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 수군 절도사 이순신이 거제 앞 나루에서 왜적을 격파하다
전라 수군 절도사 이순신(李舜臣)이 경상도에 구원하러 가서 거제(巨濟) 앞 나루에서 왜병을 격파하였다. 왜병들이 바다를 건너오자 경상 우수사 원균(元均)은 대적할 수 없는 형세임을 알고 전함(戰艦)과 전구(戰具)를 모두 물에 침몰시키고 수군 1만여 명을 해산시키고 나서 혼자 옥포 만호(玉浦萬戶) 이운룡(李雲龍)과 영등포 만호(永登浦萬戶) 우치적(禹致績)과 남해현(南海縣) 앞에 머물면서 육지를 찾아 적을 피하려고 하였다. 운룡이 항거하여 말하기를 ‘사또가 나라의 중책을 맡았으니 의리상 관할 경내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 이곳은 바로 양호(兩湖)의 요해처로서 이곳을 잃게 되면 양호가 위태롭다. 지금 우리 군사가 흩어지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모을 수 있으며 호남의 수군도 와서 구원하도록 청할 수 있다.’ 하니, 원균이 그 계책을 따라 율포 만호(栗浦萬戶) 이영남(李英男)을 보내 순신에게 가서 청하게 하였다.
이때 순신은 여러 포(浦)의 수군을 앞 바다에 모으고 적이 이르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남의 말을 듣고 여러 장수들은 대부분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지역을 지키기에도 부족한데 어느 겨를에 다른 도에 가겠는가.’ 하였다. 그런데 녹도 만호(鹿島萬戶) 정운(鄭運)과 군관 송희립(宋希立)만은 강개하여 눈물을 흘리며 이순신에게 진격하기를 권하여 말하기를 ‘적을 토벌하는 데는 우리 도(道)와 남의 도가 따로 없다. 적의 예봉을 먼저 꺾어놓으면 본도도 보전할 수 있다.’ 하니 순신이 크게 기뻐하였다.
광양 현감(光陽縣監) 어영담(魚泳潭)이 수로(水路)의 향도가 되기를 자청하여 앞장서서 마침내 거제 앞 바다에서 원균과 만났다. 원균이 운룡과 치적을 선봉으로 삼고 옥포에 이르렀는데, 왜선 30척을 만나 진격하여 대파시키니 남은 적은 육지로 올라가 도망하였다. 이에 그들의 배를 모두 불태우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노량진(鷺梁津)에서 싸워 적선 13척을 불태우니 적이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이 전투에서 순신은 왼쪽 어깨에 탄환을 맞았는데도 종일 전투를 독려하다가 전투가 끝나고서야 비로소 사람을 시켜 칼끝으로 탄환을 파내게 하니 군중(軍中)에서는 그때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이에 앞서 순신은 전투 장비를 크게 정비하면서 자의로 거북선을 만들었다. 이 제도는 배 위에 판목을 깔아 거북 등처럼 만들고 그 위에는 우리 군사가 겨우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十字)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송곳 같은 것을 줄지어 꽂았다. 그리고 앞은 용의 머리를 만들어 입은 대포 구멍으로 활용하였으며 뒤에는 거북의 꼬리를 만들어 꼬리 밑에 총 구멍을 설치하였다. 좌우에도 총 구멍이 각각 여섯 개가 있었으며, 군사는 모두 그 밑에 숨어 있도록 하였다. 사면으로 포를 쏠 수 있게 하였고 전후 좌우로 이동하는 것이 나는 것처럼 빨랐다. 싸울 때에는 거적이나 풀로 덮어 송곳과 칼날이 드러나지 않게 하였는데, 적이 뛰어오르면 송곳과 칼에 찔리게 되고 덮쳐 포위하면 화총(火銃)을 일제히 쏘았다. 그리하여 적선 속을 횡행(橫行)하는데도 아군은 손상을 입지 않은 채 가는 곳마다 바람에 쓸리듯 적선을 격파하였으므로 언제나 승리하였다. 조정에서는 순신의 승보를 보고 상으로 가선 대부(嘉善大夫)를 가자(加資)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15면
- 【분류】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군기(軍器) / 인사-관리(管理)
○全羅水軍節度使李舜臣赴援慶尙道, 大敗倭兵于巨濟之前津。 倭兵之渡海也, 慶尙右水使元均知勢不敵, 悉沈戰艦、戰具, 散水軍萬餘人, 獨與玉浦萬戶李雲龍、永登浦萬戶禹致績, 栖泊于南海縣前, 欲尋陸避賊。 雲龍抗言曰: "使君受國重寄, 義當死於封內。 此處乃兩湖咽喉, 失此處, 則兩湖危矣。 今吾衆雖散, 猶可保聚, 湖南水軍, 可請來援也。" 均從其計, 遣栗浦萬戶李英男, 詣舜臣請。 舜臣方聚諸浦舟師于前洋, 欲待寇至而戰。 聞英男言, 諸將多以爲: "我守我疆且不足, 何暇赴他道耶?" 惟鹿島萬戶鄭運、軍官宋希立慷慨涕泣, 勸舜臣進擊以爲: "討賊無彼此道。 先挫賊鋒, 則本道亦可保也。" 舜臣大悅。 (彦陽)〔光陽〕 縣監金泳潭[魚泳潭] 自請爲水路嚮導居前, 遂會均於巨濟前洋。 均使雲龍、致績爲先鋒, 到玉浦遇倭船三十隻, 進擊大破之, 餘賊登陸而走, 盡焚其船而還。 復戰于鷺梁津, 燒賊船十三隻, 賊皆溺死。 是戰也, 舜臣左肩中丸, 猶終日督戰。 戰罷, 始使人以刀尖挑出, 軍中始知之。 先是, 舜臣大修戰備, 自以意造龜船, 其制船上鋪板如龜, 背上有十字細路, 纔容我人通行, 餘皆列揷刀、錐。 前作龍頭, 口爲銃穴, 後爲龜尾, 尾下有銃穴。 左右各有銃穴六, 藏兵其底, 四面發砲, 進退縱橫, 捷速如飛。 戰時覆以編茅, 使錐、刀不露, 賊超登, 則掐于錐、刀, 掩圍則火銃齊發。 橫行賊船中, 我軍無所損, 而所向披靡, 以此常勝。 朝廷見舜臣捷報, 賞加嘉善。
- 【태백산사고본】 6책 26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25책 615면
- 【분류】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군기(軍器)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