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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103권, 광해 8년 5월 17일 병술 8/11 기사 / 1616년 명 만력(萬曆) 44년

백관이 종계의 악명을 깨끗이 없앤 공을 들어 존호 올리기를 청하다

국역

백관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제왕(帝王)이 왕통을 계승하여 법을 세우는 데에는 효도보다 중한 것이 없는데 조상을 높이고 공경하는 것이 효도 가운데 큰 것이고, 신하가 예를 다하여 임금을 섬기는 것은 오직 정성에 달렸는데 성덕을 칭송하고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이 정성 중에서 지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경(書經)》에서 ‘문장이 드러나고 사려가 깊으시며 공경하고 밝으시다.’라는 말로 요(堯) 임금의 성덕을 칭송하였고 ‘깊고 지혜롭고 온화하고 공손하시다.’라는 말로 순(舜)임금의 성덕을 찬양하였으며, 《시경(詩經)》에 있는 해사(奚斯)의 노래와 길보(吉甫)의 시도 모두가 그 임금을 찬양하고 성덕을 아름답게 드날린 것입니다. 성대한 법전을 당대에 닦아서 큰 아름다움을 후세의 역사에 펴는 것은, 종묘 사직 신령들의 도움에 보답하고 조야 신민들의 소망에 답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전하께서는 큰 사업을 훌륭히 이어 이에 왕위를 받으시어, 인륜의 도리를 극진히 하여 동기간 우애가 지극하였으며 근본을 세워 교화를 완성하여, 우뚝하고 드넓어 이름붙이기 어려운 성덕을 이루었고 찬란히 빛나 둘도 없는 공적을 이루었습니다. 고금(古今)에 드문 업적이요 천지(天地)를 경영할 만한 성덕입니다. 그러니 영화와 공적을 드날리고 숭호(崇號)와 휘칭(徽稱)을 올리는 일을 어찌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아득히 생각건대, 성조(聖祖)께서 하늘의 뜻을 받아 나라를 열었는데, 간신 적자들이 중국으로 도망해 들어가서 감히 사사로운 유감을 품고 교묘히 말을 얽어 참소를 하였습니다. 대개 영락(永樂) 갑신년009) 부터 만력(萬曆) 무자년010) 까지 우리 나라에서 주청을 하여 해명한 것이 앞뒤로 서로 잇달았는데, 13대 동안 거의 2백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명태조실록(明太祖實錄)》을 고쳐 완성하였고 《회전(會典)》을 고쳐서 반포하였습니다.

종계(宗系)가 무함을 당하고 욕을 당한 것은 비록 바로잡아지기는 하였으나, 불행히도 이름있는 석학들이 엮은 책들에는 여전히 잘못된 것을 답습하여 더욱 추잡스럽고 욕된 말들이 많았습니다. 우리 태조를 가리켜 역당(逆黨)이라고 하기도 하고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도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아, 종계 문제는 해명이 되었으나 악명의 낭자함은 여전하고 《회전》은 바로잡혔으나 외전(外傳)의 잘못은 더욱 심하여, 장차 천하 후세 사람들이 볼 때에 옳고 그름이 뒤섞여 그 의혹됨을 분변할 수 없게 되었으니, 어찌 매우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속문헌통고(續文獻通考)》, 《오학편(吾學編)》, 《경세실용편(經世實用編)》, 《감산별집(弇山別集)》, 《대정기(大政紀)》 등의 글은 혹은 칙서를 받들어 찬집해 완성한 것이기도 하고 혹은 여러 관사의 전고(典故)가 되기도 하여, 관각(館閣)의 여러 유학자들이 이것을 열람하기도 하고 증거로 채택하기도 하니, 실로 정사(正史)와 다름이 없는 책입니다. 무릇 우리 나라에서 사서(士庶)를 막론하고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자라면, 이런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으며 이를 갈며 안타까워하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회전》 하나 고쳐졌다고 하여, 그 많은 책들에 잘못 기록되어 있는 것을 대수롭지 않은 글이라고 여기고 말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어찌 종계가 개정되었다고 하여, 시역(弑逆)을 했다는 악명을 멋대로 조종(祖宗)에게 더하는데도 그냥 내버려둘 수가 있겠습니까.

선왕(先王)이 무함을 당한 것은 더욱 차마 볼 수도 차마 들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왜인을 불러들여 땅을 회복하려고 문을 열고 도적을 불러모았다.’느니, ‘땅을 떼어서 왜인에게 주고 해마다 곡식과 비단을 대주었다.’느니, ‘국왕이 우호를 청한 것은 물고 늘어지려는 속셈에서였다.’느니, ‘시를 지으며 술마시고 지내다가 법도를 잃고 모욕을 당했다.’느니 하는 날조된 말이 여러 책들에 여기저기 들어 있습니다. 아, 우리 선왕께서 지성 대의로 명 나라를 공경히 섬겨 처음부터 끝까지 더욱 독실했던 것은 귀신에게 질정을 할 수가 있고 해와 달보다도 분명한 것인데, 세상을 떠나신 뒤에 무함을 당하는 것이 이러하시니, 오르내리시는 신령께서 필시 저 세상에서 통탄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더구나 이러한 여러 가지 비방하는 말들이 정응태(丁應泰)가 꾸며댔던 것보다도 심하니, 또한 옛날에 주청을 하였다고 하여, 원통함을 호소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성상께서는 선왕께서 부탁한 명을 받들고 감무하라는 천자의 조칙을 받들어 바르게 세자의 자리에 앉았다가 왕위를 물려받아 만 백성이 노래하고 온 나라가 친애하고 떠받들었으니, 이것은 참으로 우리 나라에 원정나왔던 장사(將士)들이 눈으로 본 바이고 온 세상에 전파된 바입니다. 그런데 오원췌(伍袁萃)는 무엇을 보고 감히 《임거만록(林居漫錄)》 안에 왕위를 다투었다는 말을 넣었단 말입니까. 이른바 다투었다는 말은 세력이 대등하고 명위(名位)가 비슷할 때에 쓰는 말입니다. 이러한데도 변증하지 않는다면, 역적 이진(李珒)이 왕위를 넘보는 것을 방치하고 반인(叛人)에 편드는 자들을 추켜주는 일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무릇 이 세 건의 치욕은 참으로 어느 나라에도 없는 바이고 천하에 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글을 올려 명나라에 원통함을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다행히 황상께서 모두 아시고 각부(閣部)가 밝게 헤아려 성지(聖旨)가 흡족하고 복제(覆題)가 상세하였으며, 은혜로운 칙서를 반포하여 은총이 융숭하였으니, 분명하게 논변하여 깨끗이 오명을 씻어 다시 조금도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이미 온 세상에 분명하게 알려, 보는 사람들을 감동시켜, 온 세상 여러 나라들로 하여금 성천자(聖天子)께서 우리 성왕(聖王)을 돌보는 것이 아주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신들이 삼가 예부의 제사(題辭)를 살펴보았더니, ‘국조(國祖)의 종계를 논변한 것은 역당(逆黨)의 후손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이고, 왕씨(王氏)를 시해한 것이 홍륜(洪倫) 등의 짓이었다고 논변한 것은 왕위를 찬탈하였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이고, 부산(釜山)에 호시(互市)를 개설한 사정에 대해 논변한 것은 왜인을 끌어들였다는 오해를 염려한 것이다. 이것은 모두 자신이 인륜 도리가 시행되고 있는 나라에 거처하면서, 자신의 아비가 공경히 선왕의 영령에게 정성을 다하는 충성스런 신하였음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선원(璿源)의 무고와 성조(聖祖)의 악명과 선왕(先王)이 무함당한 원통함을 한꺼번에 깨끗이 씻어버린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이어 사관(史館)에 보내어 완성된 문안(文案)을 찬수하게 하고, 뽑아 적어 온 세상에 전하여 천하 사람들과 함께 볼 것이다. 이어 해국(該國)에 칙서를 내린다. 한 번 장정(章程)을 여쭈어 정하니 뜬 소문에 의혹됨이 없게 되었다. 조선의 속마음이 이로써 밝혀지고 중국의 체통이 이로써 엄숙해졌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본국이 무함을 당한 사정을 사국(史局)에 보관하고 조방(朝房)에 등사해 내어 참다운 역사를 이루어서 개인의 저서에 있는 잘못된 말들을 모두 제거하여 만세토록 드러낸 것입니다. 일체로 중외에 전파하여 먼 시골 구석구석 집집마다에 그 억울하게 무함당한 사실을 모두 분명하게 알린 것이니, 《회전》에 보충해서 수록한 것에 견주어 볼 때에 어떻다 하겠습니까.

그 글에 ‘글을 지은 신하들이 앞뒤로 세상을 뜨고 글은 이미 전파되었으니 모두 다 고칠 수는 없다. 다만 명지(明旨)를 거듭 반포하면 여러 서적들은 굳이 개정하지 않아도 절로 바루어지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장차 각종 서적들은 하찮게 여겨 폐기하고, 한결같이 명지로 개정된 것만을 천하 후세에 믿도록 한 것입니다. 시험삼아 살피건대, 수백 년 이래로 명 나라가 우리 나라에 내린 복본(覆本)에 은근하고 정성스럽기가 오늘날 같은 때가 있었습 니까?

성지(聖旨)에 이르러서는, ‘해국의 세계(世系)에 대한 여러 가지 일들과 부산에 왜인을 끌어들였다는 이야기와 야사(野史)에 전하는 바는 원래 근거삼기에 부족하다. 주청한 글을 초록하여 사관(史館)에 보내어 수찬하게 하고 이에 왕에게 칙서를 내려, 선대의 원통함을 완전히 씻은 뜻을 위로한다.’ 하였습니다.

그 칙유(敕諭)에는 대략 ‘조종을 높여 공경하는 것은 중국이나 외방이나 다름이 없다. 믿을 수 있는 명령이라야 후세에 전해지고 문헌이 있어야 증거할 수가 있는 것이다. 과연 크게 무함을 당한 일이라면 이치로 보아 그 원통함을 씻는 것이 마땅하다. 공민왕(恭愍王)이 시해를 당한 초기는 바로 이인인(李仁人)이 전횡을 하던 시기이다. 우왕(禑王)창왕(昌王)왕씨(王氏)가 아니었고 요(瑤)011) 는 다시 임금답지가 않았다. 옛것을 개혁하고 새것을 세움에 매우 혼란한 혼돈의 상태였다. 헛소문을 고황(高皇)께서 통촉하셨고 변증하는 상소를 열성들께서 다 들으셨다. 왜구가 침범한 국토를 그대의 아비 아무개가 회복하였다. 부산(釜山)의 요충지는 본래 침입할 지역이 아니니, 시장을 개방하여 기미책을 쓴 것이 어찌 왜적을 끌어들이는 일과 관련이 있겠는가. 누가 인물을 품평하랴. 모두가 역사책에 남을 것이다. 짐이 바야흐로 복을 내리노니 중국과 같은 동포인 것을 가상히 여긴다. 사고(史庫) 깊숙이 간직할 사실에 근거가 있게 되었으니, 근본을 생각하는 마음을 크게 적어서 성조의 사당과 선왕의 사당에 욕됨이 없어지게 하라.’ 하였습니다.

신들이 삼가 보건대, 홍무(洪武) 이래로 열성(列聖)들의 명지(明旨)와 칙유(敕諭)에는 다만 ‘기록하여 사관(史館)에 보관해 놓았고 《회전》을 다시 수찬하면서 첨부해 넣었다.’는 말만 있었으며, 기사년에 《회전》의 전부를 반급(頒給)할 때의 칙서에는 ‘여러 세대 불분명했던 종계를 바로잡아 이미 간절한 기원이 이루어졌다.’는 등의 문자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왕과 창왕이 왕씨가 아니었고 공양왕이 어리석고 포악했던 일 및 옛것을 개혁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든지 뜬소문을 분명하게 분변하였다든지 하는 말이 이에 이르러 이토록 명백하였으니, 이전의 여러 선대 때의 칙지(敕旨) 내용을 상고해 본다면, 간곡하고 명쾌하기가 오늘날과 같은 경우가 또 있었습니까?

더구나 선왕이 무함을 당한 것은 더더욱 원통한 일이었는데, 조칙에 효유한 것이 매우 분명하여 여러 서적들에 실려 있는 근거없는 낭설들을 깨끗이 씻어냈고, 나라를 회복한 공로가 있다고 선왕을 칭찬하였으니, 이는 종계의 악명을 씻은 이외에도 또 성상께서 선왕을 위하여 명쾌히 분변하여 크나큰 일을 이룬 것입니다.

예부(禮部)의 차자에 이르기를 ‘국왕의 즉위는 나이를 따져서 하는 것이 아니라 현능함을 따져서 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또 이르기를 ‘예의(禮義)로 보아 잘못이 없는데 남들의 말을 염려할 게 뭐가 있겠는가.’ 하였으며, 심지어는 오원췌의 잡다한 글들을, 요망스럽고 말도 안 되는 《상산야록(湘山野錄)》《벽운하(碧雲騢)》 등의 서적에 견주었고, 또 성상을, 성덕이 있으면서도 무함을 당했던 송 인종(宋仁宗)에게 견주어 이에 ‘책봉하여 세우기를 청한 것은 모두가 여론을 따른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성상께서 황제의 명을 공경히 받들어 환히 방국(邦國)에 군림하신 사실을 해내와 해외에 널리 알려 모두가 분명히 알게 하였으니, 이것은 예로부터 번군(藩君)들이 일찍이 받아보지 못했던 은총입니다.

이 세 건의 변무(辨誣)의 일은 모두가 성상의 지극한 효성과 성대한 공덕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늘과 사람을 감동시켜 이러한 큰 경사가 있게 되었으니, 우뚝하고 환한 공렬은 전후 역사에 탁월합니다. 종묘 제향에 의칙(儀則)이 있게 되어 성대한 제사가 미진함이 없게 되었으며, 축사(祝史)가 말을 바르게 할 수 있게 되어 복록이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성조(聖祖)의 신령과 저승에 계신 선왕의 영령께서도 필시 내려다 보시고 감탄하며 ‘내가 후사를 잘 두었구나.’라고 하실 것입니다.

성상의 공업이 종묘 사직에 빛나게 된 것이 바로 중국 조정에서 내린 칙서의 말과 완전히 똑같으니, 보통이 넘는 공렬과 가이없는 아름다움은 무어라 일컬을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라 하겠습니다. 제향 음식을 나누어 받던 저녁에 조정의 대소 신료들이 모두 반열에 있었는데 의논도 없이 마음이 일치하여 같은 말로 이르기를 ‘지극하도다, 성상의 효성이여. 성대하도다, 성상의 공덕이여. 윤리 기강이 펴짐을 오늘날에 보겠으니 《시경》《서경》에 기술되어 있는 것이 어찌 이보다 더했으랴.’ 하였습니다.

대개 세상이 평화롭고 도가 행해지며 임금이 성스럽고 정치가 훌륭한데도 신하가 칭송치 않는 것은 신하가 못나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랫사람들의 마음을 펴고 성상의 미덕을 구명하며, 응당 행해야 할 법을 거행하여 성대한 일을 이루고, 조용히 드러내어 큰 아름다움을 거듭 밝히는 것은, 또한 선현들이 이미 예전에 이루어 놓은 법식이니, 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탑전에서 말로 아뢴 것이 품은 생각을 다 말하지 못하여 한갓 성상을 번거롭게만 하고 윤허를 받지 못해,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답답하여 목말라 애타게 물을 찾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조회를 기다렸다가 와서 또 어제의 계청을 다시 아룁니다. 성상께서 이에 대해, 비록 성대한 이름을 누리지 않으려 하시나 될 일이겠습니까? 비록 뭇사람들의 심정을 거절하려 하시나 될 일이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특별히 굽어살피시어 속히 윤허하셔서, 위로 조종의 돌보아주신 마음에 부응하고 아래로 만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을 위로하소서. 그러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것을 보건대 백관들이 모두 모였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고 민망스럽다. 죄수들이 옥에 가득 차서 국문하는 일이 바야흐로 시급한데, 대신들이 나의 명을 따르지 않고 나의 뜻을 유념하지 않고 있다.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를 망각하고 임금의 명을 내던져버리고 조정에 나오지 않는다. 지금이 어떠한 때인데 이러한 말을 하는가.

칙서가 더없이 간곡하니 이는 참으로 황상의 하늘같은 은혜인 것이요 경들이 정성을 다하여 도와준 덕분이다. 다만 종계의 오명을 씻어 《회전(會典)》을 고쳐 반포하고 큰 무함을 쾌히 변정하여 명지(明旨)를 내린 것은 모두 선왕 때에 있었으니, 나에게 무슨 말할 만한 공로가 있겠는가.

선왕이 당한 무함을 해명하기 위한 이번의 주청은 단지 신하된 자의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인데, 이렇게 무고를 변정하여 바로잡은 경사가 있게 되었으니, 망극한 감격의 눈물만 흐를 따름이다. 내 몸에 존호를 더하는 것은 참으로 감당할 수가 없다. 내가 무함을 당한 일에 대해서는, 비록 그 무함을 씻었다고는 하나, 어찌 이것으로 존호를 더하는 이치가 있겠는가.

지금 나라에 근심스러운 일이 많아서 위급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상황을 보건대, 지금이 어찌 경들이 직무를 폐기한 채 존호 올리는 일만 강청하고 있을 때이겠는가. 결코 따를 수가 없다. 이러한 말을 하지 말라."

하였다.

  • [註 009] 영락(永樂) 갑신년 : 1404 태종 4년.
  • [註 010] 만력(萬曆) 무자년 : 1588 선조 21년.
  • [註 011] 요(瑤) : 공양왕.

원문

○百官啓曰: "臣等竊惟, 帝王之繼統立極, 莫重於孝, 而尊祖敬宗者, 孝之大也。 臣子之事君盡禮, 惟在於誠而頌德歸美者, 誠之至也。 故文思欽明, 傳稱唐堯之德, 濬哲溫恭, 史 虞舜之聖, 奚斯之詠、吉甫之詩, 無非褒揚太上, 美厲耿光。 修縟典於當代, 播洪休於後乘, 所以膺宗社(神祗)〔神祇〕 之佑, 答朝野臣民之望者也。 今我殿下光纘洪圖, 誕受駿命, 盡倫而致愛, 立本而成化, 巍蕩難名之德, 輝焯無競之烈, 轢軼今古, 經緯天地。 蜚英華騰茂實, 進崇號薦徽稱之擧, 何可已也? 緬惟聖祖, 秉籙應天, 受 開國, 奸臣賊子, 逃入天朝, 敢懷私憾, 搆成巧讒。 蓋自永樂甲申, 迄于萬曆戊子, 本國之馳奏辨列, 前後相望, 世更十三, 年近二百, 始有纂成實錄, 頒降《會典》之事。 宗系之受誣被衊, 雖得釐正, 而不幸名儒碩士, 纘乘諸秩, 猶襲舛訛, 益肆醜詆。 指聖祖或稱逆黨, 或加幽弑簒賊之名。 嗚呼! 宗系辨明, 而惡名之狼藉如前, 《會典》修輯, 而外傳之剌謬益甚, 將使天下後世, 眩亂是非, 莫辨其惑, 則豈非大可懼哉? 況《續文獻通考》《吾學編》, 《經世實用編》《弇山別集》《大政紀》等書, 或係奉勅撰成, 或爲諸司掌故, 而館閣諸儒, 是焉取閱考證, 實與正史無異。 凡在我國, 無論士庶, 稍稟知覺者, 孰不驚聽而竦神, 切齒而腐心乎? 然則其可諉之於一部《會典》之修補, 而却以如許諸書記誤, 爲閑漫文字乎? 又豈可諉之於宗系之改正, 而却以弑逆惡名, 任加於祖宗而莫之恤乎? 至若先王之被誣, 尤有所不忍覩, 不忍聞之事。 或曰: ‘招復地, 啓扃揖盜。’ 或曰: ‘割地與, 歲周粟帛。’ 或曰: ‘國王請款, 情涉齮齕。’ 或曰: ‘娛情詩酒, 敗度取侮。’ 如是捏造, 迭見編簡。 嗚呼! 我先王以至誠大義, 敬事天朝, 終始益篤, 可謂質諸鬼神、明乎日月, 而賓天之後, 受誣至此, 陟降之靈, 必爲痛怛於 冥之上矣。 況此多般謗言, 又甚應泰之所搆者, 則亦可諉之於往年之奏請, 而不爲之訟冤耶? 恭惟聖上, 承先王付托之命, 奉天子監撫之勅, 正位貳極, 嗣臨大寶, 億兆謳歌, 遠邇愛戴, 此實東征將士之所目覩, 海內之所傳播。 而伍袁萃因何所見, 敢於《林居漫錄》中, 乃有爭立之語? 所謂爭者, 乃勢均力敵, 名位相較之稱也。 此而不辨, 則不幾於置逆之窺覬, 登叛人之黨者乎? 凡此三件之詬辱, 實萬國所無, 天下無二者。 不得不控疏陳籲於天日之下, 而幸蒙皇上洞燭, 閣部明諒, 聖旨優渥, 覆題詳, 恩勅渙頒, 寵數隆溢, 其於明辨湔雪, 更無所歉。 固已昭揭宇宙, 聳動觀瞻, 使海內諸國, 知聖天子眷顧我聖王, 特出於尋常萬萬也。 臣等竊詳, 禮部題稱有曰: ‘其辨祖系也, 恥作逆黨之後, 其辨王氏洪倫等所弑也, 羞被簒立之名, 其辨釜山互市等情也, 懼蹈引。 無非自處于彝倫攸敍之國, 表其父爲恪恭靖獻之臣也。’ 是則璿源誣玷、聖祖惡名、先王被誣之冤, 一擧而昭雪蕩滌者也。 又曰: ‘仍付史館, 纂修成案, 抄傳海內, 與天下共見之, 仍勅國。 一稟章程, 無惑浮議。 將外藩之心以昭, 天朝之體統以肅矣。’ 是則本國被誣情節, 藏之史局, 謄出朝房, 勒成信史, 盡祛私偏之訛謬, 而表迪于萬祀。 一以傳布中外, 使窮鄕遐裔, 家至戶到, 無不洞知其誣枉, 則比諸《會典》之補錄, 爲如何耶? 其曰: ‘著書諸臣, 後先物故, 書已傳播, 無從盡改。 但得明旨再頒, 諸書不必改正, 而自無不正也。’ 是則將各種諸書, 弁髦而棄之, 一以明旨更正者, 取信於天下後世。 試觀數百年來, 天朝於我國, 覆本勤懇諄復, 有如今日者乎? 至於聖旨, 則‘該國世系諸事、釜山之說, 與野史所傳, 原不足據。 奏詞抄付, 史館纂修, 乃賜勅與王慰, 其昭雪先世之意。’ 其勅諭略曰: ‘尊祖敬宗, 華夷罔間, 信令傳後, 文獻足徵。 事果厚誣, 理宜昭雪。 當王恭愍被弑之初, 正李仁任專命之際。 非類, 復不君。 革鼎新, 有同草昧。 流皇洞燭乎高皇, 辨疏悉聞於列聖。 至於倭寇之侵陵, 繄爾父諱之恢復。 釜山要害, 原非侵疆, 互市羈縻, 詎關誘敵? 疇爲月旦? 總屬陽秋。 朕方錫類, 嘉在同文。 庶石渠金櫃之祕有據, 而大書特書水原木本之思, 無忝于祖廟禰廟。’ 云云。 臣等竊觀, 洪武以來, 列聖明旨及勅諭, 但以‘載錄史館, 纂附《會典》’爲辭, 而至於己巳《會典》, 全部頒給之勅, 只曰: ‘雪累世不明之系, 旣遂懇祈。’ 等文字而已。 其非王氏恭讓昏暴之事, 革故鼎新, 流言洞辨等語, 至此乃得如是之明白, 試考累代勅旨之文, 則其丁寧明快, 又有如今日者乎? 況先王之受誣, 尤極冤痛, 而勅諭煌煌, 洗盡其諸書無稽不根之說, 至以復之功褒之, 此則宗系惡名昭雪之外, 又是聖上爲先王極辨一大事也。 禮部箚曰: ‘國王之立, 非以長而以賢也。’ 又曰: ‘禮義之不愆, 何恤乎人之言?’ 至以袁萃之雜著, 比之於《湘山野錄》《(碧雲䮕)[碧雲騢]等書, 妖妄無據, 又以聖上, 比之於 仁宗, 有聖德而被誣, 乃以‘請立冊封, 俱順輿情’爲辭。 我聖上欽承帝命, 赫臨邦國之業, 薄海內外, 無不曉然, 是則自古藩君所未徼之寵典也。 總此三件辨誣之事, 皆由於聖上之至孝盛德。 感通天人, 有此大慶, 巍功煥烈, 度越前後。 廟享有儀, 殷薦罔愆, 祝史正辭, 福祿攸降。 聖祖在上之神, 先王昭格之靈, 亦必歆臨感嘆, 其將曰: ‘予有後焉。’ 則聖上之功光廟社者, 正與皇朝勅旨之語, 若符契而脗合, 則非常之烈, 無疆之休, 可謂無得而稱焉。 受餕之夕, 大小廷, 咸悉在列, 不謀同臆, 合辭颺言曰: ‘至哉, 聖孝! 大哉, 聖德! 倫紀之敍, 式見乎今, 《詩》《書》所述, 何以加乎?’ 蓋世平道行, 主聖治隆, 而臣子不稱者鄙也。 是以, 抒下情而究上美, 擧彝典而修盛事, 雍容揄揚, 申明景鑠者, 抑亦先賢之成式, 往古之懿軌, 不可廢也。 榻前口達, 不盡所懷, 徒煩聖聰, 未蒙允許, 群情愈鬱, 如渴望飮。 待朝而來, 又申昨請。 聖上當此, 雖欲不享鴻名, 其可得乎? 雖欲拒其輿情, 其可得乎? 伏望殿下特垂俯察, 亟賜兪音, 上以副宗祏眷顧之懷, 下以慰庶類顒跂之情, 不勝幸甚。" 答曰: "省啓, 百官皆會, 不勝驚悶。 囚繫滿獄, 鞫問方急, 而大臣不遵予命、不體予意。 罔念君臣之大義, 抛棄君命而不赴, 則此何時而乃爲此言? 聖勅勤懇, 夐出尋常, 實是皇上之天恩, 而諸 協贊之誠也。 但宗系昭雪, 《會典》改頒, 快辨厚誣, 明旨誕降, 俱在於先朝, 則不辟有何可議之功乎? 先王被誣, 而今番奏請, 只出臣子之至情, 而致此辨誣之慶, 則感泣罔極而已。 加號於寡躬, 則誠不敢當也。 至於予身被誣, 雖得昭雪, 寧有以此加號之理哉? 目今國家多憂, 危急之事非一二計。 試觀爻象, 是豈卿等廢事强請加號之日乎? 決無可從之理。 願勿爲如此之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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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백관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생각건대, 제왕(帝王)이 왕통을 계승하여 법을 세우는 데에는 효도보다 중한 것이 없는데 조상을 높이고 공경하는 것이 효도 가운데 큰 것이고, 신하가 예를 다하여 임금을 섬기는 것은 오직 정성에 달렸는데 성덕을 칭송하고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이 정성 중에서 지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경(書經)》에서 ‘문장이 드러나고 사려가 깊으시며 공경하고 밝으시다.’라는 말로 요(堯) 임금의 성덕을 칭송하였고 ‘깊고 지혜롭고 온화하고 공손하시다.’라는 말로 순(舜)임금의 성덕을 찬양하였으며, 《시경(詩經)》에 있는 해사(奚斯)의 노래와 길보(吉甫)의 시도 모두가 그 임금을 찬양하고 성덕을 아름답게 드날린 것입니다. 성대한 법전을 당대에 닦아서 큰 아름다움을 후세의 역사에 펴는 것은, 종묘 사직 신령들의 도움에 보답하고 조야 신민들의 소망에 답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전하께서는 큰 사업을 훌륭히 이어 이에 왕위를 받으시어, 인륜의 도리를 극진히 하여 동기간 우애가 지극하였으며 근본을 세워 교화를 완성하여, 우뚝하고 드넓어 이름붙이기 어려운 성덕을 이루었고 찬란히 빛나 둘도 없는 공적을 이루었습니다. 고금(古今)에 드문 업적이요 천지(天地)를 경영할 만한 성덕입니다. 그러니 영화와 공적을 드날리고 숭호(崇號)와 휘칭(徽稱)을 올리는 일을 어찌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아득히 생각건대, 성조(聖祖)께서 하늘의 뜻을 받아 나라를 열었는데, 간신 적자들이 중국으로 도망해 들어가서 감히 사사로운 유감을 품고 교묘히 말을 얽어 참소를 하였습니다. 대개 영락(永樂) 갑신년009) 부터 만력(萬曆) 무자년010) 까지 우리 나라에서 주청을 하여 해명한 것이 앞뒤로 서로 잇달았는데, 13대 동안 거의 2백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명태조실록(明太祖實錄)》을 고쳐 완성하였고 《회전(會典)》을 고쳐서 반포하였습니다.

종계(宗系)가 무함을 당하고 욕을 당한 것은 비록 바로잡아지기는 하였으나, 불행히도 이름있는 석학들이 엮은 책들에는 여전히 잘못된 것을 답습하여 더욱 추잡스럽고 욕된 말들이 많았습니다. 우리 태조를 가리켜 역당(逆黨)이라고 하기도 하고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도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아, 종계 문제는 해명이 되었으나 악명의 낭자함은 여전하고 《회전》은 바로잡혔으나 외전(外傳)의 잘못은 더욱 심하여, 장차 천하 후세 사람들이 볼 때에 옳고 그름이 뒤섞여 그 의혹됨을 분변할 수 없게 되었으니, 어찌 매우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속문헌통고(續文獻通考)》, 《오학편(吾學編)》, 《경세실용편(經世實用編)》, 《감산별집(弇山別集)》, 《대정기(大政紀)》 등의 글은 혹은 칙서를 받들어 찬집해 완성한 것이기도 하고 혹은 여러 관사의 전고(典故)가 되기도 하여, 관각(館閣)의 여러 유학자들이 이것을 열람하기도 하고 증거로 채택하기도 하니, 실로 정사(正史)와 다름이 없는 책입니다. 무릇 우리 나라에서 사서(士庶)를 막론하고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자라면, 이런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으며 이를 갈며 안타까워하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회전》 하나 고쳐졌다고 하여, 그 많은 책들에 잘못 기록되어 있는 것을 대수롭지 않은 글이라고 여기고 말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어찌 종계가 개정되었다고 하여, 시역(弑逆)을 했다는 악명을 멋대로 조종(祖宗)에게 더하는데도 그냥 내버려둘 수가 있겠습니까.

선왕(先王)이 무함을 당한 것은 더욱 차마 볼 수도 차마 들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왜인을 불러들여 땅을 회복하려고 문을 열고 도적을 불러모았다.’느니, ‘땅을 떼어서 왜인에게 주고 해마다 곡식과 비단을 대주었다.’느니, ‘국왕이 우호를 청한 것은 물고 늘어지려는 속셈에서였다.’느니, ‘시를 지으며 술마시고 지내다가 법도를 잃고 모욕을 당했다.’느니 하는 날조된 말이 여러 책들에 여기저기 들어 있습니다. 아, 우리 선왕께서 지성 대의로 명 나라를 공경히 섬겨 처음부터 끝까지 더욱 독실했던 것은 귀신에게 질정을 할 수가 있고 해와 달보다도 분명한 것인데, 세상을 떠나신 뒤에 무함을 당하는 것이 이러하시니, 오르내리시는 신령께서 필시 저 세상에서 통탄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더구나 이러한 여러 가지 비방하는 말들이 정응태(丁應泰)가 꾸며댔던 것보다도 심하니, 또한 옛날에 주청을 하였다고 하여, 원통함을 호소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성상께서는 선왕께서 부탁한 명을 받들고 감무하라는 천자의 조칙을 받들어 바르게 세자의 자리에 앉았다가 왕위를 물려받아 만 백성이 노래하고 온 나라가 친애하고 떠받들었으니, 이것은 참으로 우리 나라에 원정나왔던 장사(將士)들이 눈으로 본 바이고 온 세상에 전파된 바입니다. 그런데 오원췌(伍袁萃)는 무엇을 보고 감히 《임거만록(林居漫錄)》 안에 왕위를 다투었다는 말을 넣었단 말입니까. 이른바 다투었다는 말은 세력이 대등하고 명위(名位)가 비슷할 때에 쓰는 말입니다. 이러한데도 변증하지 않는다면, 역적 이진(李珒)이 왕위를 넘보는 것을 방치하고 반인(叛人)에 편드는 자들을 추켜주는 일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무릇 이 세 건의 치욕은 참으로 어느 나라에도 없는 바이고 천하에 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글을 올려 명나라에 원통함을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다행히 황상께서 모두 아시고 각부(閣部)가 밝게 헤아려 성지(聖旨)가 흡족하고 복제(覆題)가 상세하였으며, 은혜로운 칙서를 반포하여 은총이 융숭하였으니, 분명하게 논변하여 깨끗이 오명을 씻어 다시 조금도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이미 온 세상에 분명하게 알려, 보는 사람들을 감동시켜, 온 세상 여러 나라들로 하여금 성천자(聖天子)께서 우리 성왕(聖王)을 돌보는 것이 아주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신들이 삼가 예부의 제사(題辭)를 살펴보았더니, ‘국조(國祖)의 종계를 논변한 것은 역당(逆黨)의 후손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이고, 왕씨(王氏)를 시해한 것이 홍륜(洪倫) 등의 짓이었다고 논변한 것은 왕위를 찬탈하였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이고, 부산(釜山)에 호시(互市)를 개설한 사정에 대해 논변한 것은 왜인을 끌어들였다는 오해를 염려한 것이다. 이것은 모두 자신이 인륜 도리가 시행되고 있는 나라에 거처하면서, 자신의 아비가 공경히 선왕의 영령에게 정성을 다하는 충성스런 신하였음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선원(璿源)의 무고와 성조(聖祖)의 악명과 선왕(先王)이 무함당한 원통함을 한꺼번에 깨끗이 씻어버린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이어 사관(史館)에 보내어 완성된 문안(文案)을 찬수하게 하고, 뽑아 적어 온 세상에 전하여 천하 사람들과 함께 볼 것이다. 이어 해국(該國)에 칙서를 내린다. 한 번 장정(章程)을 여쭈어 정하니 뜬 소문에 의혹됨이 없게 되었다. 조선의 속마음이 이로써 밝혀지고 중국의 체통이 이로써 엄숙해졌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본국이 무함을 당한 사정을 사국(史局)에 보관하고 조방(朝房)에 등사해 내어 참다운 역사를 이루어서 개인의 저서에 있는 잘못된 말들을 모두 제거하여 만세토록 드러낸 것입니다. 일체로 중외에 전파하여 먼 시골 구석구석 집집마다에 그 억울하게 무함당한 사실을 모두 분명하게 알린 것이니, 《회전》에 보충해서 수록한 것에 견주어 볼 때에 어떻다 하겠습니까.

그 글에 ‘글을 지은 신하들이 앞뒤로 세상을 뜨고 글은 이미 전파되었으니 모두 다 고칠 수는 없다. 다만 명지(明旨)를 거듭 반포하면 여러 서적들은 굳이 개정하지 않아도 절로 바루어지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장차 각종 서적들은 하찮게 여겨 폐기하고, 한결같이 명지로 개정된 것만을 천하 후세에 믿도록 한 것입니다. 시험삼아 살피건대, 수백 년 이래로 명 나라가 우리 나라에 내린 복본(覆本)에 은근하고 정성스럽기가 오늘날 같은 때가 있었습 니까?

성지(聖旨)에 이르러서는, ‘해국의 세계(世系)에 대한 여러 가지 일들과 부산에 왜인을 끌어들였다는 이야기와 야사(野史)에 전하는 바는 원래 근거삼기에 부족하다. 주청한 글을 초록하여 사관(史館)에 보내어 수찬하게 하고 이에 왕에게 칙서를 내려, 선대의 원통함을 완전히 씻은 뜻을 위로한다.’ 하였습니다.

그 칙유(敕諭)에는 대략 ‘조종을 높여 공경하는 것은 중국이나 외방이나 다름이 없다. 믿을 수 있는 명령이라야 후세에 전해지고 문헌이 있어야 증거할 수가 있는 것이다. 과연 크게 무함을 당한 일이라면 이치로 보아 그 원통함을 씻는 것이 마땅하다. 공민왕(恭愍王)이 시해를 당한 초기는 바로 이인인(李仁人)이 전횡을 하던 시기이다. 우왕(禑王)창왕(昌王)왕씨(王氏)가 아니었고 요(瑤)011) 는 다시 임금답지가 않았다. 옛것을 개혁하고 새것을 세움에 매우 혼란한 혼돈의 상태였다. 헛소문을 고황(高皇)께서 통촉하셨고 변증하는 상소를 열성들께서 다 들으셨다. 왜구가 침범한 국토를 그대의 아비 아무개가 회복하였다. 부산(釜山)의 요충지는 본래 침입할 지역이 아니니, 시장을 개방하여 기미책을 쓴 것이 어찌 왜적을 끌어들이는 일과 관련이 있겠는가. 누가 인물을 품평하랴. 모두가 역사책에 남을 것이다. 짐이 바야흐로 복을 내리노니 중국과 같은 동포인 것을 가상히 여긴다. 사고(史庫) 깊숙이 간직할 사실에 근거가 있게 되었으니, 근본을 생각하는 마음을 크게 적어서 성조의 사당과 선왕의 사당에 욕됨이 없어지게 하라.’ 하였습니다.

신들이 삼가 보건대, 홍무(洪武) 이래로 열성(列聖)들의 명지(明旨)와 칙유(敕諭)에는 다만 ‘기록하여 사관(史館)에 보관해 놓았고 《회전》을 다시 수찬하면서 첨부해 넣었다.’는 말만 있었으며, 기사년에 《회전》의 전부를 반급(頒給)할 때의 칙서에는 ‘여러 세대 불분명했던 종계를 바로잡아 이미 간절한 기원이 이루어졌다.’는 등의 문자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왕과 창왕이 왕씨가 아니었고 공양왕이 어리석고 포악했던 일 및 옛것을 개혁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든지 뜬소문을 분명하게 분변하였다든지 하는 말이 이에 이르러 이토록 명백하였으니, 이전의 여러 선대 때의 칙지(敕旨) 내용을 상고해 본다면, 간곡하고 명쾌하기가 오늘날과 같은 경우가 또 있었습니까?

더구나 선왕이 무함을 당한 것은 더더욱 원통한 일이었는데, 조칙에 효유한 것이 매우 분명하여 여러 서적들에 실려 있는 근거없는 낭설들을 깨끗이 씻어냈고, 나라를 회복한 공로가 있다고 선왕을 칭찬하였으니, 이는 종계의 악명을 씻은 이외에도 또 성상께서 선왕을 위하여 명쾌히 분변하여 크나큰 일을 이룬 것입니다.

예부(禮部)의 차자에 이르기를 ‘국왕의 즉위는 나이를 따져서 하는 것이 아니라 현능함을 따져서 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또 이르기를 ‘예의(禮義)로 보아 잘못이 없는데 남들의 말을 염려할 게 뭐가 있겠는가.’ 하였으며, 심지어는 오원췌의 잡다한 글들을, 요망스럽고 말도 안 되는 《상산야록(湘山野錄)》《벽운하(碧雲騢)》 등의 서적에 견주었고, 또 성상을, 성덕이 있으면서도 무함을 당했던 송 인종(宋仁宗)에게 견주어 이에 ‘책봉하여 세우기를 청한 것은 모두가 여론을 따른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성상께서 황제의 명을 공경히 받들어 환히 방국(邦國)에 군림하신 사실을 해내와 해외에 널리 알려 모두가 분명히 알게 하였으니, 이것은 예로부터 번군(藩君)들이 일찍이 받아보지 못했던 은총입니다.

이 세 건의 변무(辨誣)의 일은 모두가 성상의 지극한 효성과 성대한 공덕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늘과 사람을 감동시켜 이러한 큰 경사가 있게 되었으니, 우뚝하고 환한 공렬은 전후 역사에 탁월합니다. 종묘 제향에 의칙(儀則)이 있게 되어 성대한 제사가 미진함이 없게 되었으며, 축사(祝史)가 말을 바르게 할 수 있게 되어 복록이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성조(聖祖)의 신령과 저승에 계신 선왕의 영령께서도 필시 내려다 보시고 감탄하며 ‘내가 후사를 잘 두었구나.’라고 하실 것입니다.

성상의 공업이 종묘 사직에 빛나게 된 것이 바로 중국 조정에서 내린 칙서의 말과 완전히 똑같으니, 보통이 넘는 공렬과 가이없는 아름다움은 무어라 일컬을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라 하겠습니다. 제향 음식을 나누어 받던 저녁에 조정의 대소 신료들이 모두 반열에 있었는데 의논도 없이 마음이 일치하여 같은 말로 이르기를 ‘지극하도다, 성상의 효성이여. 성대하도다, 성상의 공덕이여. 윤리 기강이 펴짐을 오늘날에 보겠으니 《시경》《서경》에 기술되어 있는 것이 어찌 이보다 더했으랴.’ 하였습니다.

대개 세상이 평화롭고 도가 행해지며 임금이 성스럽고 정치가 훌륭한데도 신하가 칭송치 않는 것은 신하가 못나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랫사람들의 마음을 펴고 성상의 미덕을 구명하며, 응당 행해야 할 법을 거행하여 성대한 일을 이루고, 조용히 드러내어 큰 아름다움을 거듭 밝히는 것은, 또한 선현들이 이미 예전에 이루어 놓은 법식이니, 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탑전에서 말로 아뢴 것이 품은 생각을 다 말하지 못하여 한갓 성상을 번거롭게만 하고 윤허를 받지 못해,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답답하여 목말라 애타게 물을 찾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조회를 기다렸다가 와서 또 어제의 계청을 다시 아룁니다. 성상께서 이에 대해, 비록 성대한 이름을 누리지 않으려 하시나 될 일이겠습니까? 비록 뭇사람들의 심정을 거절하려 하시나 될 일이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특별히 굽어살피시어 속히 윤허하셔서, 위로 조종의 돌보아주신 마음에 부응하고 아래로 만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을 위로하소서. 그러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것을 보건대 백관들이 모두 모였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고 민망스럽다. 죄수들이 옥에 가득 차서 국문하는 일이 바야흐로 시급한데, 대신들이 나의 명을 따르지 않고 나의 뜻을 유념하지 않고 있다.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를 망각하고 임금의 명을 내던져버리고 조정에 나오지 않는다. 지금이 어떠한 때인데 이러한 말을 하는가.

칙서가 더없이 간곡하니 이는 참으로 황상의 하늘같은 은혜인 것이요 경들이 정성을 다하여 도와준 덕분이다. 다만 종계의 오명을 씻어 《회전(會典)》을 고쳐 반포하고 큰 무함을 쾌히 변정하여 명지(明旨)를 내린 것은 모두 선왕 때에 있었으니, 나에게 무슨 말할 만한 공로가 있겠는가.

선왕이 당한 무함을 해명하기 위한 이번의 주청은 단지 신하된 자의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인데, 이렇게 무고를 변정하여 바로잡은 경사가 있게 되었으니, 망극한 감격의 눈물만 흐를 따름이다. 내 몸에 존호를 더하는 것은 참으로 감당할 수가 없다. 내가 무함을 당한 일에 대해서는, 비록 그 무함을 씻었다고는 하나, 어찌 이것으로 존호를 더하는 이치가 있겠는가.

지금 나라에 근심스러운 일이 많아서 위급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상황을 보건대, 지금이 어찌 경들이 직무를 폐기한 채 존호 올리는 일만 강청하고 있을 때이겠는가. 결코 따를 수가 없다. 이러한 말을 하지 말라."

하였다.

  • [註 009] 영락(永樂) 갑신년 : 1404 태종 4년.
  • [註 010] 만력(萬曆) 무자년 : 1588 선조 21년.
  • [註 011] 요(瑤) : 공양왕.

원문

○百官啓曰: "臣等竊惟, 帝王之繼統立極, 莫重於孝, 而尊祖敬宗者, 孝之大也。 臣子之事君盡禮, 惟在於誠而頌德歸美者, 誠之至也。 故文思欽明, 傳稱唐堯之德, 濬哲溫恭, 史 虞舜之聖, 奚斯之詠、吉甫之詩, 無非褒揚太上, 美厲耿光。 修縟典於當代, 播洪休於後乘, 所以膺宗社(神祗)〔神祇〕 之佑, 答朝野臣民之望者也。 今我殿下光纘洪圖, 誕受駿命, 盡倫而致愛, 立本而成化, 巍蕩難名之德, 輝焯無競之烈, 轢軼今古, 經緯天地。 蜚英華騰茂實, 進崇號薦徽稱之擧, 何可已也? 緬惟聖祖, 秉籙應天, 受 開國, 奸臣賊子, 逃入天朝, 敢懷私憾, 搆成巧讒。 蓋自永樂甲申, 迄于萬曆戊子, 本國之馳奏辨列, 前後相望, 世更十三, 年近二百, 始有纂成實錄, 頒降《會典》之事。 宗系之受誣被衊, 雖得釐正, 而不幸名儒碩士, 纘乘諸秩, 猶襲舛訛, 益肆醜詆。 指聖祖或稱逆黨, 或加幽弑簒賊之名。 嗚呼! 宗系辨明, 而惡名之狼藉如前, 《會典》修輯, 而外傳之剌謬益甚, 將使天下後世, 眩亂是非, 莫辨其惑, 則豈非大可懼哉? 況《續文獻通考》《吾學編》, 《經世實用編》《弇山別集》《大政紀》等書, 或係奉勅撰成, 或爲諸司掌故, 而館閣諸儒, 是焉取閱考證, 實與正史無異。 凡在我國, 無論士庶, 稍稟知覺者, 孰不驚聽而竦神, 切齒而腐心乎? 然則其可諉之於一部《會典》之修補, 而却以如許諸書記誤, 爲閑漫文字乎? 又豈可諉之於宗系之改正, 而却以弑逆惡名, 任加於祖宗而莫之恤乎? 至若先王之被誣, 尤有所不忍覩, 不忍聞之事。 或曰: ‘招復地, 啓扃揖盜。’ 或曰: ‘割地與, 歲周粟帛。’ 或曰: ‘國王請款, 情涉齮齕。’ 或曰: ‘娛情詩酒, 敗度取侮。’ 如是捏造, 迭見編簡。 嗚呼! 我先王以至誠大義, 敬事天朝, 終始益篤, 可謂質諸鬼神、明乎日月, 而賓天之後, 受誣至此, 陟降之靈, 必爲痛怛於 冥之上矣。 況此多般謗言, 又甚應泰之所搆者, 則亦可諉之於往年之奏請, 而不爲之訟冤耶? 恭惟聖上, 承先王付托之命, 奉天子監撫之勅, 正位貳極, 嗣臨大寶, 億兆謳歌, 遠邇愛戴, 此實東征將士之所目覩, 海內之所傳播。 而伍袁萃因何所見, 敢於《林居漫錄》中, 乃有爭立之語? 所謂爭者, 乃勢均力敵, 名位相較之稱也。 此而不辨, 則不幾於置逆之窺覬, 登叛人之黨者乎? 凡此三件之詬辱, 實萬國所無, 天下無二者。 不得不控疏陳籲於天日之下, 而幸蒙皇上洞燭, 閣部明諒, 聖旨優渥, 覆題詳, 恩勅渙頒, 寵數隆溢, 其於明辨湔雪, 更無所歉。 固已昭揭宇宙, 聳動觀瞻, 使海內諸國, 知聖天子眷顧我聖王, 特出於尋常萬萬也。 臣等竊詳, 禮部題稱有曰: ‘其辨祖系也, 恥作逆黨之後, 其辨王氏洪倫等所弑也, 羞被簒立之名, 其辨釜山互市等情也, 懼蹈引。 無非自處于彝倫攸敍之國, 表其父爲恪恭靖獻之臣也。’ 是則璿源誣玷、聖祖惡名、先王被誣之冤, 一擧而昭雪蕩滌者也。 又曰: ‘仍付史館, 纂修成案, 抄傳海內, 與天下共見之, 仍勅國。 一稟章程, 無惑浮議。 將外藩之心以昭, 天朝之體統以肅矣。’ 是則本國被誣情節, 藏之史局, 謄出朝房, 勒成信史, 盡祛私偏之訛謬, 而表迪于萬祀。 一以傳布中外, 使窮鄕遐裔, 家至戶到, 無不洞知其誣枉, 則比諸《會典》之補錄, 爲如何耶? 其曰: ‘著書諸臣, 後先物故, 書已傳播, 無從盡改。 但得明旨再頒, 諸書不必改正, 而自無不正也。’ 是則將各種諸書, 弁髦而棄之, 一以明旨更正者, 取信於天下後世。 試觀數百年來, 天朝於我國, 覆本勤懇諄復, 有如今日者乎? 至於聖旨, 則‘該國世系諸事、釜山之說, 與野史所傳, 原不足據。 奏詞抄付, 史館纂修, 乃賜勅與王慰, 其昭雪先世之意。’ 其勅諭略曰: ‘尊祖敬宗, 華夷罔間, 信令傳後, 文獻足徵。 事果厚誣, 理宜昭雪。 當王恭愍被弑之初, 正李仁任專命之際。 非類, 復不君。 革鼎新, 有同草昧。 流皇洞燭乎高皇, 辨疏悉聞於列聖。 至於倭寇之侵陵, 繄爾父諱之恢復。 釜山要害, 原非侵疆, 互市羈縻, 詎關誘敵? 疇爲月旦? 總屬陽秋。 朕方錫類, 嘉在同文。 庶石渠金櫃之祕有據, 而大書特書水原木本之思, 無忝于祖廟禰廟。’ 云云。 臣等竊觀, 洪武以來, 列聖明旨及勅諭, 但以‘載錄史館, 纂附《會典》’爲辭, 而至於己巳《會典》, 全部頒給之勅, 只曰: ‘雪累世不明之系, 旣遂懇祈。’ 等文字而已。 其非王氏恭讓昏暴之事, 革故鼎新, 流言洞辨等語, 至此乃得如是之明白, 試考累代勅旨之文, 則其丁寧明快, 又有如今日者乎? 況先王之受誣, 尤極冤痛, 而勅諭煌煌, 洗盡其諸書無稽不根之說, 至以復之功褒之, 此則宗系惡名昭雪之外, 又是聖上爲先王極辨一大事也。 禮部箚曰: ‘國王之立, 非以長而以賢也。’ 又曰: ‘禮義之不愆, 何恤乎人之言?’ 至以袁萃之雜著, 比之於《湘山野錄》《(碧雲䮕)[碧雲騢]等書, 妖妄無據, 又以聖上, 比之於 仁宗, 有聖德而被誣, 乃以‘請立冊封, 俱順輿情’爲辭。 我聖上欽承帝命, 赫臨邦國之業, 薄海內外, 無不曉然, 是則自古藩君所未徼之寵典也。 總此三件辨誣之事, 皆由於聖上之至孝盛德。 感通天人, 有此大慶, 巍功煥烈, 度越前後。 廟享有儀, 殷薦罔愆, 祝史正辭, 福祿攸降。 聖祖在上之神, 先王昭格之靈, 亦必歆臨感嘆, 其將曰: ‘予有後焉。’ 則聖上之功光廟社者, 正與皇朝勅旨之語, 若符契而脗合, 則非常之烈, 無疆之休, 可謂無得而稱焉。 受餕之夕, 大小廷, 咸悉在列, 不謀同臆, 合辭颺言曰: ‘至哉, 聖孝! 大哉, 聖德! 倫紀之敍, 式見乎今, 《詩》《書》所述, 何以加乎?’ 蓋世平道行, 主聖治隆, 而臣子不稱者鄙也。 是以, 抒下情而究上美, 擧彝典而修盛事, 雍容揄揚, 申明景鑠者, 抑亦先賢之成式, 往古之懿軌, 不可廢也。 榻前口達, 不盡所懷, 徒煩聖聰, 未蒙允許, 群情愈鬱, 如渴望飮。 待朝而來, 又申昨請。 聖上當此, 雖欲不享鴻名, 其可得乎? 雖欲拒其輿情, 其可得乎? 伏望殿下特垂俯察, 亟賜兪音, 上以副宗祏眷顧之懷, 下以慰庶類顒跂之情, 不勝幸甚。" 答曰: "省啓, 百官皆會, 不勝驚悶。 囚繫滿獄, 鞫問方急, 而大臣不遵予命、不體予意。 罔念君臣之大義, 抛棄君命而不赴, 則此何時而乃爲此言? 聖勅勤懇, 夐出尋常, 實是皇上之天恩, 而諸 協贊之誠也。 但宗系昭雪, 《會典》改頒, 快辨厚誣, 明旨誕降, 俱在於先朝, 則不辟有何可議之功乎? 先王被誣, 而今番奏請, 只出臣子之至情, 而致此辨誣之慶, 則感泣罔極而已。 加號於寡躬, 則誠不敢當也。 至於予身被誣, 雖得昭雪, 寧有以此加號之理哉? 目今國家多憂, 危急之事非一二計。 試觀爻象, 是豈卿等廢事强請加號之日乎? 決無可從之理。 願勿爲如此之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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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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