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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 78권, 광해 6년 5월 5일 병진 1번째기사 1614년 명 만력(萬曆) 42년

장령 배대유가 역옥을 친국하는 폐단에 대해 진달하다

장령 배대유(裵大維)가 아뢰기를,

"특별히 크나큰 은혜를 입어 여러 번 감당하지 못할 직책을 맡아서 항시 송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직 직분을 다하여 죽을 것만 생각하고 구차스럽게 녹만 받으면서 살기를 원하지 않았으나 다만 지혜가 모자라고 재주가 없어서 모기가 산을 지고 있다는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후의 누적된 병폐를 모두 들 수 없기에 우선 역옥(逆獄) 때 논계한 것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모역(謀逆)은 천하의 대죄이고 반좌법(反坐法)은 간악함을 막는 중률(重律)입니다. 선왕(先王)이 이 법 지키기를 금석(金石)처럼 견고히 하고 사시(四時)처럼 미덥게 한 것은, 진실로 모역을 다스리는 데만 오로지 하고 무고한 자를 소홀히 다루면 터무니없는 말을 꾸며내는 자가 마구 생겨나고 간적(奸賊)이 제멋대로 흉악한 짓을 하여, 사람들이 수족을 둘 곳이 없게 되고 장차 나라가 나라답지 못한 데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안위(安衛)·이춘란(李春蘭) 등이 혐의를 인해서 무고하였으니 법에 있어 당연히 주륙을 당했어야 합니다. 그 당시 양사가 함께 법에 따라 처리하도록 주청하였으니 의당 끝까지 논집하여 형벌을 잘못 적용하는 일이 없게 했어야 하는 것인데, 불초한 신이 그 반열에 있으면서 정성이 하늘에 이르지 못하여 결국 법을 행하지 못하고 그대로 반좌율을 폐하여 마침내 무고의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이후로부터 죄를 범하여 응당 죽어야 할 자가 만약 고변을 하면 일의 허실을 논할 것도 없이 모두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요즈음 간적(奸賊)의 무리가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길로 알고 있습니다. 간음하였다가 붙들리자 자수하여 고변한 자는 김덕룡(金德龍)이고, 좀도둑질하다가 붙들리자 갑자기 모역을 했다고 칭한 자는 김언춘(金彦春)입니다. 저들이 이미 죽을 상황에서 살아나려고 계책을 꾸민 것이라면, 당초에 끌어들인 것은 이미 그 흉악한 생각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남김없이 다 생각해 내어 끌어댄 것입니다. 그리고 옥사의 평결(評決)을 마쳐갈 때에 또 잠깐이라도 살아남으려고 하여 바야흐로 무함하여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추국하여 그 계략에 빠져드니 비록 날마다 공초를 받는다 해도 또 반드시 날마다 사람을 무함하여 끌어들일 것입니다.

이번에 초야(草野)에 있는 곽재우(郭再祐)가 고소를 당하고 판부사 심희수(沈喜壽)가 또 무고를 당했습니다. 곽재우는 비록 나라를 위해 마음을 다하여 충성이 해를 꿰뚫었으나 그 몸은 물러가 쉬고 있고 그 종적은 산야에 묻혀 있으니 전하께서 원신(遠臣)을 대하심에 참으로 틈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희수에 있어서는 전조(前朝)에 정승을 지냈고 추국청 대신입니다. 그가 도적들과 일을 함께하지 않은 것은 전하께서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심희수는 속일 수 있다고 하나 성상까지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이는 심희수가 차자에서 무고죄를 심하게 나열하였기 때문에 필시 음흉한 사람이 남을 중상할 마음을 품고 뒤에서 사주하여 몰래 음해하여 반좌론(反坐論)을 막으려고 도모한 데 불과한 것이니, 그 계략이 참혹하고 죄가 망극합니다. 주졸(走卒)들도 분노하고 물정(物情)이 다같이 놀라 모두 말하기를 ‘성상이 지척에 계신 앞에서 국청에 참여한 대신이 무함을 당한 것은 비단 이전에 없었던 일일 뿐 아니라 실로 조정의 체면에 관계된 것이니 반드시 엄히 국문하여 그 죄를 시원스럽게 매듭지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탑전에서 아뢴 것과 양사의 논계가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아직까지 천둥 같은 위엄을 보이지 않으시어 사악한 자들이 태연히 그대로 있습니다. 심희수는 옥에 갇히는 일은 겨우 면하였으나 오명을 입은 것은 조원선(趙元璿) 등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국가는 대신을 이처럼 대접해서는 아니되는 것인데 망극한 무고 죄인을 차마 그대로 놓아두고 국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들은 이미 공론을 두려워할 것이 없고 대신을 속일 수 있다고 알고 있으니, 더구나 대신보다 낮은 자에 대해서는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혐의가 있는 자가 어깨를 으시대고 죄를 진 자가 큰 소리를 쳐서 온 나라 신민들이 장차 모두 무함을 받는 사람이 되더라도 날이 부족할 것이고 반드시 나라가 텅 비게 될 형편입니다. 위로 공경으로부터 아래로 사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두려워하며 숨을 죽이고 있으니, 앞으로 닥쳐올 화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아, 전하께서는 지금의 시사(時事)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온 나라가 가뭄이 들어 농사일이 매우 참혹한데 태백성이 또 나타나니 천변이 참혹하고, 형옥이 오래 적체되니 원성이 대단합니다. 인심은 불안하여 두려움에 떨고 풍속이 갑자기 변하여 국청을 원한을 푸는 아문으로 생각하고 고변(告變)을 공갈치는 일상적인 얘기로 여겨서 귀천이 서로 규찰하지 못하고 대소관이 서로 의심하니 이대로 가다가는 반드시 도탄에 빠지고 말게 될 것입니다. 백성들을 어루만져 수습하는 것이 제일 급한 일이니, 속히 모든 옥사를 매듭지어 정전(正殿)을 깨끗이 쓸어내고, 덕이 있고 어진 신하에게 자문하고 강론하시어 천지의 태화 지기(太和之氣)를 안정시키고 정치의 도를 태평하고 융성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늘과 사람이 편안하고 위태로운 관건을 홀만히 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전하께서 만난 변고가 고금에 없는 일이고 종사의 걱정이 스스로 쉬실 겨를이 없을 정도이니 몸소 국청에 납시어 친국하시는 것은 형편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덕룡(金德龍) 이하 여러 도적들의 일에 있어서는, 재앙의 조짐이 이미 일어났고 일마저 근거가 없습니다. 옥사를 다스리는 법으로 따져볼 때에, 어긋나는 단서가 있으면 으레 옥사가 성립되지 못하는 것이니, 금부에 내려 다스리게 해도 되는 일입니다. 구태여 천정(天庭)을 더럽히면서 친국까지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신은 항상 대단히 민망스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임금의 기체(氣體)는 지내온 환경이 달랐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과는 크게 다른 점이 있으니, 추위와 더위를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정국을 연 이후로 국문에 참여한 신하가 모두 상해를 입어 병을 얻기도 하고 체직되기도 하였는데 전하께서는 시종 피로가 쌓였는데도 그것을 걱정하지 않으십니다. 지난번 병환이 나신 것은 실로 이에서 연유된 것인데 지금까지도 게을리하지 않으시어 정파할 기약이 없으십니다. 전하의 한 몸은 종사(宗社)와 신민(神民)이 의탁한 바이니 비록 천지가 돕고 음양이 보호한다고 하더라도 전하 스스로 어찌 내내 수고롭게 하셔서야 되겠습니까. 생각건대 우리 선왕께서도 또한 역적을 많이 다스리셨습니다. 법을 쓰심이 매우 준엄하고 진실로 스스로 경하게 하지 않으려 하셨으므로 친국이 여러날 계속된 적이 없으셨고 옥을 처단함에도 오래도록 지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무고죄에 있어서는 반드시 다스리고 용서하지 않으셔서 역모가 스스로 그치고 민심이 화합하게 만드셨습니다.

신은 일찍이 선왕을 섬기었는데 지금 또 외람되게 발탁되었으니 만약 선왕께서 행하신 것을 전하께 고하지 않으면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 돌아가 선왕을 뵐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미 처음에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하였고 지금 또 여러 도적의 죄를 바로잡지 못하여, 민생과 국가에 관계된 일에 있어 한번도 임금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하고 부질없이 도로에서 외쳐대기만 하여 공론에 죄를 얻었습니다. 안으로 본심에 부끄럽고 굽어봄에 세상에 부끄러우니 죄가 만번 죽어 마땅합니다. 이미 예를 범한 잘못이 있는데다 또 직무를 게을리한 죄를 범하였으니, 언관의 자리에 있으면서 거듭 명기(名器)를 더럽힐 수 없습니다. 신을 체직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역옥이 비록 매우 실상이 없으나 사체가 지극히 엄하니 친국하여 사실을 밝혀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내가 임금답지 못하여 대궐 동기의 변이 잇달아 일어났으니, 법을 집행하는 자리에 있는 그대들이 마땅히 역적을 토벌하는 의를 엄히하여 그 직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인심이 불측한 때에 감히 전조(前朝)의 일을 끌어대어 역적을 토벌하는 논의를 늦추고, 선왕께서는 친국을 여러날 계속한 적이 없다고까지 말하니, 전조(前朝)에 과연 오늘과 같은 대궐 동기의 대변이 있었는가? 법을 집행하는 신하가 먼저 논의를 늦추도록 주창하여 임금을 을러대고 견제하여 죄인을 국문하지 못하게 하니 국가가 언관을 설치한 뜻이 어디에 있는가. 이는 임금을 잊고 역적을 옹호하는 무리가 조정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니 오늘날 조정 신료들은 벌과 개미가 군신의 의리를 지키는 것만도 못하다. 김덕룡 등에 있어서는 비록 무고라고는 하나 어찌 실상을 캐내어 묻지도 않고 먼저 반좌율을 적용할 수 있겠는가. 대개 추관(推官)과 상의하여 처리할 것인데 일개 언관이 어찌 감히 역적을 옹호할 계략을 꾸며 이처럼 분란스럽게 하는가.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물러가 물론을 기다렸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45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305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司法) / 변란-정변(政變) / 인사-관리(管理) / 역사-전사(前史)

甲寅五月初五日丙辰掌令裵大維啓曰: "特蒙洪恩, 屢忝匪據之任, 常切不稱之懼。 惟思盡職而死, 不願苟祿而生, 第因智短才疎, 厚招蚊負之譏。 前後積戾, 不可盡擧, 姑以逆獄時論啓者言之。 夫謀逆, 天下之大罪; 反坐, 防姦之重律。 先王之執此律, 堅如金石, 信如四時, 其誠以於治逆, 而忽於誣告, 則構捏橫生, 奸賊肆兇, 人無所措手足, 而將至於國不國矣。 頃者安衛李春蘭等, 因嫌誣告, 法所當誅。 其時兩司共請依律, 所宜終始論執, 俾無失刑。 而如臣無狀, 側於其列, 誠未格天, 法終不行, 仍廢反坐之律, 遂開誣告之路。 自是以後, 犯罪應死者, 苟爲告變, 則事無虛實, 皆可偸生, 故比來奸賊之輩, 認爲逃之地。 奸陰被捉, 自首告變者, 金德龍也; 鼠竊見捕, 輒稱謀逆者, 金彦春也。 彼旣爲死中求生之計, 則當初所引, 已盡其兇慮所及, 不遺餘力矣。 及其讞囚幾畢, 又冀須臾無死, 謀稽臬事, 方欲誣引。 而乃爲更推, 以中其計, 雖日日所招, 亦必日誣引人矣。 今者辟穀臣郭再祐見訴矣, 判府事臣沈喜壽又被告矣。 (再佑)[再祐] 雖赤心徇國, 忠貫白日, 而其身則退休也, 其則山野也。 殿下之觀遠臣, 固有間矣。 至如喜壽, 先朝舊相, 鞫廳大臣, 其不與穿窬者同事, 殿下之所洞燭。 喜壽雖可誣, 聖明其可欺乎? 此不過喜壽之箚, 極陳誣告之罪, 故必有兇人, 含沙指嗾, 謀以陰中而杜反坐之論也, 其計慘矣, 其罪極矣。 走卒猶怒, 物情共駭, 皆以爲: ‘咫尺天威之下, 參鞫大臣之見誣, 非但前所未有, 實係朝廷體貌, 必嚴鞫快定其罪。’ 而榻前之, 兩司之論, 盡歸虛地, 雷威尙閟, 虺蜴自如。 喜壽之僅免者縲絏, 而其身之蒙穢, 趙元璿等伍耳。 國家之待大臣, 固不可如此, 而誣告之罔極, 忍置而不問耶? 彼旣知公論之不足畏、大臣之爲可誣, 則況下於大臣者, 宜無所不至也。 懷嫌者臂, 負罪者閃舌, 擧一國臣民, 皆將爲受誣之人, 而日亦不足, 勢必空國。 上自公卿, 下至士庶, 莫不累足而立脅息以待, 將來之禍, 可勝言哉? 嗟! 殿下以今之時事爲何如也? 赤地千里, 年凶酷矣, 太白又見, 天變慘矣, 刑獄久滯, 愁怨極矣。 人心懍懍, 風俗猝變, 鞫廳擬赴慈報怨衙門, 告變爲恐喝常談, 貴賤不能相糾, 大小互爲疑貳, 轉之勢, 必至塗地。 撫按收拾, 最爲急務, 正宜速完諸獄, 淨掃法宮, 咨訪碩輔, 講論儒臣, 保合太和, 昭隆治道。 何可忽天人安危之機, 而莫爲之所乎? 臣固知殿下所遇之變, 古今所罕, 宗社之憂, 不遑自暇, 親臨取鞫, 勢固然矣。 至於德龍以下諸賊, 孽由已作, 事且無據。 若規以治獄之法, 則凡有違端, 例不成獄, 付王獄治之亦足矣。 何必塵穢天庭, 至於親鞫乎? 且臣有渴悶焉。 人主氣體, 居移養移, 逈異凡人, 寒暑早暮, 不堪觸冒。 自開庭鞫之後, 入參諸臣, 無不受傷, 或病或遞, 而殿下終始積勞, 不以憂恤。 曩日愆和, 實由於此, 而今猶未懈, 停罷無期。 殿下一身, 是宗社之所托、神民之所依, 雖曰天地默佑、陰陽扶護, 而殿下之自處, 其可以一向勞勩耶? 念我先王, 治亦多矣。 用法極其嚴, 而固不肯自輕, 故親鞫未嘗至累日, 斷獄亦不稽時月。 至於誣告之罪, 則必致罔赦, 以致逆節自弛, 民情翕然。 臣嘗逮事先朝, 今又猥蒙拔擢, 若不以先王之所以行者告殿下, 則其亦何面目歸拜先王於地下乎? 臣旣不能執法於初, 今又不能正諸賊之罪, 而係民命、關國家之事, 亦無一能回天, 徒爲呼唱道路, 得罪公議。 內恧素心, 俯愧一世, 罪當萬死。 旣有越禮之失, 又負曠職之罪, 不可忝冒言地, 重汚名器。 請命罷斥臣職。" 答曰: "逆獄雖極無實, 事體至嚴, 不可不親鞫覈處。 況由予不辟, 宮闈同氣之變繼起, 則爾等居執法之地, 當嚴討逆之義, 以盡其職事。 而人心不測之日, 乃敢引朝之事, 以緩討逆之論, 而至曰先朝親鞫, 未嘗至累日, 先朝果有如今日宮闈同氣之大變乎? 執法之臣, 先倡緩論, 脅制君父, 使不得鞫問罪人, 則國家設言官之意安在? 此所以忘君護逆之輩, 充滿朝廷, 而今日朝臣, 不如蟻之君臣也。 至 德龍等, 則雖曰誣告, 其可不覈問, 而先施反坐之律乎? 大槪與推官詳議以處, 而一言官何敢生護逆之計, 瀆擾至此乎? 勿辭退待。"


  • 【태백산사고본】 28책 28권 45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305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司法) / 변란-정변(政變) / 인사-관리(管理)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