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 영건과 왜관 무역에 관해 경상도 관찰사 정사호가 치계하다
경상도 관찰사 정사호(鄭賜湖)가 치계하기를,
"신이 순시(巡視)하여 부산에 이르렀습니다. 새로 짓는 왜관(倭館)의 입접(入接)하는 방옥(房屋)은 이미 다 완료되었고, 연향(宴享)하는 대청(大廳)은 지금 기둥을 세우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옛터에다 짓지 않아서 혹시 왜의 환심(歡心)을 잃어 원망이 생길까 두렵다고 의심하지만 신의 소견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왜관과 부산은 한 성(城)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평시에는 부산은 서쪽에 있고 왜관은 동쪽 5리쯤 되는 곳에 있었는데, 지금 부산진(釜山鎭)이 왜인(倭人)이 쌓은 성을 왜관의 옛터 옆으로 옮겨 쌓았으니 바로 동쪽입니다. 이번에 짓는 왜관도 서쪽 5리쯤 되는 곳에 있어서 부산과의 거리가 평시와 일반이니 옛터이냐, 새터이냐는 논할 바가 아닌데 저들이 어찌 감히 원망하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이는 염려할 것이 못됩니다.
회답사(回答使)가 돌아온 뒤에 왜사(倭使)가 만약 연속하여 나온다면 그 지공(支供)의 비용을 전혀 마련할 길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부득이 각 고을에 분정(分定)해야겠으나 도내(道內) 각 고을이 난리를 겪은 지 이미 10년이 지났어도 공사(公私)의 물력(物力)이 조금도 소생되기는 커녕 점점 고갈되어 형편이 말이 아니니 매번 분정한다는 것은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백방으로 생각하고 헤아려보아도 그 방책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이 평소의 규정을 물어보니 왜사(倭使)가 나오면 반드시 시장을 열어 물건을 사고 파는데 만약 몰래 금물(禁物)을 파는 것이라면 엄히 금단(禁斷)하지만 다른 물화(物貨)를 파는 경우에는 우리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으레 장사하는 왜인에게 가게 하는 것을 허락하고, 동래 부사(東萊府使)가 수세(收稅)를 전담하여 왜사 접대하는 비용을 마련했다 했습니다. 이번에도 이미 왜사의 왕래를 허락하였으니, 개시(開市)하지 않을 수 없고, 개시한다면 세금을 걷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외(京外)의 장사치들이 왜시(倭市)에 달려가기를 즐기는 것이 중강(中江)보다 더 심하니 해사(該司)로 하여금 의주(義州) 중강(中江)의 예에 따라 법을 세워 수세(收稅)하게 하거나, 혹은 동래부(東萊府)로 하여금 전대로 수세하게 하여 왜사 접대하는 비용으로 삼는다면 각 고을에 분정(分定)하여 침요(侵擾)하는 폐단이 없고 본부(本府)에도 지공이 모자라는 근심이 없어 편당(便當)할 듯합니다. 해사로 하여금 십분 헤아려 지휘하게 하소서."
하니,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비변사의 계목(啓目)에,
"계하하신 것을 점련하였습니다. 개시(開市)에 세금을 걷는 것은 예로부터 그랬습니다. 그러나 왜사(倭使)에게 다시 호시(互市)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옛 규례를 참작하여 헤아려서 그 세금을 받는 것이 왜사를 지공하는 쓰임에 보탬이 될 것입니다. 회답사가 돌아온 후에 천천히 사세(事勢)를 보아가면서 임시(臨時)하여 강정(講定)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사연으로 행이(行移)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저 왜노(倭奴)는 우리의 능(陵)을 태우고 파헤쳤으며 우리 백성들을 죽였으니 바로 9세(世)토록 반드시 갚아야 할 원수이다. 그러니 우리 나라의 군신(君臣)은 와신상담하면서 밥먹는 사이에도 일찍이 이 원수를 잊은 적이 없는데 이번에 왜관(倭館)을 창설하여 교통(交通)하고 개시(開市)하고자 하였으니,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심하다. 하늘에 계신 조종의 영혼이 저승에서 통곡하지 않겠는가? 나라 일이 이에 이르렀으니 누가 허물을 책임질 것인가?
- 【태백산사고본】 114책 212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344면
- 【분류】외교-왜(倭) / 교통-육운(陸運) / 무역(貿易) / 재정-잡세(雜稅) / 역사-사학(史學)
○慶尙道觀察使鄭賜湖馳啓曰: "臣巡到釜山, 新造倭館入接房屋, 已盡完了, 宴享大廳, 今方竪柱。 而或者疑不造於舊基, 恐致失懽而生怨, 臣之所見不然。 自前倭館與釜山, 非在一城中者也。 平時釜山在西邊; 倭館在東邊五里許, 今則釜山鎭, 就倭子所築之城, 移設於倭館舊基之傍, 卽東邊也。 今造倭館, 又在於西邊五里許, 與釜山相距遠近, 與平時一樣, 基之新舊, 非所當論, 渠何敢生怨? 此則不足爲慮。 但回答使旣還之後, 倭使若連續出來, 則其支饋供帳之費, 了無辦出之路。 初頭則不得已當分定於各官, 道內各官, 經亂已過十年, 而公私物力, 非徒一毫未蘇, 漸向澌渴, 不成形樣, 每每分定, 亦非可繼之道。 百爾思量, 未得其策。 臣竊訪平昔之規, 倭使出來, 則必開市, 如潛商禁物者則嚴加禁斷, 他餘物貨, 許令我國人, 依例赴市人處, 東萊府專管收稅, 以備倭使接待之資。 今亦旣令倭使往來, 則市不可不開, 市旣開焉, 則稅不可不收。 而京外商賈之徒, 樂趨倭市, 有甚於中江, 令該司依義州、中江之例, 立法收稅, 而或令東萊府, 依前收稅, 以爲倭使接待之需, 則各官無分定侵擾之弊; 本府無支供缺乏之憂, 似爲便當。 令該司十分商量指揮事。" 啓下備邊司。 備邊司啓目: "粘連啓下。 開市之征, 自昔爲然。 若使倭使, 更許互市, 則自當參酌舊規, 量收其稅, 可補倭使支供之用。 回答使回還後, 徐觀事勢, 臨時講定, 亦爲未晩。 辭緣行移何如?" 傳曰: "允。"
【史臣曰: "惟彼倭奴, 燒夷我原陵; 魚肉我生靈, 乃九世必報之讎。 我國君臣, 所當臥薪嘗膽, 未嘗食息忘此讐。 而今者欲爲創設倭館, 交通開市, 無恥甚矣。 祖宗在天之靈, 得無慟哭於冥冥之中乎? 國事至此, 誰執其咎?"】
- 【태백산사고본】 114책 212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344면
- 【분류】외교-왜(倭) / 교통-육운(陸運) / 무역(貿易) / 재정-잡세(雜稅)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