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일기[중초본]104권, 광해 8년 6월 24일 계해 5/8 기사 / 1616년 명 만력(萬曆) 44년
죄인 박정민을 압슬하니 진술하다
국역
죄인 박정민을 압슬하니, 공초하기를,
"최유영이 괴정(槐亭)에 가서 말하기를 ‘그 흉서 안에 도대장(都大將) 세 사람이 적혀 있었는데, 정창연(鄭昌衍) 【정창연(鄭昌緣)이라고 적었다. 】 , 한명련(韓明璉), 박치의(朴致毅)였다. 양변에 제장이 각각 5명이었고 제장의 이름 아래에 각각 10명씩 기록하여 모두 1백 명이었다. 도대장 아래에는, 5월 5일 충원(忠原)에서 군대를 모아 정씨(鄭氏)를 추대한다고 적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일은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정씨를 추대한다는 등의 말이 이 어떠한 말인데 문목(問目)에 쓰지 않았단 말인가? 정문익(鄭文翼)을 추문하는 두사(頭辭)에 이 한 조항을 첨가해 넣어서 문초하라."
하였다.
원문
광해군일기[중초본]104권, 광해 8년 6월 24일 계해 5/8 기사 / 1616년 명 만력(萬曆) 44년
죄인 박정민을 압슬하니 진술하다
국역
죄인 박정민을 압슬하니, 공초하기를,
"최유영이 괴정(槐亭)에 가서 말하기를 ‘그 흉서 안에 도대장(都大將) 세 사람이 적혀 있었는데, 정창연(鄭昌衍) 【정창연(鄭昌緣)이라고 적었다. 】 , 한명련(韓明璉), 박치의(朴致毅)였다. 양변에 제장이 각각 5명이었고 제장의 이름 아래에 각각 10명씩 기록하여 모두 1백 명이었다. 도대장 아래에는, 5월 5일 충원(忠原)에서 군대를 모아 정씨(鄭氏)를 추대한다고 적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일은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정씨를 추대한다는 등의 말이 이 어떠한 말인데 문목(問目)에 쓰지 않았단 말인가? 정문익(鄭文翼)을 추문하는 두사(頭辭)에 이 한 조항을 첨가해 넣어서 문초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