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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 16권, 선조 15년 9월 1일 병진 1번째기사 1582년 명 만력(萬曆) 10년

이이가 네 가지 시폐의 개정을 논한 상소문

이이를 의정부 우참찬에 제수하였다가 곧바로 숭정(崇政)의 품계로 올렸다. 이이가 세 번 사직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자 바로 배명(拜命)하고 얼마 뒤에 봉사(封事)를 올려 시폐(時弊)에 대해 극력 진달하였는데 그 상소의 대략에,

"신은 듣건대, 상지(上智)의 사람은 미연에 환히 알고 있으므로 난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스리고 나라가 위태롭기 전에 미리 보전하며, 중지(中智)의 사람은 사태가 발생한 뒤에 깨닫게 되므로 난이 일어나 나라가 위태롭게 된 다음에야 다스려 안정시킬 것을 도모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난이 닥쳤는데도 다스릴 것을 생각하지 않고 위태로움을 보고도 안정시킬 방도를 강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지(下智)의 인물이 될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전하께서는 상지의 자질로서 국운이 점차 쇠퇴해지는 때를 당하였다고 봅니다. 따라서 위망스런 형상은 불을 보듯 환한 것으로 중지(中智)의 사람들도 탄식하며 안타깝게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우리 황천과 조종이 맡겨주신 책임에 부응하고 아래로는 신하와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에 보답할 만한 치안책을 끝내 마련하지 않고 계십니다. 지금 국세가 위급하다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알고 있는 터인데 성명께서 어찌 모르실 리가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이미 알고 계신다면 무엇을 믿고 정사를 잘 다스려 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계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습니까. 아, 매우 위태롭습니다.

위망의 형상에 대해 신은 주벌(誅罰)을 무릅쓰고 그 대체적인 것을 아뢰어 보겠습니다. 세도(世道)는 시속을 따르는 데에서 나빠지고, 공적은 작록만 탐내는 자를 먹여주는 데서 무너지고, 정사(政事)는 부의(浮議)를 일으키는 데에서 어지러워지고, 백성들은 오랫동안 쌓인 폐단으로 곤궁해지는 것인데 이 네 가지가 그중에 큰 항목입니다. 그렇다면 세도가 시속을 따르는 데에서 나빠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시대가 흐르고 풍속이 변해짐에 따라 인심도 점점 야박해졌는데 교화로 진작시키지 않는다면 풍속이 몹시 퇴패해질 것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지금의 세도는 마치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나쁜 습관에 젖어든지 이미 오래되었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므로 예의 염치가 진기되지 못한 지 오래입니다. 이리하여 시속을 따르는 자는 비방이 없지만 대중과 뜻을 달리하는 사람은 비난을 받기 때문에 대소와 존비의 신분을 막론하고 서로 이끌어 황란(荒亂)의 지경에 빠져들어 멋대로 악한 짓을 하면서 조금도 기탄하지 않고 있습니다.

선비들도 이끗을 좋아하고 의리를 무시하는데 일반 백성들이 무엇을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는 임금이나 부모도 잊고 염두에 두지 않는 판국이니 삼강(三綱)이 없어지고 구법(九法)이 무너졌다는 말은 오늘날을 두고 한 말입니다. 무사한 때에 이미 강상(綱常)이 해이해졌는데 혹시라도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윗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만 있으면서 구제하지 않을 것이니 흙더미가 무너지는 것 같은 사세는 기다릴 여지도 없이 이를 것입니다. 이것이 첫번째 위망의 형상인 것입니다.

공적이 작록을 탐내는 자를 먹여주는 데서 무너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한 것이겠습니까? 관직을 나누어 설치한 것은 곤궁한 사람들에게 녹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재를 얻어 국사를 잘 다스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아니하여 사람만을 위해서 관직을 고르고 재주가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묻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대관들은 녹봉만을 유지하면서 실지로 나라를 걱정하는 뜻을 지닌 사람이 적고 소관들도 녹받아 먹기만을 탐내면서 전혀 직책을 수행하려는 생각을 갖지 아니하여 서로 옳지 못한 행위만을 본받으므로 관직의 기강이 해이해졌습니다.

그중에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수행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여러 사람들이 모여 비웃고 욕하면서 바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가 하면 여러모로 저지하고 방해하여 끝내 무슨 일을 이루지 못하게 만듭니다. 심지어는 하찮은 서리(胥吏)들까지도 기회를 틈타 농간을 부려 마침내 직위를 잃게 하는데, 이러한 습관이 이미 준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리하여 선비로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지조를 기킬 줄 아는 사람은 벼슬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작록과 영달을 탐내는 자와 곤궁하여 살 길이 없는 자들은 혹은 시기를 노려 득세할 수 있고 또는 마음과 뜻을 굽혀야만 관직에 오래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대소 신료 모두가 직무에 뜻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중에 조금 낫다는 자들도 단지 문서만을 다루어 기회에 대응해 나갈 뿐입니다. 이리하여 모든 공적이 날로 무너지고 여러 관사가 모두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군현(郡縣)에까지 파급되어 전파되지 않은 고을이 없으니 안팎이 텅 비어 나라가 꼴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위망이 형상입니다.

정사는 부의(浮議)를 일으키는 데에서 어지러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반드시 집정관을 두었는데, 삼공은 육경을 통솔하고 육경은 여러 관사를 거느렸습니다. 이리하여 귀한 사람이 천한 사람을 다스리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받들어 존비의 질서가 있었으므로 기강이 확립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아니하여 조정의 의논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조석으로 변경되지만 시비의 권한을 누구도 주장하는 사람이 없고 상하 대소가 서로 관섭하지 않으므로 조정의 관료들이 각자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합니다. 이른바 부의란 것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는 것으로 처음에는 아주 미세하지만 점차 치성해져 나중에는 묘당(廟堂)을 동요시키고 대각(臺閣)에 파란을 일으키기까지 하는데 온 조정이 거기에 휩쓸려 누구도 감히 저항하지 못합니다. 부의의 위력은 태산보다도 무겁고 칼날보다도 예리한 것으로 그 칼날에 한번 저촉되면 공경도 그 존귀함을 잃게 되고 뛰어난 인재들도 그 명성을 잃게 되며, 장의(張儀)·소진(蘇秦) 같은 자들도 변론을 펼 수 없고, 맹분(孟賁)·하육(夏育) 같은 자들도 그 용력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끝내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이상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리하여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업신여기고 천한 자가 귀한 자를 무시하면서 사람들이 각자 행동을 취하기 때문에 기강이 사라져 버렸고, 의리의 존재는 돌보지 않은 채 오직 부의의 형세만을 관망할 뿐입니다.

아, 대각(臺閣)에서 정치를 주장하더라도 난이 일어날까 걱정스럽다고 하는데, 더구나 부의를 일으키는 자들이 정치를 주장하는 경우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이는 진정 천고에 들어본 일이 없는 것입니다. 비유하건대, 1만 석의 무게를 가진 배가 망망대해를 운항하는데 누구도 키를 잡는 사람이 없이 그냥 풍랑에 맡겨두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위망의 형상인 것입니다.

백성들이 오랫동안 쌓인 폐단에서 곤궁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대체로 법이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는 것은 고금의 공통적인 병폐인 것으로 변통시키지 않으면 백성들의 살 길이 곤궁해지는 것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 나라는 여러 차례 권간의 손을 거치면서 많은 폐법이 만들어졌는데도 잘못된 것을 그대로 따라 시행하면서 고치지 아니하여 폐단이 점점 커졌고 백성들에게 끝없이 많은 해독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개혁하지 아니하여 오늘날에 와서는 인구의 수와 개간된 토지가 옛날보다 반절이나 줄었는데도 공부(貢賦)의 징수는 오히려 전보다 극심합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곤궁해지고 재물이 고갈되어 뿔뿔이 흩어져 떠나버렸으므로 백성이 더욱 적어지고 부역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니 이러한 형세로 나간다면 백성들은 필시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고야 말 것입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인 것으로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편안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민생이 날로 위축되어 극심한 고난 속에 살고 있으니 ‘우리를 보살펴 주면 임금이고 우리를 학대하면 원수이다.’라는 말에 대해서 어찌 매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맹자(孟子)는 ‘숲을 위하여 새를 모는 것은 새매이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다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 나라 백성들로서 조(曹)와 거(莒)같은 이웃 나라가 곁에 있다면 반드시 어린 자식들을 강보에 싸 업고 그곳으로 갈 것입니다. 이것이 네 번째 위망의 형상입니다.

지금 이 네 가지 형상은, 기미가 환히 드러난 것으로 은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눈이 있는 사람은 모두 볼 수 있고 입을 가진 사람은 다 말할 수 있는 것인데 어찌 전하께서만 모르실 수 있겠습니까. 한(漢)나라 신하 매복(梅福)은 자기 임금에게 ‘그 형상을 볼 수 없으면 그 그림자를 살피소서.’ 하였습니다. 오늘날 그림자를 말한다면 천문(天文)이 변괴를 보이고 지도(地道)가 안정치 못하며, 수재와 한재가 극심하고 여역이 해마다 발생하며, 초목·산천·곤충·조수 등 온갖 괴이가 달마다 일어나고 있으니, 이것이 어떠한 것에 대한 그림자이겠습니까.

아, 전하께서는 한 나라의 임금이십니다. 그런데 한 나라가 다스려지지 못할 경우 누구를 책하겠습니까? 옛날 정치를 논한 이들은 반드시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으로 근본을 삼았는데, 오늘날에는 노유(老儒)의 진부한 말이 되었으니 누가 오활하고 요원하다고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격물·치지·성의·정심을 버리고서 나라를 다스리려 한다면 끝내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격물·치지를 하지 않으면 지혜가 이치에 밝지 못하고 성의·정심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이치를 따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치에 따르지 못하면 어진이를 임용하고 백성을 안정시키는 방법을 시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로부터 임금이 아무리 무도하다고 하더라도 자기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었겠습니까마는, 단지 지혜가 밝지 못하기 때문에 어지러운 시대를 태평 시대로 여기고 간사한 자를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어진 사람을 만나면 그가 도(道)를 지키는 것을 꺼리고 말재주가 있는 사람을 만난면 그가 자신에게 아첨떠는 것을 좋아하는 것인데, 이 점이 바로 나라를 전복시킨 전철을 답습하면서 끝내 깨닫지 못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타고 나신 자품이 지혜롭고 성스러우시며 욕심을 적게 가지시어 수양을 깨끗이 쌓으시고 몸가짐도 공손하고 검소하게 하시면서 아랫사람을 예우하시어 조금도 과실이 없으십니다. 그런데도 임어하신 지 16년이 지났건만 치도(治道)는 밝아지지 않고 위망의 형상은 위에서 아뢴 바와 같으니, 아마도 격물·치지·성의·정심의 공력에 미진한 점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전하께서는 오늘날 국가의 형세에 대해서 의관만 정제하고 가만히 앉아 있더라도 끝내 보존할 수 있다고 여기십니까? 아니면 바로잡아 구제하고 싶어도 그 대책을 모르고 계시는 것입니까? 또한 그 뜻이야 갖고 있지만 어진 신하를 얻지 못하여 일을 추진하기에 어렵다고 여기시는 것입니까? 그도 아니면 흥하든 망하든 천운(天運)에만 맡기고 아예 인력을 드리지 않으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예로부터 군주들이 잘 다스리고 싶어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가 두 가지 있습니다. 욕심이 많은 임금으로 자신을 위하는 일이 너무도 사치스러워 궁실을 치장하는 일, 성색(聲色)을 좋아하는 일, 말타고 사냥을 즐기는 일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견디지 못하여 난을 일으키는 것이 첫째이고, 연약한 임금으로 정권이 권간에게 주어져 자신이 정사를 하지 못하고 붙어사는 처지에 있는가 하면 좌우의 신하들도 모두가 심복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무슨 일을 하려면 그즉시 제지당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둘째 경우입니다. 그러나 지금 전하께서는 욕심을 많이 가지시지도 않고 권간이 득세하는 걱정도 없으니, 왕도(王道)를 행하여 왕자가 되고, 패도(霸道)를 행하여 패자가 되는 것은 전하의 도량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금하여 다스리지 못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생각하건대 네 가지 위망의 형상은 모두 전하에게 달린 것이니 폐단을 개혁하고 태평 시대를 일으키는 것도 전하에게 달려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하시지 않는 것일뿐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를 말하자만 이렇습니다.

전하께서는 선(善)을 좋아하는 것이 지극하지만 도(道)를 믿는 것은 독실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충효(忠孝)·청백(淸白) 등의 선행을 지닌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지없이 탄상(嘆賞)하면서도 도학(道學)으로 자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혹시 거짓인가 의심합니다. 대체로 도학을 지닌 사람은 반드시 선행을 구비하는 것이지만, 선을 행하는 사람이 반드시 도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의 선행을 가진 사람을 중시하면서 도학을 가볍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생각건대 전하께서 도를 중시하고 선비를 존중하는 정성이 지극하지 못하기 때문에 호령을 내리고 거조하는 데 있어 시속을 따르는 자를 좋아하고 비상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그리고 곧은 절개가 있는 선비는 그들이 과격하다고 의심하고,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 신하는 순후하다고 여기는가 하면 고도(古道)의 설에 대해서는 큰소리에 불과하다고 배척합니다. 이 때문에 유속(流俗)의 사람들은 풀잎이 바람에 휩쓸리듯이 하여 모두들 ‘우리 임금은 도학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선을 행하던 사람은 기가 꺾이고 악을 행하던 사람은 기세를 부리면서 조금이라도 수칙(修飭)하는 사람이 있으면 명예를 낚는다고 지목하고 세류(世流)에 같이 어울리면 천연스럽다고 허여합니다. 따라서 교화(敎化)가 무너지고 이륜(彛倫)이 상실되는데, 이것이 바로 세도는 시속을 따르는 데에서 나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선비를 아끼시는 뜻은 성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기기 좋아하는 사심(私心)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스리기를 구하는 뜻이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관직에 연연하는 자들은 순종하는 것으로 은총을 받게 되고, 벼슬길에 나오기를 어렵게 여기는 반면 미련없이 물러가는 사람은 거역하는 것으로 전하의 뜻에 거슬리게 됩니다. 그리고 어진이를 기용하는 데 있어서는 용사(用捨)를 논하지 않은 채 그저 작록만으로 묶어놓으려 하며, 선비를 대우하는 데 있어서도 현부(賢否)는 따지지 않고 품계의 높고 낮은 것으로 경중을 구분합니다. 이 때문에 자기의 도(道)를 행하려 하는 사람은 충성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서 방황하다가 끝내 물러가게 되고, 녹봉을 탐내는 자들은 국사에 해만 끼치면서도 자리에 오래 있음으로 인하여 마침내 대관(大官)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대체로 작록이란 것은 세상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한 것으로 덕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록만을 탐내는 자가 모두 기용되고 작록을 구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물러 간다면, 관직이 텅 비게 되는 것이 무엇이 괴이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공적은 작록만 탐내는 자를 먹여주는 데서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명철한 임금들도 혼자서는 정치를 할 수 없었으므로 반드시 어진 사람을 얻어 나라를 같이 다스렸습니다. 이리하여 위대한 요(堯)임금순(舜)임금을 얻지 못할까 걱정하였고, 순(舜)임금우(禹)고요(皋陶) 같은 사람을 얻지 못할까 걱정하였습니다. 임금이 신하를 임용하는 것은 천지의 이치와 같은 것은데, 임용하는 사람이 간사하냐 정직하냐에 따라 치란과 안위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군자를 임용하면 정사가 다스려져 태평 시대를 이루고, 소인에게 맡기면 정치를 독단하여 위태로워집니다. 군자와 소인 그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으면 정치가 분산되어 어지러워지는 것으로 이것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영명하므로 소인이 진정 농간을 부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군자에 대해서도 깊이 믿어 전적으로 위임하시지 않기 때문에 군자들도 뜻을 행할 수 없으니, 이것은 군자와 소인이 모두 쓰임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나라의 권병(權柄)을 맡아 주장하는 사람이 없음에 따라 조정의 기강이 흩어지는 것이니, 마치 주인이 없는 집에 길가던 사람이 서로 들어가서 제가 성인인 체 하면서 온 집이 떠들썩하게 발언하는가 하면 각자 사견(私見)을 가지고 중구난방으로 의논하는 것과 같은 격입니다. 그런가하면 우동(牛童)·마졸(馬卒), 젖내나는 어린 아이들까지도 모두 조정의 시비를 논하는 데 참여하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조정과 국세가 존엄해지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정사는 부의(浮議)를 일으키는 데에서 어지러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대업을 계승한 임금으로서 수성(守成)을 잘한 경우가 두 가지가 있는데, 치세를 계승했을 경우에는 그 법을 그대로 따라 잘 다스린 것과 난세를 계승했을 경우 그 폐단을 개혁시켜 치세를 이룩한 것이니, 일은 다르다 하더라도 방법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서산(眞西山)은 ‘굳게 지켜야 할 경우이면 굳게 지키는 것이 본시 계술(繼述)하는 것이지만, 변통해야 할 경우에는 변통하는 것 역시 계술하는 것이다.’ 하였는데, 이것이야말로 변할 수 없는 정론인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폐단이 오랫동안 쌓인 뒤에 계승하였으니 의당 경장(更張)시킬 계책을 강구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매양 제도를 고치는 일에 대해 중난하게 여기시므로 변통해야 한다는 말을 조금도 채납하지 않습니다. 비유하건대, 오래 묵은 집에 재목이 썩어서 언제 쓰러질는지 모르는데 서까래 하나, 기둥 하나도 갈거나 고치지 않고서 그저 앉아서 무너지기만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무슨 도리라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선조 때 만들어진 법이라 하더라도 시대가 바뀌고 사태가 변하면 간혹 준행하기 어려운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국초(國初)에 《경제육전》을 사용했었는데 광묘(光廟)께서는 《경국대전》을 창제하셨고, 성묘(成廟)이후로 여러 가지 속록(續錄)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어찌 분경(紛更)을 좋아해서이겠습니까. 때에 따라 적절하게 해 나가는 방법으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옛법을 고수할 뿐만 아니라 한때 잘못 만들어진 법규라 할지라도 시행한 지 오래된 것이라면 성헌(成憲)으로 인정하여 더욱 경건하게 준수하므로 해독이 온 국내에 미치는 데도 돌보지 않고 있으니, 이 나라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성군(聖君) 시대를 만나서도 끝내 도탄의 고난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입니까.

옛날 제갈양(諸葛亮)은 ‘적을 토벌하지 않으면 왕업 역시 망할 것이니, 그저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적을 치는 것이 낫다.’ 하였습니다. 신 역시 ‘경장(更張)하지 않으면 나라는 필시 망할 터인데 그냥 앉아서 망하기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경장하는 것이 낫다.’고 말할 수 있으니 경장하여 잘 되면 사직에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잘못되더라도 망하는 것을 재촉하는 것은 아니고 경장하지 않고 있다가 망하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전하께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더라도 백성을 안정시키는 정치를 베풀지 않는다면, 단지 선심만 지녔을 뿐 법이 없는 것으로 백성들이 은덕을 받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백성은 누적된 폐단에서 곤궁해진다는 것입니다.

아, 우리 태조 강헌 대왕(太祖康獻大王)께서 천명을 처음 받고, 태종 공정 대왕(太宗恭定大王)께서 대업을 이루고, 세종 장헌 대왕(世宗莊憲大王)께서 대업의 기초를 공고히 하여 열성(列聖)이 전승하여 전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계신 조종의 영령이 환히 살피면서 전하에게 기대하는 것이 어찌 깊고도 원대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백성은 흩어지고 군사는 쇠약하며 창고의 양곡마저 고갈되었는데 은혜가 백성에게 미치지 않고 신의도 여지없이 사라졌습니다. 혹시라도 외적이 변방을 침범하거나 도적이 국내에서 반란을 일으킨다면 방어할 만한 병력도 없고 먹을 만한 곡식도 없고 신의로 유지할 수도 없는데,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이 점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려 하십니까? 지금 듣건대 조사(詔使)가 곧 나온다는데 서도(西道) 백성들은 이미 지탱할 계책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성실하고 근신한데도 나라를 제대로 보전하지 못하는데 만일 뒤를 계승하실 분이 조금이라도 법도를 근신하지 않는다면 위망의 사태가 속히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자손에게 태평을 누릴 수 있는 모훈(謨訓)을 남겨 주지 않는다면, 이것은 전하께서 위로는 조종을 저버리고 아래로는 자손을 버리는 것이 됩니다. 전하께서 한밤중 조용히 계실 때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보신다면, 척연하게 깨닫는 것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아, 비상한 공적은 보통으로 다스려 요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위란의 상태를 전환시켜 태평 시대를 이루고 세도를 새롭게 하여 천명을 유지하며 공렬이 조종을 빛내고 업적이 후손에게 전하여지게 하려면, 이는 비상하고 위대한 공적인 것으로 반드시 큰 뜻을 세우고 모든 정치에 분발하여 재주와 성의를 다해서 날로 일을 진행한 뒤에야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손을 놓고 안일에 젖어 있으니, 진보는 없고 퇴보만 있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삼가 살펴보건대, 지금 조정 신하들의 기상이 몹시 위축되어 있습니다. 어진 사람은 몸가짐에 과실이 없게 하려고 할 뿐이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동류들을 끌어들여 공사(公事)를 빙자해서 사욕을 채우려 합니다. 그리고 관직에 있는 사람은 모두가 확고한 뜻이 없으므로 조금이라도 남의 말을 들으면 병을 핑계대고 일을 회피하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자리가 바뀌어져 제 모양을 이루지 못하는가 하면 국가의 치란과 안위에 대해서는 아예 마음에 두지도 않습니다.

나라를 경륜하는 원대한 계획에 대해 언급하면 어진 사람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오히려 임금의 뜻을 돌리기 어렵다고 걱정을 하는데, 그 다음가는 사람은 천명에 돌리면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하고, 아주 못난 사람은 그 자리에서 비웃으며 어리석고 부질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리하여 묘당(廟堂)에서는 건의하는 일이 없고, 육조(六曹)는 문서의 규례만을 지키며, 대간은 세세한 사건을 들추어 내고 남의 묵은 죄악을 캐내는 것을 일과로 삼고, 시신(侍臣)은 문구를 주어 모아 한만스런 담론이나 펼치는 것으로 보필하는 일에 견주려 할 뿐, 국사에 대해 깊이 우려하거나 강령을 잡아 바른말로 극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전하께서 잘 다스려보겠다는 뜻을 신하들에게 분명히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조정의 신하들이 전하께서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기 싫어하실까 의심하여 충성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아, 예로부터 신하로서 충성을 바치려는 자가 일에 앞서 미리 말을 하면 반드시 신임을 받지 못하였고, 일이 닥친 뒤에 말을 하면 그때는 이미 늦어서 구제하려 해도 할 수 없었으니, 이것은 마치 죽을 병에 훌륭한 의원이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위망의 형상은 일에 앞서 논한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새끼줄을 마냥 잡아당기면 반드시 끊어지고야 말듯이 재앙이 자주 닥치면 언젠가는 피부에 닿게 마련인데 어떻게 목전에 요행으로 모면한 것을 가지고 끝내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전하께서 시폐(時弊)를 구제할 생각이 없다면 아무리 고요(皐陶)·기(夔)·직(稷)·설(契) 같은 신하가 좌우에 줄지어 있다하더라도 아무런 도움이 없을 것이고, 신도 입을 다문 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폐를 구제하려 한다면 어찌 전혀 계책이 없겠습니까.

아, 전하께서 진정 하루아침에 개연히 분발하여 용맹스런 뜻을 크게 떨치려고 하신다면 반드시 천지를 전환시키고 우주를 밝혀 조종을 빛내고 후손을 복되게 할 것을 기약하소서. 그리하여 대도(大道)를 돈독히 믿으시어 시종 학문을 닦되 거경(居敬)·궁리(窮理)의 공부를 함께 해나가며 동정(動靜)과 언행(言行)도 한결같이 천칙(天則)을 따라 전하의 일신(一身)이 뚜렷이 표준이 된 다음 일국의 신민으로 하여금 전하께서 도학을 중시하고 유자(儒者)를 존숭하여 교화를 거듭 밝히는 것을 모두 볼 수 있게 하기를 마치 구름과 안개가 사라지고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것처럼 하신다면, 혼탁한 세속인들 어찌 변화시킬 수 없겠습니까.

그리고 훌륭한 인재들을 지성으로 초빙함에 있어 관직에 있는 자이거나 초야에 있는 자이거나 오직 현명하고 재능이 있다면 신분을 따지지 말고 등용하며, 인물을 쓰는 데 있어서도 인품과 직위가 상당하게 할 뿐 일상적인 격식에 구애받지 말도록 함으로써 각자 맡은 직책을 수행하게 한다면 작록을 탐내는 자들의 폐단도 걱정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진 사람에 대해서는 자세히 살피고 정하게 고르며 깊이 알고 독실히 믿어서 의심하지 말고 전적으로 위임하여 성공할 수 있게 하소서. 또 그로 하여금 아는 사람을 추천하여 여러 직무를 분담해서 각자 사공(事功)을 일으키게 하고 그들의 공적과 근만(勤慢)을 고과(考課)하여 출척을 공정하고 분명하게 한다면 청론(淸論)을 주장하게 되어 국세가 존엄해질 것은 물론이고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내는 무리들도 모두가 머리를 숙이고 명령에 따르면서 각자 자기의 직분을 지켜나갈 것인데, 부의(浮議)를 일으키는 자가 어떻게 정치를 혼란시킬 수 있겠습니까?

인군이 정사를 할 적에는 늘 인재가 없다고 걱정하는데 이것 역시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 삼대(三代)의 군신은 진실로 논할 것이 없겠습니다만, 한 무제(漢武帝)는 어진 임금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세력을 과시하면서 공업(功業)을 좋아할 당시에는 재략을 지닌 사람들이 외지에서 힘을 펼쳐 동서(東西)로 국토를 확장시켜 그의 뜻대로 이루어주었고, 말년에 지난날의 행적에 대해 과오를 뉘우치며 백성을 기르고 국경을 보전하려 할 적에는 지방을 다스리는 관리들이 지혜를 써서 기구를 만들어 백성들이 농사를 짓는 데 편리하게 하였습니다. 만약 무제가 명철한 임금을 따랐더라면 어찌 도학을 지닌 선비가 나와서 명에 응할 자가 없었겠습니까.

세대마다 언제나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고 단지 임금이 다스리기를 구하는 것이 정성스럽지 않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오늘날 인물이 적으므로 전하께서 한 세상을 굽어보면 참으로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탄식할 만합니다. 그러나 전하께서 성심으로 다스리기를 갈망하시어 재능에 따라 적당히 기용하신다면 어찌 한 시대의 사업을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제거시켜야 할 누적된 폐단에 대해서는 지금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우나 어리석은 신이 늘 경연에서 아뢴 것은 공안(貢案)을 개정하고 수령을 줄이고 감사를 구임(久任)시키는 세 가지뿐이었습니다. 이른바 공안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은 여러 고을의 토지와 인민의 많고 적은 것이 동일하지 않아 더러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데도 공역(貢役)의 배정에 있어서는 그다지 차등이 없기 때문에 고달프고 수월한 것이 균등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대부분 토산품이 아닌 온갖 물건을 모두 마련하여 각 관사에 나누어 바치게 합니다. 따라서 농간을 부리는 폐해가 백성들에게 돌아가 서리(胥吏)들만 이익을 취하고 국가의 경비에는 조금도 보탬이 없습니다. 그리고 근래 조세(租稅)의 수입이 적은 것이 북쪽 오랑캐의 제도와 같아서 1년의 수입으로는 지출이 부족하여 늘 전에 저축한 것을 보충하여 쓰게 되므로 2백 년 동안 저축해 온 나라가 지금 2년 먹을 양식도 없어서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니,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부세를 증가시키자니 민력이 이미 고갈되었고 전례를 그대로 지키자니 얼마 안가서 저축이 바닥날 것이니, 이는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신은 생각하건대, 공안을 개정하는 데 있어서 유능한 사람에게 맡겨 규획(規畫)을 잘 하게 할 것은 물론, 단지 토산품으로만 균평하게 배정하고 한 고을에서 바치는 것이 두세 관사에 지나지 않도록 한다면 원액(元額)의 수입은 별로 감소되는 것이 없으면서 백성의 부담을 10분의 9쯤 줄일 듯싶습니다. 이렇게 민력이 여유를 갖게 해서 백성들의 심정을 위안시킨 다음 적당히 조세를 증가시킨다면 국가의 경비도 점차 충족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안을 개정하려는 것은 단지 백성을 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경비를 위해서입니다.

이른바 수령을 줄이자는 것은, 고을을 설치하여 수령을 두는 것이야말로 백성을 보살펴주기 위한 것인데 지금 고을은 많은데다가 백성은 적으므로 수령들이 대부분 빈 자리만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전이나 백성의 고달픔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수령을 제수할 때에도 인물을 뽑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런데 시의(時議)는 연혁(沿革)시키는 일에 대해 곤란하다고 여기고 있으므로 이른바 폐단을 구제한다는 것은 관아(官衙)의 권속(眷屬)들을 줄이는 데 불과할 뿐입니다, 따라서 사방의 잔파된 것을 소생시킬 기약이 없으니 끝내는 팔도의 수령 모두가 홀아비 노릇을 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법제입니까.

이 폐단에 대해 전하께서도 전부터 유의하시어 누차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망설이며 시행하지 않습니까. 지금 두세 곳의 연접되어 있는 잔파된 고을을 합쳐 하나로 만든다면, 이것은 세속을 놀라게 하는 일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고 백성의 부역도 3분의 1쯤 줄일 수 있으며, 수령을 뽑기도 전보다 쉬울 것입니다.

이른바 감사를 구임시켜야 한다는 것은, 감사는 한 도의 주인이므로 그 직에 오래 있으면서 백성들의 신뢰를 쌓아야만 왕화(王化)를 펼 수 있고 호령이 시행되어서 평상시에는 정사를 이룰 수 있고 위급한 때에는 변란에 대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아니하여 감사의 임기가 단지 1년인데다가 가족마저 데려가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여 명을 받는 날부터 이미 병을 핑계되고 사임할 생각을 가지는가 하면 수개월 동안 지체하면서 임무를 수행할 생각을 갖지 않다가 끝내는 병으로 면직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도에는 늘 주인이 없는 것과 같이 정사를 담당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교화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 중에는 국가를 위할 마음을 가진 자로서 정치와 교화를 정리하고 싶어도 임기가 얼마 안 가서 만료되어 업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때문에 감사가 있든 없든 백성들은 상관조차 하지 않으니, 감사를 두는 것이 어찌 진정 이러한 것이겠습니까.

지금 여러 도의 큰 고을을 골라 감영을 설치하고 감사로 하여금 가족을 데리고 가서 양계(兩界)의 예와 같이 수령의 직무를 겸임하여 그 직에 오래 있게 하소서. 그리고 조정 신하들 중에 경제(經濟)에 마음을 가져 백성을 보살피고 대중을 다스릴 만한 사람을 특별히 뽑아 보내어 직무를 성심껏 수행하여서 공효를 이루게 하는 한편, 들어오면 조정의 정사에 참여케 함으로써 내직을 중하게 여기고 외직을 경시하는 폐단이 없게 한다면 백성들이 실다운 혜택을 입게 되어 석서(碩鼠)의 시가(詩歌)003) 소리가 읍리(邑里)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지상의 계책이 아니겠습니까.

매양 생각하건대, 전하께서는 영명하신 자질과 맑고 순수한 덕을 지니시고도 인(仁)한 마음을 미루어 넓혀 정사에 베풀지 못하기 때문에 옛날 황음 무도한 군주와 똑같이 위망의 전철을 밟으려 하니, 이에 대해 신은 밤낮으로 안타까와 하며 마음 졸이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신의 말을 망령되지 않다고 여기신다면 깊이 생각하고 오래 강구한 다음 대신에게 문의하여 조금이라도 채용해 주소서. 이것이 신의 구구한 소원입니다."

하였는데, 상이 답하기를,

"경의 상소를 보고 충성스러움을 잘 알았다. 나 역시 마음을 가다듬고 일을 해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너무도 몽매하고 재주와 식견이 부족하여 지금까지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으니, 생각해 보면 한탄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더욱더 경계하여 살펴 유념하겠다."

하였다. 그뒤 며칠이 지나서 이이가 경연에 입시하여 몸을 닦고 백성을 다스리는 방도를 진달하자, 상이 흔쾌히 수작하여 종일토록 토론하고서 파하였다. 이때부터 이이는 입시할 적마다 전설(前說)을 반복하여 아뢰기를,

"전하께서는 신의 계책을 채용하여 인재를 얻어 정사를 맡겨 기강을 바로잡고 오랜 폐단을 개혁시키는 데 있어 유속(流俗)이나 부의(浮議)에 저지되거나 동요되지 마소서. 3년간 이와 같이 하였는데도 세도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신에게 기망한 죄를 내리소서."

하였다. 상이 그의 봉사(封事)를 입시한 신하들에게 보이면서 이르기를,

"우찬성이 전부터 이런 논의를 해왔는데 나는 매우 어렵다고 본다. 모르겠다만 경장시키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니, 좌우 신하들이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는데, 장령 홍가신(洪可臣)이 대답하기를,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급무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비유하건대 이 궁전은 본시 조종이 창건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되어 무너질 형편이라면 조종이 창건한 집이라 하여 수리하여 고치지 않고 그저 앉아서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필시 재목을 모으고 공장(工匠)을 불러들여 썩은 것은 갈아내고 허물어진 데는 보수한 뒤에야 산뜻하게 새로워지는 것인데 경장시키는 계책이 무엇이 이것과 다르다 하겠습니까."

하자, 상이 그렇다고 하였다. 부제학 유성룡이 이 말을 듣고 이튿날 차자를 올려 이이의 논의가 시의(時宜)에 적합하지 않다고 극론하자, 그 의논이 끝내 중지되었다. 홍가신유성룡에게 가니 성룡이 그가 이이의 논의에 부회하였다고 힐책하였다. 가신이 말하기를,

"공은 과연 경장하는 것을 그르다고 여기는가?"

하니, 성룡이 말하기를,

"경장하는 것은 진실로 옳은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재주로 그 일을 해내지 못할까 염려될 뿐이다."

하였다. 이이가 일찍이 경연에서 ‘미리 10만의 군사를 양성하여 앞으로 뜻하지 않은 변란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자, 유성룡은 ‘군사를 양성하는 것은 화단을 키우는 것이다.’라고 하며 매우 강력히 변론하였다. 이이는 늘 탄식하기를 ‘유성룡은 재주와 기개가 참으로 특출하지만 우리와 더불어 일을 함께 하려고 하지 않으니 우리들이 죽은 뒤에야 반드시 그의 재주를 펼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임진년 변란이 일어나자 유성룡이 국사를 담당하여 군무(軍務)를 요리하게 되었는데, 그는 늘

이이는 선견지명이 있고 충근(忠勤)스런 절의가 있었으니 그가 죽지 않았다면 반드시 오늘날에 도움이 있었을 것이다.’고 하였다 한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6권 3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506면
  • 【분류】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풍속(風俗)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윤리(倫理) / 재정-공물(貢物) / 재정-역(役) / 사법-탄핵(彈劾) / 사상-유학(儒學) / 역사-고사(故事) / 인물(人物)

  • [註 003]
    석서(碩鼠)의 시가(詩歌) : 백성이 학정에 시달림을 받아 윗사람을 원망하여 부른 시가를 말함. 《시경(詩經)》 위풍(魏風) 석서(碩鼠).

○朔丙辰/以李珥爲議政府右參贊, 俄進階崇政。 三辭不許, 乃拜命, 俄上封事, 極陳時弊。 其疏略曰:

臣聞, 上智明於未然, 制治于未亂, 保邦于未危; 中智覺於已然, 知亂而圖治, 識危而圖安。 若夫見亂而不思治; 見危而不求安, 則智斯爲下矣。 恭惟, 殿下以上智之資, 當覆隍之運。 危亡之象, 明若觀火, 中智之所歎悶, 而終不見治安之策, 可以上副皇天祖宗付畀之責; 下慰臣隣、黎庶顒若之望。 謂殿下不知危亡之象, 則今之國勢岌岌, 童子亦知, 寧有聖明不知之理乎? 謂殿下已知也, 則何恃而不出制治保邦之計乎? 嗚呼, 殆哉! 嗚呼, 殆哉! 危亡之象, 臣請冒鈇鉞之誅, 試陳其略焉。 世汚於循俗, 績敗於食志, 政亂於浮議, 民窮於積弊, 此四者其大目也。 世汚於循俗者, 何謂也? 世降俗末, 人心漸薄, 非有敎化振起之, 則風澆俗敗, 勢所必至。 今之世道, 如水益下, 習非已久, 視若當然, 禮義廉恥, 不張久矣。 循俗者無謗; 異衆者招譏, 故大小尊卑, 相率而入於荒亂之境, 放心爲惡, 無復顧忌。 士子尙且先利而後義, 則小民何觀焉? 甚至於遺君後親, 無所係念, 三綱淪而九法斁者, 今日之謂也。 無事時, 已解綱常之紐, 脫有緩急, 則將必疾視長上之死而不救矣, 土崩之勢, 翹足可待。 此其爲危亡之象, 一也。 績敗於食志者, 何謂也? 設官分職, 非祿其窮也, 將得人才, 以治天工。 而今則不然, 爲人擇官, 不問才否。 大官持祿, 固鮮憂國之志; 小官餔餟, 尤絶奉職之念, 師師非度, 筋脈解弛。 一有欲治官事者, 則群笑聚罵, 指爲癡兒, 左牽右掣, 前拘後礙, 卒無所成。 至於胥吏之微, 亦得乘機售奸, 竟使失職, 習已成例。 由是, 士之稍知自守者, 不欲做官。 而惟慕爵貪榮及窮不能家食者, 或偸時得勢、或屈心抑志, 乃能久於居官, 故大小臣僚, 皆不敢有意於職務。 其中彼善於此者, 只能按簿書, 應期會而已。 馴致庶績日敗, 百司皆弊。 延及郡縣, 無邑不殘, 內外空虛, 無以爲國。 此其爲危亡之象, 二也。 政亂於浮議者, 何謂也? 自古爲國, 必有執政, 三公統六卿; 六卿摠庶司。 貴以臨賤; 下以承上, 尊卑有序, 綱紀攸張。 今則不然, 廷議多岐, 朝更夕變, 是非之權, 莫適主張, 上下大小, 不相管攝, 朝紳千百其心。 所謂浮議者, 不知其所自來, 始微漸盛, 終至於動搖廟堂, 波盪臺閣, 則擧朝靡然, 莫敢相抗。 浮議之權, 重於太山、銛於鋒刃, 一觸其鋒, 則公卿失其尊; 賢俊失其名, 無所用其辯; 無所施其勇。 終莫知其所以然也, 吁亦異矣! 由是, 下而凌上; 賤而蔑貴, 人各自用, 紀綱板蕩, 不顧義理所在, 而惟觀浮議之勢而已。 噫! 政在臺閣, 尙云憂亂, 況於政在浮議者乎? 誠千古之所罕聞也。 譬如萬斛之船, 泛于溟渤, 無一人執柁, 一任風浪。 此其爲危亡之象, 三也。 民窮於積弊者, 何謂也? 法久弊生, 古今通患, 不有變通, 生理必窮。 況我國家, 屢經權奸之手, 多立弊法, 踵謬不改, 因微至大, 貽毒生民, 無有紀極。 而數十年來, 未嘗釐革, 至于今日, 版籍之數、田野之闢, 太半減舊, 而責辦貢賦, 反甚於前。 故民窮財盡, 輾轉流散, 民益少而役愈苦, 其勢必至於民無孑遺, 然後乃已也。 民爲邦本, 本固邦寧。 目今民生日蹙, 如在水火, 撫我則后; 虐我則讎, 豈不深可懼哉? 孟子曰: "爲叢驅雀者, 鸇也。" 今以斯民之倒懸, 倘有隣邦如者在傍, 則民必襁負而歸之矣。 此其爲危亡之象, 四也。 今此四象, 非隱微未現之幾也。 有目者可覩; 有口者可言, 殿下寧獨未知乎? 梅福之言曰: "不見其形, 願察其影。" 若言今日之影, 則天文示變, 地道不寧, 水旱極備, 癘疫連年, 草木、山川、昆蟲、鳥獸, 百怪競出, 式月斯興, 此是何影乎? 嗚呼! 殿下爲一國之主, 則一國之不治, 將責之誰乎? 古之論爲治者, 必以格致、誠正爲本, 今爲老儒陳言, 孰不以爲迂且遠哉? 雖然, 欲捨格致、誠正而求治國者, 終無是理。 何則? 不格致則智不燭理; 不誠正則心不循理。 不燭理則無以辨邪正、是非之分; 不循理則無以施任賢、安民之術。 自古人君, 雖甚無道, 豈有欲亡其國者乎? 惟其智不明也, 故以亂爲治; 以奸爲忠。 惟其心不正也, 故見賢而憚其守道; 遇侫而言說其媚己, 此所以覆轍相尋, 而終莫之悟者也。

今殿下天資睿聖, 寡慾淸修, 恭儉禮下, 無少過失。 而臨御十六年, 治道不昇, 乃有危亡之象, 如前所陳, 則豈非格致、誠正之功, 有所未盡而然乎? 嗚呼! 殿下其以今日國勢, 爲可以拱手垂衣, 終得保存乎? 抑欲匡救, 而未知其策乎? 抑有其志, 而不得其臣, 難於作事乎? 抑欲付之天運, 任其興亡, 而不容人力乎? 自古欲治不能者, 有二焉。 多慾之君, 自奉甚廣, 宮室之盛、聲色之娛、馳騁。 弋獵之樂, 不能自抑, 故民不能堪而亂作者, 一也。 柔弱之君, 授柄權奸, 政不己出, 寄生於上, 左右耳目, 皆非腹心, 稍欲有爲, 便被鉗制者, 二也。 今殿下旣無多慾之累, 又無權奸之患, 欲王而王; 欲覇而覇, 在殿下度內耳, 誰禁而莫之治乎? 竊料, 危亡四象, 皆係於殿下, 而革弊興治, 亦在於殿下不爲也, 非不能也。 何以言之? 殿下好善雖至, 而信道不篤。 聞人有忠孝、淸白一節之行, 則嘆賞不置; 聞人有以道學自任, 則或疑其僞。 夫道學者, 必具善行, 行善者, 未必知道。 豈可重一節, 而輕道學乎? 惟殿下重道崇儒之誠未至, 故發號、擧錯之間, 喜循俗而惡異常。 直節之士, 疑其矯激; 含默之臣, 比於醇厚, 古道之說, 斥以大言。 由是, 流俗之士向風草偃, 咸曰: "吾王不悅道學。" 爲善者沮, 爲惡者肆, 稍自修飭, 則目以釣名, 同流合汚, 則許以任眞。 敎化陵夷; 彝倫喪敗, 此所以世汚於循俗者也。 殿下愛士之意, 固出於誠, 而惟是好勝之私未克; 求治之志不立。 故惓戀印綬者, 順而承寵, 難進易退者, 逆而忤旨。 至於進賢則不論用舍, 而只以爵祿爲羈靮; 待士則不辨賢否, 而只以崇卑分輕重。 故欲行其道者, 願忠而不可得, 彷徨躑躅, 終至於必退; 欲食其祿者, 雖毁瓦畫墁, 必以久次, 終至大官。 夫爵祿者, 所以礪世磨鈍, 而命德之器也。 若使欲得者皆進; 不求者皆退, 則天工之曠, 何足怪哉? 此所以績敗於食志者也。 自古明王誼辟, 不能獨治, 必得賢者而共國。 故大哉之, 猶以不得爲己憂; 君哉之, 猶以不得皋陶爲己憂。 人君任臣, 天地之道也。 顧所任有邪正, 而治亂安危係焉。 是故, 任君子則政治而安; 任小人則政擅而危。 君子、小人, 都無所任, 則政散而亂, 此, 必然之勢也。 今以殿下之明聖, 小人固不得肆其奸矣。 至於君子, 亦未深信, 而任之不專, 故君子亦不能行其志。 是君子、小人, 皆無所用也。 由是, 國柄無寄, 而朝綱渙散, 有如第宅無主, 路人爭入, 發言盈庭, 具曰予聖, 各以私見, 馳騁而橫議。 至於牛童、馬卒, 乳臭小兒, 皆欲預論朝廷之是非。 故朝廷不嚴; 國勢不尊, 此所以政亂於浮議者也。 自古繼世之君, 善於守成者, 有二焉。 繼治世則遵其法而治焉; 繼亂世則革其弊而治焉。 其事雖異, 其道則同也。 故眞西山曰: "當持守而持守, 固繼述也; 當變通而變通, 亦繼述也。" 此眞不易之定論也。 今殿下承積弊之餘, 宜講更張之策, 而每以改紀爲難, 故變通之說, 略不採納。 譬如舊室材朽, 朝暮將頹, 而不易一椽; 不改一柱, 坐待覆壓, 是, 何理歟? 雖舊章成憲, 時移事變, 則或有勢難遵行者。 故國初用《經濟六典》, 而光廟創成《經國大典》, 成廟以後, 《續錄》多端, 此豈好爲紛更乎? 權時適宜之策, 不得不爾。 今者非但膠守舊章, 而雖誤規出於一時, 行之旣久, 則認爲成憲, 遵守益虔, 毒遍寰宇, 而莫之恤。 斯民何罪, 値聖明之君, 而終不得脫塗炭之苦乎? 昔者諸葛亮曰: "不伐賊, 王業亦亡。 惟坐而待亡, 孰與伐之?" 臣亦曰: "不更張, 邦國必亡。 惟坐而待亡, 孰與更張?" 更張而善, 則社稷之福也; 更張而不善, 亦非促亡, 只與不更而亡者一般耳。 殿下雖有愛民之心, 而不施安民之政, 徒善無法, 民不見德, 此所以民窮於積弊者也。 嗚呼! 我太祖康獻大王肇受天命, 太宗恭定大王贊成大業, 世宗莊憲大王鞏固弘基。 列聖相承, 至于殿下, 祖宗在天之靈, 於昭陟降, 其有望於殿下者, 豈不深且遠哉? 今者民散兵銷, 倉廩匱竭, 恩不下究, 信義掃地。 脫有外侮侵犯邊陲; 頑民弄兵潢池則無兵可禦; 無粟可食; 無信義可以維持, 未知於此, 殿下將何以應之耶。 今聞詔使將來, 西民已無支撑之計。 今以殿下之恪愼, 尙不能保國, 倘使繼於後者, 稍不謹度則其亡必亟矣。 不及今日, 爲貽厥燕翼之謨, 則是殿下, 上負祖宗; 下棄子孫矣。 殿下若於乙夜燕閑之際, 念及於此, 則能無惕然警省者乎? 嗚呼! 非常之績, 不可以常調, 幸而成也。 今將回亂爲治; 轉危爲安, 一新世道, 迓續天命, 功光祖宗; 業垂後裔則此固非常偉烈, 必樹立大志, 奮庸熙載, 日有所事, 盡其才誠然後, 庶可有成矣。

今者上下束手, 恬嬉姑息, 則不進而退者, 固其理也。 竊覵, 廷臣氣像萎薾。 賢者只欲持身寡過而已; 不賢者汲引儕輩, 托公營私。 在職之人皆無固志, 少有人言, 引疾避事, 朝遷暮除, 不成模樣, 其於治亂、安危, 漠然不入於心。 言及經國遠猷, 則賢者嚬眉, 猶憂上意之難回; 其次諉之天命, 以爲無可奈何; 若不賢者則直加非笑, 以爲愚妄。 由是, 廟堂絶建白之議; 六部守文墨之規, 臺諫毛擧細故, 摘人舊惡, 以爲日課; 侍臣尋章抉句, 閑言謾語, 以擬啓沃, 未嘗聞有一人憂深思遠, 提挈綱領, 直言極諫者。 此, 無他, 殿下不以有爲之志, 昭示群下, 故廷臣疑殿下惡聞逆耳, 而不盡其忠也。 噫! 自古人臣之獻忠者, 先事而言, 則必不見信; 事至而言, 則欲救無及, 此所以死病無良醫者也。 今日之象, 非先事之言也。 剝床不已, 必至於膚; 引繩不止, 必至於絶。 豈可以目前之幸免, 遂以爲終得無事也哉? 今殿下無意於救時, 則雖布列左右, 亦無益也, 臣可緘口矣。 如欲救時, 豈可寥寥無策乎? 嗚呼! 殿下誠能一朝慨然發憤, 大振勇猛之志, 必以旋轉乾坤, 昭洗宇宙, 光祖宗、裕後昆爲期。 而篤信大道, 終始典學, 居敬、窮理, 兩進其功, 動靜、云爲, 一循天則, 以一身立表準於上, 使一國臣民, 咸覩聖心重道崇儒, 申明敎化, 快若雲霧盡消, 太陽中天, 則汚世濁俗, 寧無於變之勢乎? 如是而至誠側席, 旁招俊乂, 明明揚仄陋, 惟賢惟才, 不問其類, 用人只觀人器相當而已, 勿拘常格, 各使稱職, 則食志之患, 非所慮也。 其於賢者, 察之審、擇之精、知之深、信之篤而委任責成, 勿貳勿間。 使之擧其所知, 分掌百職, 各興事功, 考績課勞, 黜陟公明, 則淸論有主, 而國勢尊嚴, 悠悠之輩, 亦皆俯首聽位, 各守其分矣, 浮議安得以亂政乎? 人君臨政, 每患無人, 此亦不然。 若三代君臣則固無議爲, 如 武帝, 非賢君也。 當其好大喜功之際, 材略之士, 宣力于外, 東恢西拓, 惟意所欲。 及其末年, 悔過斂迹, 養民保境則又有任土之臣, 運智制器, 便耕利民。 若使武帝, 求踵哲王, 則安知無道學之士, 出而應命乎? 世未嘗無人, 只患人君, 求治不誠, 不能收用耳。 今日人物眇然, 殿下俯視一世, 固歎無可用之才。 雖然, 殿下若誠心望治, 用當其才, 則豈不可做一時之事業乎? 若積弊之可袪者, 則今難枚擧, 愚臣之每達于經席者, 是, 改貢案、省吏員、久任監司三者耳。 所謂改貢案者, 列邑土地、人民, 大小不同, 或至懸絶, 而貢役之定, 無甚差等, 苦歇不均。 而多非土産, 百物皆辦, 而分納各司。 刁蹬之弊, 害歸於民, 胥吏弋利, 而公用不加焉。 且近來稅輕, 有如貉道, 一歲之入, 不能支出, 每以宿儲補用, 二百年積累之國, 今無二年之食, 國非其國, 豈不寒心? 今欲加賦, 則民力已竭; 坐守前規, 則不久必罄, 此非難見者也。 臣意, 若改貢案, 付之能? 憼 善於規畫, 只以土産, 均敷平定, 使一邑所納, 不過二三司, 則元入之數, 別無所減, 而民費則可除十之九矣。 如是寬舒民力, 慰悅民情然後, 量宜加稅, 則國用可以漸裕矣。 欲改貢案者, 非獨爲民, 實爲經費也。 所謂省吏員者, 設邑置宰, 只爲牧民, 而今者邑夥民少, 多擁虛器。 吏民之困, 日甚一日, 除拜之際, 亦難擇人。 而時議方以沿革爲難, 故所謂救弊者, 不過除衙眷而已。 四方蹙蹙, 蘇殘無日, 則終至於環八道, 而作曠夫矣, 此是何等法制乎? 此弊則殿下固嘗留意而屢言矣。 何故畏難而莫之施乎? 今若擇數三殘邑之接壤者, 合而爲一, 則此非驚世駭俗之擧, 而民役可減三分之一, 愼簡守令, 亦易於前矣。 所謂久任監司者, 監司爲一道之主, 久於其職, 與民相信然後, 王化宣焉; 號令行焉, 平日可以成政; 緩急可以應變。 今則不然, 監司只任一期, 而不以家眷自隨, 故人皆厭之, 受命之日, 已有謝病之計, 苟淹數月, 無意察任, 而終以疾免。 故一道常若無主, 政無所寄, 民不被化, 其中乃心王室者, 雖欲整理政化, 而期月易滿, 不能有成。 故監司有無, 民不管他, 監司之設, 豈端使然哉? 今若於諸道, 擇巨邑設營, 使監司率眷, 兼爲邑宰, 久於其位, 如兩界之例。 而別簡朝臣之心存經濟, 可以牧民馭衆者, 往欽厥職, 責以成效, 入則俾參朝政, 無重內輕外之弊, 則四境之民, 可蒙實惠, 而碩鼠之歌, 不作於邑里矣。 豈非安民之至計乎? 每伏惟念, 殿下以英睿之質、淸粹之德, 不能推廣仁心, 施於有政, 故將與古昔荒嬉無度之主, 危亂同歸於一轍, 此臣所以夙夜悶惜, 腐心痛骨者也。 殿下如以臣言爲不妄, 則深思舒究, 詢及大臣, 少加採用。 區區至願也。

上答曰: "觀卿上疏, 具見忠懇。 予非不欲策勵有爲, 而眇眇寡昧, 才識不逮, 以至于今, 事與心違, 予亦竊歎焉。 當更加警省留念焉。" 後數日, 入侍經席, 復陳修己治民之道, 上欣然酬酢, 討論竟日而罷。 自是, 入侍, 每申前說曰: "用臣之策, 得人授政, 頓綱振紀, 更張宿弊, 勿爲流俗浮議所沮撓。 如是三年, 而世道不回, 則臣請伏欺罔之罪。" 上以其封事, 示入侍諸臣曰: "右贊成自前每有此論, 予則以爲至難。 不知更張如何。" 左右不能對。 掌令洪可臣對曰: "此是當今急務也。" 上曰: "有說乎?" 對曰: "比之此殿屋, 本是祖宗所創。 若歲久頹敗, 則其可曰祖宗所創之宇, 不可修改, 而坐視其頹敗乎? 必須鳩材聚工, 朽者改之; 毁者補之然後, 方得重新, 更張之策, 何以異此?" 上然之。 副提學柳成龍聞之, 翌日進箚, 極論所論不合時宜, 其議遂格。 洪可臣成龍, 成龍詰其附會論, 可臣曰: "公果以更張爲非乎?" 成龍曰: "更張固是。 但恐其才不能辦此事也。" 嘗於經席獻言: "請預養十萬兵, 以備前頭不虞之變。" 成龍曰: "養兵所以養禍也。" 論辨甚力。 每歎: "柳成龍才氣儘高, 而不欲與吾同事, 吾輩死後, 方必施其才。" 及壬辰之亂, 成龍當國, 料理軍務, 每稱有先見之明、忠勤之節, 使其不死, 必有補於今日云。


  • 【태백산사고본】 3책 16권 3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506면
  • 【분류】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풍속(風俗)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윤리(倫理) / 재정-공물(貢物) / 재정-역(役) / 사법-탄핵(彈劾) / 사상-유학(儒學) / 역사-고사(故事)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