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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일기[중초본]68권, 광해 5년 7월 22일 무인 1번째기사 1613년 명 만력(萬曆) 41년

행 대사간 이충이 사직을 청했으나 받아들이지 않다

행 대사간 이충이 아뢰기를,

"소신은 용렬하고 최하류에 거한 자로서 평소에 재망이 부족한데, 천만 뜻밖에 외람되게 은혜로운 전지를 받았습니다. 오늘날을 주목해 보면 역적을 토벌하는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아 나랏일이 허둥대고 있으며 논의가 여러 갈래로 일어나서 인심이 흉흉하니 비록 의지가 굳고 정직하며 후덕하고 재망이 탁월한 자에게 맡기더라도 오히려 감당해 내지 못할까 염려스럽습니다. 신 같은 자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속히 성명(成命)을 환수하소서."

하니,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다하라고 답하였다. 이충이량(李樑)의 손자로 오랫동안 청망이 막혀 있다가 그의 아우인 이명(李溟)이 정인홍의 제자로 먼저 귀인에 통망되어 전권(銓權)을 잡게 되자 이충도 대간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사람됨됨이가 시기심 많고 포악하며 살육을 좋아하므로 중외의 사람들이 좋게 보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107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228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癸丑七月二十二日戊寅行大司諫李沖啓曰: "小臣庸朽, 最居人下, 素乏才望, 夢寐之外, 猥承恩旨。 目今討逆未畢, 國事遑遑, 論議多岐, 人心洶洶, 雖使剛方正直, 厚、才高者當之, 猶懼不堪。 顧如臣者, 何敢承當? 伏願亟收成命。" 答曰: "勿辭盡職。" 李沖李樑之孫, 久塞淸, 及其弟, 先以鄭仁弘弟子, 通貴秉銓, 而亦拜大諫。 爲人猜暴好殺, 中外側目。


    • 【태백산사고본】 24책 24권 107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228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