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하치 토벌로 명나라에서 군병을 청한 일에 대해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우리 나라가 천조(天朝)에 대해서 의리상으로는 군신(君臣)의 관계에 있다 할지라도 정리상으로는 부자지간과 같다. 더구나 임진 왜란 때 위급한 상황을 구제해 준 큰 은혜가 있는데 말해 무엇하겠는가. 따라서 천조에 만약 사변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우리 나라 군신들로서는 국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달려가서 선봉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다만 우리 나라는 평소 병(兵)과 농(農)을 분리하지 않아 왔으므로 아침에 명을 내려 저녁에 집결시키기는 형세상 불가능한데, 이런 사정은 동정(東征)한 여러 대인(大人)들이 일찍부터 환히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번의 노추(老酋)064) 는 실로 천하의 강적이니 결코 건주위(建州衛)의 이만주(李滿住)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니 왕사(王師)는 단지 병력을 배치하여 무위(武威)를 보여주고 크게 성세(聲勢)를 떨쳐 호랑이가 산속에 웅거하고 있는 형세를 지은 다음에 다시 저 적의 동태를 관찰하면서 기미를 보아 움직이는 것이 어떻겠는가. 지금 만약 깊이 들어가 섣불리 행동하며 진격한다면 만전(萬全)의 계책이 못될 듯하니 한 번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생각건대 우리 나라의 군병이 잔약한 것도 돌아보지 않은 채 하루 아침에 깊이 들여보낸다면 필시 전진(戰陣)에 임하여 먼저 동요된 나머지 천위(天威)를 손상시킬 걱정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과군(寡君)은 생각하기를 ‘급히 군병 수천 명을 뽑아 천조의 국경과 가까운 의주(義州) 등처에 정비시켜 대기하게 한 뒤 기각(掎角)의 형세를 지어 성원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에 적합할 듯하다.’ 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군병을 조금이라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2백 년 동안 대대로 황제의 은혜를 입어 왔으므로 밤이나 낮이나 감격하면서도 보답할 길을 얻지 못했는데 또 임진년부터는 나라를 다시 세워준 은덕을 중하게 받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국왕이 왕위를 이은 이래로 호소하기만 하면 반드시 들어주면서 전후에 걸쳐 선왕 때보다도 배나 은총을 쏟아주고 있다. 그러므로 혈기를 갖고 이 땅의 곡식을 먹는 우리 나라의 백성들도 모두 황제의 은혜에 감사할 줄을 알고 있으니,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다른 뜻이 있겠는가.’라는 내용으로 잘 말을 만들어 기필코 허락을 얻어내도록 이잠(李埁)에게 상세히 말해 보내라."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73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79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註 064]노추(老酋) : 누르하치.
○傳曰: "我國之於天朝, 義雖君臣, 情猶父子。 況有壬辰, 拯濟水火之鴻恩, 天朝儻有事變, 敝邦君臣, 所當掃境內奔往, 以爲前驅矣。 但敝邦, 素不分兵農, 勢不能朝令夕聚之意, 東征諸大夫人, 所嘗洞知者也。 況今奴酋, 實天下之强賊, 殊非建州衛 李滿住之類也。 王師但當陳兵耀武, 大張聲勢, 以作虎豹在山之勢, 更觀伊賊之所爲, 相機而動如何? 今若深入, 輕行進勦, 恐非萬全之策, 更加深思。 且念敝邦軍兵, 不顧疲弱, 一朝驅入, 慮必臨陣先動, 致損天威。 寡君之意, 急抄累千軍兵, 整待于義州等處, 天朝近境之地, 以爲掎角聲援, 似合機宜矣。 敝邦軍兵, 若有一毫可用之實, 則二百年來, 世受皇恩, 日夜感戴, 報效無路, 又自壬辰, 重荷再造之德。 矧今國王嗣位以來, 有籲必允, 前後恩眷, 又倍於先王。 敝邦含氣食毛之類, 亦皆知皇恩之感戴, 豈有一毫他意? 云云等語, 善爲措辭, 期於聽許事, 李埁處, 詳細言送。"
- 【태백산사고본】 45책 45권 73장 A면【국편영인본】 33책 79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