이미 많이 부렸는데 뒤이어 요서(妖書)가 출현함으로 인해 바로 중지하고 별도로 다른 산을 구하고 있다 합니다. 신은 먼 외방에 있어 그 글 가운데 사람을 현혹시킬 만한 무슨 내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성인께서 단지 ‘선한 일을 하면 온갖 상서로운 일이 생기고 악한 일을 하면 온갖 재앙이 생긴다. 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많은 경사스런 일이 있게 되고 악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많은 재앙이 있게 된다.’ 하였으니, 사람의 재앙과 경사 그리고 화와 복을 어찌 죽은 뒤의 장지(葬地)가 영향을 미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이른바 ‘세상을 미혹시키고 백성들을 속여 인의(仁義)를 막히게 한다.’는 설이니, 이치를 아는 군자가 말할 것이 아닙니다. 가령 술가(術家)의 말대로 낱낱이 들어 맞는다면 이순풍(李淳風)과 곽박(郭璞)의 무리들이 스스로 천하에서 제일가는 길지(吉地)를 잡아 그 자손들을 대대로 왕후 장상(王后將相)이 되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후손 중에 현달한 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분명히 그것은 괴상하고 헛된 소리로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상같이 밝으신 분으로서는 의당 그 책을 불살라 통렬히 끊어버리시어 그것들이 다시는 세상에 유포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산을 찾아보도록 명하시어 마치 이러한 것을 대단히 믿는 자처럼 선조(先朝) 때에 이미 정해 놓은 곳을 가벼이 버리고, 지친 백성들이 이미 힘들여 해놓은 것을 애석하게 여기지 않으심으로써 의관(衣冠)을 봉안할 곳을 제때에 정하지 못하였으니, 불행하게도 시일을 끌다가 정해진 기일을 넘겨 태만한 데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어찌 거듭 미안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은 삼가 의아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신이 또 들으니, 조사(詔使)의 행차 때 의주(義州)부터 국도(國都)까지 영접하고 접대하는 예가 극도로 풍성하여 거기에 드는 비용이 엄청나게 많다고 합니다. 비록 물력이 풍부한 평상시라도 이 행차가 한번 지나가면 연로(沿路)가 텅 비었는데 더구나 은 것이 얼마 없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어찌 고갈되는 데 이르지 않겠습니까. 그 사이의 허다한 겉치레의 사소한 일들을 줄여야 할지 말지에 대해서는 신이 감히 모르겠습니다만, 채붕(彩棚)에 대해서만은 신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촌스럽고 속되니 참으로 성인이 말한 ‘광대놀음’으로서 예악(禮樂)의 나라에서 베풀어서는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수고롭히고 재물을 허비하는 것 또한 셀수없이 많으니 이보다 더 무익한 것은 없습니다. 난리를 겪은 뒤로는 여러 차례 조사(詔使)를 접대했어도 이 놀이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렇게 해도 대례(大禮)에는 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놀이를 폐지한 것이 사리에 매우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들으니, 병오년059) 조사가 왔을 때 다시 행하였다고 합니다. 전란을 겪은 뒤로 매우 급박하고 절실한 일 중에 아직 하지 못한 것이 많은데, 이 장난질하는 놀이가 어찌 우선적으로 회복해야 될 것이겠습니까. 지금은 온 나라가 슬프고 처참한 가운데에 있으니, 반드시 이 놀이를 중지해야만 합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앞으로 영원히 이 놀이를 폐지하되, 가령 백년 동안 태평 시대가 계속되어 재물이 풍부하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된 뒤에라도 다시는 마구 백성들을 수고롭히고 재물을 낭비하는 이 예법에 맞지도 않는 예를 하지 않는다면 매우 다행스럽겠습니다.
아, 옛글에도 실려 있기를 ‘국가에 9년의 저축이 없으면 부족하다고 하고, 6년의 저축이 없으면 결핍되었다고 하고, 3년의 저축이 없으면 자기 나라가 아니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대개 주(周)나라의 법은 로 천자로부터 아래로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재물을 쓰는 데 있어서 절제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1년 동안에 들어올 것을 계산하여 그것을 사등분한 뒤 그 가운데 셋을 쓰고 하나는 저축하여 3년을 저축할 경우 또 삼분(三分)을 이루어 꼭 1년의 비용을 지탱할 수 있었으니, 이른바 ‘3년 농사지으면 1년 양식이 남고, 9년 농사지으면 3년 양식이 남는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는 제도(制度)로서 조절하여 들어오는 것을 헤아려 나가는 것을 정함으로서 그중 남는 것을 쌓아 뜻밖의 사태에 대비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비록 홍수나 한재 또는 전쟁의 변고를 당하더라도 백성들은 세금을 더 낼 걱정이 없고 나라에는 재용(財用)이 결핍될 염려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후세로 내려와서는 재물을 쓰는 데 제한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백성들에게서 끝없이 거두어들이고 멋대로 공역(功役)을 일으켜 마음껏 낭비를 하다가 부족하면 세금을 더 거두어들여 잇대고, 그러고도 부족하면 마구 거두어들여 채우니, 이것은 곧 나가는 것을 헤아려 들어올 것을 정하고, 한정 있는 재화로 무한한 욕심을 채우려는 것입니다. 재화가 어찌 손상되지 않을 수 있겠으며 백성들이 어떻게 곤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들으니, 근래 국가 경비의 수효가 1년의 수입으로 1년의 비용을 대기에도 부족하다 하니, 이는 앞에 말한 ‘자기 나라가 아니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혼인(婚姻)·상장(喪葬)·빈객(賓客)에 대한 예는 갈수록 더욱 화려하고 성대하게 하기만을 힘써 비록 시장의 물건을 꾸어오거나 내년의 공물(貢物)을 끌어다 쓰면서도 돌이켜 절약하고 검소한 방법에서 해결책를 찾을 줄은 모르고 있으니, 어떻게 천승(千乘)의 임금으로서 마치 추위에 구걸하는 아이가 살 방책을 궁리하는 것처럼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평상시 아무 일이 없을 때엔 혹 이와 같이 지탱하며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세월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수천 리에 걸쳐 가뭄이나 병충해가 들거나 틈을 타고 쳐들어오는 도적이 있게 된다면 신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백성들은 근심하고 병사들은 원망하며 도적들이 사방에서 일어나 군신 상하가 눈물만 줄줄 흘리다가 결국에 가서는 서로 죽게 되는 데 이르고야 말 것이니,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기가 막히고 마음이 떨립니다. 때문에 신이 길게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다가 통곡까지 하는 것입니다.
원하건대 절약하고 검소하게 하는 것으로 오늘날 백성들을 보살피는 근본을 삼으시어 비록 산릉(山陵)과 조사(詔使)같이 더할나위 없이 큰 예일지라도 검약한 쪽으로 하도록 하소서. 그렇게만 된다면 비록 성상의 효도하고 공경하는 예에 죄를 얻게 되더라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대신들에게 맹세하여 고하고 유사들을 엄히 타일러, 안으로는 궁궐의 의복과 거마(車馬)로부터 밖으로 여항(閭巷)의 풍속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검약한 제도로 절제하게 하소서. 그렇게 한 뒤에는 전의 규례를 완전히 씻어버리고 영구히 갈 수 있는 법을 만들되, 주(周)나라 때 사분의 삼만을 사용했던 제도를 대략 모방하여 견고한 마음으로 지키고 장구한 공력을 쌓는다면 조금씩 불어나 일계(日計)는 부족하더라도 세계(歲計)는 넉넉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10년을 했는데도 백성들의 재물이 넉넉하지 않고 백성들의 힘이 펴지지 않으며, 국가의 재정이 조금이라도 넉넉해지지 않고 나라의 근본이 조금이라도 견고해지지 않는다면, 신은 부월(鈇鉞)의 주벌(誅罰)을 받아 면전에서 거짓말을 한 죄를 사과하겠습니다. 그때에는 전하께서 비록 용서해주고자 하시더라도 신은 감히 그 명을 받들지 않겠습니다.
아, 백성을 보살피고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것에 대해 신은 성지(聖旨)에 언급하신 것에 따라 앞에 대략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원근의 백성들이 고무 진작되어 메아리처럼 호응하고 바람에 따라 쓸리듯하며 굳게 결속되어 풀 수 없도록 하는 것은 또한 이러한 데에 있지 않으니, 신이 좀더 깊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애공(哀公)이 공자(孔子)에게 백성들을 복종시키는 방법에 대해 물었을 적에, 성인의 입장으로 볼 때 의당 본원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의논으로 곧바로 임금의 마음을 가리켜서 말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곧은 사람을 쓰고 바르지 않은 자들을 물리치면 백성들이 복종하고, 바르지 않은 자들을 쓰고 곧은 자들을 물리치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임금 마음의 사정(邪正)과 공사(公私)는 백성들이 알 수 없지만 사람을 쓰고 버리는 사이에서 관찰하면 그 속마음을 마치 검고 흰 것처럼 환히 볼 수 있으므로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신묘한 백성들이 늘 이것으로 따르거나 돌아서기 때문입니다. 아, 성인의 말은 참으로 지극합니다. 선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좋아하는 것이고 악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미워하는 것이니, 임금이 참으로 바르게 좋아하고 미워하며 공평하게 취하고 버리면 똑같이 본성(本性)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어느 누가 감격하고 기뻐하며 자신이 귀의할 곳으로 삼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한번 쓰거나 물리치는 사이에 감응(感應)의 신속함이 북채로 북을 치는 것보다 더 신속합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복종하고 나면 모든 영(令)이나 금하는 것이 임금이 시키는 대로 시행되어 위태로운 것을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약한 것을 강하게 할 수 있으므로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미워하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미워하기라도 한다면, 삼군(三軍)의 장수는 빼앗을 수 있지만 필부의 뜻은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니060) 저 발끈 성을 내기도 하고 바로 확 흩어지기도 하는 자들을 어떻게 위엄으로 제어하고 힘으로 붙들어 맬 수 있겠습니까.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 즉위하신 초기에는 인물을 등용하거나 물리치는 것이 모두 다 백성들의 마음을 크게 복종시켰으므로 한 달 남짓한 사이에 사방이 바람에 움직이듯 하였습니다. 그런데 전상(銓相)061) 을 제수하는 정사만은 크게 공평하고 지극히 바른 도에서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에 민간 사람들이 수근거리고 식자(識者)들이 근심하고 있습니다. 비록 어리석은 신으로서도 전하께서 굳이 친척을 피하지 않고 등용하려는 성대한 뜻을 지니고 계신 줄을 잘 알지만, 그래도 식자들의 근심을 풀 수는 없습니다. 대개 당초에 이귀(李貴)가 논했던 ‘한 장의 정초(政草)에 척리(戚里)의 이름이 이어졌다.’는 것은 진실로 새로이 정사를 시작할 때에 약석(藥石)이 되는 것이어서, 신은 오히려 ‘그 당시의 크고 작은 제수는 모두 수망(首望)을 따른 것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대개 이는 성상께서 애통해 하는 중이어서 단지 해조의 의망에만 맡기고 털끝만큼도 자신의 의견을 개입하지 않으셨으니, 이 세 사람에게 사적인 생각을 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인사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신하가 마음속으로 뜻을 헤아려 보고 필시 사심(私心)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는 청반(淸班)의 중요한 자리에 계속해서 주의(注擬)하여 아첨으로 총애를 얻으려 한 것인데, 이들은 스스로 좋은 계책 이라 여기고는 조금도 거리낌없이 임금을 그른 길로 인도하였으니, 비루한 자들의 마음씨와 태도가 분개스럽습니다. 전상(銓相)의 추천을 누가 하였는가의 물음에 대해 대신이 추천하였다고 답하였으나, 의중에 둔 사람이 끼어 있지 않자 더 의망하라고 명하고, 또 끼어 있지 않자 또 다시 의망하라고 명하여 반드시 의중에 둔 사람의 이름이 끼어 있은 뒤에야 비로소 붓을 들려고 하셨으니, 전하께서 자신의 뜻을 개입시켜 마음대로 하신 것이 이에 이르러 심하였습니다. 신이 식자들이 근심하는 것에 대해 석연치 않을 뿐만 아니라 전하께서도 천하와 후세에 스스로 해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진지 어질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신이 본디 모릅니다만, 설령 선후로 주의(注擬)된 4, 5명의 청명(淸名)과 실덕(實德)이 모두 그 사람보다 못하더라도 처음 정사에 임하시는 청명한 때에 사적으로 친근한 사람을 써서는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꼭 그렇지만도 않고 보면 그 누가 도리어 크지 않겠습니까. 마원(馬援)과 같은 공이 있으면 운대(雲臺)에 초상을 그려 놓아도 괜찮으며, 횡거(橫渠)062) 와 같은 학문이 있으면 인재를 천거하는 공문에 올려도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그런 사람이 아닐 경우에는 사정으로 공적인 일을 방해하기보다는 차라리 피혐하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원로(元老)를 맞이해 재상의 지위에 올려 놓고 스스로 평소 생각하던 것보다 훌륭한 인물이라고 여기시면 그를 외모가 아닌 정성으로 존대하고 의심없이 전일하게 신임해야만 제대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정을 위해서 전형(銓衡)을 뽑는 하나의 큰 인사행정을 함에 있어 그의 말을 채용하지 않은 채 바로 자신의 뜻대로만 하셨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온갖 정무를 혼자 운용해도 충분할텐데 어진 정승를 쓸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시작을 신중히 하셔야 할 때에 이미 이와 같은 수단을 사용하셨으니, 앞으로의 근심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삼사(三司)는 입을 다문 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하의 조정에 권력 있는 신하나 귀한 신하를 피하지 않고 꼿꼿한 의론을 주장할 만한 자가 없지 않을텐데 몇 달 동안 귀를 기울여봐도 들리는 것이 없으니, 저들이 어찌 이 일을 훌륭한 일이라고 여기거나 모두들 좋아하는 것이어서 그러는 것이겠습니까. 이는 그들이 마음속으로 ‘친애하는 사람에게 편벽한 것을 공도(公道)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불과하니, 그렇다면 우리 임금은 할 수 없다고 체념하는 것 중 이것보다 더한 것이 없으므로 신은 삼가 애통스럽게 여깁니다. 그러나 한 가닥의 공론이 겨우 초야의 상소에서 터져 나오자 저들도 법도에 맞는 말을 대하고는 마음이 편치 못하여 바야흐로 사직할 계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또 특별한 대우를 해주어 그들로 하여금 여유 만만하게 자기 자리에 눌러 있도록 하였습니다. 신은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 반드시 이 사람을 임용하면 국가에 무슨 큰 유익함이 있길래 이 하나의 거조로 인해 대신을 가벼이 여기고 공론을 무시하는 두 가지 잘못을 저질러 거듭 원근 사람들의 마음을 실망시킨단 말입니까. 한두 달 사이에 나라의 여론이 더욱 들끓어 심지어는 손가락을 꼽아 세어가며 ‘누구는 항상 계책을 정한 것으로 자부했는데 지금 그의 아들은 어떤 자리에 올랐고 그의 당파인 사람은 어떤 자리에 올랐으며, 누구는 항상 보호한 것으로 자임했는데 지금 그 사람은 어떤 자리에 올랐다.’고 하면서 마치 전하께서 벼슬을 가벼이 사용하여 보답의 밑천으로 삼는 것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아, 설령 그들이 참으로 계책을 정하고 보호한 공이 있더라도 밝으신 전하께서는 반드시 후한(後漢)의 안제(安帝)·순제(順帝)·환제(桓帝)·영제(靈帝)와 같은 일을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 전하는 선왕께서 살펴보고 택하셨으므로 자애로움이나 효성이 빈틈이 없었는데, 누가 감히 하늘의 공을 탐하여 자기 것으로 삼아 전하의 작상(爵賞)을 훔치려 하겠습니까. 이럴 리는 분명히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오히려 수근거리고 있으니 어찌 지난달의 거조 때문에 사람들의 구설을 초래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형적이 비슷하면 쉽게 의심하는 법이니, 전하일지라도 어찌 집집마다 사람을 보내 사람들이 깨닫도록 설명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동궁에서 덕을 기른 지 17년이나 되었는데,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공손하고 검소하며 선을 즐기고 학문을 좋아하는 진실한 덕이 먼 지방까지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왕위에 오르시니 만물이 모두 바라보고 조정과 재야의 사람들이 눈을 씻으며 태평성대의 세상이 올 것을 바라고 있었는데, 거조가 사적으로 치우쳐 사방의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한 고을의 수령이 다스리는 지역은 백 리에 불과하지만, 부임한 초기에 한번 관리와 백성을 실망시키면 뒤에 비록 진정시키고 보합(保合)하여 훌륭한 정치를 하고자 매우 부지런히 힘을 써도 공효가 나타나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하나의 큰 나라는 수많은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람마다 각기 별개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여러 사람들이 우러러 기대하는 초기에 그들의 마음에 차지 않으면 뒷날 수습하는 어려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안정되느냐 위태롭게 되느냐 하는 기틀의 사이가 털끝만큼도 되지 않으므로 신이 사적으로 지나치게 근심하여 한밤중에 천장을 바라보며 길게 탄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이 삼가 헤아려 보건대, 전하께서는 경전의 가르침에 잠심(潛心)하고 이전의 역사를 널리 보셨으므로 시비 공사(是非公私)의 분변과 치란 흥망(治亂興亡)의 연고에 대해서 익히 살피셨을 것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어찌 인척이나 사적으로 친한 사람들이 조정에 두루 포진해 있는 것이 성덕(聖德)에 누가 되고 융성한 세상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한 것은, 전하께서 새로이 왕위에 올라 상하의 인정과 의리를 미처 익숙히 알기도 전에 갑자기 위태롭고 불안한 변고를 당하셨으므로 깊은 궁궐에서 외로이 거처하고 계시다 보니 두려운 생각이 자연히 들어 친근하고 믿는 자들을 널리 배치해 두었다가 위급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쓰려고 생각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하의 생각이 혹시라도 이러한 데에서 나왔다면 이는 또한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대체로 하늘과 땅이 밖이 없을 정도로 넓고 크며, 임금이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존귀한 이유는 사적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늘이 사사로이 덮어주는 것이 있을 경우 덮어주지 않는 것이 있게 되어 크지 않을 것이고, 땅이 사사로이 실어주는 것이 있을 경우 실어주지 않는 것이 있게 되어 넓지 않을 것이며, 임금이 사적으로 친근하게 지내는 자가 있을 경우 친근하게 대하지 않는 자들도 있게 되어 존귀하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조정의 백관치고 어느 누가 전하의 사체(四體)가 아니겠으며, 삼군(三軍)과 만백성치고 어느 누가 전하의 자식이 아니겠습니까. 이들 모두를 한결같은 사랑으로 대하여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불행히 난리를 당하더라도 어느 누가 전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것은 도모하지 않고 도리어 스스로 몇 명의 친근하고 믿는 사람에게만 의탁하고자 하시는데, 그렇게 되면 친근하고 믿는 자들은 얼마 없고 나머지는 모두 소원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럴 경우 전하께서 두고 계신 것이 너무 좁지 않겠으며, 전하의 형세가 너무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예로부터 척리(戚里) 가운데 어찌 쓸 만한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그렇지만 밝고 의로운 임금이 일찍이 그런 자들을 총애하고 신임하지 않았던 것은, 대개 이런 무리들은 안팎을 거침없이 들락거리면서 안으로는 헐뜯고 칭찬하는 것으로 시비를 헷갈리게 해서 임금의 총명을 가릴 수 있고 밖으로는 파벌을 세워 놓고 권세 있는 자들을 불러들여 위복(威福)을 멋대로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사대부 중에 염치없이 이익만 추구하는 자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빌붙고 아첨하며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들을 배척하여 그 형세가 반드시 나라를 망하게 하는 데 이르고야 말기 때문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전일의 잘못을 생각하시고 빨리 다시 도모하시어 공도(公道)를 넓히고 사적으로 친한 자들을 물리치시며 인망(人望)이 있는 이들을 널리 거두어 여러 자리에 앉히소서. 그렇게 한 뒤에야 일을 도모하고 정사를 세울 때 조정에서만 상의하고 집에서는 도모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임금이 삼공(三公)을 배와 가슴으로 삼고 육경(六卿)을 팔과 다리로 삼으며 대간을 귀와 눈으로 삼아 참으로 적임자를 얻어 신임한다면, 단정히 의관을 정제하고 자리에 앉아 있어도 다스려지지 않는 일이 없고 이루어지지 않는 공적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일 혹시라도 시기하고 의심하는 마음을 품어 은밀히 방해하고 살피게 하거나 혹은 인척과 친당(親黨) 그리고 좌우의 총애하는 시신(侍臣)을 찾아가 물어보면, 참소하는 말이 반드시 파고들어 어진 자들은 날로 멀어져 나라를 다스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대개 조정에서 공적으로 강력하게 말하여 아뢰지 못하고 연줄을 타고 부정한 경로로 들어가는 것은 모두 교묘하게 꾸며대는 말이니, 임금이 깊이 살피고 통렬히 끊어버려야만 일방적인 얘기만 들음으로 인해 생기는 간악한 짓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그런 자들을 찾아가 말을 하도록 해서야 되겠습니까. 관원을 가려 뽑을 때 환관(宦官)이나 궁첩(宮妾)들이 이름을 알지 못하는 부류 중에서 구하지 사적으로 내통하고 결탁하며 남몰래 권세에나 붙쫓는 자들 중에서 구하지는 않습니다.
20여 년 전에는 사대부의 집에 남몰래 궁궐을 들락거리는 자가 있으면 청론(淸論)이 침뱉으며 더럽게 여겨 자신들을 더럽힐 것 같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10여 년 이래로 조정에는 청의(淸議)가 없어지고 요행이나 바라는 풍조가 크게 일어나 이러한 짓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대부 집은 겨우 약간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에 궁궐은 저자거리 같이 되어 각기 문호(門戶)를 세우고 뇌물을 받고 있는데, 변장(邊將)과 수령(守令)을 하는 데에도 모두 정해진 가격이 있고, 작상(爵賞)과 형벌이 공도(公道)를 말미암지 않아 결국에는 군신 상하가 서로 인의(仁義)를 버린 채 이기심만 품고 만나는 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리하여 아랫사람이 임금의 잘못을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윗사람도 신하의 죄악을 바로잡지 못한 채 아첨하고 의심하는 더러운 풍조가 성행하여 선왕 말년에 이르러서는 조정의 혼탁함이 극도에 달했습니다.
근본을 바로잡아 새롭게 시작하는 이때에 만일 이러한 길을 막고 끊어 궁궐을 엄숙하게 하지 않는다면 사대부들은 귀와 눈에 익숙한 이전의 버릇을 부끄러움도 없이 태연히 행할 것이며 유풍(遺風)과 여습(餘習)은 쉽게 번져나가 도모하기 어렵게 될 것이니,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천위(天位)와 천직(天職)을 어진이들과 함께 하고 감히 사적인 은택을 베풀 밑천으로 삼지 않는다면 임금이 잘못을 고친 것을 만방이 모두 우러러보아 조정이 청명해지고 원근이 모두 열복하여 왕화(王化)가 행해질 것입니다.
신이 들으니, 성인은 말 한 마디 글자 한 자도 구차하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인에게 칭찬을 받은 자는 화려한 곤의(袞衣)를 받은 것보다 더 영예롭게 여기고 물리침을 당한 자는 도끼로 사형을 당한 것보다 더 무섭게 여기는데, 이는 상벌이 각기 자신들이 실제로 한 일에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근래에 보니, 전하께서 상신(相臣)을 돈유할 때에 등급을 정하는 말을 많이 하셨는데, 만일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성인이 말하거나 침묵을 지키는 절도에 어찌 손상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또한 마음을 엿보다 몰래 의논하는 자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군자가 자기집에 거처할 때 옳은 말을 하면 천리 밖에 있는 자들이 듣고 호응하며, 옳지 않은 말을 하면 천리 밖에 있는 자들이 듣고 떠난다.’ 하였으니, 말을 삼가지 않을 수 없고, 이처럼 사람들이 따르거나 돌아서는 것이 달려 있으니, 모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신의 말은 여기에서 더 나아간 것이 있으니, 이는 신의 말이 아니라 바로 선유(先儒)의 말이며 선유의 말이 아니라 바로 성인의 말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이것을 일상적인 말과 죽은 법이라고 여겨 바로 싫증내며 버리지 마소서. 그러면 매우 다행스럽겠습니다.
신이 듣건대, 천하의 온갖 일이 모두 임금의 마음에서 근본하니 임금의 마음이 바르면 안으로는 궁궐, 밖으로는 조정, 가까이는 도성으로부터 멀리는 땅끝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도 바르게 되지 않는 것이 없다 하니, 《서경(書經)》에 이른바 ‘임금이 먼저 표준을 세우라.’는 말과 《맹자(孟子)》에 이른바 ‘한번 임금을 바로잡음에 나라가 안정된다.’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나 사람 마음을 바로잡기 어렵다고 항상 걱정하는 것은 사사로운 마음이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임금의 마음은 외물에 공격을 받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만배나 됩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성왕(聖王)은 조심조심하며 이 마음을 지켜 비록 물결치듯 번잡하고 화려한 가운데에 있거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윽한 곳에 홀로 있더라도 조금도 방심하여 외물에 끌려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발하지 않고 고요히 있을 때는 마치 거울이 텅 비고 물이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아 온갖 이치가 두루 구비되어 있고, 마음이 느껴서 발하게 될 때에는 오는 것에 따라 순조로이 대응하여 품급(品級)에 따라 조금의 오차도 없이 조절하는데, 미리 이치를 연구하여 옳고 그름을 파악해 두고 나중에는 경(敬)을 위주로 삼아 지키지 않으면 이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서(虞書)에서 말한 ‘세밀히 살피고 한결같이 지켜 중도(中道)를 잡으라.’는 말과 공자(孔子)가 말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앎을 극진히 하고, 뜻을 성실히 하며 마음을 바르게 하고, 자신의 사욕을 이겨 본연의 예를 회복하라.’는 말과 자사(子思)·맹자(孟子)가 말한 ‘선(善)을 밝히고 몸을 성실하게 하도록 하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힘을 쓰는 방법을 보여준 것이 매우 간곡하며, 전하께서 책을 강론하며 연구한 것이 매우 상세할 것이므로, 신과 같이 미천한 자가 감히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알기가 어려운 게 아니고 행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깊은 궁궐에서 한가히 계실 때와 온갖 정무가 답지할 때에 평소 들었던 가르침을 중시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힘써 행하는 공부가 혹시라도 지극하지 못하면, 아직 설은 곳은 완숙하게 되기 어렵고 완숙한 곳은 의식하지 않고도 절로 되는 경지에 이르기 어려우니, 성인이라도 미친 사람이 되는 것은 한 생각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여러 가지 일을 처결하시는 여가에 학문을 강론하는 공부를 폐하지 말고, 항상 마음속에 의리가 담겨 있도록 하며 마음을 밝고 너른 곳에 노닐게 함으로써 사욕에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청명(淸明)한 본연의 체(體)로 하여금 항상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여 일을 처결하는 근본으로 삼되, 게으르며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하지 말고,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한결같이 예에 따라 해서 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검속(檢束)하는 것이 혼자 있을 때도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그러면 집안과 나라를 모범적으로 이끌어나가는 효험이 자연 모든 곳에 속속들이 미치게 될 것이니, 어찌 성대하지 않겠습니까. 소공(召公)이 성왕(成王)에게 경계하기를 ‘지금 왕께서 명을 받은 것은 끝없이 아름다운 일이기는 하나 또한 끝없는 걱정거리이기도 합니다. 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하고, 또 말하기를 ‘지금 왕께서 초정(初政)에 임하신 것은 마치 자식을 처음 낳았을 때 잘 교육시키면 명철(明哲)한 명을 받게 되는 것과 같으니, 지금에 있어서 하늘이 왕에게 명철함으로 명할지, 길흉(吉凶)으로 명할지, 역년(曆年)으로 명할지 알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초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니, 왕께서는 어서 빨리 덕 있는 이를 공경하십시오.’ 하였습니다. 신은 글을 읽다가 이 대목에 이를 때마다 그의 어린 임금을 충분히 경동(警動)시킬 만한 지극한 충성에 탄복하고 무릎을 치며 외우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말의 깊고 간절함을 더욱 공감하여 눈물까지 흘립니다. 하늘이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이 심하기도 하며, 사람이 도모하기를 잘못한 지가 오래도 되었습니다. 나라의 형세가 날로 더욱 쇠약해져 마치 해가 서산에 지고 물이 구렁으로 내닫는 것 같으니, 전하께서 기업(基業)을 이어받아 지키는 것은 참으로 이른바 ‘끝없는 걱정거리’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장구한 명을 비는 것도 오늘에 달려 있으며 그 명을 잃게 되는 것도 오늘에 달려 있는데, 어느 쪽으로 되느냐 하는 관건은 단지 덕 있는 이를 공경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스스로만 안락하게 지내시겠습니까? 그리고 스스로 잘난 체하시겠습니까? 또한 덕 있는 이를 공경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현재 천명(天命)이 돌보아 주기를 새롭게 하고 사람들의 기대가 절실하니, 지금은 바로 선유(先儒)들이 말한 시세(時勢)를 타고 큰일을 할 때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분발하소서. 아, 신이 전하에게 간절히 생각하는 것은 단지 이 전후의 두세 가지 방책에 불과하지 전하께서 채택하실 만한 별다른 기발한 방책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학(聖學)을 힘써서 백성들의 표준을 세우고, 취사(取舍)를 공평하게 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복종시키고, 절약과 검소를 숭상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풍족하게 하는 임금의 도는 대략 거론하였습니다. 그리고 구구절절이 말씀드린 것은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니, 전하께서는 잘 살피소서."
- 【정족산사고본】 2책 4권 1장 A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1책 30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재정(財政) / 외교-명(明) / 인사-임면(任免) / 사법-재판(裁判) /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 [註 058]봇도랑에서 물을 퍼올리면 미려(尾閭)에서 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 미려(尾閭)란 《장자(莊子)》 추수편(秋水篇)에서 나온 말로 바다 밑에 있는 바닷물이 쉴 사이 없이 새는 바다 밑의 큰 구멍이다. 여기에서는 퍼올리는 물의 양은 적은데 새나가는 물의 양은 많다는 뜻이다.
- [註 059]
병오년 : 1606 선조 39년.- [註 060]
삼군(三軍)의 장수는 빼앗을 수 있지만 필부의 뜻은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니 :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에 나오는 말로 여기서는 위정자가 잘못하면 백성들의 마음을 절대로 복종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註 061]
전상(銓相) : 이조 판서를 가리킴.- [註 062]
횡거(橫渠) : 송(宋)의 학자 장재(張載).○大丘府使鄭經世上疏曰:
伏覩三月初一日備忘記, 一札十行, 丁寧懇惻, 憂民保邦之意, 發於血誠, 溢於言表。 而又慮聰明, 或有未及, 幽隱難於自達, 許令中外之人, 各盡所言。 噫! 第五倫讀詔書, 而決光武之爲聖主。 臣雖愚妄, 奉讀聖旨, 有以知殿下憂勤初服, 勵精大猷, 思欲翕受敷施, 奮發有爲, 不肯因循牽補, 苟安目前而已之盛心也。 臣智慮淺短, 經術空疎, 旣非識務之才, 又無適用之學, 尙安有忠言宏論, 可以副殿下之望, 而動殿下之聽哉? 顧念今日國家之勢, 十棊九卵, 未足以喩其危, 驚濤敗楫, 未足以喩其懼, 俯仰呼吸, 未足以喩其急。 殿下煢然亮陰之下, 慘然哀疚之中, 深憂默念, 夙夜淵谷, 四顧茫然, 未有涯際, 至誠求助, 不暇待成王訪落之日。 則凡在臣民, 義當灑泣敷對, 未暇擇辭。 況臣受恩深重, 銜感已久, 何敢自諉庸陋, 而泯然無一言, 以負殿下乎? 臣誠有所不忍於此。 而不欲廣引前言, 泛論治道, 徒爲觀聽之美, 而不切於應病之用。 請卽殿下恤民之旨, 與夫近日之事, 而反覆推明之。 夫恤民之實, 在於寬其力厚其生, 而二者之本, 在節儉。 不能節儉, 而求以輕徭薄賦, 以恤其民, 譬如不塞其源而欲絶其流, 豈不難哉? 況今兵戈喪亂之餘, 生齒未息, 田野不闢, 出郊而視之, 則蓬蒿荊棘, 一望無際者, 在在皆然, 粟米麻絲之出於土地者, 不能百一於平時, 此正君臣上下惡衣菲食, 爲民惜財之日。 而奈之何奢侈之風, 經亂愈甚, 下士衣綾段, 韋布服紬絹, 吏胥賤隷, 襲華重肉, 是乃收以溝澮, 而洩以尾閭。 古人所謂: "奢侈之災, 甚於水旱者。" 大可懼也。 宮省事勢, 臣不得而知之, 而只以供上紙一事言之, 則其品之美好, 倍於祖宗朝規式, 而小或不謹, 則該司官員, 各邑守令, 無不坐罷。 中外承風, 務爲佳品, 費財已多, 而猶懼上納之際, 或遭點退, 厚齎綿布, 以賂其吏, 其爲浮費, 不亦甚乎? 而竊聞此紙, 初不盡爲御用羡餘之數, 或以頒賜諸宮, 終歸防納之資, 或自闕內, 不入其紙, 而直受價錢, 數年以來, 傳聞藉藉。 嗚呼! 是亦不可以已乎? 低其紙品, 省其羡餘, 取足爲宮中之用而止, 則民受初政之賜, 豈不厚哉? 臣之所陳, 只此一事, 願殿下之觸類焉。 正殿未成, 行宮偏陋, 固不稱於至尊居養之所。 而然猶侈於堯之土階, 高於禹之卑宮, 敞於夫差之積薪, 安於衛文之野處, 則生聚敎訓之前, 雖或不遑此事, 未爲大欠。 而其時當國之臣, 自不免於貪贓狼藉, 傑構而處其心。 蓋懼上意, 或怒其豐於自奉, 儉於君父。 且其飾爲治安之言, 諱民愁歎之狀, 開導人君宴安之心, 以固其寵者, 乃是小人常態。 於是建議, 以爲法宮不可不立, 鞭催孑遺之形骸, 椎剝瘡殘之血髓, 役未及半, 而民已困於塗炭之中矣, 可勝痛哉? 頃者殿下, 以 山陵大役, 詔使接待等事, 深愍民生之不堪供應, 許以宮闕都監所收米布移用, 而又令毋得再行分定, 臣知殿下之微意, 其不以建宮爲急, 明矣。 此山東之民, 所以願得須臾無死, 以見德化之成也。 人心不常, 入奢最易, 願殿下之固守焉。 至於山陵詔使等事, 乃是送終事大莫重之禮, 固宜極其誠敬, 不敢有秋毫未盡之事。 然於其間, 亦豈無虛文浮費, 在所當已者乎? 亦宜明降指揮, 其中不當於禮, 而有傷於民者, 竝令蠲罷, 不勝幸甚。 臣聞懿仁王后之喪, 都監當事之臣, 過於勤幹, 卜定名目, 罔有紀極, 竭盡民力, 務爲觀美, 至於梓宮至山, 經夜幕次, 自前例用油幕排設, 而乃起造假家, 籠絡山上, 望之如神力所爲云。 推此一事, 餘皆可知。 嗚呼! 臣子必誠必信之道, 豈在是哉? 且與健元陵, 同在一山之內, 而石欄麟馬, 凡附於陵者, 極其崇侈壯麗, 悉皆倍之云。 臣非目覩, 不敢以爲必然。 萬一有之, 則母喪踰於父喪, 臧倉猶且搆譏於孟子, 況以子孫之喪, 踰於祖先, 揆諸情義, 豈不爲大段未安乎? 惜乎! 其時在廷諸臣, 無以此言, 謦欬於 先王之側, 使先王, 無以自說於後世, 此豈先王與殿下之所知乎? 臣常痛之, 以爲忠於君父者, 不當如是, 故不敢不盡言於今日。
伏願殿下, 深思熟察, 毋以前事爲例, 只以曾子愛人以德之訓爲法, 只以太宗大王追奉健元陵之制爲憲, 以彰我 大行大王恭儉之德。 千萬幸甚臣非欲使殿下, 爲天下儉其親。 誠以踰於先祖, 自是義理不安, 乃孟子所謂, 不得不可以爲悅者。 假使有財猶不當爲, 況今日事力, 又是無財之甚乎? 臣又聞近日山陵起役, 用民已多, 而旋因妖書之出, 卽便停止, 別求他山云。 臣在遠外, 未知書中所言, 有何熒惑聖人, 但言作善, 降之百祥, 作不善, 降之百殃。 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人之殃慶禍福, 豈死後葬地之所能爲也? 此所謂惑世誣民, 充塞仁義之說, 非識理君子所宜道也。 如使術家之言, 果一一有驗, 則李淳風、郭璞之輩, 當自占天下第一吉地, 使其子孫, 世爲王侯將相。 而其後未聞有顯者, 此其怪誕不足信, 明矣。 以聖上之明, 所宜火其書而痛絶之, 使不得流布於世。 而乃命看審他山, 有若崇信之爲者, 輕棄先朝已卜之地, 不惜疲氓已用之力, 使衣冠之奉, 不以時定, 不幸而遷延時月, 或至於後期而慢, 則豈不重爲未安? 臣竊惑之。 臣又聞詔使之行, 自義州至于國都, 迎接館待之禮, 極其豐盛, 糜費之資, 動以萬計。 雖以平時富庶之力, 一經此行, 沿路枵然, 矧在今日, 幾何而不至於枯渴耶? 其間許多浮文末節當省與否, 臣不敢知, 惟彩棚一事, 臣亦知之。 極爲鄙俚, 眞聖人所謂優倡之戲, 不當陳於禮樂之地。 而勞民費財, 又且不貲, 作無益, 害有益, 莫甚於此。 亂離之後, 累接詔使, 而不設此戲。 其於大禮, 未是欠闕, 因而廢之, 甚合事宜。 而聞丙午詔使之來, 又復設之云。 兵戈以來, 至急之務, 至切之事, 多所未遑, 顧此戲玩之具, 豈是首先還復之擧哉? 今於擧國悲慘之中, 必停此戲。 臣願自今伊始, 永爲停罷, 使雖至昇平百年, 物阜民安之後, 亦不復作此非禮之禮, 浪爲勞費, 不勝幸甚。 嗚呼! 記, 有之: "國無九年之儲曰不足, 無六年之儲曰乏, 無三年儲則曰國非其國也。" 蓋成周之法, 上自天子, 下至庶人, 其用財也, 莫不有制。 計一年之入而四分之, 用其三而儲其一, 積三年之儲, 則又成三分, 恰支一年之用, 所謂: "三年耕餘一年之食, 九年耕餘三年之食者。" 此也。 是其節以制度, 量入爲出, 峙其贏餘, 以擬不虞。 故雖遇水旱之災, 師旅之變, 民無加賦之患, 而國無乏用之憂。 降及後世, 則用財無制, 故取民無藝, 妄興功役, 恣爲浮費, 不足則加賦以繼之, 又不足則橫斂以充之, 是乃量出爲入, 以財徇慾。 財安得不傷, 民安得不困乎? 竊聞近歲國家經費之數, 一年之入, 不足以供一年之用, 所謂國非其國, 蓋不足以言之。 而婚姻喪葬賓客之禮, 愈務華盛, 雖至稱貸市廛之藏, 引用來歲之貢, 而猶不知反求節儉之道, 豈有千乘之君, 作此寒乞兒計活, 而可以爲國者乎? 平時無事, 或可如此支撑, 架漏度日。 不幸而有數千里之旱蝗, 不幸而有乘釁之寇敵, 則臣未知何以處之, 何以應之。 民愁兵怨, 盜賊四起, 君臣上下, 涕泣漣如, 終至於淪胥而已。 思之至此, 氣唈心悸。 此臣之所以太息流涕, 繼之以痛哭。 願以節儉之說, 爲今日恤民之本, 雖如山陵詔使莫大之禮, 請從儉約, 雖得罪於聖上孝敬之聽, 亦不避也? 伏願殿下, 誓告大臣, 嚴勅有司, 內自宮闈服御之用, 外而至於朝廷之禮, 下而至於閭巷之俗, 無不節之以儉約之制, 然後一洗前規, 永爲成法, 略倣成周四分用三之制, 守之以堅固之心, 持之以積久之功, 庶幾寸有所進, 而尺有所長, 日計不足而歲計有餘。 如此十年而民財不阜, 民力不紓, 國用不稍裕, 邦本不稍固, 則臣請伏鈇鉞之誅, 以謝面瞞之罪。 殿下雖欲赦之, 而臣亦不敢承也。
嗚呼! 恤民固邦之說, 臣旣因聖旨所及, 而略陳於前矣。 至於使民, 遠近響應, 鼓舞風動, 固結而不可解, 則又不在於此, 臣請得以究言之。 哀公問服民之道於孔子, 聖人宜以端本淸源之論, 直指君心, 而乃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 誠以君心之邪正公私, 民有不得以知者, 而觀於進退用舍之際, 則其中之所存, 判然如黑白之可見, 而至愚而神者, 輒以爲向背焉。 聖人之言, 嗚呼至哉! 善者, 人之所同好, 惡者, 人之所同惡, 人君誠能好惡以正, 取舍以公, 則彼同有秉彝者, 孰不歡忻感悅, 以爲己歸乎? 是其一擧措之間, 而感應之神速, 甚於桴鼓。 民心旣服, 則令行禁止, 惟君所爲, 而危可使安, 弱可使强, 天下無難事矣。 其或不然而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則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 彼咈然而怒, 渙然而散者, 其能威制而力縶之乎? 竊見殿下卽阼之初, 登黜進退, 擧皆有以大服民志, 旬月之頃, 四方風動, 而獨其銓相除拜之政, 似不出於大公至正之道。 閭巷竊言, 有識懷憂。 雖以臣之愚, 極知殿下內擧不避親之盛意, 而猶不能釋然於識者之憂也。 蓋其當初李貴所論一紙政草, 戚里聯名者, 固爲新政之藥石, 而臣意猶謂其時大小除拜, 悉從首擬。 蓋聖上於哀痛之中, 但任該曹所擬, 未嘗以一毫己意, 參入於其間, 非有私於此三人也。 惟其秉銓之臣, 陰揣上意, 謂必有私, 淸班重地, 連絡注擬, 媚悅取寵, 自謂得計, 而導主爲非, 略無忌憚, 鄙夫情態, 爲可憤耳。 若其銓相之薦, 乃是大臣所擬, 而其人不與焉, 則命之加擬, 又不與焉, 則又命加擬, 必得其人之姓名, 然後始肯落筆焉, 殿下參入己意, 任情低昂, 至此而甚矣。 不唯臣, 不能釋然於識者之憂, 雖殿下亦無以自解於天下後世矣。 其人賢否, 臣素未知, 設使前後注擬四五人, 淸名實德, 盡出其下, 初政淸明, 不當及於私昵。 況未必然則其爲累, 顧不大乎? 有馬援之功, 則像之雲臺可也; 有橫渠之學, 則登之薦剡可也。 苟非其人, 則與其以私妨公, 不若避嫌之爲愈也。 殿下延登元老, 置之相位, 自以爲賢於夢卜, 則尊之不以貌而以誠, 任之不以貳而以專, 然後可得盡其用。 而乃於爲朝廷擇銓衡一大除拜, 不用其言, 而直任己意。 若然則獨運萬機足矣, 亦安用賢相爲哉? 殿下於愼始之日, 已用如此滑手段, 日後之憂, 何可勝言? 而三司噤默, 寂無一言。 殿下之廷, 能爲讜論, 不避權貴者, 不爲無人, 而側聽累月, 亦無所聞, 彼豈以此事, 爲盛擧也, 亦豈皆其所好哉? 其心不過以爲: "親愛之辟, 不可以公道勝耳。" 則吾君不能, 莫大乎此, 臣竊痛之。 及其一脈公論, 僅發於草野之章, 則彼亦不能自安於法語之言, 方爲辭遜之計。 而殿下又示以非常之數, 使之委蛇盤礴, 尙據其座。 不識, 殿下必任此人, 有何大益於國家, 而輕大臣蔑公論之失, 一擧而兩得之, 以重失遠邇之心乎? 一兩月來, 國言愈騰, 至於屈指而數之曰: "某也常以定策自當, 而今其子爲某官, 其黨爲某官某也, 常以調護自任, 而今其身爲某官。" 若以殿下爲輕用爵位, 以爲酬報之資者然。 噫! 設使其人, 眞有定策調護之功, 以殿下之明, 必不爲安、順、桓、靈之擧。 況我殿下, 簡在先王, 慈孝無間, 孰敢貪天之功, 以爲己有而盜殿下之爵賞乎? 此其爲必無之理明矣, 而人猶有所云云者, 豈非以前月之擧, 有以來衆人之口, 而形迹所似, 人情易疑, 殿下亦安能家置一喙而人曉之耶? 殿下養德潛宮, 十有七年, 仁孝恭儉, 樂善好學之實, 聞於遐壤。 一朝正位宸極, 萬物咸覩, 朝野拭目, 想望太平, 而乃以擧措偏私, 見疑於四方。 今夫一邑之宰, 其所治不過百里, 而到任之初, 一失吏民之心, 則後雖欲鎭定保合, 以爲善治, 用力甚勤, 而見功甚難。 況乎一國之大, 萬姓之衆, 人各有心, 而顒望之初, 未有以厭服之, 則後日收合之難, 當如何哉? 安危之機, 間不容髮, 此臣之所以私憂過慮, 中夜仰屋而長吁者也。 然臣竊料, 殿下潛心經訓, 博觀前史, 其於是非公私之辨, 治亂興亡之故, 察之熟矣。 豈不知姻婭私昵之布列朝端, 有累於聖德, 而非盛世之事乎? 得非新登大位, 上下情義未及諳熟, 而遽遭危疑之變, 眇然深居, 不免有危懼之心, 遂欲廣置親信, 以擬急難之用乎? 殿下之慮, 或出於此, 則又大誤矣。 夫天地之所以廣大無外, 人主之所以尊而無對者, 以其無私也。 若天有私覆則有所不覆, 而爲不大矣;地有私載, 則有所不載而爲不廣矣;人主有私比, 則有所不比而爲不尊矣。
目今朝廷百官, 孰非殿下之四體, 三軍萬姓, 孰非 殿下之子弟乎? 一視同仁, 以得其心, 則不幸遇難, 孰不爲 殿下捐軀者乎? 不此之圖, 而顧欲自托於數三親信之人, 則親信者無幾, 而餘皆爲踈外之人矣。 殿下之有, 不亦狹乎; 殿下之勢, 不亦孤乎? 且夫自古戚里之中, 亦豈無可用之人, 而明王誼辟, 未嘗有尊寵信任之者, 蓋以此輩, 關通內外, 蹊徑無礙, 內之可以行毁譽眩是非, 以蔽聰明, 外之可以立門庭招權勢, 以作威福, 於是士大夫之嗜利無恥者, 爭相趨附, 競爲阿黨, 排擯異己, 斥逐忠賢, 其勢必至於亡人之國故也。 伏願殿下, 深惟前失, 亟思改圖, 恢弘公道, 屛逐私昵, 廣收人望, 列之庶位。 然後圖事立政, 則詢於朝而不謀於家。 人君以三公爲腹心, 六卿爲股肱, 臺諫爲耳目, 誠能得人而信任之, 則垂拱南面, 而事無不治, 績無不凝。 如或內懷猜疑, 密行防察, 或訪於姻婭親黨, 或咨於左右便嬖, 則讒言必入。 而賢者日疏, 國不可爲矣。 大槪不能痛言於朝, 公爲啓達, 而夤緣曲徑以入者, 皆交構之言, 人主深察而痛絶之, 然後無偏聽生奸之患。 況可咨訪而導之言乎? 爲官擇人, 則求之於宦官宮妾不知姓名之流, 而不求諸交通締結, 倚附幽陰之類。 頃在二十年前, 士大夫家, 有穿穴蹊徑, 交通宮禁者, 淸論唾鄙, 視若浼己。 十許年來, 朝無淸議, 倖門大開, 搢紳之家, 能以此事爲恥者, 僅有若干。 於是宮闈成市, 各立門戶, 各招貨賂, 邊將、守令, 皆有定價, 爵賞刑罰, 不由公道, 終至於君臣上下, 去仁義懷利以相接。 不惟下之人, 不能言君上之過擧, 上之人, 亦無以正臣下之罪惡, 依阿淟涊, 諂瀆成風, 以至于 先王末年, 而朝著之穢濁極矣。 今於端本正始之日, 若不杜絶此路, 使宮闈肅然, 則士大夫耳目所慣, 恬不知恥, 遺風餘習, 易至滋蔓難圖矣, 深可懼也。 天位天職, 與賢者共之而不敢爲私恩之地, 則日月之更, 萬方咸仰, 朝廷淸明, 遠近悅服, 而王化行矣。 臣聞聖人, 一言一字不苟。 故得其褒者, 榮於華袞, 受其貶者, 威於鈇鉞, 以各當其實故也。 近見殿下敦諭相臣之際, 多有品藻之語, 萬一或不稱實, 則於聖人語默之節, 豈不有損, 而人亦有窺其淺深而竊議之者矣。 《易》曰: "君子居其室, 出其言善, 則千里之外應之, 不善則千里之外違之。" 言之不可不愼, 而繫於人之向背如此, 幷乞留念。 抑臣之爲說, 又有進於此者, 非臣之說, 乃先儒之說, 非先儒之說乃聖人之說也。 伏願殿下, 勿以爲常談死法, 而遽厭棄之幸甚。 臣聞天下萬化, 無一不本於人主之心, 人主之心正, 則內而宮壼, 外而朝廷, 近而輦轂之下, 遠而至於率土之濱, 無一不歸於正。 《書》所謂: "皇建其有極。" 《孟子》所謂: "一正君而國定。" 者, 此也。 雖然人心之所以常患於難正者, 己私害之也, 而人主之心, 則其受攻於物, 又萬倍焉。 故古之聖王, 兢兢業業, 持守此心, 雖在紛華波蕩之中, 幽獨得肆之地, 而未嘗少放於軀殼之外, 以爲物引。 是以寂然未發, 則鑑空水止, 而萬理皆備, 感而遂通, 則隨事順應, 而品節不差, 非窮理以擇之於先, 主敬以守之於後, 則不能以與此也。 《虞書》所謂: "精一執中。" 孔子所謂: "格致誠正, 克己復禮。" 子思、孟子所謂: "明善誠身。" 其示人用力之方, 不啻丁寧, 而殿下之講究於方冊, 不啻詳且悉矣, 臣之淺陋, 非惟不敢覼縷, 亦無容覶縷, 獨恐非知之難, 行之惟艱。 深宮燕閒之中, 萬機紛沓之際, 尊所聞行所知之功, 或者未至, 則生處難熟, 熟處難忘, 惟聖作狂, 或在於一念之間耳。 伏願 殿下, 裁決庶務之暇, 不廢講學之功, 常以義理, 澆灌心胸, 游心昭曠之原, 不爲私欲之累。 使淸明本然之體, 常在常覺, 以爲處事應物之本, 而惰慢邪僻, 不設於身, 視聽言動, 一由乎禮, 使吾之所以治心檢身者, 無所愧於屋漏, 則刑家御國之效, 自然薰蒸透澈, 無所不及, 豈不盛哉? 召公之戒成王曰: 惟王受命, 無(彊)〔疆〕 惟休, 亦無(彊)〔疆〕 惟恤。 嗚呼! 曷其奈何不敬?" 又曰: "若生子罔不在厥初生, 自貽哲命, 今天其命哲命吉凶命歷年, 知今我初服, 肆惟王其疾敬德。" 臣讀書至此, 每歎其忠誠懇惻, 足以警動幼主, 未嘗不擊節諷誦。 至于今日, 則益知其言之深切, 而繼之以隕淚也。 昊天之不弔甚矣, 人謀之不臧久矣。 國勢委靡, 日就不振, 如日下山, 如水赴壑, 殿下之嗣守基業, 正所謂無(彊)〔疆〕 惟恤。 祈天永命, 在今日, 墜失厥命, 亦在今日, 而其幾之決, 特在於敬德ㆍ不敬德之間。 殿下其可自逸乎; 其可自滿乎; 其可不敬德乎? 方天命眷顧之新, 値人心蘄向之切, 此正先儒所謂因時乘勢有爲之會也。 伏願殿下, 惕念而奮發焉。 嗚呼! 臣之所以眷眷於殿下者, 只此前後二三策而已, 無他奇計, 可以仰備採擇。 然懋聖學以建民極, 公取舍以服民心, 崇節儉以厚民生, 君人之道也, 大略擧矣。 而其所以片片說出者, 又無非愛君憂國之赤心, 惟殿下察之。
- 【정족산사고본】 2책 4권 1장 A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1책 30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재정(財政) / 외교-명(明) / 인사-임면(任免) / 사법-재판(裁判) /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 [註 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