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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00권, 선조 39년 6월 25일 임술 10번째기사 1606년 명 만력(萬曆) 34년

양전 사업에 관한 호조의 계목

호조의 계목(啓目)에,

"국가의 경비는 오로지 세입(稅入)에 의존하는 것이어서 국가로서는 이보다 더한 급무(急務)가 없는 것입니다. 근년에는 1년의 세입이 겨우 4만여석에 이르고 있는데 1년의 경비는 7만여석을 믿돌지 않아 부족한 숫자가 거의 반이나 됩니다. 그리하여 부득이 매년 수미(收米)하는 일이 있게 되고 이에 의지하여 어렵게 지탱하고 있는데 이른바 수미라는 것은 바로 법규 이외의 부세인 것입니다. 1년에 두번 세금을 내므로서 어리석은 백성들이 색목(色目)064) 에 대해 어리둥절하고 비용이 정도에 지나치므로 곳곳에서 원망이 치솟고 있으니 실로 계속할 수 있는 방도가 아닙니다. 국가의 용도가 점점 상규(常規)를 회복하고 있는데 이미 수입을 헤아려 지출할 수가 없다면 부득불 지출을 헤아려 수입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한 때의 권도(權道)인 것으로 폐할 수 없는 방도입니다.

지난번 양전(量田)에 대한 일은 난이 막 끝난 때에 거론되었었는데 거론되자마자 곧 폐기된 채 수년 동안을 미루어왔으므로 허위(虛僞)와 간람(奸濫)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등제(等第)의 고하와 결부(結負)의 다과가 모두 실제와는 틀리게 되어 있는데 그때그때 두찬(杜撰)하여 책임을 메우기만 힘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옛날의 상품전(上品田)이 지금은 바뀌어 하품전이 되었고 전의 일결답(一結畓)이 지금은 반결답(半結畓)으로 줄었습니다. 세입(稅入)이 넉넉지 못하고 국계(國計)가 모양을 이루지 못한 것이 모두 여기에 연유된 것입니다.

국가에서 분전(分田)을 함에 있어서는 육등법(六等法)을 두었고 수세(收稅)할 적에는 구등제(九等制)를 두고 있어 규획(規畫)이 매우 엄밀한데도 국가의 법이 시행되지 않고 인정이 타성에 젖어 세상에서 양리(良吏)라고 이름난 사람도 백성들에게 호감을 사고 은혜를 베푸는 것만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등급을 나누고 세금을 매김에 있어 모두 하지하(下之下)를 따를 뿐 중(中)이나 상(上)이 있는 줄을 모르고 있는데 이를 그대로 답습하여 드디어 상전(常典)이 된 것입니다.

경차관(敬差官)이 복심(覆審)하는 것 또한 한바탕의 겉치레인 것으로, 각 고을에서 영송(迎送)하는 폐단과 전부(田夫)가 지대(支待)하는 비용이 끝이 없는데 반하여 국가의 경비에는 털끝만큼도 유익함이 없습니다. 세입(稅入)을 조사하는데 있어서는 전의 장부(帳簿)만을 그대로 따를 뿐 조금도 가감하는 것이 없는데, 이는 답험(踏驗)을 사실대로 하지 않고 수세를 모두 하지하를 따른 데에서 연유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수재(水災), 한재가 지난해처럼 극심했던 경우에도 사실에 따라 급재(給災)065) 함으로써 혜택을 베풀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조관(朝官)을 가려 보내어 재상(災傷)을 복심(覆審)했다는 것은 명칭만 있었을 뿐 실상은 조금도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지금 국가의 경비는 판탕이 극심하니 잠시라도 국가에 이롭고 조금이라도 백성들에게 편의한 권의(權宜)가 있다면 반복하여 강구해서 구시책(救時策)을 만드는 것도 해로울 것이 없습니다.

각도의 전세(田稅)를 모두 하지중(下之中)으로 한정을 정하고 경차관이 복심하는 법을 제거한 다음 각 고을로 하여금 스스로 부책(簿冊)을 작성하여 감사에게 보고하게 하되, 그 가운데 더욱 극심하게 재해를 입은 곳이 있으면 전부(田夫)들에게 고장(告狀)하게 한 뒤 수령이 답심(踏審)하여 그 사실을 감사에게 보고하게 하며, 감사는 도사(都事)를 보내어 복심하여 사실에 따라 급재(給災)하게 하소서. 그렇게 하면 백성들이 세입(稅入)이 국가 경비의 근본이 되는 것인 줄 알게 되어 한두 말의 곡식을 더 바치더라도 명목없는 수미(收米) 때와 같이 억울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복심으로 인한 폐단도 제거되어 반드시 매우 편리할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1년의 세입으로 1년의 비용을 지탱하기에 충분하여 지금처럼 궤핍(匱乏)된 상황에 이르지 않을 것이며, 명목없이 수미하여 1년에 두 번 세금을 내게 하는 폐단도 이로 인하여 조금은 제거될 것입니다. 따라서 국용(國用)을 넉넉하게 하고 민정(民情)을 편리하게 하여 양쪽 모두 온전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경기·강원도의 토질이 척박한 지역과 서북 양계(兩界)의 방비가 급박한 곳에는 1두(斗)라도 재감하여 아랫 백성을 도와주는 의리에 대한 배려가 없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 이익 얻는 점과 폐해를 제거하는 것을 따져본다면 몇배나 많을 뿐만이 아니어서 경중과 완급이 마땅함을 얻을 것 같습니다. 오래도록 시행하면 폐단이 없을 수 없지만 또한 한 때에 시험해 보면 유익함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일이 신규(新規)에 관계되어 경솔히 조처하기가 어려우니 대신들과 의논하여 정탈(定奪)해서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고, 호조의 계목에,

"계하하신 것을 점련하였습니다. 대신과 의논하니, 영의정 유영경(柳永慶), 우의정 심희수(沈喜壽)는 ‘복심법(覆審法)은 경솔히 폐해서는 안되고 하지중(下之中)으로 억지로 정하는 것 역시 백성에게 불편할 것 같다. 위의 재결을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대신들의 의논이 이러하니 위에서 재결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의논한 대로 하라고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복심법은 방헌(邦憲)에 기재되어 있는 것이니 경솔히 폐할 수 없다는 의논이 진실로 옳다 하겠다. 그러나 법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행하는 데 있어 사실대로 하지 않는다면 단지 백성의 피해만 가중시킬 뿐 실효(實効)에 도움이 없는 것이니, 호조의 계목도 시행해 볼 만한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09책 200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220면
  • 【분류】
    재정-전세(田稅)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역사-사학(史學)

  • [註 064]
    색목(色目) : 세금의 조목.
  • [註 065]
    급재(給災) : 재해로 인하여 피해를 받은 전지에 대해 세금을 면제하여 주는 것.

○戶曹啓目:

"國家經費, 專倚於稅入, 有國之務, 莫急於此。 近年一歲稅入, 僅至四萬餘石, 而一歲經費, 不下七萬餘石, 不足之數, 殆居其半。 不得已每年有收米之擧, 艱難支保, 所謂收米者, 乃是規外之賦。 一年再稅, 愚民眩於色目, 縻費過當, 所在稱冤, 實非可繼之道。 國家之用, 漸復常規, 旣不能量入而爲出, 則不得不量出而爲入, 斯乃權時, 不可廢之道也。 頃者量田, 出於草創之際, 旋作旋廢, 延拖數年之間, 虛僞奸濫, 不一而足。 等第之高下; 結負之多寡, 皆失其眞, 臨時杜撰, 惟以塞責爲務。 昔日上品之田, 今換爲下; 往時一結之畓, 今縮其半。 稅入之不敷; 國計之無形, 皆由於此。 國家分田有六等之法; 收稅有九等之制, 規畫經紀, 極其嚴密, 而國綱不行, 人情狃常, 世之號爲良吏者, 亦以悅民行惠爲主。 分等出稅, 盡從下下, 不知有中上之法, 因循蹈習, 遂爲常典。 敬差官覆審, 又爲一場文具, 列邑迎送之弊; 田夫支待之費, 罔有紀極, 而無一毫有益於國計。 視其稅入, 惟案舊簿, 無少加(滅)〔減〕 , 此由踏驗, 不以其實, 收稅盡從惟下。 故雖過一時水旱之災, 有如上年之甚, 而亦不能從分給災, 以施惠鮮之澤。 然則擇遣朝官, 覆審災傷, 徒有其名, 而少無其實。 今之國計, 旣甚板蕩, 如有權宜, 暫利於國, 而少便於民者, 則不妨反覆講究, 以爲救時之策。 若以各道田稅, 盡以下之中爲限, 除敬差官覆審之法, 容令各邑自爲成冊, 報監司, 其中如有被災尤甚之處, 許令田夫告狀, 守令踏審得實, 具報監司, 監司遣都事覆審, 從實(臨)〔給〕 災, 則民情旣知稅入爲國計之本, 雖加納一二斗, 不至如無名收米之怨苦, 而得除覆審之弊, 必且大以爲利。 如是爲之, 則一年稅入, 自足支一年之用, 不至如今日之匱乏, 無名收米, 一年再稅之弊, 亦可因此少袪。 裕國用、便民情, 可得兩全。 但京畿江原, 土品(饒)〔磽〕 薄之地; 西北兩界, 邊備緊急之處, 不可無商量裁減一斗, 以示益下之義。 以今較其所得利而除害者, 不啻倍蓰輕重、緩急, 似獲其宜。 雖不得行之久遠而無弊, 亦可試之一時而有益, 而事係新規, 難於輕處議大臣定奪施行何如?

戶曹啓目:

粘連啓下。 議于大臣, 則領議政柳永慶、右議政沈喜壽以爲: "覆審之法, 不可輕廢, 勒定下中, 亦恐不便於民, 伏惟上裁。" 大臣之議如此, 上裁施行何如?" 啓, 依議。

【史臣曰: "覈審之法, 載在邦憲, 不可輕廢之議, 固是矣。 但法非不美, 而行之不以實, 只增民害, 無補實效, 戶部之啓, 亦或可施。"】


  • 【태백산사고본】 109책 200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220면
  • 【분류】
    재정-전세(田稅)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