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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95권, 선조 39년 1월 22일 신묘 2번째기사 1606년 명 만력(萬曆) 34년

이덕형과 이항복의 전력

이덕형(李德馨)이 모상(母喪)을 당한 뒤에 이조 판서에 기복(起復)되어 정청(政廳)에서 버젓이 행공(行公)하고 흑색 천익 차림으로 늘 정사에 참여하였다. 난리중에 군무로 말미암아 기복하였다면 그래도 댈 핑계가 있겠지만 덕형의 경우는 이록(利祿)을 탐내어 이렇게 나왔으므로 사람의 도리를 다시 찾아볼 수 없다. 훈련 도감 제조로 있을 적에는 도감을 사고(私庫)로 삼아 날마다 쌀과 베를 가져다 썼고 또 남대문 밖에 사사로이 큰 집을 지었는데 병조의 군사로 공공연히 터를 닦게 하고 별영(別營)의 재목을 가져다 썼다. 미천한 사람 박자우(朴子羽)도 대중 앞에서 그의 추잡하고 방자한 작태를 큰 소리로 비난하였다. 그리고 사인(士人) 채정선(蔡禎先) 및 그의 아우 문사(文士) 채경선(蔡慶先)이 조신(朝臣)들에게 말하기를,

"덕형의 아버지가 문화 현령(文化縣令)으로 있을 적에 덕형이 공명첩(空名帖) 1백여 장을 내어다 몰래 문화현 일대에 팔아 소 수백 마리를 사들여서 통진(通津)에 있는 농장에 두었는데 이 소를 방목할 때 들판이 누렇게 되었다."

하였다. 이는 정선의 형 길선(吉先)덕형의 아버지 후임으로 문화 현령이 되었고 또 통진을 오간 일이 있었기 때문에 두 곳을 직접 보고 말한 것이다. 다만 재주가 조금 있어 기회에 따라 아첨하는 것을 장기로 삼았다. 남인(南人) 쪽이 생기가 보이자 남인의 행세를 하는 한편 또 술을 가지고 서인(西人) 김(金)·권(權)의 집에 찾아가서 서인을 위한 말을 했고, 소북(小北)이 흥성할 무렵에는 맨 먼저 유영경(柳永慶)을 추천함으로써 당시 사람들이 모두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덕형이 또 스스로 말하기를,

"큰 벼슬을 하는 자는 반드시 누차 변절한 뒤에야 정승이 될 수 있다."

하니, 조사(朝士) 유대정(兪大禎)이 웃으며 답하기를,

"그렇다면 대감은 몇 번이나 변절하였소?"

하자, 덕형이 부끄러운 표정을 짓기도 하였다. 정철(鄭澈)이 기축 옥사 때 계달하기를,

"정여립(鄭汝立)이 호남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영남에서 일어나는 자도 있고 경중에서 일어나는 자도 있습니다."

하였다. 이 의도는 이를 계기로 영남의 최영경·정인홍(鄭仁弘)·유성룡(柳成龍) 등과 경중의 이발(李潑)·이길(李洁)·정언신(鄭彦信)·백유양(白惟讓) 등을 무너뜨리려는 계책이었다. 상이 이르기를,

"이 말을 아는 자는 이 모사에 참여한 것이다. 경은 어디에서 이 말을 들었는가?"

하였는데, 문사 낭청(問事郞廳) 신잡(申磼)이 이 비답을 전하자 정철이 말이 궁색하여 신잡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이 말을 하지 않았소."

하였다. 이에 신잡이 자신은 모른다고 하니, 정철이 회계하기를,

"이항복이 말하였을 것입니다."

하였다. 항복정철과 동악 상제(同惡相濟)한 실상이 이와 같았는데 정승에까지 올랐으니, 어찌 괴이쩍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107책 195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152면
  • 【분류】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정변(政變) / 군사(軍事)

    李德馨遭母喪, 起復爲吏曹判書, 偃然行公於政廳, 以墨色天益, 常參政事。 亂離中以軍務起復者, 則猶有可諉, 而德馨則貪戀利祿, 無復人理。 及爲訓鍊都監提調, 以都監爲私庫, 日取米布用之。 又於南大門外, 私造大家, 使兵曹軍士, 公然修基, 取用別營材木。 如微賤人朴子羽者, 亦於衆中, 大言其麤鄙縱恣之狀。 且士人蔡禎先及其弟文士蔡慶先, 言於朝紳間曰: "德馨之父爲文化縣令時, 德馨出空名告身百餘張, 潛鬻於文化地, 買得數百牛, 置於通津農所, 放牧時野爲之黃。" 云。 禎先之兄吉先, 代德馨父爲文化縣令, 又往來通津, 故目見於兩處而言之。 但少有才, 以反覆趨勢爲長技, 南人有生氣, 則作南人之態; 又持酒往西人家, 爲西人之言; 小北將盛時, 首薦柳永慶, 一時之人皆見其肺肝。 德馨亦自言曰: "爲大官者, 必累度飜然後, 可以爲政丞。" 云。 朝士兪大禎笑而答之曰: "然則大監飜轉, 幾度乎?" 德馨有慙色。 鄭澈當己丑羅織之日啓達曰: "鄭汝立起兵湖南, 有從嶺南起者; 有從京中起者。" 云, 其意則蓋欲以此, 而陷嶺南崔永慶鄭仁弘柳成龍等; 京中李潑李洁鄭彦信白惟讓等之計也。 上曰: "知此言者, 與此謀。 卿何從聞此言乎?" 問事郞廳申磼, 往傳此批答, 語窮, 言于曰: "君爲此言矣。" 磼曰: "小人則不知也。" 乃回啓曰: "李恒福言之矣。" 恒福同惡相濟之狀如此, 而至於台鼎, 豈不怪哉?


    • 【태백산사고본】 107책 195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5책 152면
    • 【분류】
      인사(人事) / 사법(司法) / 변란-정변(政變)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