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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11권, 선조 32년 4월 17일 병인 5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중문 밖에 나아가 유격 허국위와 주례를 행하다

유격 허국위(許國威)가 시어소(時御所)에 와서 뵙기를 청하자, 상이 중문(中門) 밖에 나아가 맞아 들이고 주례를 행하였다. 【 국위는 복건(福建) 사람으로 인물이 경망스럽고 불학(佛學)을 숭신(崇信)하였다. 】 상이 이르기를,

"불곡(不穀)은 문학이 익숙하지 못하오. 그런데 듣자니 대인(大人)은 문장이 매우 높다고 하니 한 말씀을 써서 준다면 소국(小國)의 보배가 될 것입니다."

하니, 허국위가 말하기를,

"귀국은 문헌(文獻)의 나라입니다. 문구나 짓고 글씨나 쓸 줄 아는 저로서 어떻게 감히 글을 짓겠습니까. 제가 전일 남중(南中)에 있을 때 남쪽 지방의 선비들이 송축하는 시를 지어 서로 주기로 한 적이 있었는데, 저는 그들이 지은 것을 보고 즉시 그만두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장수들은 모두 나름대로 지어가지고와서 과시하려고 하였으니 이는 한바탕 웃을 일이었습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관왕묘(關王廟)는 영이(靈異)한 일이 심히 많으니, 국왕께서도 모름지기 더욱 존경하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관왕은 어느 때에 신조(神助)의 공이 있었고, 어느 때에 협천 대제(協天大帝)로 봉해졌소이까?"

하니, 국위가 말하기를,

"태조(太祖)083) 때에 음조(陰助)의 공이 있었기 때문에 무안왕(武安王)에 봉하였고 만력(萬歷) 13년에 협천 대제로 봉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인은 학문이 천인(天人)을 통하고 읽지 않은 책이 없다고 하는데 넓고 넓은 도(道)를 어디부터 착수해야 합니까? 성현의 천언만어(千言萬語)를 어디로 말미암아 들어갈 수 있는지, 가르침을 받고 싶소이다."

하니, 국위가 말하기를,

"도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마음 속에 있습니다. 일마다 마땅함을 얻는 것을 도라고 합니다. 만물에는 당연한 도가 모두 있는 것으로서 예컨대 술 마시고 고기 먹는 것도 모두가 도이고 마음 속에 조금이라도 만족스럽지 못한 점이 있다면 모두 도가 아닙니다. 도라는 것은 길과 같은데 바르고 평평(平平)한 것을 이릅니다. 몸소 실행하여 마음 속에 얻어지게 함이 바로 공부(工夫)하는 방법입니다. 인군의 도란 다른 것이 아니라 청심과욕 거현애민(淸心寡慾擧賢愛民) 여덟 글자에 있습니다. 저는 본시 무인(武人)일 뿐이니 어찌 도를 알겠습니까. 왕 안찰(王按察)은 도를 잘 아는 호인(好人)입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도란 본래 무(無)인 것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생래사거(生來死去) 네 글자를 명백히 알게 되면 천지 사이에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희로애락(喜怒哀樂)에 대해 먼저 정견(定見)을 갖게 되면 이 모두가 도입니다."

하였다. 【왕 안찰 역시 육상산(陸象山)의 학문을 숭신(崇信)하는 자였기 때문에 허국위가 호인(好人)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 밤 1경이 지나 허국위(許國威)가 술에 취하여 일어나려고 하자, 상이 예단(禮單)을 주니, 받아 가지고 갔다.


  • 【태백산사고본】 69책 111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600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행행(行幸) / 역사-고사(故事) / 사상(思想) / 풍속-예속(禮俗)

許遊擊國威, 來時御所請見, 上出中門外迎入, 行酒禮 【國威 福建人, 人物輕佻, 崇信佛學。】 上曰: "不穀不閑文學, 聞大人文章甚高。 若以一言相贈, 則小國之寶也。" 國威曰: "貴國, 文獻之邦。 以俺玩文弄墨, 何敢有作乎? 俺前在南中, 南中儒士, 有以頌言相贈者, 俺看了卽破。 諸將則皆鋟梓而來, 將爲誇示之計, 足賭一笑也。" 國威曰: "關王廟甚多靈異, 國王須加尊敬。" 上曰: "關王, 某時有神助之功, 某時封協天大帝乎?" 國威曰: "太祖朝有陰助之力, 故封武安王; 萬曆十三年, 封協天大帝也。" 上曰: "大人學貫天人, 無書不讀云。 道之浩浩, 何處下手? 聖賢千言萬語, 何從可入? 願安承敎。" 國威曰: "道不在遠, 只在心裏。 事事得宜之謂道。 萬物莫不有當然之道, 如飮酒食肉皆道也。 心裏少有所慊, 則皆非道也。 道者, 猶道也, 正正平平之謂也。 躬行心得, 是著得工夫也。 人君之道無他, 在淸心寡慾擧賢愛民八字上。 僕本武人, 焉知道哉? 王按察是好人知道者也。" 且曰: "道本無, 無他, 生來死去四字若明白, 則天地間無非要了。 至於喜怒哀樂, 先有定見, 則皆是道也。" 【蓋王按察亦崇信陸學者, 故國威言好人。】 夜一更漏下, 國威醉酒欲起, 上呈禮單, 受之而去。


  • 【태백산사고본】 69책 111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600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행행(行幸) / 역사-고사(故事) / 사상(思想) / 풍속-예속(禮俗)